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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 사이
12/09/20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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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며칠째 질금질금 내린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내리는 것도 아니다.

오다 말다 찔끔찔끔 내리다 말다 한다.

장마 통에도 거지 빨래해 입을 햇볕은 난다더니 아침에 해가 조금 비쳤다.

너나없이 호수공원으로 쏟아져 나왔나 보다.

차를 몰고 호수공원 앞을 지나다 보니 운동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아 보인다.

누님도 친구들과 이 기회를 놓칠 수 있느냐면서 10시에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나도 나가보려 했지만 이것저것 하다 보니 늦어졌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다시 찌프드 한 게 곧 비가 올 것 같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가장 가까운 팔슨공원이나 한 바퀴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다 보면 동네 역사도 알게 된다.

반세기 전에는 아이들이 많아서 팔슨공원 자리에 유치원이 있었다.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유치원을 없애고 공원으로 조성해 놓은 조그마한 공원이다.

내 딴에는 날씨가 쌀쌀한 것 같아서 두툼한 겨울 잠바를 입었다.

목장갑도 꼈다. 장갑은 종로 3가에서 2000원 주고 산거다.

공원을 향해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코너 집 캠퍼 넣어두는 차고 지붕 위에 매달아놓은 독수리 모형 방향타가 지난 비바람에

넘어져 있다.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원은 한산한 게 아무도 없다.

가을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해서 단풍도 다 날려 떨어졌다.

추위에 강한 이름 모르는 나무만 아직 빨간 잎을 붙들고 놓아주지 못한다.

잠깐 걸었는데 더워서 옷을 벗고 싶다.

그렇다고 벗어 들만큼 따뜻한 날씨는 아니다. 아무리 덥다 해도 겨울은 겨울이니까.

아줌마 셋이서 걷는다. 한 여자는 반팔을 입었다.

나만 두터운 겨울 잠바를 입고 걷는다.

내가 한국에서 막 오다 보니 겨울옷 감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지퍼를 내려 앞가슴을 열었다. 목장갑도 벗었다.

A에서 B의 환경에 익숙해지려면 번번이 시행착오를 거친다.

그렇게 많이 경험해 봤건만 아직도 가늠하지 못하다니 인생 아무리 오래 살면 뭐하나!

 

KBS 아침마당에서 자녀가 이혼을 하겠다는데 말려야 하나, 그냥 내버려 둬야 하나를

놓고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살려면 부딪쳐서 스파크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상대의 잘못만 눈에 띄는 게 문제다. 문제의 상대를 고치려고 하는 게 또 문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변하는 것뿐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알게 되는데 내가 먼저 변하는 길밖에 없다.

하나가 되기 원한다면.

 

두툼한 겨울 잠바를 끼어 입고 걸어가면서 터득한 건데

날씨에게 기온을 내게 맞추라고 할 수는 없고,

내가 옷을 벗어 기온에 맞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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