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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문화기행 2> 가우디의 카사밀라
05/26/20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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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문화기행 2>-------------------------

 

20세기 건축 베스트10에 뽑힌 카사 밀라(Casa Mila)

천재 가우디의 자화상으로 불리는 혁신적 건축물

 

: 장소현 (미술평론가, 시인) / 사진: 김인경


                                       

카사 밀라(Casa Mila)는 가우디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자, 가장 혁신적인 건축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가우디의 자서전으로 평가받는 이 건축물은 가우디 건축의 모든 것이 적용된 작품이기도 하다.

가우디는 이 건물을 마지막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만 전념하게 된다. 그러니까 카사 밀라는 

가우디의 마지막 상업적 건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카사 밀라는 ‘20세기 건축 베스트 10’에 선정되었고,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SF영화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커스가 카사 밀라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물결치는 카사 밀라의 외관. 


완공 당시에는 혹평에 시달렸으나

하지만, 워낙 기발하고 독특한 모양새 때문에 완공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고, 밀라 부부와는 막판에 

건축비 지급 문제로 송사를 벌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건물 외부 모습이 출렁이는 물결 모양인 데다가, 베란다의 난간 장식도 해초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모습이어서 어찌 보면 무너질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완공 당시 매스컴들은 지진 난 집’, ‘말벌집’, ‘고기 파이등으로 부르며 조롱했다

반면에 인간이 손으로 만든 거대한 산’ ‘빵틀 위로 부풀어 오른 케이크’ ‘아주 조용히 숨을 내쉬는 

돌로 된 폐’ ‘깃대만 없는 환상적인 깃발등의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쇠로 만든 발코니 장식마치 해초를 널어놓은 것 같아 보인다.


카사 밀라는 라 페드레라(채석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카사 밀라의 벽면을 보며 사람들이

"아파트가 아니라 꼭 채석장 같다"고 평하며 붙인 이름이다. 창과 발코니를 메꾸는 철골 구조를 보고는 

'감옥같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우디의 건물은 개성이 너무나 독특하고 강한 탓에, 사람에 따라서는 아름다움이 아닌 '기괴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만큼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린다. 당연한 일이다.


매우 개성적인 건물이면서도 도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구글이미지 사진)

 

카사 밀라는 지금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거공간으로, 일부만이 관광용으로 개방되어 있다

내부에는 당시 거주자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가구나 소품들도 전시되어 있어 20세기 초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실제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 도심의 중간에 위치해 있고,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기에도 아주 좋아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1층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저녁에는 때때로 옥상에서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건축은 살아 있는 유기체'

카사 밀라는 밀라의 집이라는 뜻으로, 바르셀로나의 거부(巨富) 밀라 부부의 의뢰로 1906년에서 1912년 사이에 건설한 주거용 연립주택이다. 일종의 아파트 같은 건물이다.

밀라는 남과는 다른 건물을 원했다. 한 눈에 봐도 남과는 다른 건물, 장식이 많고 곡선이고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고...... 이것이 이른바 바르셀로나 모더니즘 건물의 특징이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가우디의 건축세계를 단적으로 요약한 유명한 말이다.

카사 밀라는 어느 곳 하나 각진 곳 없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산, 바다, 사막 등을 연상하게 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건축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가우디의 말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 또는 휘몰아치는 듯 

역동적인 모양새가 특징이다.


카사 밀라는 자연에서 건축적인 영감을 찾곤 했던 가우디가 까탈루냐 성지 몬세라트 산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건물이다.

몬세라트 산은 신앙심이 깊었던 가우디가 자주 찾았고, 가장 큰 영감을 얻은 곳으로 6만여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태고의 기운을 간직한 바위산이다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북서부로 60km 떨어진 이곳은 바다였던 곳으로, 거대한 지각 변동으로 지금의 

험준하고 기이하며 매력적인 산의 형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늘까지 시원하게 뚫린 안뜰채광과 환기를 위한 시설이다 (구글이미지 사진)


                                           ▲하늘까지 시원하게 뚫린 안뜰.


카사 밀라는 이전의 작품인 구엘궁전이나 카스 바트요와는 달리, 화려한 장식이나 요란한 색채를 

사용하지 않고, 완만하게 물결치는 곡선만으로 조화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한결 장중한 

느낌과 철학적 깊이를 준다.


카사 밀라는 6층 규모로, 위에서 바로 보면 건물의 중간은 텅 비어있어 옥상에서 1층이 내려다보이고

그 두개의 텅 빈 안뜰을 집들이 모여 빙 둘러싼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두 개의 안뜰(Patio)을 통해 자연 채광과 환기를 원활하게 했으며, 가변 벽체 시스템을 적용하여 

구조 변경을 용이하게 했다.

그리고 옥상 아래에는 추위와 더위를 막는 일종의 빈 공간(지금은 전시장인 가우디 스페이스로 사용)을 

두는 등 기능적인 면에서도 혁신적인 설계를 적용하였다.


옥상에 설치된 개성적인 굴뚝마치 외계인을 연상시킨다 (구글이미지 사진)


환상적인 형태의 굴뚝과 환기구로 장식된 옥상조각공원 같다 (구글이미지 사진)


그런가 하면, 옥상은 조각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에 들어온 듯한

각기 다른 모양의 굴뚝이 불쑥 솟아있어 신비롭고 동화적인 느낌을 준다.

 

카사 밀라는 외관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 최초로 한 건물에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고

지하주차장, 온수보일러, 경비실과의 인터폰, 비데 등 1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당시 모든 첨단기술이 다 동원되었다.


                                                         ▲1층 카페의 천정 장식.

 

부자를 위해 일한다는 오명

가우디는 이렇게 저택들을 지으며 부자만을 위해 일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것은 건축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한데, 특히 젊은 예술가들에게 비난을 받곤 했다. 그 비난의 선두에 선 것이 

젊은 화가 피카소였다.


실제로는 가우디는 저렴한 비용으로 수녀원을 짓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고딕양식의 '테레사 학원'이다. 테레사 학원은 청빈한 수도사들의 건물답게 가우디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만든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독창적인 건축기법이 잘 살아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통해 그런 오명을 완전히 벗고 민중을 위한 건축가로 

칭송을 받게 된다.


가우디 26세 때의 모습  (구글이미지 사진)

 

가우디의 어린 시절과 자연

가우디의 변화무쌍한 창조적 건축 공간, 신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며, 기묘한 어울림 속에서 초현실적 

느낌을 주는 공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어린 시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52년 지중해의 태양 아래 풍요로운 자연을 품은 까딸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가우디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형제들과 누나를 잃는 슬픔을 겪었다. 가족 운이 지독히도 없는 사람이다

또한 평생 제대로 연애 한 번 못해 보고 짝사랑만 하다가, 결국 독신으로 살았다.


어릴 적 선천적으로 허약해 학교에 잘 가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서 책을 읽거나 생각에 빠지곤 했다.

늘 외로웠던 그의 유일한 친구는 자연이었다. 겨우 업혀서 학교에 가끔 가던 가우디는 집 근처 개천이나 숲 속, 유적 근처에 앉아서 명상하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지중해를 보며 자랐고, 관찰력이 뛰어난 그는 바다에서 온화하고 푸른빛을 

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그는 풍요로운 햇살 아래 빛나는 꽃과 나무 등 자연과 

사물의 형태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면서 주변 모든 것에 대해 마음껏 상상하고 꿈꾼 것이 훗날 그의 건축 작품의 다양한 모습으로 

재창조 되었고 독창적인 소재로도 이어진 것이다.


                             ▲매우 개성적인 건물이면서도 도시 전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가우디의 아버지는 대장장이 또는 주물 제조업자였다. 그는 아버지가 쇠를 두드리는 걸 좋아했다.

나의 공간인지능력이 남다른 이유는 솥 전문 대장장이의 아들이자 손자이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다.


바로 여기서 가우디 건축의 특징인 자연금속특성이 생겨난 것이다. 쇳물의 원초적인 열기에서 

정념을, 대자연에서 부드러움을, 유적에서 전통을 배웠다. 철제 장식과 타일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때로는 깨뜨려 보기도 하고, 색을 조합하기도 하면서무한한 상상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에 

접목했던 그는 끊임없이 자연을 담고자 했다.


 

아버지 밑에서 어렸을 적부터 건축 공부를 했던 가우디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인 16세에 

본격적인 건축 공부를 하기 위해 바르셀로나 건축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성장한 개발도시이자 무역도시였던 바르셀로나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중세 건축과 근대화 건물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가진 바르셀로나의 거리야말로 

건축가를 꿈꾸는 가우디에게는 최상의 교실이었다

대부분의 무역도시가 그렇듯 빈민가와 부유층, 가장 보수적인 수도원과 가장 급진적인 노동자들이 

공존했다. 가우디는 이곳에서 공존을 상상한다.


26세에 바르셀로나 건축학교를 졸업할 때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미친 놈 아니면 천재에게 졸업장을 수여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 해답을 알 것이다.”


                             ▲쇠로 만든 발코니 장식마치 해초를 널어놓은 것 같아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우디의 건물들

가우디는 카사 밀라 외에도 17개의 건물을 바르셀로나에 남겼다. 건물뿐 아니라 가로등, 길바닥 장식 등 바르셀로나 곳곳에 가우디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

한 사람의 천재가 도시의 표정을 바꾼 것이다.


여러 개의 주거용 건물도 남겼다. 가우디 건축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카사 바트요(Casa Batllo), 

가우디의 출세작인 카사 비센스(Casa Vicens) 등이 대표적이다.


가우디의 또 다른 걸작 카사 바트요


가우디의 건축물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현재까지 모두 7작품이나 된다.

카사 비센스 1878-1880

구엘 저택 1885-1889

구엘 공원단지 내 지하경당 1898-1914

구엘 공원 1900-1914

카사 바트요 1904-1906

카사 밀라 1905-1910

성가족성당 탄생 입면 및 지하경당 1884-1926

 

1969년 이후 가우디의 17개 작품이 스페인의 국립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물결치는 카사 밀라의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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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가우디의 마지막 걸작으로지금도 지어지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살펴봅니다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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