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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열이틀 째 되는 날 콜롬비아
05/16/2018 12:46
조회  945   |  추천   8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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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를 빠져나온 다음 밤새도록 달려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Cartagena)에 닿았다.

콜롬비아의 국기는 노랑, 파랑, 빨강, 삼색이다.

노란색은 개척자들이 금을 찾아왔음을 의미하고, 파란색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의미하고,

빨간색은 나라를 지킨 피를 의미한다.

 

캐리빈 해역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보스가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캐리빈 해역 하면 지난 수 세기 동안 해적들이 얼마나 날뛰었던가?

금을 찾아 헤매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토착인들을 죽이고 금을 빼앗아 유럽으로 가져가던

상선을 습격해서 금은보화를 도적질해 대는 해적에 캐리빈 해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게 다 금 때문에 일어난 웃지 못 할 당대의 사건들이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금은 아니지만, 이권과 권력을

위해서 여전히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금과의 전쟁 속에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카르타헤나 항만으로 들어오는 초입의 작은

언덕에 성을 쌓았다.

1657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769년에 완공했다. 짓고 또 더해 짓기를 여러 번 했기에 공사

기간이 길어졌다. ‘엘모로군사 요새다.

콘크리트와 벽돌을 섞어 함포사격에도 견딜 만큼 두껍게 지었다.

옛날 대포 62대를 걸어놓았고, 10“ 대형 대포도 10문이나 있었다.

1741년 드디어 영국군의 침입을 물리치는 쾌거를 이루었다.

역사는 아이러니해서 그때 영국군이 승리했다면 지금 콜롬비아는 영어 국가가 되었을 것을

스페인군이 승리함으로써 지금의 스페인어 국가가 되고 말았다.

 

북미와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남미는 금이 만들어놓은 나라들이다.

유럽인들이 금을 찾아 대서양을 건너 경쟁하듯 몰려들었다.

캘리포니아가 1849년 금의 발견으로 인구가 급격히 팽창했고 그로 인해 발전했듯이

남미며 라틴아메리카도 금을 찾아다니던 스페인이 땅이란 땅은 다 파헤쳤다.

콜롬비아에 토착민들이 가지고 있는 금과 보석은 모조리 스페인 왕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다행인 것은 스페인이 점령한 지역은 토착민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와 유럽 백인의 혼인을

장려함으로써 뒤섞인 혼혈인으로 바뀌었다.

북미와 같이 영국군과 프랑스, 독일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인디언들을 몰살시키는 정책을 써온 바람에

백인 우월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 있는 샌페드로 크래버 대성당

 

콜롬비아의 작은 항구 카르타헤나에는 2가지 자랑거리가 있는데 하나는 군사 엘모로 요새이고

다른 하나는 샌페드로 크래버 대성당이다.

자갈이 곱게 깔린 매혹적인 옛 군사기지 엘모로 요새1741년 샌 펠리페 장군이 영국군을

크게 무찔렀다는 자랑스러운 성역이다.

 

성당 중앙에 있는 돔

 

샌페드로 크래버 대성당은 성인 크래버 시신을 모신 성당으로 그의 업적이 빛나는 성당이다.

샌페드로 크래버는 158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스페인 식민지

카르타헤나에서 성직자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스페인 국왕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가

금과 은 광산에서 광부 일을 시켰다.

흑인 노예를 사고파는 행위는 100년도 넘은 전통적 관습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흑인들은 이곳 카르타헤나에서 노예로 팔려나갔다.

그 수가 일 년에 10,000명이 넘는다.

샌페드로 크래버 신부는 흑인들 인권을 주장하면서 그들에게 예수교를 전파했다.

크래버 신부가 세례를 준 흑인이 300,000만 명에 이른다.

흑인 인권회복에 앞장섰던 크래버 신부는 1654년에 사망했다.

그가 죽은 지 200이 지난 1888년 교황 레오 8세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성인 페드로 크래버의 뼈를 모셔놓은 교단.

 

콜롬비아 전통 의상을 입은 흑인 여성. 2달러 모델료를 주고 사진 촬영 하락을 받았다.

 

거리에서 랩 뮤직을 크게 틀어놓고 한명씩 돌아가면서 재주를 보여준다. 관광객으로부터 공연비를

얻어내려는 힘든 춤사위다.

 

젊은 부부 어린 딸 데리고 먹고살기 힘겹다. 단속요원 눈치 보면서 부인은 딸과 함께 음료수 팔고,

남편은 아이스크림 팔다가 부인이 싸온 점심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다.

 

바다 한복판에서 보았던 갈매기처럼 과일장사 아주머니 거리를 헤맨다.

따가운 태양에 익어가는 수박이지만, 이것이 팔려야......

 

망망대해에 갈매기들이 나는 거로 봐서 보이지는 않지만, 연안 근처인 모양이다.

갈매기는 태평양 갈매기나 대서양 갈매기나 매한가지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 똑같다.

물고기가 바다에 널려 있는 것이 아니다. 갈매기가 바다 위를 날다가 물속으로 점프해 들어가 물고 나와야 한다. 물고기 낚아채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 대는 거로 봐서 번번이 실패하고

실제로 잡는 일은 몇 번 안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어디 서서 쉴 곳도 없다. 쉴 새 없이 날아야 한다.

참으로 고단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콜롬비아 여인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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