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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타령 (연건동 아리랑 2)
08/16/20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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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건동 아리랑 2


     시험 타령


                                                          장소현 (극작가, 시인)


  시험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비정한 세상이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시험을 쳤고, 몇 번이나 낙방했을까? 


  ‘시험’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생 떽쥐페리의 이야기다. 

  생 떽쥐페리가 19살 때,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입학시험을 쳤는데, 시험에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에 대한 느낌을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그런데 문제가 마음에 들지 않은 생 떽쥐페리는 답안지에 이렇게 써서 제출했다.

  “나는 전쟁에 나간 일이 없다. 따라서 그런 것에 대해 아는 척하며 쓰고 싶지 않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한 생 떽쥐페리는 파리 미술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다. 


  내가 미술대학에 다닐 당시는 지금과 달리 학점 따기가 할랑했다. 교수들도 그랬고 학생들도 그랬다. 오늘날 같은 비인간적인 경쟁은 없었다. 그저 설렁설렁 공부해도 얼렁뚱땅 학점이 나왔다. 아마도 대학이란 무엇을 가르치는 곳이라기보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된다는 본질적인 이해와 넓은 아량이 작용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낭만의 시대였나? 낭만이란 무엇인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시험은 신경 쓰이는 일. 그 귀찮은 시험에 대처하는 자세도 사람마다 달랐다. 꼭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학생도 있었고, 장학금 때문에 좋은 학점을 따야 하는 친구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공부를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희비극이 적지 않게 벌어지곤 했다.  

   

  내가 다닐 때 서울미대에는 교양과목으로 천문학, 도학, 철학, 심리학 같은 시간이 있었다. 아마도 나랏님과 교수님들의 넓으신 아량과 배려였던 것 같은데, 지금 되돌아보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그때 천문학을 열심히 공부했으면 천문학적으로 돈을 벌었을지 누가 아는가? 도학을 부지런히 배웠으면 길에 대해서 잘 알았을 텐데…

  그렇지만 그때는 천문학이니 도학이니 하는 과목은 따분하고 지루했다. 대부분이 수학에 약한 종족들이라 더욱 그랬다. 당연히 열심히 공부할 턱이 없었다. 외부에서 초빙돼 오신 강사께서도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공부는 안 했어도 시험은 쳐야 학점을 받을 수 있고, 학점을 따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교육당국과 나랏님이 정한 엄중한 규칙이었다.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학기말 천문학 시험의 문제는 “지구의 반경을 계산하라”는 매우 심오하고 철학적인 문제였다. 시험장에는 한 순간 무거운 고요가 내려앉았다. 말하자면 태초의 천문학적 침묵 같은 것이었다.

  이윽고 답안지를 메꾸는 소리들이 사각사각 들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사각사각... 내 옆자리에 앉은 코큰별도 잠시 무거운 침묵의 시간을 갖더니, 무언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자못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니, 이 친구가 언제 천문학을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지? 그럼 지구의 반경도 안 단 말인가? 아, 천문학적 사기꾼 아닌가!

  그러나…

  슬그머니 넘겨다보니 그는 답안지에다 시를 쓰고 있었다.


      드넓은 우주 그 깊은 공간

      티끌만도 못한  하찮은 인간이

      지구의 반지름은 계산하여 

      무엇하리……


  뭐 그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장편 서사시였다. 실로 천문학적 넓이를 가진 광활한 노래였다. 적어도 달콤한 서정시나 사랑노래는 결코 아니었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천문학 시험에 서정시를 쓸 수야 없는 노릇이지. 그 정도는 기본적 예의 아닌가…     

  참고로 코큰별의 천문학 학점은 D. 교수께서 그야말로 천문학적 아량을 베푼 결과였으리라. 물론 그는 재시험을 치지 않았다. 티끌만도 못한 하찮은 인간이 재시험은 쳐서 무엇하리…


  철학시간도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열병처럼 번져흐르던 실존철학이니 뭐니 하는 것에 매일 목욕을 하는 우리에게 철학교수는 그리스 철학을 느릿느릿 중얼중얼 늘어놓고 있었다. “철학적 진리는 시대를 초월하며, 희랍철학은 모든 철학의 시작이요 근본”이라는 것이 교수님의 숭고한 믿음이었다. 

  그 바람에 우리는 손가락 뎄어, 발가락 다쳤어, 아이들 털났어 어른들도 털났어, 플라스틱  플랭크톤 통통… 하는 소리를 계속 들으며, 너 자신을 알아야 했다. 시쳇말로 코드가 영 맞지 않았다. 자칭타칭 개똥철학의 고단자들에게는 영 시답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이나 코드와는 전혀 상관없이 학년이 다 끝나갈 무렵까지 철학 강의 진도는 희랍을 못 벗어나고 있었다. 아, 철학이란 이토록 느린 것인가?

  그리고… 드디어 시험날. 철학 시험 문제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을 논하라.” 

  왜 그 당시 시험문제는 모두가 무엇을 “논하라”였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논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그랬나? 하긴 쌀이 모자란다며 나라에서 분식장려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시험지를 받은 우리의 노도락은 분기탱천했다. 그리고 폭발했다. 일필휘지로 시험지를 메꾸기 시작했다. 무서운 기세였다. 과연 개똥철학의 힘은 무서웠다. 답안지 내용을 간추리면 대충 이러하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은 너 자신을 알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학생은 스스로를 알고, 교수 또한 스스로 자신을 돌아봐야 마땅하다고 사료되는 바이다. 

  이 시험문제는 교수가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데서 나온 넌센스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공간을 오락가락하는 이 시대에 소크라테스를 왈가왈부하여 무엇하겠다는 것인가? 우주선 이름을 소크라테스호라고 하자는 말인가? 시대착오라고 감히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 둘째… 셋째…

  뭐 이런 식으로 시험문제가 시대현실과 모순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청산유수로 논했다. 

  그리고 10년도 넘은 강의노트를 줄기차게 울궈먹는 교수에 대한 준엄하고 통렬한 비판도 많은 지면을 차지했다. 교수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끈질기게 곰팡내 나는 희랍철학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펼쳤다. 따지고 보면 실로 무엄한 주장이었다. 버릇없는 놈!

  답안지 앞뒤가 모자라 새로 한 장을 더 받아서 가득 메꿨다. 

  답안지를 채운 글자수, 열정, 논리적 치열함, 조목조목 파고드는 비판의식, 비분강개 등에 비해 결과는 초라했다. C학점. 

  시험문제의 시대착오적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이런 훌륭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출제해주신 교수님께 머리 숙여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또한, 낡은 강의노트를 통해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는 학자적 양심에 감사를 드린다… 뭐 이런 알랑방귀를 조금이라도 뀌었으면 넉넉히 A학점이었을 텐데…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철학의 핵심은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는 자유일 터임으로.


  우리의 길길도사는 시험에 대해서도 탁월하게 대처했다.         

  언젠가 체육시간에 있은 일이다. 시험 대신에 레포트를 써내라는 반가운 소식. 레포트는 시험에 비하면 한결 할랑한 법. 협동작업도 가능하고, 베낄 수도 있고, 대신 써줄 수도 있고… 레포트 제목은 거창하게도 “대학 체육의 필요성을 논하라”는 것이었다.

  레포트 제출 마감날, 복도에서 우연히 길길도사와 마주쳤다. 레포트를 제출하러 가는 길이었다. 길길도사의 레포트는 격식을 잘 갖추고 있었다. 표지에 체육 레포트, 대학체육의 필요성을 논하라, 무슨 과, 학번, 아무개…  정갈하게 쓰여 있고, 제본까지 정성스레 돼있었다.

  그러나! 알맹이는 대단히 간단명료했다. “장생불사(長生不死)” 딱 네 글자였다.

  “이게 대학체육의 필요성이지 뭐! 이거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길길길…”

  길길도사의 체육학점은 A였다. 선생 역시 화끈한 양반이었던지, 간단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이도 기발한 레포트를 받아보고는 한참 낄낄거렸을 것이다. 

  그 후로 오늘날까지 나는 몇 번이나 시험을 치렀고, 몇 번이나 낙방의 쓴 잔을 마셨던가? 어쩌다 가끔은 실수로 합격하기도 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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