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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면 행복한 이유
09/20/20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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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없다.

 

평생 미국에서 살았으면서 왜 한국이 좋을까?

미국의 넓고 큰 집을 놔두고 작고 아무도 없는 한국의 오피스텔에 있으면 포근하고

행복하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누운 채로 뒤치락거리면서 뜸을 들인다.

어제 긁적이다 만 글을 생각해 본다. 때로는 훌륭한 생각이 그때 떠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미국 집에서나 한국에 와서나 똑같다.

그렇게 십 년도 넘게 살아왔건만 지금껏 왜 한국에 오면 포근하고 행복한지

그 답은 찾지 못했다.

 

오늘에서야 오래된 숙제가 풀렸다.

오피스텔은 좁은 공간이다. 몇 발짝만 걸으면 벽에 부딪친다.

이곳은 임시로 기거하는 집이라는 관념을 늘 가지고 산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사도 장만이라는 생각을 가져보지 못했다.

잠깐 쓰고 말 것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작고 싸구려 책상에 집에서 들고 온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놓았다.

침대도 없이 맨바닥에 간단한 요나 깔고 잔다.

방에는 중국제 TV와 빨래 널어놓는 틀이 하나 있을 뿐이다.

그릇도 한 사람분에 숟갈과 젓갈도 한 사람분이다.

설거짓감이 없어서 먹으면 금세 해치워서 좋다.

그나마 전에는 싸구려 국수라도 사 먹으러 다녔는데 이제는 그것도 그만뒀다.

 

설거짓감을 줄이려고 일부러 반찬은 해 먹지 않는 편이다.

찌개류나 굽는 거는 먹지 않는데 이유는 설거지하기 싫고 냄새 풍기는 게

싫어서 그렇다. 먹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겠다.

늙으면 소화가 더뎌서 배고픈 줄 모르겠다.

어떤 때는 온종일 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프다.

끼니가 돼서 먹는 거지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다.

 

아침으로 사과 반쪽을 납작하게 썰어놓고, 파프리카, 보라색 양파, 적채,

아보카도를 썰어 프라이팬에 가지런히 놓고 상추로 쌈을 싸서 먹는다.

프라이팬에 담는 이유는 넓적하고 큰 그릇이 프라이팬밖에 없기 때문이다.

밥은 반 공기면 족하다. 명란 두알 정도 익혀서 반찬으로 먹는다.

아내가 잔뜩 싸서준 멸치 볶음이 밑반찬이다.

점심에는 메밀국수를 삶아서 간장에 비벼 먹기도 한다.

때로는 아침에 먹다 남은 채소로 저녁을 때운다.

자연산 히비스커스 티를 끓여 놓고 마신다.

 

저녁을 먹고 나면 밖에 나가 한 시간 걷는다.

비가 안 오면 숲길을 걷고 비가 오면 대로를 따라 마두전철역을

돌아온다. 딱 한 시간 걸리는데 땀이 많이 나서 반드시 샤워해야 한다.

 

외출할 일도 없고, 누구와 말할 사람도 없다.

전화가 오는 예도 없고 걸 때도 없다. 꼭 필요한 전화만 오고 간다.

아내와는 문자로 주고받는데 그래도 알 것은 다 안다.

미국에 있는 친구도 문자로 통한다.

친구가 두어 명 있으나 한국에 왔다고 글로 알려줘도 답 글도 없고 전화도 없다.

오히려 먼 캐나다 친구는 가끔 전화질을 해 댄다.

그것도 캐나다 시각으로 저녁 9-10시에 거는 거로 봐서 혼자 살기 외로워서

자기 전에 한바탕 떠들고 자려는 심보처럼 보인다.

 

한 달을 살아도 돈도 안 든다.

관리비 십만 원에, 인터넷 라인 만원, 알뜰폰 삼천 원, 전기 가스비는 거의 없다.

그 외에는 식비인데 연신내 시장에서 무채 무침 이천 원어치만 사면 네 끼를 먹는다.

시래깃국 이천 원어치 사다가 비닐봉지 네 개로 나누어 담아 얼려놓고 먹는다.

고기나 생선은 사다 먹질 않고 채소류만 사다 먹는 편이어서 한 달에 삼십 만원이면

된다.

이달에도 오십오만 원으로 시작해서 십만 원이 남았으니 실제로 오십만 원 미만으로

한 달을 산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남들은 그렇게 가난하게 먹을 것도 안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지만

나는 이런 생활이 익숙하고 행복하다.

도서관에 걸어가서 신문을 읽는다. 책도 빌린다.

그리고 활자를 통해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도서관 가는 길에 일산 병원에 들러 혈압도 재 본다. 다 돈 안 드는 일이다.

 

내가 이 방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올 사람도 없다.

구태여 좁은 공간에서 옷을 입을 이유도 없다. 공간 자체가 옷이나 마찬가지다.

한 달 만에 인터폰이 울렸다. 갑자기 울리는 인터폰 소리에 놀랐다.

인터폰을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누구요하고 크게 소리쳤다.

밖에서 뭐라고 하기는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

문에 다가가서 다시 누구냐고 물었고, 대답이 들려오지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할 수 없이 문을 빠끔히 열고 물어보았다.

아주머니가 가스 점검 나왔단다.

얼떨결에 다 벗고 있어서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했다.

밖에서 기다릴 테니 옷을 입으란다.

아주머니의 지시에 따라 옷을 입고 문을 열어주었다.

아주머니가 가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다 벗어놓았더니, 다 내려놓았더니 행복하다는 사실을.

 

 

미국 집에서도 혼자 잔다. 아무도 나를 귀찮게 구는 사람은 없다.

방은 물건으로 꽉 차 있다. 평생 동안 사다가 싸놓았으니 많을 수밖에 없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다 필요해서 사다 놓은 것들이다.

워킹 크러 셋에 들어가 보면 걸려있는 옷이 대관령 황태덕장에 황태 널어놓은 것처럼

많다.

거실에 가 보면 가구가 스스로 알아서 지 자리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고, 다이닝 룸에도,

패밀리 룸에도 없을 게 없이 다 있다.

부엌살림도, 팬 추리에 들어가 보면 식재료들로 꽉 차 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불고기 재 놓은 거, 수박 잘라놓은 거, 산딸기 주스, 먹을 게 지천이다.

물건 하나하나부터 먹거리까지 보는 대로 머리에 입력되어 있다.

입력된 만큼 뇌는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아 무겁고, 일일이 마음을 써야 한다.

행복이 찾아 들 영역을 잡것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행복한 까닭은 다 내려놓고 다 벗어놓았더니 두뇌에 행복이 들어설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임시 거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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