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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건가?
04/17/2019 09:29
조회  957   |  추천   26   |  스크랩   0
IP 24.xx.xx.153


내가 가는 종로 3가 이발소에 이발사가 두 명 있다.

2주일에 한 번은 머리를 깎아야 하니까 이발소에 들리면 서로 인사는 하고 지낸다.

그렇다고 성이나 이름까지 아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은 주인이고 다른 사람은 종업원이라는 것을 짐작으로 알뿐이다.

머리를 잘 깎는 이발사가 주인이고 종업원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러나 이번 종업원은 오래 있는 편이다.

내가 이 이발소를 가는 까닭은 주인 이발사가 머리를 잘 깎아 주면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발사는 손님이 들어온 순서대로 차례차례 깎아 준다.

이번 손님을 주인이 깎으면 다음 손님은 종업원이 맞는다.

한번은 종업원이 순서대로 다음 손님 에게 다가갔다.

손님은 주인에게 깎겠다면서 종업원 이발사를 내게로 밀면서 먼저 깎아주란다.

양보치고는 달갑지 않은 양보였지만 나는 갑자기 겪는 상황이라 말한 마디 하지 못하고

순순히 당하고 말았다.

 

그날따라 나의 머리는 매우 길었다.

한 달 동안 깎지 않았으니 목덜미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으면 마디 반만큼 자라 있었다.

종업원은 조금만 자를 거지요하면서 깎기 시작했다.

잘 깎든 못 깎든 모자를 쓰고 다닐 것이니 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집에 와서 모자를 벗고 보니까 정말 맘에 안 든다.

깎다만 머리처럼 목덜미머리가 깎았는지 안 깎았는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별로 나다닐 때도 없고 머리야 자라면 되니까 집에서 그냥저냥 지냈다.

깎다만 머리여서 금세 자란 것 같아 또 이발소에 가게 됐다.

 

이번에도 이발 의자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종업원 이발사가 다가와

먼저 오셨지요?”하면서 깎으러든다.

분명 저 사람이 나보다 먼저 왔는데 순서를 어기고 나 먼저 깎아 주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저분이 먼저 왔다고 가르쳐 주었다.

머리 잘 못 깎으면 어딘가 모자라는 것 같고 마음에 안 들다보면 자신감마저 잃는다.

종업원 이발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더니 그날은 운 좋게도 주인 이발사한테 머리를

깎았다.

주인이 깎으면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한 인물 낫게 보인다.

모자도 안 쓰고 옷을 차려입고 다녔다.

남자에게는 머리가 미의 완성이어서 매우 중요하다.

단골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다 그래서다.

 

다음 머리 깎으러 갈 일이 걱정이다.

내가 주인 이발사 차례가 돼서 주인에게 깎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만

순서라는 게 50% 기회여서 운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종업원 이발사 차례가 돼서 깎겠다고 다가온 사람을 싫다고 거절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이발하러 가기 며칠 전부터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생각해 보았다.

핑계거리라는 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건데, 적당한 거짓말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고

먹혀 들것 같지도 않다.

나도 솔직하게 주인 이발사에게 깎겠소 할까 생각해 보았으나 종업원을 무안하게 할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만 태웠다.

세상에 별게 다 속을 썩인다.

다른 이발소로 갈까도 생각해보았다.

 

매정하게 'D day'는 다가오고 말았다.

어찌되었건 일단은 가 보았다.

주인 이발사나 종업원 이발사나 둘 다 손님 머리를 깎는 중이다.

나는 빈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누구라도 먼저 끝내는 이발사가 내게 다가올 것이다.

양쪽 이발사의 진도가 엇비슷한 게 누가 올지 모르겠다.

간발의 차이로 주인 이발사가 먼저 끝내고 내게로 다가 왔다.

옳다구나 됐다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주인 이발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스마트폰을 들고 몇 마디 하더니 아예 전화 받으러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간 주인 이발사는 종업원 이발사가 내 머리를 다 망쳐놓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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