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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
01/19/2017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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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 

                                            장 소 현 (극작가, 시인)



인류 문화의 역사를 뒤적이면서 오래전부터 가진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뭐냐 하면, 훌륭한 여왕은 있는데, 왜 위대한 여성 철학자, 거장 대접을 받는 여성 지휘자, 걸출한 여성 미술가는 별로 없는 걸까 하는 의문입니다. 특히 위대한 여자 철학자, 여자 지휘자가 그래요.


꼽아 보면, 문학에서는 이름을 날린 여성이 꽤 있습니다. 저 멀리 그리스 시대의 시인 사포(Sapho)로부터 에밀리 브론테, 마거릿 미첼, 제인 오스틴, 조루즈 상드, 버지니아 울프, 에밀리 디킨슨, 수잔 손택 등등, 우리나라의 허난설헌이나 황진이, 매창, 박경리, 박완서, 신경숙, 공지영, 한강 등등. 그런데 여자 철학자 이름은 들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마에스트라, 즉 여성 지휘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마에스트라가 꽤 많습니다만, 사상 첫 여성 지휘자는 186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루드비히 모렐리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마리 구르너였다고 합니다. 불과 50년전만 하더라도 여성 지휘자들은 여성 단원으로만 구성된 여성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지요.


여성에게 상임 지휘자는 고사하고 객원 지휘 한번도 맡기지 않은 고집불통의 빈 필하모닉이 금녀의 벽을 허물고 호주 출신의 여성 지휘자 시몬 영에게 첫 지휘봉을 맡긴 것이 200511월이었습니다. 베를린필은 1930, 뉴욕필.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는 38년에 여성에게 지휘대를 개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 예술단장 성시연이 독보적입니다. 국공립 오케스트라 사상 첫 여성 예술단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성시연 단장은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지휘자,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도 첫 여성 부지휘자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장한나도 기대를 모으고 있지요.

북한 국립교향악단에 여성지휘자가 허문영 씨가 활동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아무튼 여성지휘자의 등장이 늦어도 너무 늦었지요.


미술계는 어떨까요? 얼핏 떠오르는 여성 미술가의 이름은 베르트 모리소, 수잔느 발라동, 마리 로랑생, 케테 콜비츠, 조지아 오키프, 프리다 칼로, 신디 셔먼 정도니 아주 미미한 셈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신사임당, 나혜석, 박래현, 천경자물론 지금은 여성작가가 아주 많고, 활동도 대단히 활발하지만요


미술대학에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지요. (오죽하면 남녀 비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여성작가의 진출은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그림마당 민이 <여성과 현실전>을 열어 이 문제에 불길을 당긴 것이 1987년이었고, 미술잡지 <가나아트>19909월호에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를 특집기사로 실었습니다. 아주 늦은 셈이죠.


다른 분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이리저리 생각해 봅니다. 무지막지한 가부장 제도에서 비롯된 남녀 차별 때문일까? 혹시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 구조가 다른 것은 아닐까? 성경 말씀대로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봅니다.


가장 쉽게 내릴 수 있는 그럴듯한 결론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제도 때문이라는 겁니다. 거기에다 출산과 육아, 살림살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했지요. 서양이나 우리나라나 형편은 비슷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서양에서도 여자 대접이 형편없었고, 여성의 인권은 그야말로 바닥이었지요.

더 근본적인 것은 체제와 교육의 불평등입니다. 1971<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다소 과격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여 미술사에서 페미니즘 운동의 물꼬를 튼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 1931-)위대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규정하는 것은 객관적인 미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가치관이다. 여성이 미술계에서 소외당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뿌리 깊은 편견과 불평등은 체제와 교육이라는 실제 적 배경에 의존하여 많은 여성들의 피할 수 없는 굴레가 되어왔다. 이는 위 대한 예술가를 낳는 조건이 백인이면서 중산층이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남성 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려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는가라는 질문의 한 대답이 된다.”

-린다 노클린,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는가>에서, <가나아트> 19909, 10월호

 

오늘날 한국사회는 몇 차례의 여성 관계 사건사고 이후 페미니즘문제로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관심과 의식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지요.


옛날 우리나라 여자들은 이름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예 이름이 없는 경우도 흔했고, 있다 해도 간난이끝순이니 따위의 무성의한 이름들이 고작이었지요. 태어난 순서대로 일순이, 이숙이, 삼녀 이런 식도 있지요. 게다가 시집을 가고 나면 그런 무성의한 이름마저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저 개똥엄마, 평양댁, 새댁, 곰보네, 과수원집 둘째며느리그런 식으로 불리는 거죠. 물론 그런 익명성이 때로는 푸근한 정겨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한데,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오늘날에도 여자들이 이름을 잃어버리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시집가고 애 낳고 보면, 그 하늘을 찌를 듯하던 콧대는 어디로 가 버리고, 아무개 엄마, 누구 마누라그런 식의 애매한 명칭으로 퍼질러 앉아 버리고 마는 겁니다

그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다. 요즘 여자들은 안 그렇다고 항의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아직도 그런 부분이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자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남녀가 평등하지 못한 오래된 우리 사회의 관습과 그런 관습에 젖어 온 사람들의 의식 때문이지요. 그래서 여성 스스로도 그런 명칭을 당연시하게 된 것 같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 여자들은 게다가 한 수 더 떠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시집가면 성()이 바뀌기 때문이지요. 일본도 그렇습니다. 하얀 꽃저고리 입고 수줍게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나면 성까지 잃어버리는 얄궂은 팔자인 겁니다. 그래서 미세스 아무개변질되어 버리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변질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결혼한 한국 아줌마가 영어 이름을 가지면 아예 딴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가령 재클린 엘리자베스 제갈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자랑하는 여자 분의 본명은 맹끝순일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하긴 뭐 요새는 한국 사람들도 앞다퉈 세련된영어이름을 갖는 판이고, 연예인은 영어 이름을 붙여야 인기가 올라간다는 소문도 있으니, 할 말 없습니다.

심심한데 나도 영어 이름이나 하나 지어 볼까? ‘그레고리 챙같은 건 어떨까? ‘맥시밀리언 블라디미르 챙은 어떨까? 너무 긴가요?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방송을 들으려니, 진행자가 점잖게 여자들 이름을 찾아 주고 있었습니다. 참 반갑더군요. 그 사람 참 정신 바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박수를 쳤지요. 그런데, 방송을 듣자 하니 여자들 스스로가 문제인 거예요. 이런 식입니다.

-어디 사시는 누구시죠?

-어디어디 사는 아무개 엄만데요.

-아무개 엄마 말고, 본인 성함 말입니다.

-미세스 아무개예요.

-아니 그거 말고 본명이요, 본명!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이런 젠장! 어디어디 사는 거야 따지고 보면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이사만 가면 바뀌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름 석 자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달고 다니는 중요한 상징이요, 주체성의 표징입니다. 죽은 후에도 비석에 새겨져 남는 것이 이름이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그런데 어째서 어디 산다는 동네 이름은 또박또박 구체적으로 대면서, 정작 소중한 자기 이름은 아무개 엄마라는 말의 밑창에 감추어 버리는 것일까요?


유교가 지배하던 우리네 옛 사회에서는 이런 성을 갈 놈!”이라는 말이 아주 고약한 욕지거리에 속했지요. 생각해 보면 이것이 우리의 자긍심이요, 중요한 뚝심입니다. 성춘향이 이춘향이 되고 싶어서 변춘향이 되기를 죽기로 거부한 것은 아닙니다. ‘성춘향으로 그대로 있으면서 주체적으로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죠. 안 그렇습니까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말을 거듭거듭 강조하면서, 여자에게도 가문의 성을 잇게 하는 이중성 또는 모순 속에 우리 겨레 나름의 인간 존중의 뚝심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끝마다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면서, 여자의 성까지 몰수해 버리는 서양식과는 인간 해석이 근본적으로 다른 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서양의 경우는 여자를 남자 속에 포함시켜 버리는 셈입니다. ‘미세스 아무개라는 호칭 속에는 그런 음모가 숨겨져 있는 거예요. 여자란 남자의 갈비뼈로 만든 인간이다라는 생각과 맥이 통하지요. 사랑과 결혼의 징표인 반지라는 것도 본래는 노예의 표식이었다고 하지요? 거기다 금강석 쪼가리 좀 박았다고 본뜻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거기해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간다고 하지요. 둘이 다 가다 보면 중간에 어디쯤에선가 만나겠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정이지요. 시집 잘 왔다’, 장가 참 잘 들었다고 웃으며 이루는 가정.

이렇게 서양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성을 갈고, 일본 여자들도 성을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지니지요. 지식이 짧아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처럼 결혼하고도 여자가 본디 성을 지니는 나라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무쪼록 우리네 엄마들도 되도록 이름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개 엄마, 누구누구 마누라그런 그늘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이름값을 하는 옹골찬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곧 남녀평등, 여권신장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빼어난 예술가를 꿈꾸는 여성들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많습니다. 너무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죠. 재능이 넘치는 이가 아이 낳아 기르고, 살림살이 하고, 게다가 요새는 돈까지 벌어야 하고그러면서 예술을 해야 하니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단언컨대 만약 역사적으로 무지막지한 남녀차별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한결 찬란하고 깊어졌을 겁니다. 우뚝한 여자 거장들도 많이 나왔겠죠. 그동안 우리 인류는 능력의 절반을 허비한 셈입니다. 이제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죠.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남녀평등 사회입니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이제 머지않아 모계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합니다. 혹시 모계사회라는 낱말이 거슬린다면 여성시대라고 합시다. 서양 학자들의 의견도 있지만, 가까운 예를 들자면 김지하 시인은 동학사상에 기대어 여성을 존중하는 후천개벽을 이야기하고 있고, 최재천 교수 같은 이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런 의견에 동감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라는 존재의 깊이와 넓이를 전적으로 믿고, 근본적으로 여성이 남자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계사회 또는 여성시대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로, 여성시대는 이미 시작되어,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독일, 영국, 대만, 미얀마 등 여성 지도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주 많지요. 미국의 힐러리 대통령도 기대를 모으고 있구요. 경제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여성 대통령, 여성 당대표 같은 건 자연스러워졌고, 사법고시나 외무고시처럼 여성들이 앞서는 분야도 많아지고 있다지요.

디지털 시대에는 여성의 자리가 한결 더 커질 겁니다. 완력이 필요한 시대도 아니고, 여성도 돈을 잘 벌 수 있고, 여러 분야에서 이른바 유리천장이 뚫리고 있고그러니 여성들의 자리가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를 이끌어갈 겁니다.


우리나라 예술계를 보더라도, 음악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여자 연주자가 많이 나와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고, 문학계의 경우는 여성작가가 더 많고, 좋은 작품도 많이 발표하고 있습니다. 미술이나 대중문화 쪽에서도 물론 그렇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여성의 사회활동이 큰 제약을 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이제 조금 있으면 다른 분야에서도 여성이 사회를 이끌어갈 겁니다. 위대한 여자 철학자도 나오고, 훌륭한 여자 지휘자도 많이 등장할 겁니다. 틀림없어요!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져야겠지만, 여성들의 자각도 필요할 겁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필요하고 자신감도 필요하겠지요. 유행이니 명품이니 성형수술이니 하는 따위의, 여성을 상품화하는 풍조를 거부하는 용기도 필요할 겁니다.

법정 스님은 끈질기게 인터뷰를 부탁하는 여성잡지 기자에게 이렇게 한마디 하셨다지요. “여자들 속옷 광고로 눈이 어지러운 잡지에 중까지 한 몫 하라는 말씀이신가? 이왕에 먼 길 왔으니 차나 한잔 마시고 가시게참으로 불볕더위에 막걸리 한 사발처럼 시원한 말씀입니다.


괴테의 걸작 <파우스트>영원히 여성이신 자, 우리들을 이끌어 올리도다라는 신비의 합창으로 막을 내립니다. 퍽 상징적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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