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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애수교
10/09/2019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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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에 비해서 힘이 붙인다.

마음은 빨리 걷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딴에는 부지런히 걸었다만 시간 꽤나 걸려서야 일산 호수 한가운데 애수교를 밟았다.

9월 마지막 날 오후 한 나절, 태양이 살아 있어서 따갑다.

다리 중간쯤에 층계를 내려가 잉어를 보라고 한 단계 낮춰 호수 수면 가깝게 우드 데크를

깔아놓았다. 코밑에서 잉어가 넘실댄다.

태양에 비친 내 그림자가 수면위에 떠서 찰랑인다.

잉어들은 그림자를 보고 먹이 주는 사람인줄 알았나보다. 입을 뻐끔대며 모여든다.

흰색과 붉은색, 황금색 잉어가 유유히 노닌다.

물색으로 위장한 잉어가 가장 많고 가장 크다. 축구선수 허벅지만 하다.

 

내 눈에는 색깔 있는 잉어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흰 바탕에 붉고 검은 무늬를 조화롭게 그린 잉어는 정말 예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잉어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물색으로 위장한 굵직한 잉어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면 조무래기 잉어는 자리를 피한다.

굵고 덩치 큰 물색 잉어가 힘이 제일 센 왕초임이 분명하다.

동물의 세계에서 숫컷의 힘은 찬란한 제왕의 상징이며 암컷은 숫컷의 힘에 반하고

숫컷의 힘에 약하다.

 

오후의 태양이 뜨겁다.

잉어가 무슨 더위를 느끼겠느냐만, 잉어는 시원해서 좋을 것 같아 부럽다.

태양을 피해 일산대교 밑 그늘로 들어갔다. 한결 시원해서 좋다.

가로 5m 세로 5m나 되는 널찍한 마루가 띄엄띄엄 여섯 개나 놓여있다.

쉬어가는 사람들이 아예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 앉아 노닥인다.

낫살 꽤나 먹은 어떤 남녀가 나란히 누워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고개를 돌려 마주보며 속삭인다.

여자는 야구 모자를 써서 그렇지 서로 이마가 닿을 것 같이 가깝게 들이대고 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이 가다오다 만난 연인인 줄 알았다.

대낮부터 무슨 짓인가 하는 뜨악한 생각도 해 보았다.

자꾸 시선이 힐끔대면서 두 사람을 감시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귀까지 신경을 곤두세워 감시의 강도를 높인다.

언제 아슬아슬한 장면이 벌어지려나 기대 반 의심 반 기다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텐데……. 내가 다 걱정이다.

불현 듯 내가 왜 이리 치사한 생각을 하지? 하고 놀랐다.

연인은 아니고 부부인 모양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마음에 평온이 온다.

 

빈 마루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 주변을 훑어보았다.

다리 교각을 작은 여섯 개의 아치가 이고 있다. 다리 밑은 몽땅 콘크리트 벽이다.

벽이 흉물스러워서 아름답게 꾸미느라고 그림을 그려놓았다.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초등학교 저급생 교과서에나 나오는 꽃그림 같다.

넓은 공간을 채우느라고 꽃도 큼지막하게 그렸다.

뚱뚱한 어른보다 더 큰 튜립 한 송이, 장미, 해바라기, 나팔꽃 등 한 송이씩 떼어

그린 꽃은 아름답지도 않고 멋도 없다.

화가가 그린 게 아니라 극장 간판쟁이가 그린 그림이 분명하다.

천한 그림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모자를 벗에 옆에 놓고 마루에 벌렁 누웠다.

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와 이마의 땀을 걷어간다.

 

9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잉어가 살찌고, 열매가 익어가고, 바람도 열기를 내려놓고 고개 숙인 곡식처럼 겸손하게

불어온다. 세상이 풍성해서 좋다.

내 몸의 시계는 9월을 지나, 10월도 지나, 11월도 다 가는데

엉뚱한 의구심에 내가 왜 속을 태워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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