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hang
로도락(sochang)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7.08.2016

전체     30262
오늘방문     25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2018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감상
01/07/2018 03:37
조회  830   |  추천   1   |  스크랩   0
IP 23.xx.xx.244


새 봄, 새로운 시

 

해마다 새해 아침, 새로운 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들고 문단에 나옵니다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자들이죠.

그들이 내놓는 새로운 작품들은 한국 문학의 현주소이자 앞날을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되지요.

 

새 봄을 맞으며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몇 편을 함께 읽어봅니다. 시들이 자못 심오해서 참을성을 가지고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만..... 찬찬히 씹어가며 읽으면 뜻이 우러나겠지요.

 

<뱀발> 여담입니다만, 신춘문예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조금은 특이한 등용문이라고 하지요.

 

...............................................................

 

<2018 경향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크레바스에서

 

박정은


 

왁자지껄함이 사라졌다 아이는 다 컸고 태어나는 아이도 없다 어느 크레바스에 빠졌길래 이다지도 조용한 것일까 제 몸을 깎아 우는 빙하 탓에 크레바스는 더욱 깊어진다 햇빛은 얇게 저며져 얼음 안에 갇혀 있다 햇빛은 수인(囚人)처럼 두 손으로 얼음벽을 친다 내 작은 방 위로 녹은 빙하물이 쏟아진다

 

꽁꽁 언 두 개의 대륙 사이를 건너다 미끄러졌다 실패한 탐험가가 얼어붙어 있는 곳 침묵은 소리를 급속 냉동시키면서 낙하한다 어디에서도 침묵의 얼룩을 찾을 수 없는 실종상태가 지속된다 음소거를 하고 남극 다큐멘터리를 볼 때처럼, 내레이션이 없어서 자유롭게 떨어질 수 있었다 추락 자체가 일종의 해석, 자신에게 들려주는 해설이었으므로

 

크레바스에 떨어지지 않은 나의 그림자가 위에서 내려다본다 구멍 속으로 콸콸 쏟아지는 녹슨 피리소리를 들려준다 새파랗게 질린 채 둥둥 떠다니는 빙하조각을 집어먹었다 그 안에 든 햇빛을 먹으며 고독도 요기가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얼음 속에 갇힌 소리를 깨부수기 위해 실패한 탐험가처럼 생환일지를 쓰기로 한다 햇빛에 발이 시렵다


 

박정은

1985년 서울 출생, 서울 거주

한양대 법학과 졸업

방송통신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재학 중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8/시 당선작>

 

복도

 

변선우


 

나는 기나긴 몸짓이다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고 그렇담 액체인걸까 어딘가로 흐르고 있고 흐른다는 건 결국인 걸까 힘을 다해 펼쳐져 있다 그렇담 일기인 걸까 저 두 발은 두 눈을 써내려가는 걸까 드러낼 자신이 없고 드러낼 문장이 없다 나는 손이 있었다면 총을 쏘아보았을 것이다 꽝! 하는 소리와 살아나는 사람들, 나는 기뻐할 수 있을까 그렇담 사람인 걸까 질투는 씹어 삼키는 걸까 살아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까 고래가 나를 건너간다 고래의 두 발은 내 아래에서 자유롭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래의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으며 채식을 시작한 고래가 있다 저 끝에 과수원이 있다 고래는 풀밭에 매달려 나를 읽어내린다 나의 미래는 거기에 적혀있을까 나의 몸이 다시 시작되고 잘려지고 이어지는데 과일들은 입을 지우지 않는다 고래의 고향이 싱싱해지는 신호인 걸까 멀어지는 장면에서 검정이 튀어 오른다 내가 저걸 건너간다면복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과일이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변선우

1993년 대전 출생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동대학원 석사 재학

 

..............................................................

<조선일보 2018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돌의 문서

 

이린아


 

잠자는 돌은 언제 증언대에 설까?

 

돌은 가장 오래된 증인이자 확고한 증언대야. 돌에는 무수한 진술이 기록되어 있어. 하물며 짐승의 발자국부터 풀꽃의 여름부터 순간의 빗방울까지 보관되어 있어.

 

돌은 한때 단죄의 기준이었어.

비난하는 청중이었고 항거하는 행동이었어.

 

돌은 그래.

인간이 아직 맡지 못하는 숨이 있다면 그건 돌의 숨이야. 오래된 공중을 비상하는 기억이 있는 돌은 날아오르려 점화를 꿈꾼다는 것을 알고 있어.

 

돌은 바람을 몸에 새기고 물의 흐름도 몸에 새기고 움푹한 곳을 만들어 구름의 척후가 되기도 해. 덜어내는 일을 일러 부스러기라고 해. 하찮고 심심한 것들에게 세상 전부의 색을 섞어 딱딱하게 말려 놓았어. 아무 무게도 나가지 않는 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 쌓은 저 딱딱한 돌의 축대들 때문일 거야.

 

잠자던 돌이 결심을 하면 뾰족했던 돌은 뭉툭한 증언을 쏟아낼 것이고 둥그런 돌은 굴러가는 증언을 할 거야.

 

단단하고 매끈한 곁을 내주고 스스로 배회하는 돌들의 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이 굴러다닌 거야.

아무런 체중도 나가지 않을 때까지.


 

이린아

1988년 서울 출생

명지대 뮤지컬과 졸업

동 대학원 뮤지컬과 재학

 

...........................................................

이 블로그의 인기글

2018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