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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내시경 보던 날
04/19/2019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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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집을 나섰다.

러닝셔츠에 겨울 잠바를 걸쳤다. 봄철이어서 남들은 봄옷을 챙겨 입었는데

나는 일부러 겨울 잠바를 입었다. 남 보기에 볼상스러워 보일 것 같았지만

쌀쌀한 날씨에 따뜻하게 입고 볼 일이라는 생각에서 그랬다.

안국동 전철역 6번 출구로 나갔다.

이번에는 알고 가는 길이라 마음 놓고 찾아갔다.

일주일 전에 왔을 때는 헷갈렸다. 분명히 종로 경찰서 맞은편 길 건너에 있는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통 눈에 띄지 않는다. 흔해빠진 간판도 없다.

찾다 못해 모르는 빌딩 안으로 들어가 수위에게 물어보았다.

수위는 그냥 가르쳐 줘도 될 일을 구태여 밖으로 따라 나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기라고 한다. 해정의원은 길 건너 종로 경찰서 옆에 있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수년째 여러 번 가 보았으면서도 왜 엉뚱한 곳에 있다고 기억했을까?

 

한국은 자라나는 아이 같아서 경제발전도 빠르게 성장하고, 선진국 문명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남다르게 빠르다. 올해부터 병원 진료 시스템도 선진화했다.

전에는 예약도 없이 병원에 가면 진찰받고 검사하고 결과까지 그날로 다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화로 예약하고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가야 한다.

일주일 전에는 의사를 만나 문진만 하고 위내시경 보는 날짜를 잡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날짜가 여럿 있었지만 일부러 아침 업무가 시작하는 시간을

선택하면서 위내시경 보는 환자로는 첫 번째 환자가 되고 싶다고 말해 주었다.

간호사도 첫 번째 환자가 될 것이라며 시간을 정해 줬다.

결국 위내시경을 보기 위한 첫 번째 환자가 되기 위하여 일부러 날짜와 시간을 선택해서

새벽부터 서두른 것이다.

내가 위내시경 보는 첫 번째 환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까닭은 언젠가 TV에서 내시경 보는

기구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다큐먼터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보도가 정말 믿을 만한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루 일과를

끝내고 퇴근할 때는 그날 사용했던 의료 기구는 모두 소독해 놓고 퇴근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관계로 첫 번째 환자가 되면 소독한 기구를 사용할 것이라는 TV 해설자의 말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실에 들어가 보았더니

내 앞에서 위내시경을 보고 있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사람 중에

나 보다 앞선 대기자도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네다섯 번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원과의 약속은 사랑 같아서 다짐해도 소용없다.

급한 환자가 있을 수 있고, 빽 있는 사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비수면 위내시경으로 선택했다. 수면 내시경은 잠깐 잠들었다가 깨면 볼일 다 본 게

되지만, 비수면 내시경은 내시경 보는 내내 깨어 있으니 진행상항을 고대로 알 수 있다.

내가 비수면 내시경을 선택하는 이유는 신장 기능이 약해서 투약이나 마취를 가급적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시경 실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 틀니가 안이냐, 앞니 중에 흔들리는 이는 없느냐

이런 질문을 해서 의아했는데 알고 봤더니 앞니로 마우스피스를 단단히 물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딱딱한 플라스틱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었다. 앞니로 꽉 물었다.

옆으로 눕고 목에 힘을 빼란다. 나는 목에 힘을 줘 본 일이 없는데 힘을 빼라니?

힘을 빼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잠자는 것처럼 축 늘어져 있으라는

뜻이란다.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잠자는 것처럼 축 늘어져 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목구멍 깊숙이 마취 스프레이를 뿌리고 침을 삼키란다.

잠시 후에 기다란 검정 튜브를 내가 물고 있는 마우스피스 구멍을 통해서 내 목구멍으로

넣었다.

튜브가 위까지 도달하는데 한참 걸린다는 걸 속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올갹질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의 올갹질 참으라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리지만

내가 참겠다고 해서 참아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올갹질을 해도 위가 비어 있으니 나올 것도 없다.

그다음에 공기를 위 속으로 넣어 위를 풍선처럼 부풀렸다.

배가 부풀려지는 걸 느낄 정도이니 공기를 많이 넣은 모양이다.

생리적으로 트림을 하면서 공기를 빼내는데 그렇게 긴 트림은 처음 해 봤다.

트림 소리도 크지만 길게도 한다.

위가 팽창해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서 트림하지 말고 참으란다. 다시 공기를 주입했다.

트림이라는 게 내가 참는다고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공기를 빼내려는 생리현상을 어찌 참는다고 될 일이냐.

세상에서 가장 긴 트림을 끄르륵소리도 요란하게 길게 뿜어냈다.

하지 말라고 말리는 소리는 연상 들려오지만, 참으라는 소리도 수없이 들리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죽지 말란다고 죽지 않을 수 없듯이.

오직 빨리 끝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했다.

 

다 끝내고 걸어 나오면서 생각해 본다.

어떤 고생이든 겪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떤 고통이든 겪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통은 지겨운 것이고 누구도 고통을 원치 않는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자청하고 참아야 했나?

목구멍은 음식이 넘어가는 기능만 가지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기계를 강제로 집어넣는

것부터 순리에 역행하는 고통이다.

위에다가 바람을 풍선처럼 넣고 참는다는 게 생리의 순리는 아니다.

순리를 거스르면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고통을 만들어서나마 겪고 난 다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으려는 인간의 약아빠진

심뽀가 두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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