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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춘자야, 연탄 갈아라!
07/03/201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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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꽁트>


            춘자야, 연탄 갈아라!

 

                                          장소현 (극작가, 시인)


                                                                                심찬양의 그래티피 작품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필라델피아에 있는 신문사에서 일할 때였으니까 그렁저렁 40년도 넘은 옛날 일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꽤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때, 내가 일하던 신문사는 큰 길가에 있었다. 그 동네에도 희뜩버뜩 건들거리는 흑인들이 많았고, 조심하지 않으면 큰 코 다친다는 친절한 가르침을 무수히 들었었다.

미국 온지 얼마 안 돼 어리버리하는 나는 잔뜩 겁에 질려 긴장하고 있었다. 흑인만 보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마감시간에 쫓겨 기사를 쓴답시고 낑낑거리고 있는데, 커다란 흑인 한 명이 불쑥 들어왔다. 무척이나 우락부락 험상궂은 녀석이었다. 물론 잔뜩 긴장하였다. 놈이 권총이라도 꺼내면 어쩌나. 마침 다른 직원들은 점심 먹으러들 나가고, 사무실에는 두세 명밖에 없었으므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흑인 녀석은 희번덕하는 눈길로 주위를 휘이 둘러보더니, 느닷없이 씨익 웃었다. 새까만 얼굴에 새하얀 이빨만이 커다랗게 번득였다. 그리고는 체구에 걸맞지 않는 소프라노로 소리쳤다.

 춘자야, 연탄 갈아라!

, 똥투천 쿠멍탄, 이히히힛

안녕 끼시오!” 

그리고는 부끄러움 타는 국민학생처럼 서둘러 나가버렸다. 그것 참 어안이 벙벙했다.

제 딴에는 한글간판을 보는 순간 반갑고, 한국에 두고 온 애인 춘자 생각이 나서 들어온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춘자야, 연탄 갈아라!”는 대히트였다. “안녕 끼시오는 더욱 재미있었다. 그 녀석이 한 말 모두가 한편의 시()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안녕 끼시요라니! 끼긴 뭘 껴?

 

그 날은 참 요상한 날이었다.

한참을 지나니, 이번에는 노랑머리 파랑눈의 풋내기가 한 명 들어왔다.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말까 한 애숭이었다. 어쩌면 고등학생 같기도 했다. 엿장수 목판 같은 것을 하나 메고 있었다.

놈은 또렸한 우리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깍듯이 인사를 하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똥일

  꿈에도 소원은 똥일

  이 모쑴 빠쪄서 또옹일 


발음은 라면발처럼 꼬부랑꼬부랑했지만, 어쨌거나 노래를 2절까지 불렀다. 아주 진지한 소원을 담아 엄숙하게 불렀다. 마치 자기의 진정한 소원이 한반도 통일이라는 듯한 독립투사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목판을 활짝 열더니 땅콩을 팔기 시작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한국 버스 간의 앵벌이 소년이나 똑 같은 풍경인 셈이다.

까짓것 꽤 비싸기는 했지만 사줬다. ‘이놈아, 똥일이 아니고 통일이다, 통일, 토오옹이일그렇게 투덜거리며 사줬다.

자기는 (MOON)선생네 똥일교에서 나왔노라고 했다. 그렇게 땅콩을 팔러다니면 통일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그렇게 믿는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러면 통일과 땅콩이 도대체 무슨 관계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어려워서 잘 모르겠노라고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허허, 세상 참무심코 땅콩 껍질을 까보았더니 얄궂게도 한반도 형상인데, 아래 위로 땅콩알이 하나씩 붉은 껍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다. 아하, 과연 통일과 땅콩은 밀접한 관계가 있구나 그런 초현실적인 깨달음이 들었다. 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심찬양의 그래티피 작품

 

그날 연이어 일어났던 두 가지 자그마한 일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리고 자꾸 되씹게 된다. 거기서 나는, 흑인이라고 무조건 겁먹지 말 일이며, 백인이라고 공연히 주눅 들지 말라는 땅콩알 만한 교훈을 얻어냈다.

그 교훈은 그 이후 이 미국이라는 바람 찬 벌판에서 황량한 삶을 헤쳐가는 동안 내게는 제법 큰 힘이 되었다.


문제는 고정관념인 것 같다

흑인을 조심하라고 그렇게도 가르쳐주던 이민선배들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내게 그렇게 가르쳐 준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실제로 흑인들에게 크게 당한 일이 없는 셈인데, 그저 안전제일이라는 생각만으로 내게도 그렇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교훈은 지금도 꾸준히 전수되고 있으니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그토록 자랑하여 마지않는 우리 배달겨레가 이 황당스러운 인종의 용광로 속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걸핏하면, 억울하게 인종차별을 당한다고 투덜대는 우리는 거침없이 그리고 당연한 듯이 깜둥이, 깜씨, 연탄, 멕짱, 짱깨, 짱골라, 쪽발이, 왜놈, 양키라는 말들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일말의 우월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동방의 유태인, 2의 유태인이요, 돈 밖에 모르는 지독한 일벌레라는 영광스럽지 못한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저 웃어 넘겨버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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