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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건동 아리랑
08/04/2017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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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건동 아리랑

                                               장소현(극작가, 시인)



 이 글은 1960년대 후반 연건동에 있던 서울미대 근처를 얼쩡거리던 가난한 부자들의 유쾌한 청춘기이다.

정말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분위기... 우리는 그 때를 낭만시대라고 기억한다.

법대 뒷구석에 세 들어 있던 미대가 독립된 캠퍼스를 마련하고 둥지를 튼 것이 법대 맞은 편의 연건동 캠퍼스. 미대는 거기서 한 동안 지내다가, 공대 곁방살이를 잠시 하고, 관악산 골짜기로 옮겨갔다.


연건동 시대가 서울미대의 황금기였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동감하는 사실이다.

미대 연건동 캠퍼스는 옛 수의대 자리. 그러니까 동물들이 어슬렁거리며 자손을 만들던 자리, 아니면 실습 재료로 희생될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공포의 공간에 미술 실기실이 들어선 셈이다

외양간, 마굿간 자리에서 예술이 태어난다! 철학이다, 심오한 철학! 동물들이 새끼를 치던 자리에서 

우리는 환을 쳤다! 철학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그 때 우리는 그 깊은 철학을 미처 몰랐었다. 우리는 그저 동물들이 원초적 본능에 충실하던 

그 자리에서 낄낄거리며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연극을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동물보다 얼마나 나았었는지...? 도무지 자신이 없다.

 

졸졸 흐르던 실개천, 봄날이면 노랗게 흐드러지던 개나리... 별나라, 학림다방, 낙산다방, 뉴욕빵집, 진아춘, 울려고집....

지금은 없어지고, 아예 몰라보게 변해버린 그곳이 그립다. 학교를 졸업한지도 어느덧 50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달려라 하이네!

 

짝사랑은 우리 젊은 시절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그 고약한 열병을 앓으며 우리는 무럭무럭 컸다.

자고로 미대에는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남학생이라곤 쌀에 뉘 섞이듯, 밥에 돌 섞이듯 드문드문... 오죽 했으면 남녀를 반반씩 뽑도록 법을 정했을까...

그래서 미대를 꽃밭이라고 불렀다. 그것도 막강한 꽃밭. 그래서 그런지 짝사랑도 자연발생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정말 열병 같았다.


짝사랑에 있어서는 우리의 친구 코큰별이 단연 으뜸이었다. 그 친구 코가 유달리 큰데다가, 별을 만드는 사나이라는 소동을 부린 바 있어서 코큰별이 되었다. 그자는 실제로 많은 별을 만들었다, 그것도 많이... (별 만든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 코큰별의 짝사랑에 대한 무서운 집념이나 기발한 행동, 그리고 역사와 전통 등은 단연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적어도 우리 근처에서는 홀로 우뚝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혹시라도 짝사랑당을 만든다면 발기위원장은 당연히 우리의 코큰별이 맡아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발기에 앞장설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친구 코큰별이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빠져든 짝사랑의 상대는 같은 학년 여학생이었다

입학과 거의 동시에 짝사랑을 시작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의 코큰별은 그만큼 

본능적으로 짝사랑에 끌려 다녔다

늘 숙명적으로 짝사랑의 늪에 풍덩 빠져들어 속절없이 허우적대곤 했다.

그는 상대를 사과라고 불렀다.

느닷없이 왜 사과야?”

, 볼이 사과처럼 발그레한 게 참 매력적이거든...”

그럼 추워서 볼이 푸르딩딩해지면 능금이 되는 거냐?”

푸르딩딩하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초현실적이고...”

뭐 그런 식이었다. 아무튼, 철저하게 일방적이지만 여러 모로 지극정성이었다. 짝사랑의 대가다웠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우리의 코큰별은 을지로 입구 근처를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무슨 일로 벌건 대낮에 거기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걷다가 문득 전류가 흐르는 듯 이상한 기운을 느껴 쳐다보니, 달리는 버스에 짝사랑하는 사과가 타고 있었다. 사과를 보는 순간 우리의 코큰별은 버스를 따라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달리고 또 달렸다. 코가 커서 바람의 저항을 더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정말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졸지에 추격자가 된 것이다. 추격자! 무엇을 추격하는가, 추격자여?

버스는 잡힐듯 잡힐듯 약을 올리며 도망을 치곤했다. 정류장에 멈춰선 버스를 거의 따라잡을 만큼 달려갈 즈음이면 버스는 뾰로롱 출발하곤 했다

그러기를 몇 정거장이나 했는지....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추격을 멈출 수는 없다. 멈추면 추격이 아니다! 달려라, 달려!


그렇게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안타깝게도, 결국은 버스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현실은 늘 그렇게 

안타까웠다. 아마도 신당동 근처였던 것 같다.

우리의 코큰별은 숨이 차서 증기기관차처럼 시근거리며 공중전화를 찾아, 사과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 당시 집에 전화가 있다는 것은 부자라는 뜻이다. 아예 날 때부터 핸드폰을 들고 태어나는 지금과는 

생판 다른 시절이었다.

중년여인이 받았다. 사과의 어머니, 그러니까 어미사과였다. 사과에게 전화를 했으면 당연히 사과를 해야 마땅할 텐데 우리의 코큰별은 그러지 않았다. 사과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죄송합니다만, 아무개 있습니까?”

학교 갔는데... 근데, 누구시죠?”

하이넵니다, 하인리히 하이네!”

우리의 코큰별은 그렇게 당당하게 대답하고는 찰카닥 전화를 끊었다.


이 사람아, 거기 하이네가 왜 나와?”

몰라! 나도 모르겠어... 그럴듯 하잖아? 하인리히 하이네...”

그럴듯 하기는 젠장! 내 짐작에는 그날 저녁 그 집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갔을 것 같다.

, 너 요새 하인 뒀냐?”

하인? 갑자기 무슨 말이야! 무슨 일 있었어요?”

낮에 어떤 놈이 전화를 걸어서 널 찾더라. 누구냐고 물었더니 하인이라던데... 뭐라더라

아, 하인이니까 하인이네 라던가?”

요새 세상에 하인이 어디 있어, 엄마두 참!”

분명히 그랬다니까!... 아닌가? 하이에나라고 그런 거 같기두 하구... , 맞다! 하여간에 하이에나!”

하이에나가 어떻게 전화를 걸어! 그리구 우리나라엔 하이에나 없다구!”

얘가 에미를 무시하네! 분명히 그랬다니까! 하여간에 하이에나, 아니면 

하인이니까 하인이네 그랬다니까!”

엄마 나 배고파, 밥이나 빨리 줘요!”

내 짐작이 틀리기를 바란다. 간절히 바란다. 기도할 용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달리고 또 달린 티없이 맑고 순수한 정열이다. 그 시절에는 그런 열정이 있었다, 따지지 않는 열정!

그런데 왜 그렇게 달린 거야? 버스를 잡아서는 뭘 어쩌려구?”

모르겠어... 정신 차려 보니까 내가 미친듯이 막 뛰고 있더라구!”

예술에 있어서도 때로는 그렇게 미친듯이 빠져드는 열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달리는지, 버스를 잡아서 어쩌겠다는 건지, 그런 거 따지지 않고 무작정 죽을힘을 다 해 달리고 또 달리는... 

매우 외람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고흐 같은 이가 그러지 않았을까?

글쎄 나도 모르겠어... 어느 날 보니까 내가 미친듯이 그림을 그리구 있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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