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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받아본 손으로 쓴 편지
07/02/2018 10:22
조회  710   |  추천   11   |  스크랩   0
IP 24.xx.xx.153

 

 

여러 달 한국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저녁 늦게 운동길을 걷는다.

산 두렁길 양편으로 허리까지 자란 풀이 바싹 말라 있다.

성냥불 거대면 금방 산불로 번져나갈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걷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진다.

딴에는 빠르게 걷는다고 걷는다만, 같이 걷는 아내가 저만치 앞서간다.

땀 흘린 운동 끝에 샤워하고 나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외손주 이름은 버질이고 벌써 초등학교 일학년이다.

한국에서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물론 아내이겠지만,

속으로만 그렇지 기다렸다는 표시는 내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기뻐하는 건 손주 녀석이다.

손주는 내가 장난감 사가지고 올 것을 간곡히 기다리고 있다.

올 때마다 하나씩 사다 줘 버릇했더니 으레 그러려니 하고 기다린다.

어쨌거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손주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지극히 따듯이 맞아준다.

환영한다면서 오래 기다렸다고 운을 뗀다.

시험지도 들고 왔다. 산수 문제 15개가 다 맞았다며 으스대며 보여준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내 어깨가 다 으쓱해진다.

그러면서 편지를 건네준다.

세상에……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본 지 얼마 만이냐?

감격스럽기도 하고, 손주가 기특하기도 하다.

조심스럽게 펼쳐 읽어보았다.

편지 사연이 지 속마음을 고대로 표현한 게 참 보기에 좋다.

스펠링이 틀리기는 했어도 다 알아볼 수 있다.

솔직히 나보다는 장난감을 더 기다렸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늙은이를 뭘 보고 기다리겠는가?

대견하고 한층 더 귀엽게 보인다.

끌어안아 볼에 입 맞추고 엉덩이를 두들겨 준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신다기에 설렙니다.

할아버지가 한국에 나가신 다음, 늘 기다리고 있어요.

사랑해요.

맨 날 할머니에게 언제 할아버지가 돌아오실지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사랑 가득한 버질로부터.“

 

아이와 노인은 요일도 모르고 날짜도 모르고 산다.

만나면 웃음거리만 찾는다. 신 날 거리만 찾는다.

! 손주 없는 사람은 무슨 맛에 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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