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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차간산 관광기 <3>- 만리장성
10/26/201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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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주차간산(走車看山) 관광기 <3>


  무조건 큰 것이 좋은 것이여!!

  만리장성, 자금성, 천안문광장

 

                                                                    글: 장소현(극작가, 시인)

                                                                    사진: 김인경


 

중국을 여행하면서 받는 첫 인상은 큰 것의 세상이라는 느낌입니다. 자연도 그렇고 사람이 세운 인공물도 일단 큽니다. 그것도 대단히!!

천안문 광장, 자금성, 만리장성, 진시황릉, 병마용갱, 아방궁 모두 어마어마하게 크고 위압적이지요. 스케일로 승부를 보려는 듯, 세계 최대가 아니면 상대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 보입니다. 대자연의 규모에 대항이라도 하듯이 엄청난 규모로 크고 으리으리하게 지어 자연과 사람을 위엄으로 누르는 느낌이예요. 너무 거대해서 사람 질리게 합니다.


그래서 자연친화적이고 아기자기한 멋과 품격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나 절에 익숙한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딘지 불편합니다.

어쨌든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구조물을 지을 생각을 한 중국인들의 배포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배포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지요.

몇 가지 예를 실제로 본 느낌과 위키피디아 등의 자료를 종합하여 간추려 소개합니다.


 

천안문 광장

베이징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天安門)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유명하다. 남북으로는 800m, 동서 길이가 500m, 총면적이 44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100만 명이 넘는 인원도 거뜬히 수용할 공간인 천안문 광장은 중국의 대규모 시위와 집회, 축하 행사, 행렬 등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천안문 광장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로 꼽히며,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열병식, 각종 행사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매일 국기 게양식과 강하식이 치러지는데,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천안문 광장은 톈안먼 사건으로 세계의 눈길을 집중시켰었다.

198964, 후야오방의 사망 이후 발생한 톈안먼 광장 등지에서 시위대와 인민이 벌인 반정부 시위를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공산당 정부가 유혈 진압한 이 사건은 천안문 사태(天安門事件) 또는 6.4사건(六四事件)으로 불린다.


애초 공식 발표로는 민간인 사망자 300여 명, 부상자 7천여 명이 발생한 사건이다. 국제적십자협회는 사망자를 2,000여명으로 발표했다. 비공식 집계로는 5천여 명 사망, 3만여 명 부상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가 1990년 제5차 국무원 보고에서 정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민간인 사망자는 875, 민간인 부상자는 약 14,550명이었으며, 군인과 전경은 56명이 사망, 7,525명이 부상당했다.


광주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택시운전사>가 중국에서 상영 금지된 이유가 천안문 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이해가 간다.


 

자금성(紫禁城)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인 자금성 역시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1961년 중국 정부로부터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7", 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남북으로 961미터, 동서로 753미터로 면적은 725000평방미터에 달한다. 건축면적은 155000평방미터이다. 800채의 건물과 일명 9999.5칸의 방(실제로는 8886칸이라고 한다.)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 매일 방을 바꿔가며 살아도 27세가 되어야 고궁의 방을 모두 자볼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자금성은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고건축물이며, 자금성 안에는 황제의 상징인 용 문양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1406년 명나라 영락제가 베이징으로 천도하면서 건설한 황궁으로, ~청 시대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다.


고궁 내에는 자객의 암살에 대비하기 위해 나무가 한그루도 없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쉴 수 있도록 나무를 많이 심어놓았다.


192510월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자금성 건축물과 고대 예술품 및 궁정 역사 유적 위주의 내용물을 주로 전시하는 대형 종합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

만리장성의 초입에는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모택동의 휘호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1987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흉노족 등의 유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중국의 고대 진()나라 시황제(始皇帝) 때 기존의 성곽을 잇고 부족한 부분은 새롭게 축조하여 만든 거대한 성곽이다. 이후 명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지속적으로 보수하고 개축 및 신축하여 현재까지 남아 있다.


중국인들도 만리장성이라 부르지 않고 줄여서 장성(長城)이라고 하며, 현재 남아 있는 장성의 규모는 지도상의 연장은 약 2,700km이지만, 기복이 있거나 중첩된 부분을 고려한다면 총 길이 5,000~6,000km에 달한다.

그 거대함 때문에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고 거론되었으나 2004128일 중국과학원은 사람의 눈으로는 우주 공간에서 만리장성을 관측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만리장성이 오랜 세월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뎌온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2010년 중국 저장대학 연구진은 거대한 만리장성이 오랜 세월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찹쌀로 만든 접착제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 만리장성을 쌓을 때 찹쌀과 탄산칼슘(소석회)을 섞은 벽돌 접착제를 사용했는데, 찹쌀 속 녹말의 일종인 아밀로펙틴이라는 성분이 정밀한 미세구조 형성에 도움을 줌으로써 물리적으로 안정된 특성과 기계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석회-찹쌀풀 반죽으로 만든 무기-유기 혼합 모르타르는 만리장성뿐만 아니라 건물이나 무덤, 탑 등의 건축에도 사용됐으며, 이 같은 공법은 지진을 비롯한 자연재해에 견딜 수 있는 힘이 됐다


실제로 1604년 명나라에서 강도 7 이상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 이 공법으로 지은 건물이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만리장성의 벽의 80% 정도가 훼손되어있다고 한다.

만리장성의 훼손은 오랜 세월 비바람 등의 침식작용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인위적인 훼손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 현지 주민들이 농경지나 도로 등을 건설하기 위해 성벽을 허물거나 만리장성의 벽돌을 가져다 집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기념품으로 벽돌을 뽑아가는 관광객이나 작정하고 기념품으로 팔아먹을 목적으로 벽돌을 훔치는 장사꾼들까지 나오는 등 수난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또다른 이유는 관광객들의 이름 낙서. 만리장성의 벽은 기본이고 케이블카의 벽과 유리 부분에 낙서가 많이 되어있다고 한다. 심지어 낙서를 칼로 판 후에 판 곳을 화이트 등으로 채우는 짓을 해서 복구도 힘들게 한다고 한다.

한글로 된 낙서들도 보인다. 알아본 중국인이 이를 인터넷에 올려 공론화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욕을 먹기도 했다.



 

백성들의 피와 땀 위에 세운

이처럼 거대한 유물들은 강제로 동원된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만리장성, 진시황릉, 병마용 모두 마찬가지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등의 기록에 따르면, 만리장성은 수십만 대군과 수백만 백성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만리장성과 얽힌 중국의 유명한 열녀 맹강녀 설화에도 당시의 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진시황 때 만리장성 건설 인부로 끌려간 남편에게 겨울옷을 갖다 주기 위해 옛 제나라 땅에서부터 먼 길을 걸어온 맹강녀라는 여인이, 남편이 이미 죽고 시신은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구덩이에 쌓인 해골 무더기에 흘리자 피가 스며드는 해골이 있었고 맹강녀는 그 해골이 남편의 해골이라고 확신, 장례를 치룬 뒤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다는 것.

맹강녀가 죽은 곳이 산해관 근처라 하여 지금도 그곳에 맹강녀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공사에 동원돼 죽어 갔을까. 어떤 관광객은 사람들의 피멍든 마음에 물들어서인지 성은 온통 피멍든 검회색이다.”라고 여행기에 쓰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구경은 잘 했는데, 이런 유물을 만드는 동안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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