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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탐방, 파리 피카소 미술관
12/21/201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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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탐방>------------------------------

 

끊임없는 변화로 미술계를 주도한 천재

파리 피카소 미술관 MUSEE PICASSO

 

: 장소현 (미술평론가, 시인)

사진촬영: 김인경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술가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단연 반 고흐와 

피카소(1895-1973)를 꼽을 것이다. 평소에 그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피카소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만큼 피카소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거장이었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고,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긴 작가로도 유명하다. 생전에 이미 전설이 된 인물이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 내부. 항상 많은 관람객으로 붐빈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나 1973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성한 작품창작과 

사회활동을 하였다. 그는 끊임없는 열정과 샘솟는 실험정신으로 미적 영역의 새로운 개념을 발굴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모든 주제를 망라해서 작품화했으며, 또한 거의 모든 양식을 시험하면서 

현대 미술의 모범이 되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은 아내 리 크래스너에게 이렇게 투덜거렸다고 전해진다.

나쁜 놈(피카소를 가리킴), 단 한 가지도 건드리지 않은 게 없어.”


                                       ▲<한국에서의 학살>(1951)

 

반 고흐와 피카소

반 고흐와 피카소는 최고의 슈퍼스타이지만, 삶은 매우 대조적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반 고흐는 생전에 작품을 단 1점밖에 못 팔고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로 가난하게 

살다가 37세의 나이에 요절했고, 피카소는 일찍부터 부와 영예를 누리며 92세까지 장수했다.

반 고흐는 27세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년 동안 미친 듯이 그렸지만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천재로 존경 받으며 평생 5만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반 고흐는 치열한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룩한데 비해, 피카소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스페인내란 등 엄청난 격동과 전쟁, 변혁과 혁명기였던 20세기를 고스란히 살면서 

사회에 대한 발언을 주저 없이 했다.


 

피카소가 남긴 방대한 작품

92세까지 장수하면서 쉬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한 피카소가 남긴 작품수는 대략 5만 여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의 종류도 다양해서 회화가 1885, 조각 1228, 도자기 2280

스케치 4659, 그리고 판화작품이 약 3만여 점이라고 한다.

그가 연필을 잡았던 시기를 2세로 상정해서 90년 동안 작품을 생산해냈다고 치더라도 

하루에 1.5개의 작품을 생산해낸 것이니 실로 방대한 양이다.


                                              <황소 머리>(1942)


그가 남긴 방대한 작품들은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술관 치고 

피카소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다

파리 국립 근대미술관, 퐁피두 센터,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센터, 스위스 바이얼러 재단

독일 뮌스터를 비롯해서 러시아의 에르미타쥬 박물관 내 피카소 갤러리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미술관들이 피카소가 70평생 미술혼을 불태워 남긴 작품들을 대거 소장하고 있다.




피카소의 이름이 붙은 미술관은 프랑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남 프랑스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과 피카소의 고향인 스페인 말라가에 개관한 피카소 미술관의 

4곳이다. 이곳들은 그의 유명세로 연중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 규모 면에서 가장 큰 곳이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이다.


                               ▲살래 저택을 개조한 피카소 미술관

 

파리 피카소 미술관 소장작품들

파리 마래(Le Marais)’ 지역의 살래 저택(L’hotel Sale)’에 자리 잡은 피카소 미술관은 파리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꼭 들리는 명소로, 현대 작품을 소장한 퐁피두 센터와도 가까워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피카소 미술관은 1895년부터 1973년까지 예술가로서 피카소의 전 생애를 담고 있다. 2백여 작품의 

유화, 158점의 조각, 88개의 도자기와 1,500점의 판화와 데생, 콜라쥬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청색 시대의 작품인 <자화상>’(1914), <쎌레스틴느>, <아비뇽의 처녀들>, 초현실주의 작품인 

<입맞춤(Le Baiser)>, <그리스도의 수난(Crucifixion)>, <황소 머리>, <한국에서의 학살>(1951) 등의 

작품을 통해 예술적 변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이나 유품 등도 전시되고 있다.


또한, 피카소의 개인 수집품 중 일부인 마티스(Matisse), 미로(Miro), 브라크(Braque), 세잔느(Cezanne), 

르누와르(Renoir) 등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되고 있다.


               ▲피카소의 대표작인 <게르니카>를 재해석한 작품 기획전 안내판


            ▲피카소의 대표작인 <게르니카>를 재해석한 "아트 앤 랭기지" 그룹의 작품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을 활용하여 눈길을 끌었다.


                 ▲피카소의 대표작인 <게르니카>를 재해석한 작품들 


 

(소장품 전시는 물론 의미 있는 기획전을 열기도 하는데, 지난 2018년 봄 내가 찾았을 때는 피카소의 대표작인 <게르니카>를 새롭게 재해석한 다양한 작품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피카소의 대표작인 <게르니카>를 위한 습작


 

피카소 미술관의 탄생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하자 엄청난 상속세가 부과되는데, 프랑스 정부는 예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유족들은 상속세를 대신하여 고인의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1974년 파리시는 살래 저택을 피카소 미술관 건설에 기증하기로 결정한다. “옛날 집을 갖고 싶다.”는 

피카소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1976, 공모를 통해 건물의 역사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 피카소의 작품 성격과 전시에 맞는 

공간을 요구하는 복원 공사가 진행 되었다.

그렇게 해서 1985년 다시 태어난 것이 피카소 미술관이다.


                 ▲피카소의 개인 수집품인 여러 작가의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살래 저택(Hotel Sale)은 퐁뜨네(Fontenay) 지역의 영주이며, 염세 징수를 책임 맡은 삐에흐 오베흐

(Pierre Aubert)를 위하여 1656-1659년에 완성된 특이한 설계의 건물로, 17세기 말엽부터 베네치아 

공국의 대사 저택, 청소년 교육원, 공예학교 등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심하게 파손된 것을 파리시가 

구입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피카소가 남긴 이런저런 일화들

피카소는 이 세상에서 92년을 살았고, 그중 70년 이상을 유명인으로 살았다. 40세에 이미 대단한 

부자였으며, 65세 이후에는 자수성가한 억만장자였다. 살아생전에 부와 영예와 인기를 누렸다

생전에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하고 가난하게 산 고흐와는 대조적이다.

그의 인생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많은 일화로 가득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피카소는 천재다. (그렇다 그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천재다)

피카소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이상한 놈이라는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피카소의 그림은 어린애도 그릴 수 있는 장난이다. (그는 어린아이의 상태를 평생 유지하고 

   싶어했다. 피카소 자서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15살 때 이미 벨라스케스처럼 그림을 그렸다

   내가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그로부터 80년이 걸렸다”)

피카소는 여러 여자와 살았다. (실제로 6번 결혼했고, 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피카소는 공산주의자다. (실제로 한 동안 프랑스 공산당 당원이었다.)




 

예술가 피카소의 고독

겉으로 보기에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화려하게 살았던 피카소지만, 내면적으로는 진정으로 예술을 

고민하는 한 예술가의 슬픈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언이라고 알려져 있는 피카소의 말에 그런 

슬픔과 고독이 진하게 배어 있다. 스스로를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라고까지 말한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만 아니라 부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티아노, 렘브란트와 고야 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은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예술이 더 이상 진정한 예술가들의 자양분이 될 수 없었던 뒤부터, 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자신들의 환상이 만들어 내는 온갖 변화와 기분을 위해 사용했다. 지적 야바위꾼들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었으니까.


대중들은 예술 속에서 더 이상 위안도,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무위도식자, 인기를 쫓는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기발함과 독창성

과장과 충격을 추구했다. 나는 내게 떠오른 수많은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생전에 이미 전설이 된 천재 파블로 피카소  (구글 이미지 사진)

 

여담

우리는 보통 파블로 피카소또는 파블로 디에고 루이지 피카소"라고 부르는데, 전체 이름을 다 쓰면 

굉장히 길다. 파블로는 개인 이름, 디에고는 세례명, 루이지는 아버지의 성, 피카소는 어머니의 성이다.

참고로 피카소의 전체 이름을 다 쓰면 다음과 같다.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키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마르티르 파트리시오 클리토 루이스 이 피카소

Pablo Diego Jose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ia de los Remedios Cipriano de la Santisima Trinidad Ruiz y Picasso


             ▲피카소는 회화 외에도 조각,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조각이나 가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래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그런 영향을 읽을 수 있다.



                 ▲피카소는 고전의 명작들을 자기 식으로 재창조하는 작업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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