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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차간산 관광기 <5> 병마용갱
11/25/20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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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주차간산(走車看山) 관광기 <5>

 

   세계 8대 불가사의라 일컬어지는


  진시황의 병마용갱(兵馬俑坑)

 

                                                 글: 장소현(극작가, 시인)

                                                 사진: 김인경



세계의 여행객이 중국의 시안(西安)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일컬어지는 병마용과 진시황릉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병마용과 진시황릉을 통해,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의 엄청난 욕망과 인간의 한계와 허무함을 함께 느낄 수 있고, 2천년 전 예술가들의 뛰어난 예술성에 감탄하게 됩니다.


 

병마용갱(兵馬俑坑)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일컬어지는 병마용은 진시황제의 강력했던 권력을 상징한다.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시에 있는 진시황릉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유적지다.

진시황제의 장례에 사용된 병마용은 찰흙으로 빚어 구워서 만든 테라코타(terracotta) 상으로 병사, 전차, , 장교, 곡예사, 역사, 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다. 진시황이 죽은 후 대군의 일부를 순장시키는 대신에 흙을 구워 만든 인형을 묻은 것인데, 현재 3개의 대형 병마용갱이 발굴되었다.

1974년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되어 지금까지 4개의 갱도가 발굴되었다. 발굴된 4개의 갱도 중 3곳에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개의 전차, 520점의 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놀라운 규모다. 이미 발굴된 것보다 더 많은 수가 아직 흙 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은 병마용 갱을 400여개 만들었다고 한다. 그중 불과 3개만이 발굴되었는데도 세계가 경악한 것이다.



병마용은 경무장 보병, 중무장 보병, 궁병, 전차병, 기병, , 장교 등 다양한 병과의 군인들을 표현하고 있다.

병마용은 살아있는 듯한 모습의 등신대로 제작되었으며, 얼굴 부위에는 채색의 흔적이 있다. 병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이 병사들 보다 크게 만들어져 있다.

병사용의 몸통과 머리 부분은 속이 비어 있다. 현재의 도예가들은 22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구워낼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한다. 병마용 미스터리의 하나다.

병마용은 장인들이 머리, 몸통, , 그리고 다리 등의 여러 부분을 만들어 구운 뒤, 하나의 형태로 조립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제조업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분업 형태로 제작이 이루어진 것이다.

연구 결과 얼굴은 약 8가지 복제 틀을 사용해 제작하였으며, 기본형에 수염 등 세부적인 변형을 가해 개개인이 전부 달라 보인다. 같은 얼굴이 하나도 없다. 다른 부위도 각기 여러 종류가 있어 이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병마용을 제작한 것이다. 다리 부분은 대부분 동일한 형태로 같은 틀을 사용하여 대량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8천점이 넘는 인물상은 엄청난 규모다.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지던 시기에, 품질관리를 위해서 제작소들은 모든 제작된 물건에 그 이름을 새겨야했는데, 이 덕분에 역사학자들은 어느 작업소가 병마용의 인형들을 제작하는 데 동원되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완성된 용은 계급과 역할에 맞춰서 당시 진나라 군사 진형(陣形)을 정확하게 따른 형태로 구덩이 속에 배치되었다.

 

지금 관람객들의 눈에는 병마용은 대부분 짙은 회색이다. 하지만 1974년 최초로 발굴되었을 때 병사용은 계급에 따라 갑옷과 군화에 채색이 되어 있었다. 흙 속에 묻혀 있다가 2200년 만에 햇볕을 보자 며칠 만에 모두 회색으로 변색된 것이었다.

원래는 실제 사람과 말을 모델로 채색되었으나 수천년의 시간이 지난 상태인지라, 발굴될 때 외부 공기와 접촉하면서 순식간에 옻칠 코팅층이 바스라지거나 탈색되었다고 한다.

제작 당시 채색과 함께 옻칠로 마감되어 있었는데, 오랜 시간동안 습기를 머금은 토양 속에서 보관되다가 발굴 후 건조한 공기와 접촉하자 이 옻칠 코팅층이 건조되면서 채색층과 함께 작은 알갱이로 수축했고, 이 수축된 알갱이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함께 사라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학자들은 색의 퇴색을 막기 위해 병마용갱의 발굴을 예전부터 미뤄 두고 있었다. 다행히 최근 기술이 개발되면서 다시 발굴을 시작하고 있다.


 

그 외에도 병마용들은 원래 모두 실물 크기의 청동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나, 오랜 세월 동안 무기들은 많이 파손되어 병마용의 숫자보다 적은 수가 발굴되고 있다. 칼 같은 일부 무기들은 10~15 마이크로미터 두께로 산화크롬 처리가 되어 있어서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녹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후, 한나라 시대의 몇몇 묘들에서도 병마용들이 발견되었으나, 규모도 작고 인형의 완성도도 진시황릉의 병마용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다. 크기도 진시황릉과는 달리 사람이 한 손으로 집어서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다.

 

토용 외에도 진시황의 전용 마차인 온량거의 1/2 크기 청동제 모형(동마차갱)이나, 진시황이 기르던 말이나(기마갱), , 자이언트 판다 등 진기한 동물 등(동물갱) 수십마리, 부식되지 않도록 돌조각을 엮어 만든 실물 크기 갑옷과 투구등(개갑갱) 등이 현재까지 발굴되었다. 기마갱과 동물갱에서는 동물들을 돌보던 하인의 실물 크기 모형까지 함께 묻혀 있었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현재까지 3개의 갱을 발굴하여, 천정을 싸워서 자 모양의 전시관을 만들어서 일반인에게 전시를 하고 있다. 병마용 박물관은 항상 구경하려는 국내외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인파에 떠밀려 다니지 않으려면 비수기를 택하는 것이 좋다. 관광객이 많은 5월 초나 10월 초에는 병마용을 관람하려면 최소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박물관의 하루 평균 입장객 수입은 무려 18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병마용 박물관은 중국을 방문한 외국 국가원수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중국 당국은 외국의 국가원수급이나 주요국 대사들이 병마용을 방문했을 때, 이곳을 개방한다. 외국 국가원수들은 바로 코앞에서 2200년 전 진시황의 욕망을 느끼며 전율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시라크,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모두 현직에 있을 때 병마용을 찾았다.


 

이 박물관의 총면적은 2만여 평방미터인데, 안에는 실제 사람이나 말의 크기와 거의 같은 도용(陶俑)의 군인들과 말이 8, 전차가 백 여 대 그리고 수 만 건의 병기들이 소장되어 있다.

전시되고 있는 청동의 병기들은 지하에서 2천 년이란 세월을 보냈음에도 그 예리함이나 섬광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진시황은 갱 속에 병과와 계급에 따라 병마용을 세운 뒤 나무판을 가로로 놓아 그 위를 가렸다. 나무판 위에 다시 흙을 5m 정도로 덮어 위장을 했다. 시안 사람들은 땅 밑에 놀라운 문화유물이 잠자고 있는 줄을 2000년 이상 꿈에도 모른 채 농사를 짓고 산 것이다.

 

1호갱은 197910월에 전시동을 지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깊이는 약 5m이고, 길이는 230m, 폭은 62m에 면적이 14,260평방미터에 이른다.

1호갱에서는 병사용 6000구에 마차 40대가 발굴되었다. 병사들은 모두 출입구 쪽을 향해 서있는 자세였다.

관람객들은 3~5m 아래에 있는 병마용을 내려다본다. 출입문 쪽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병마용의 얼굴을 관찰하는 최적의 방법이다.

1호갱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다 보면 중간 중간에 병사들이 넘어져 깨져 있는 게 보인다. 그 결과 4열 종대로 서 있던 병사들이 움푹 꺼진 느낌을 준다.

진나라 말기 항우(項羽)가 군사들을 이끌고 시안을 공격했고, 이때 항우의 병사들은 출입구를 통해 병마용 갱 안으로 들어와 병사들을 부수고 병사들이 쥐고 있던 무기들을 모두 약탈해갔다고 한다.


 

2호갱은 1976년에 발견하여 1994년에 전시동이 지어졌고, 1호갱의 동북쪽 20m정도 가까이 떨어져 있다. 동서 길이가 96m, 남북 폭이 84m, 건축면적은 17,016평방미터이다.

2호갱의 병사들은 보병, 차병, 기병과 근위대, 활 쏘는 사수들로 구성 배열되어 있는 혼합 부대다. 도용과 도마(陶馬)1,300여 점, 전차는 80여대, 그리고 청동 병기가 만 여 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처음 발굴팀이 청동 마차를 발견했을 때는 지하에서 2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무는 부식되어 있었고, 매달아 놓았던 마차가 땅에 떨어져 청동 마차의 형태가 몽땅 부숴진 상태였다고 한다.

2호갱에서는 중급 장군과 고급 장군의 도용을 보는 것과 활 쏘는 사수의 자세가 볼 만 하다.

 

3호갱은 2호갱의 서편에 위치하며, 1989101일에 개방되었다. 지휘부로 추정되는 3호갱에서는 채색된 전차 1량과 병사용 64구 등이 나왔다.



진시황 병마용의 발굴

1974329, 이곳에 살며 채마밭을 일구던 농부 양신만(楊新滿) 등 동네 청년 6명이 오랜 가뭄을 견디려고 우물을 파기 위해 너른 밭으로 나가 땅을 팠다. 5m쯤 파내려갔을 때, 이상한 나무판이 보였고, 두드려 보니 울리는 소리가 났다. 농부들은 누군가의 무덤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곡괭이로 나무판대기를 내리쳤다. 나무판이 쪼개지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나타났다. 양씨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잡아 끌어올렸다. 사람 머리와 똑같은 인형이었다. 농부들은 혼비백산하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옆에도 똑같은 사람 머리 인형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공포에 질린 일행은 줄행랑을 쳐버렸고, 흥분을 가라앉힌 양씨는 머리하나를 들고 시안 공안 당국으로 달려갔다.

병마용 갱()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 고고학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되어 발굴을 시작했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진()제국(BC 221~206)의 위용이 22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세상에 알려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양씨 등이 우물을 판 곳은 병마용 1호갱이었다. 이어 2호갱, 3호갱이 발견되었다.

5년에 걸친 발굴 작업을 마치고 중국공산당은 1979101<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을 개관했다. 중국은 이로써 만리장성에 이어 또 하나의 불가사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후 병사용의 복제품들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며, 세계 전역에 팔려나갔다.


 

병마용 발굴에 얽힌 재미있는 삽화 하나. 병마용을 찾은 프랑스 대통령은 최초 신고자인 양씨를 만나, 양씨로부터 역사적인 최초의 느낌을 듣고 친필 서명을 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양씨는 자신의 이름자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 당혹해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최초 발견자 중 하나인 양신만은 인기스타가 됐다. 나름 유명인사로 관련 책자도 팔고 기념 사인회까지 열 정도로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발견 당시 중국 정부에서 보상으로 경운기 1대를 지급했다고 한다.

한편 진시황릉 발견 전만 해도 그 땅은 평소 귀신 붙은 땅이라고 불리며 작황이 안 좋아 현지 주민들이 기피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한편, “병마용 주인은 진시황의 고조모다.”라는 설도 있으나, 이 설은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에게 반박당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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