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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곱게 물든 들녘에서
11/24/20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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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이 돼서 길에 차가 뜸하다.

한가로운 길을 홀로 달린다. 오늘처럼 늘 길이 비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을 안고 누님의 묘소를 찾았다.

공동묘지는 어느 날보다 적막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미국인들은

추수감사절에 묘소를 찾지 않는 모양이다.

멋진 부부 사진이 박혀있는 묘비에는 추수감사절 호박이며 단풍으로 치장해 놓은 곳도 있다.

누님은 칠면조 고기를 좋아하셨다.

추수감사절에 터키를 구우면 며칠씩 두고두고 먹었다.

두고 먹어도 질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내가 누님의 묘소를 찾은 것은 특별한 소원이 있어서 들렸다.

살아생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던 누님이었으니 죽었다고 해서 다를 게 있겠는가.

소원을 들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소원은 비밀이어야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소원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묘비를 둘러싸고 클로버가 흐트러져 있다.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이 온다기에 혹시나 하고 눈을 까뒤집고 찾아보았다.

호락호락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래도 한참을 허비했다.

 

전화라도 한 통화 했으면 속이 후련하겠건만, 천국에는 전화도 없다.

그 흔해빠진 전화기 하나 없는 세상이 무슨 천국이냐?

모르긴 해도 전화기는 있으되 듣는 기능만 있는 전화기일 것이다.

그나마 누님은 살아생전에도 전화기를 들고 다니지 않으셨다.

전화기 차체를 싫어하셨으니 천국에서도 전화는 안 받으실 것이다.

전화 통화 없이도 무엇이 아쉬워서 왔는지 다 알고 계시던 누님이니

오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실 것이다.

날씨는 찌뿌듯하고 을씨년스럽다.

적막감이 흐르는 넓은 들판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손주들은 집에 모여 신이 나서 뛰어다닌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서로 눈빛만 마주쳐도 깔깔대고 웃는다.

칼툰을 틀어주고 TV 앞에 묶어놓았다.

아이들은 하나밖에 모르는 모양이다. 칼툰에 정신이 팔려 제정신이 아니다.

쉽게 몰입할 수 있을 때가 좋은 시절이다.

한차례 왁자지껄 먹고 떠들다가 가버린 집은 오로지 적막감만 맴돈다.

늘 그러하듯이 고요하기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산사 같다.

단풍이 곱게 물든 공동묘지가 아늑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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