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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깨닫게 해 준 지혜
06/15/20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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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울역 광장에서 친구를 만났다.

옛날, 기차를 타고 와서 서울역을 빠져나오던 곳으로 가 보았다.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예배를 보는 건지, 찬송을 부르는 건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쩡쩡 울리도록 예수 믿으라고 부르짖는다. 시끄러워 전화 소리도 안 들린다.

예수를 피해 서울역 새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여긴 노숙자들이 아예 이불을 덮고 조용히 누워있다.

노숙자가 담요도 아닌 흰 이불을 덮고 있는 건 처음 봤다.

있거나 말거나 덜 시끄러워서 노숙자가 예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가 받기는 받는데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 않는다.

나는 금세 알아차렸다. 예수 걷어치우고 노숙자 쪽으로 오라고 했다.

 

거의 일 년이 다 됐다.

친구하고 껄끄러워진 지가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친구는 만나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해도 시큰둥, 말을 안 한다.

전화를 걸어오는 일도 없다, 내가 전화를 해도 받는 말투가 떨떠름하다.

어제는 작심하고 전화를 걸어 한마디 했다. 떨떠름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캐나다 친구에게까지 전화질을 하면서 내게는 전화도 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혼자 그렇게 생각하느냐다.

! 이거 사람 우습게 만드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어제 따져 물은 전화가 효과가 있었는지 모처럼 친구한테서 온 전화다.

밑도 끝도 없이 만나잔다.

그래, 그러자 했더니 등장한 장소가 구서울역 광장이다.

만났으니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했다. 친구는 점심을 거른단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건강상 이유로 점심을 거르는 모양이다.

할 수 없지 친구 비위를 맞추자면 배가 고프지만 꾹 참고 지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냉커피를 시켜놓고 딱히 긴요하게 할 말은 없다. 두서없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 기회에 친구가 가지고 있는 오해인지, 뭔지를 풀어줘야 할 텐데, 한참 머리를 굴렸다.

이 친구가 제일 싫어하는 친구 KS가 떠올랐다.

나는 KS 흉을 봤다. 십 년 전에 신설동 풍물시장에 갔다가 우동이나 먹자고 했더니

우동 한 그릇 시켜 내게 팽개쳐 주고는 저는 도망치더라. 그리고는 한 번도 못 봤다.

이런 못된 놈이 있느냐고 흉을 봤다.

그래놓고 오 년 전에 지 딸 결혼식에 오라고 연락이 왔더라고 성토했다.

예의도 없고, 친구를 지 발뒤꿈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못돼먹은 인간이라고 흉을 봤다.

 

친구도 지가 KS한테 당한 이야기를 끝없이 풀어놓는다. 둘이서 실컷 KS 흉을 봤다.

KS 흉보는 동질감이 우리를 다시 친숙하게 만든다.

두어 시간 떠들다가 나오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또 만나자며 손을 흔들었다.

KS에게는 안 됐다만 희생타가 돼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살 만큼 산 늙은이도 마음만은 애들하고 똑 같아서 웃음이 절로 난다.

 

듣고 보니 친구의 오해라는 게 쾌쾌 묶은 소싯적 이야기였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이야기니까 사십 년도 더 된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의 일이다.

그때 섭섭했던 이야기를 친구는 조목조목 기억해 내면서 상기시킨다.

기억해 냈다기보다 영원히 잊히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KS하고 같이 우리 집에 오던 일 생각나니? 와서 밤새도록 술 마시고

질펀하게 누워 자던 생각나니?” 하면서 말을 꺼낸다.

막 결혼한 자기를 새색시 앞에서 바보로 만들었다는 거다.

두고두고 마누라한테서 똑 같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산단다. 들을 때마다 열난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 잊어먹고 지냈다. 기억조차 아물아물하다.

 

말은 안 했지만, 내가 미국에서 살다가 처음 한국에 나왔을 때가 11월이었다.

그때는 총각 시절이었다. 친구가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집에서 엄마가 이제나저제나 김장 담 글 돈을 가져오려나 기다리고 있으니

나더러 돈 좀 달라고 했다.

다음 날, 갖다드렸더니 꼰대가 그렇게 좋아하는 얼굴은 처음 봤다고 했다.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나 친구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본다.

사람은 자기가 해준, 베푼 좋은 일만 기억하고, 자신이 저지른 나쁜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DNA를 타고난 모양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훈련을 통해서 DNA를 재배치한다.

DNA가 거꾸로 배치되면 해준 좋은 일은 잊어버리고, 해준 나뿐 일만 기억한다.

언 듯 생각하면 쉬울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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