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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기 (5)
04/30/201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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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행 버스는 직행이라서 그런지 의자가 아주 편했다.

돈이 비싸니까 사람도 별로 없어 두자리를 차지하고 편하게 갈수가 있었다.

영동에서 무주구천동까지는 비포장 도로였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아침 저녁으로 탔으니 힘도 많이 들었는데 이제 의자가 편하니까 마음까지 편해 지는것 같았다.

창밖의 풍경은 언제 다시오나 싶어 머리에 담으려고 노력 했지만 영동을 지나면서 포장된 길이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한 30분쯤 졸다 보니 제법 집들도 많아 지고 생김새도 영동하곤 다르게 보였다.

시내로 들어가자 오후 6시 30분쯤 됐는데 사람들이 조금전에 있던곳하고는 아주 다르게 넘쳐 흘렀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대전역으로 걸어가는데 낮에 구천동에서 만났던 남녀를 만났다.

남자는 키가 훤출하게 큰데 여자는 아주 작았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여자가 나에게 웃으라면서 인상을 너무 쓴다고 웃기는 말을 해서 셋이서 한참을 웃었는데

생각지도 않은곳에서 다시 만난것이다.

대전역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서대전역으로 갔다.

전에 기차를 차고 서대전역을 많이 지나봤지만 역주위를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기차안에서 봤던 서대전역하고 밖에서 본 서대전역은 너무 달랐다.

우선 포장도 안된도로와 역 주변의 집들이 너무 누추해서 어디 시골역 주위를 보는것 같다.역 광장도 맨땅에 자갈만 깔아놨다.

더우기 해가 지니까 모기가 숨도 못 쉴정도로 많았다.

아직 기차를 탈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다.헌데 잠시도 있을수가 없어 계속 움직였다.

새벽의 영동보다 더 했다.그래도 대합실 안 의자에서는 갈곳 없는 사람들이 천하태평으로 자고 있다.

몸이 강철이라도 당해내지를 못할것 같았다.

역주위에서 맴돌고 있는데 어느 아가씨를 만났다.느낌이 상당히 고의적으로 나에게 접근을 했었던것 같아

처음에는 그렇고 그런여자인가 싶었다.그런데 무슨 말을 나눴는데 얼마되지 않아  돌아가 버렸다.

이상하다고는 생각 했는데 당사자가 돌아서니까 아무것도 아니구나 했던것 같다.

사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가 뭐해 걸어서 역 주위를 돌아다니는데 여관 여인숙이 많았다.

사람들이 의자를 문앞에  내놓고 앉아 있는데 누구하나 나보고 자고 가라는 사람이 없다.

집 떤난지 하룻만에 모양새가 초라해졌는지 사람들이 쳐다보기만 했다.

어느 젊은 여자가 나더러 들어오라고 한다,그랬는데 옆에있는 할머니가 말린다.아마 돈걱정을 했겠지.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겉으로는 의젓한채 걸었다.여인숙이라고 팻말은 있는데 홍등가는 아니었던것 같았다.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우유를 사 마시는데 아까 역에서 봤던 아가씨를 다시 만났다.

속으로 여기가 집인가 하고 역으로 돌아가는데 나를 따라 오면서 말을 건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일기에 썼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을거다.

왜냐하면 기억이 하나도 없다.

서로 무슨말인가 주고 받으면서 역으로 가는데 벌써 12시가 다 되었다.

그래도  역주위는 통금에서 해방이 된 구역이었다. 아무도 간섭을 안한다.

그 아가씨가 다시 만날수 있겠냐고 서울에 가고 싶다하면서 자기집 주소와 이름을 적어줬다.

이름하고 주소를 적어 줬는데 장난을 하는것도 같아 역으로 돌아오자 찢어버렸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않나지만 그때 왜 나에게 접근을 했는지 한참동안 미스테리였다.

 

새벽 1시 6분 특급열차는 정확히 도착을 했다.

서대전을 떠나는 여수행 첫차였다. 

서대전에서 여수 까지는 약 7시간이 소요됐다.기차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가 앉았던 옆자리에는 서울사람이 탔다.서울서 출발했으니 당연하거겠지만

집떠난지 이틀도 채 안됐는데 서교동사는 사람이라니까 반가웠다.

옆사람도 구천동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졸았는데

여행하는 사람이해를 하는지 잘수있도록 말을 중도에서 끈는것 같았다.새벽 6시가 넘어 남원역에 도착했다.

자기가 중간에서 먼저 내리게 됐다고 인사를 하고 내렸다.잠결에도 참 따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스치듯이 지나가는 남원역이지만 전에 막내이모부가 기차를 타고 지나면 광한루가 보인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못찾았다.

남원역은 한식으로 꾸며져 다른곳하고는 좀 다른것 같았다.

차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여러 산과 들을 지나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바다,어렸을적 바다가에서 살았지만 그곳은 도시였다.

바닷가라도 바다가 없었다.내가 찾기전엔.

지금 보이는 새벽바다는 전혀 다른곳에 있는건데 파도가 넘실데고 우리가 항상 동경하는 그런 바다였다.

멀리 보이는 작은 돗단배,커다란 상선 비교적 깨끗한 바다물.

여수역이 가까워 지면서 기차는 해변을 끼고 달렸다.

하지만 역에 도착해선 실망했다.여기가 정말 여수시 역인가 하고.

너무 초라한 모습이고 역앞의 번화한곳이라고는 다 쓰러져가는 서부영화에서나 봤을것 같이 너무 초라했다.

도로는 파헤쳐져 있는곳도 많았고 역앞은 무허가로 보이는 하숙집같은게 너덜너덜하게 많아 보였다.

너무 피곤해서 여인숙이 많이 보이는곳으로 가서 보기에 깨끗한집을 골라 들어갔다.

들어가기전에 어떨지 각오는 했지만 빈대가 득실될것같은 이불이 너무 불안했다.

아침이라 사람들도 안보이고 조용해 그냥 누었다.

눈은 자꾸 감겨지는데 마음의 눈은 계속 떠져 옆으로 1.5M 길이로 2.2M정도 되는 방이었는데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잠도 잠이지만 마음이 불안한게 피곤한 몸뚱이하고 같지가 않아 그냥 나와버렸다.

영양보충한다는 생각으로 비교적 큰 식당엘 들어갔다.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어 큰방을 혼자 차지하고 앉았는데 계획은 오후배로 충무로 향하는것이어서

식당주인에게 배시간을 물었더니 아침8시 밤 7시경에 출발하는것 두번밖에는 없다는거다.

허둥지둥 서둘러 시내버스를 차고 로타리라 불리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수에 와서불과 몇시간이었지만 참 볼것이 없는 동네였다.

서울하고 비교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수라는 이름이 이렇게 초라한 곳이었나 싶을정도로 다른게 없었다.

로타리라는 정류장은 이름이 로타리인지 따로 이름이 있는지는 몰라도 시컴한 블럭으로 화단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선창가로 들어가니 골목같이 방파제를 쌓고 수많은 사람이 장사도 하고 구경도 한다.

그곳을 들어간다는게 비비고 들어간다는 말이 맞을정도로 사람은 많고 비 좁았다.

매표소를 찾아 물어보니 충무로가는 배는 오늘 없다한다.태풍주의보가 내려 배가 출발을 못한다는거다.

그러면서 오후 2시30분에 남해행 배가 있으니 그것을 타고 남해로 가서 자기들,선원들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충무로 가란다.

불편해도 여행을 할때 누구나 고생을 한다며 함께 자고 가라고 한다.

나이가 23-24세 되어보이는 청년하고 40대쯤 되는 아저씨가 자고 가라고 하는데 선듯 대답이 안나왔다.

무주에서 나올때 타고왔던 버스 기사도 그렇게 말을 했는데 여기서 또 그런말을 듣는다.

고마운 생각이 들어 한참을 같이 이야기하다 시내나 한바퀴돌고 오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매표소에서 서성일때 서울에서 온 남녀를 만났다.

그네들도 무주로해서 남해 상지해수욕장을 간다고 했다.

무주에서 일주일있다가 내려와 다시 남해로 간다는 말을 들었을때 내가 너무 서두는것 같았다.

하룻밤도 안자고 달려와서 그런지 그다지 기억에 남는것도 없는데 이곳에서도 도착하자 마자 가는것 부터 알아 보고 있다.

같이 다니는 사람을 보니 혼자라서 좋은점은 출발에 전혀 걸릴게 없는거지만 같이 다닌다는 말에 부럽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오동도를 갔다,아침부터 흐린날씨가 결국은 쏱아 붓고 만다.

제발 비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버스를 타자 바로 내리기 시작해 버스안에서 판쵸를 꺼내 입고 오동도 종점에서 내렸다.

약 300미터정도(?) 보이는 다리가 길게 반쪼각섬인 오동도까지 길게 나 있었다.

파도가 넘실데고 바람은 비와함께 날려버릴듯이 덤볐다.

다리입구에서 입장권을 팔고있어 50원을 주고 표를 끊었지만 이런곳도 돈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은 더 세지고 비는 앞을 가릴 정도로 왔다.

하늘하고 바다가 맞닿고 뿌연 연기로 온통 다 가려버리는것 같은 음침한 느낌까지 주었다.

조금가니까 해녀들이 빗속에서 건져낸 해물을 팔고 있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비때문에 잠시도 서 있을수가 없었다.

종이장 같은 판쵸는 비막이가 아니고 바람에 펄력여 그져 바람따라 소리만 낸다.

한참을 가는데 평생동안 못잊을 우연이 또 생겼다.

준기아저씨를 다리위에서 비가 내리는데 만난거다.

너무 반갑고 기가 막혔다.서울에서 보고 한참이 지났는데 천리먼곳에서 비오는날 다리위에서 만난거다.

미리 이야기지만 아저씨는 간경화를 앓고 있어 나를 만나고 몇달후에 세상을 떴다.겨우 40을 넘겼는데.

아무도 안 만날려고 여수 처가에 와서 은둔을 하고 있었는데 나를 우연히 마지막으로 본거다.

아저씨를 다시 돌려 오동도로 들어갔다.

술집에 자리잡고 앉아 비오는 바다를 보고 있으려니 술을 한잔도 못하는 나도 참 좋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역시 우연이란게 참 재미있는거라고 했던것 같다.

항상 웃는 얼굴로 유모를 간직하고 집안의 불행도 잊어버린듯이 사셨던 분이었다.

광주에 살때  아버지하고 술친구를 하시던 분이라 가끔 뵜었다.

준기아저씨 아주 친한 친구분이 충장로하고 금남로사이에 송남여관을 하셨는데 성함이 백씨라는것 밖에 안떠오른다.

아버지보다는 년하들이었지만 형님동생하면서 자주 어울리시는것 같았다.

그러다 한분한분  이사가고 가끔 한번씩 만나시면 통금까지 술을드시고 여관으로 다 같이 가서 주무시고 

아침이면 속이 쓰리다고 해서 해장국까지 사다 드린 기억 있지만 지금은 다 저 먼 곳으로 가셨는데 지금도 만나고 계시는지.

어저씨하고 의논끝에 엔젤호는 떠날것이라고 해서 엔젤호 정박소로 갔다,

온몸은 비에 다 졎고 걷기도 힘드는데 엔젤호도 떠날것 같지가 않아 또 머리를 쓴다는게 

역으로 가서 진주까지 가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곳에서 버스로 충무에 들어갈려고 생각했다.

젖은 배낭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아저씨가 동행해주셨다.

마침 서울행 특급열차가 있어 순천까지 표를 끊었다.

완행보다는 다섯배가 비쌌지만 가고 싶은 마음에 어쩔수 없었다.

아저씨를 만나고 불과 한두시간이었지만 이곳저곳 같이 다녔다.

나중에 또 후회를 한게 여수에서 하룻밤 자고 출발했어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렇게 나를 끌고 갔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우연중에 가장 큰 우연을 여행 마지막에 만들려고 그랬던것 같다.

헤어지긴 섭섭해도 시간이 되고 기차가 들어오니까 뭔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중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날 비를 너무 많이 맞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나 젊은 나이였지만 좋으신 분이라 분명 좋은데 가셨을거라고 믿는다.

급행열차를 차고 보니 객차엔 나밖에 없었다.

싸게 하고 사람이나 많이 태우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도 없는 기차간에서 젖은옷을 벋고 군복바지로 갈아 입었다.

혹시 몰라 가져온 옷인데 갈아입고 보니 이젠 정말로 거지가 돼 버렸다.

 

순천역은 다른곳,특히 여수역하고는 비교가 안될만큼 깨끗했다.

남쪽의 기차들이 연결되는곳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역앞에서 길다랗게 뻗은 도로가 포장도 깨끗이 잘 되어있고

신흥도시에 온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여수에서 그냥 있을것하는 후회가 또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점심때가 지나 나중에 다시 기차를 타야 하니까 우선 배라도 채우자고 역앞에 있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인듯한 사람이 가게 안쪽에 있는 방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니까 나와서 주문을 받고 음식도 만들었다.

그런데 가져다 준 짜장면은 젓가락을 던져 버리고 싶을 만큼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이 더러웠다.

표현이 없어서 더럽다고 하지만 맛이 짜장이 아니라 된장을 썩어 만든것같은 맛이 났다.

일기에는 된장하고 구정물은 썩어 만든것 같다고 썼는데 그렇지는 않았을거다.

나에게 음식을 주고 남은건 자기가 들고 방에 앉아 먹었다.

먹으면서 나를 흘금거리면서 하는말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짜장면 어디있어 하는데 그냥 나오기도 그렇고

40원이나 줬는데 돈도 아깝고 해서 몇젓가락을 뜨는데 속이 뒤집어질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시골에 가거나 변두리에 있는 중국집에 가면 절대 짜장면은 안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아직도 그때 그맛이 입가를 맴돈다.짜장면 ,된장면,구정면...

내가 남기고 나오니까,사실 거의 다 남겼다.

주인이 그릇을 보더니 말은 안해도 표정이 욕이 입가에서 맴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나는 나데로 재수없다고 나와 버렸지만 주인은 주인데로 재수없는게 들어와서 하곤 욕했을거다.

시간이 남어 바로 같은건물 이층에 있는 다방엘 들어갔다.

손님이 사오명정도 있었는데 내 모습을 보더니 별로 달가워 하질 않는것 같았다.

다방에서 커피를 시켰더니 커피에 파리가 죽어 있었다.

어떻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시간정도 있다가 나왔다.

2시30분에 진주행 기차가 들어와 탔는데 3등열차였다.

열차의자는 조금전에 텄던 서울행 특급하고는 달리 완전고물이고 일제시대부터 쓰던 의자 같았다.

한쪽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할때 보려고 들고온 포켓판 부리바를 거내 들고 읽으려 했는데 한장도 못 넘기고 잠이 들어버렸다.

세시간쯤 잠이 든것 같았는데 눈을 뜨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6시가 넘어 진주에 도착했다.

진주에서 내려 충무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6시50분에 직행이 있단다.

역앞 로타리같은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진주는 다른곳하고 조금 다른점이 있었다.

역앞으로 쭉 뻗은 도로는 집들이 별로 없었다.

다른곳하고는 달리 상점들은 없고 관공서 같은 건물이 드문드문보였다.

허허벌판에 집이 몇채있는것 같이 보였다.

버스를 기달리면서 옆에있는 학생에게 촉석루가 어디있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기가 막힌게 촉석루가 뭐냐고 나에게 묻는다.

고등학생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촉석루를 몰랐다.

그래서 진주에서 안사냐고 물었더니 태어나서 쭉 살고있다고 한다.할말이 없었다.

진주사람이 촉석루를 모른다면 논개가 얼마나 서러울까.

잠시후에 버스가 왔다.버스는 완전 만원,서울의 아침 출근버스보다 더 했다.

비비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섰는데 차장아가씨가 나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만들어 줬다.

아마 내 모습이 무지 피곤하게 보였던가 어떻게 혼자 여행을 하는냐고 물어봤다.

특별한건 없고 그럴수도 있지 않냐고 했더니 남자차장이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 하면서 

도움을 줄려고 하는것 같았다.

진주를 벗어나 비포장을 달리니까 속이 완전 뒤집어져 버렸다.

어느 정류장에 서자 바로 다 토해버렸다.속은 뒤집어 지고 몸은 천근만근 무너져 내렸지만 

버스를 타지 않을수는 없어 또 다시 비포장을 달리는데 죽을맛이라는 말이 있을것도 같았다.

버스가 충무에 가까워져가자 시원한 바람하고 바다냄새가 같이 찻속으로 들어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보니 어둠속에서 충무시의 야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어둠속을 뚫고 달리는데

충무의 야경이 보일정도 돼서야 길은 포장이 되어 있었다.

한두군데 정류장에 섰다가 가는데 어둠속에서도 차장밖으로 바닷가가 보였다.

충무로 향하는 버스에 오를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던건 왜 충무에는 기차가 없냐 였다.

도시에 철길이 없다는게 사는 사람들에게 불편할건데 모르고 사는건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버스가 종점에 다다르니 차에서 호의를 배풀어주던 차장들하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몇정류장 가지 않았는데  이곳이 시내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내렸다,

내리고 보니 중심가에 와 있는것 같았다.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져 조용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몇군데 상점들도 지나면서 들여다 봤지만 별로 특이한건 없었다,

이틀이나 제데로 자지를 못하고 무거운 배낭에 덜덜거리는 차를 왔으니 다리는 다 풀리고 어디든 누울곳을 찾고 싶었다.

바닷가에 왔다고 파도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우선은 잠자리가 급했다.

걸으면서 어디로 들어갈까를 찾아봤는데 비탈길을 오르니 가정집처럼 생긴 여인숙간판이 보였다.

주인 할머니는 몸이 비대했는데 반겨 맞아주고 방을 내줬다.

한평이나 되나 싶은 방에들어가 젖은 물건들을 다 꺼내놓고 보니 다른건 그래도 괜찮은데 지도하고 책이 다 젖어 있었다.

찢어지지않게 잘 펴논다음 두다리와 두팔을 펴봤다.

혹시 자다가 닿아서 찢어질까 걱정이 됐는데 손밖으로 벗어난것 같아 괜찮구나 싶었는데 그데로 잠이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는지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었다.11시간을 눈도 한번 안뜨고 자버렸다.

대충정리를 하고 나오니까 아침햇살이 너무 따뜻했다.

밤에는 모르고 그져 터벅거리면서 올라왔던 곳이지만 아침에 나와보니 담아래로 선창가가 보이고

거제도가 왼편에 오른쪽으로 보이는 작은 섬들은 한려수도의 끝인것 같았다.

저 섬들을 지나지 못하고 어떻게 남해를 여행했다고 할수 있을까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인할머니가 거제도 성포로 가는배가 있다고 했다.

다른곳은 못가봤지만 충무앞바다라도 배를 타고 지나고 싶었다.

우선 남망산에 올라 잠깐이라도 충무를 보고 떠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선창가로 나오니 지척에 있는 남망산공원까지 나룻배가 다녔다.

사공이 노를 젓는데 뱃삯이 10원이었다.

어릴적 목포에 살때 아버지따라 삼학도로 해수욕을 갈려면 선창가에서 나룻배를 타고 삼학도로 갔다.

그때도 배를 타고 잠깐 건너는 바다였지만 그 냄새는 똑 같았다.

약간 시큼한 바다냄새.선창가에서 나는 묘한 쓰레기냄새 같으면서도 퀴퀴한 냄새하고 썩인 묘한 냄새였다.

공원에 오르니 충무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공원위에는 충무공동상이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곳에서도 동상을 많이 봤지만 이곳 총무공 동상은 제자리에 서 있는것 같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곳에는 시인 유치환의 깃발이 돌에 세겨져 있었다.

내려오면서 충무오광대라는 간판을 보고 한집에 들어가니

다섯명의 나이든 광대들이 북을치고 괭가리를 치면서 노래하고 춤을추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오광대인것 같았다.

선창가로 내려와서 정박소에가서 물어보니 12시에 배가 있다고해서 다시 여인숙으로 올라가 배낭을 찾아 배로 향했다.

배로 가는길에 선창가에서 사진이 찍고 싶었다.

카메라가 자동이 됐는데 삼발이 없었다.

젊고 깨끗하게 옷을입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줄수 있냐고 물었다.

행세가 선창가는 지나가지만 흙을 안 묻히고 사는 건달 같았다.

직장을 다니는것 같지는 않지만 기지바지에다 광이나는 구두를 신은게 선창가에서는 전혀 안 어울렸다.

그래도 후줄구래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카메라를 맡길수가 없을것같아 그 사람에게 부탁했는데

나중에 현상을 해보니 이건 완전 바보였다.

구도는 관두고라도 나를 향해 찍어야 하는데 샸터를 누르면서 카메라를 같이 눌렀는지 전혀 엉뚱한곳을 찍어 놨다.

나는 어디있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옷만 멀쩡했지 완전 바보였다.

배에 오르니 이번 여행에서 나를 제일 감탄하게 만들고 많은 기억을 남겨준 거제도로 향했다.

 

 

충무에서 거제로 가는 배위에서..

 

비에 젖은체로...순천역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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