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huette
san francisco fog(sillhuette)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1.05.2017

전체     221292
오늘방문     38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땅에 떨어진 젊음
11/08/2019 13:35
조회  572   |  추천   11   |  스크랩   0
IP 210.xx.xx.246



오피스텔 정문을 나오자마자 오른편으로 꺾으면 바로 반찬가게가 있다.

장독대라는 빨간 글씨가 형광등 불빛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간판이 현대적 감각을 드러낸다.

아마 2년 전쯤일 게다. 반찬 가게가 문을 연지가.

반찬 가게 치고는 넓은 매장에 양쪽 벽으로 냉동 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고 중앙에도

냉동 시설이 있어서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보면 없는 게 없어 보였다.

냉동 시설이 많아서 설치하는데 비용 꽤나 들었을 법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24시간 돌려대는 전기 사용료도 곧 많이 나올 것이다.

나는 반찬 가게를 이렇게 훌륭하게 차려도 운영이 되려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인은 삼십이 될까 말까 한 청년이다.

나는 처음에 주인은 따로 있고 이 젊은이는 잠시 빈자리를 채우는 임시 직원 정도로

생각했다.

한번 들려서 반찬을 산일도 있지만 공장 제품들이 대부분이고 만든 반찬이라는 것도

어느 공장에서 공급해 오는 것 같았다.

패킹한 반찬들이 양도 적었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아 다시는 들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미 알아봤다. 이 가게 머지않아 문 닫게 생겼다는 걸.

가며오며 지나다닐 때마다 고개를 돌려 손님이 있나 하고 들여다보곤 했는데

한 번도 가게 안에 손님이 있는 걸 보지 못했다.

가게를 줄기차게 지키고 있는 젊은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지나다닐 때마다

언제 이 가게 문을 닫으려나 하며 들여다보곤 했다.

 

청년이 무슨 돈이 있어서 번듯한 가게를 차려놓고 적지 않은 가게 월세를 물었겠는가.

뒤에서 대 주는 부모가 있지 않겠나하는 짐작도 해 보았다.

 

TV에서 밖이 추워졌다고 하도 호들갑을 떨어서 옷을 끼어 입고 나가봤다.

쓰레기나 버리고 반찬가게나 들렸다가 올 생각이다.

밖이 호들갑을 떨 만큼 춥지는 않고 그저 쌀쌀할 뿐이다.

내가 가는 반찬 가게는 건물 일층에 있는 젊은이가 운영하는 가게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반찬 가게다. 아주머니 여럿이 반찬이며 장떡, 생선전 겉절이 김치 같은

금방 만든 반찬을 파는 가게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국을 끓인다는 거다.

매일 다른 국을 끓이는데 미역국, 소고기뭇국, 된장국, 육개장 등 돌아가면서 내놓는다.

오늘은 무슨 국이 걸릴지 알지 못한다.

국이나 사다가 뜨끈하게 데워서 밥 말아먹으려고 반찬가게에 갔다가.

엉뚱하게 비지찌개가 맛있어 보여서 비지찌개로 샀다.

늘 생각했던 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찬가게 아주머니도 다 알아서 요리 치고 조리치면서 사게끔 만들 줄 안다.

그것도 모르면 어떻게 장사해 먹겠는가.

 

달랑 비지찌개 하나 사들고 덜렁덜렁 걸어오는데

멀리 검은 옷 입은 남자가 인도교에 앉아 있는지 누워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처음에 노숙자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인도교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오토바이는 시동을 끄지 않아 엔진이 돌아가고 있었다.

택배 기사는 오토바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날씨도 차가운데 그것도 한 데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는 모양이다.

시계를 보았다. 정확하게 정오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휩쓸려 죽었다는 뉴스도 들었고,

정규직으로 해 달라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늘 듣는데,

오토바이 기사는 비정규직만도 못해 보인다.

대통령 공약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였는데, 이제 와서 반찬가게 아주머니처럼 머리를 쓰나?

정규직이 됐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고, 정리 해고당했다는 말만 들리니 말이다.

그보다도 무서운 건 생명 보험도 없는 오토바이 배달원들의 처참한 근무 환경이다.

오토바이 배달원들은 무법자다. 교통 법규도 지킬 줄 모르고 인도교에서도 지 맘대로 달린다.

나는 처음에 법도 안 지키는 오토바이 배달원을 욕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얼마나 임금이 야박하면 생명을 걸고 달려야 겨우

하루 일당을 챙길 수 있겠는가? 교통법규 어긴다는 걸 몰라서 어기겠는가?

나라는 부자가 됐는데, 오토바이 배달원들은 저임금에 목숨을 걸어야 하다니…….

 

드디어 건물 아래층 반찬가게가 문을 닫았다.

간판도 다 떼어내고 안에 있는 냉동시설을 뜯어내어 차에 싣는다. 보기에 딱해 보인다.

청년들은 뭘 해도 안 되는 세상이다.

오죽하면 서울시가 청년 수당이라는 걸 주겠는가?

오죽하면 젊은이가 오토바이 배달이라는 위험한 직업에서 헤어나지 못하겠는가?

오죽하면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반찬 가게를 해보겠다고 덤볐겠는가?

나라는 부자라면서, 위정자들이 원망스럽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땅에 떨어진 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