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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기 (4)
11/05/20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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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구천동이란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천동이란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것 같았다.

구천동 종점은 첩첩산중의 허리를 깍아 내린듯한 계곡의 중심으로 깊게 파고 들어가 있었다.

많은 여관이 전망좋은 허리턱에 자리잡고 식당도 몇개가 보였다.

엊저녁이후 계속 굶어 식당에 들어가 허기를 달래고 싶었지만 외모만 봐도 수저조차 들려지지 않을것 같아 그대로 가기로 했다.

같이 내린 세 아가씨는 여관안내인 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에게 이끌려 그데로 가기로 한것 같았다.

한마디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서로 멀거니 쳐다보면서 지나치고 말았다.

 

년전에 내 여동생이 과외를 한적이 있었다.

S대를 다닌다는 여학생이 와서 가르쳤는데 동생친구하고 셋이서 공부를 하는걸 몇번 봤다.

어느날인가 집에 오는데 과외선생하고 동생친구가 공부를 끝내고 가는지 길에서 마주쳤다.

그데로 지나기도 머해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헌데 반응이 정말 싸가지였다.

어머머 별꼴이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썩은 미소를 짓는데

아! 내가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긴걸로 봐선 절대 남자친구도 없게 생겼는데 하는 짓도 생긴것 하고 똑 같았다.

말은 나오면 다시는 들여 넣을수가 없는 물건이다.

취소할수는 더우기 없고,꼼짝없이 바보 바보천치가 된거다.

그 뒤로 부터는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다.

인사를 하기전에  과연 저 여자가 내 인사를 받을건가 아니면 그때 그 싸가지 없는 XX이 될건가하구.

역시 나쁜 버릇은 빨리 몸에 휘 감긴다.그리고 딱 붙어 니 발빼라고 버틴다.

그 여학생들에게도 아마 그런 나쁜 기억이 있어 말을 못했던것같다.

물론 지금이라면 싸가지가 있던 없던 일단 간을 볼건데.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라면 한봉지를 사가지고 올라갔다.

입장료를 80원이나 받았다.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국립공원이라고 꼭 돈을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을 안했지만 일단은 80원이 아까웠다.

여러군데를 돌아 다니다 보니까 관리비가 엄청날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비파담,금포탄,수없이 이름이 많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인월담을 지나서 계속 올라가니까 송어양식장이 있었다,

또 특이하게 조랑말이 끄는 마차가 화려하게 단장을 하고 손님을 가달리고 있었다.

송어양식장에 들어가 봤지만 특별한건아니고 그냥 양어장 같았다,

돈내고 즉석회를 맛볼수있다는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것 같았다.

다시올라가 비파담이라는 케른을 지나니 계곡을 접하는 샛길이 나왔다.

그 곳은 바위로 형성된 길이었다.바위가 끊어진 작은절벽 허리에 구름다리를 벽으로 부착해놨다.

그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계곡물로 커피까지 타서 마셨다.

역시 라면은 냄비 뚜겅에 후후 불어서 먹어야 맛이 최고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위에서 목욕한물로 라면에 커피까지 마시고 했다.

목욕한물로 끼니를 때웠다고 기분이 께름직했지만 이미 들어간걸 꺼낼수도 없고 배만 한번 쓱 쓰다듬고 말았다.

구름다리를 지나서 백연사 앞으로 가니 거기서도 입장료를 받았다.

헌데 놀라운것은 덕유산 등산로가 절 입구로 들어가야만 한다는것이다.

어쩔수없이 또 50원을 입장료로 내고 절 옆으로 나있는 샛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가 곤란하거나 필요하다면 몇끼를 굶는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그런적도 몇번 있었다.

헌데 지금은 달랐다. 1594m,평소에도 왠만한 다짐으로 오르기 힘든 코스인데

전날밤과 아침을 꼬박 차로 온데다 수면부족까지 겹쳐 체력이 말이 아니었다.

20M정도 올라가면 그만큼 주저앉아 쉬어야 할정도로 힘이들고 다시 일어 설려면 매고있는 배낭은 엄청나게 무겁고

어깨는 까지고 땀은 온몸을 적시고 다리도 계속 후들거리고 머리는 뜨거운 했볕에 벋겨질것 같고

혼자서  투덜투덜 푸념을하는데 도저히 힘이 들어 올라갈것 같지가 않았다.

생각으로 1200M정도 오르지 않았나 하는 지점에서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산중에

혼자라는 공포심과 또 바람소리는 흡사 맹수의 울음소리 처럼 들렸다.

한발한발이 짧아지고 주위를 경계하니 더 더디고 결국 하산하기로 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소리가 생각이 난다.정말 소름이 끼쳤다.

물론 여럿이 있거나 뱃속이라도 든든했다면 객기를 부려서라도 올랐을 건데 지금 생각해도 등허리가 오싹 할 정도로 무서웠다.

깊은 산중에 혼자 가는데 자꾸 우는소리 짓는소리가 들린다면 누군들 마찬가지일거다.

바람소리가 산속에서 그것도 산위에서 나무를 스치며 내는 소리는 실감나게 무서웠다.

내려오면서 주막집이 있길래 물을 한잔 청했다.

계곡에서 긴 호스를 연결해 받는 물인데 그 물맛이 기가 막혔다.

얼음물인듯 그렇게 쉬원하고 쥬스인들 이런 맛을 낼수있을까 하고 일기에 적었다.

설탕도 감미료도 필요 없다 혀끝이 물려지며 이빨이 시려울정도였다.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2시30분정도가 됐었다.4시간 정도에 상봉까지는 못 가봤지만 왠만한 구경은 다한 셈이다.

여기서 욕심이 발동했다.이길로 남원으로 가면 경비도 적게들고 여행시간도 단축할수 있을것 같았다.

3시30분에 떠나는 막차를 타고 구천동을 나오면서도 하룻밤이라도 지내고 나올걸하는 후회도 했었다.

5시에 무주에 도착하니 남원행 버스는 이미 끊어지고 나가는 차라고는 대전행 직행버스밖에 없었다.

그것마져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내가 허둥지둥 결정을 못하고 왔다갔다 하니까 나를 구천동에서 태우고 온 버스기사가 나에게 자고 내일 가란다.

내가 답답하게 보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도움을 줄려고 그랬는지 자기가 자는 숙소에서 자고 아침에 떠나란다.

고맙기는 했는데 나는 자리가 바뀌면 잘 자질 못한다, 물론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자리탓을 하면 안되지만

미리 불편할것부터 생각이 드니 정중히 거절을 하고 말았다.

구천동에서 하룻 밤을 자고 나올걸하고 후회를 또 했지만

다시 구천동으로 돌아갈 차도 없고 그렇다고 무주에서 머물를수도 없어 서둘러 대전행 직행버스에 올라탔다.

 

미국에 온게 1981년 12월 16일이다.

그때도 너무 서둘러 비행기를 탔다는게 살아오면서 뒤 돌아 볼때마다 후회가 많이 됐다.

미국이라는곳을 더 알아보고 비행기를 탔더라면 처음부터 단추를 잘 꿰었을것하는 후회다.

처음에 LA에 도착했다. KAL을 타고와 내리니 오전인지 오후인지 정오쯤 된것 같았다.

입국수속을 하는데 영사가 돈이 얼마 있냐고 물어봤다.순간 아! 잘못됐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려는데 어머니가 다니던 양장점 주인아주머니가 보따리를 하나 들고와

센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생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하면서

나에게 주의를 주기를 미국에 가면 절대 돈이 $5000이상있다고 말하지 마란다.

미국사람이 알면 세금으로 다 뺏어간다고.

그래서 비행기에서 입국사증을 쓰면서 돈이 얼마있냐고 물어보는란에 $5000이라고 썼던것 같다.

유학생은 비자를 받을때 재정보증서를 비자에 스테풀로 같이 묶어주는데 봉투에 들어있어 그게 먼지를 몰랐다.

열어보지 말라고 해서 안봤는데 그속엔 내가 은행에서 만들었던 재정보증서가 들어있덨던거다.

거기엔 내가 미화로 $13000을 가지고 미국을 간다고 써있었는데 그걸 $5000에 쓱싹 할려고 했으니

영사가 물어보는게 당연했다.

그때도 순발력은 엄청 빨라 눈치로 $13000있다고 했다.그랬더니 왜 여긴 $5000로 써있냐고 물어 봤다.

사실 그때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한마디 I don't know 하면 데게는 봐줬다.

나도 그랬다 그랬더니 고개를 흔들더니 가라고 한다.

미국사람이라는 우월감에 동양에서온 촌넘이 뭘 모르는구나 한걸거다.

미국에 들어오자 말자 다 털릴뻔한것 같아 가슴을 쓰러내리고 밖으로 나와 미국 냄새를 처음 맡아봤다.

버터냄새가 났다.

그때 이후론 한번도 그런 냄새를 맡아본적이 없지만 첫 냄새는 버터였다.

처음 LA에 갔을때 매제친구 전화번호를 받아 가지고 갔는데 본적도 없는 사람이라 전화번호만 들고서 전화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뒤에 그때 전화라도 한번 해볼걸,그랬으면 또 어찌됐을지도 몰랐고

그때 그곳에서 주저 앉아버렸으면 훨씬 빨리 자리를 잡았을걸하는 후회를 나중에 두고두고 했던거다,

몇시간후에 비행기를 타고 센프란시스코로 향했다.

그곳엔 아버지 친구분이 일년전에 이민을 와서 한번 만나 보겠다는생각에 그곳으로 갔다.

센프란시스코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밤 8시쯤 됐는데 나와서 반길줄 알았던 아저씨는 안보였다.

공항은 엄청나게 큰것같았고 그때까지 한국공항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한 한시간쯤 기달리는데 이민가방이 두개에 작은 손가방 하나,그리고 전해주라는 보따리가 하나

내가 옮길수가 없을 만큼 크고 많은 보따리를 들고 서 있는데 끝내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동양사람같이 생긴 젊은 남자가 나에게 오더니 왜 여기 있냐고 묻는거다

그래서 아저씨를 가다린다고 했더니 얼마나 기달렸냐고 다시 묻는다.

한 한시간쯤 된다고 했더니 내가방을 다짜고짜로 들더니 여기있으면 안된다고 한다 .

여기는 무서운데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안오면 안오는거라고 내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어딜가나 봤더니 택시타는곳으로 가서 나더러 여기서 서 있으면 위험하니까 빨리 여길 떠나라는거다.

엉겹길에 그말이 맞는것도 같아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택시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타일렌드라고 했던것 같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누가 나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이친구가 눈치채고

같은 동양사람이라고 도와준게 아닌가 싶었다.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스치는 인연이 아니고 나를 구해준 구세주였을지도 모른다.

택시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니 고속도로가 넓고 한국에서는 보지못한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더우기 내가 탄 택시도 엄청컸다.그때는 왠만하면 8기통차가 택시를 했으니 얼마나 컸겠는가.

고소도로 옆에 세워진 간판들을 보니까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모습들이었다.

운전기사가 나에게 다운타운 어디로 가는가 묻는다.그래서 아저씨 주소를 줄까 하다가 생각에 아저씨가 나오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가 싶어

아무 호텔로 가자고 했다.시내에 있는 호텔에 데려다줘서 기사보고 기다리라고하고 로비에가서 빈방있냐니까 있다는거다 .

키가 아주크고 늘씬한 까만 피부를 가진 여자였는데 알았다고 돌아서는 나에게 잠깐 하더니 얼마인줄 아느냐고 묻는거다

당연히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비싸다면서 하룻밤에 $80이란다.그때 한국환률이 아마 800원정도 했을거다.

그러면 64000원,웬만한 사람 반달치 봉급이니 그냥 미안하다고 나왔다.

기사가 나에게 미야꼬호텔을 아냐고 묻는다.알턱은 없었지만 아는척 했더니 그리로 간단다.

미야꼬호텔에가서 먼저 얼마냐고 했더니 여기도 $80이란다 그래서 삼일만 있겠다고 $240을 줬더니 선금은 안받는다나..

왜 안받냐고 따져가면서 현금으로 다줬다.성질이 급한건 한국사람이 맞는것 같다.

그리곤 택시에서 짐을 내리는데 마침 벨보이가 다른사람하고 올라가버려 나혼자 가방네개를 에레베이터에 실고 올라갔다. 

낑낑데면서 가방을 들고 올라가 방을 보니까 아주 깨끗하고 컸다. 한국에서 호텔을 여러번 가봤지만 그래도 미국호텔이

방도크고 짜임새가 더 있다는생각을 들었다.비행기를 갈아타고 마중나올줄 알았던 아저씨는 안보이고 혼자서 여기까지 오고보니

아직 밥도 한끼 못먹었다.저녁 9시가 다됐는데 사실 배가 고픈줄도 몰랐다.

너무 경황이 없이 다니다 보니 배고픈건 아에 잊어버렸던것 같다.방에 있는 메뉴를 보니 비싼건 아니지만

선뜻 시키기도 뭐하고 또 방으로 배달이 돼냐고 물을수도 없고 해서 밖으로 나가볼려고 옷을 갈아입는데 뭔가 허전했다.

윗저고리 안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이 없다.그속엔 조금전에 방값을 지불하고도 $3000이넘는 현금이 있었는데 지갑채 없는거다.

가방을 다 털고 옷을 다뒤집고 난리를 쳤는데도 지갑은 없었다.

아마 로비에 놔둔것 같다는생각이 들어 한걸음에 로비로 갔더니 백인친구가 무슨소릴 하느냐는듯이 쳐다본다.

내가 조금전에 너에게 돈을 지불하고 지갑을 여기 두고 간것같다고 해도 실실 웃기만하지 그져 모르겠단다.

혹시 몰라 문 앞으로가서 가방을 들때 떨어졌나 바닥을 안으로 밖으로 봐도 없었다.

백인친구가 나를 부르더니 지갑이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다.붉은색을 띠는 장어가죽으로 만든 긴지갑이라고 했다.

내가 미국에 왔을때 첫날이었지만 언어로 전혀 불편한게 없었다.

영어를 잘했을리 없었겠지만 학교에서 배우고 밖에서도 대화를 많이 했었다.

무역을 한다고 만나던 상대가 일본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이 영어를 썩 잘해 대화하는데 서로 불편함이 없었다.

전에 외국사람하고 대화를 많이 해본 경험이 전혀 더듬거리지를 않았던것 같다.

내 말을 듣더니 혹시 모르니 지하에 있는 식당에 가보란다.그래서 또 식당으로 한걸음에 뛰어갔다.

일본식 식당이었는데 주인인지 케쉬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갑을 찾는다니까 캐쉬어옆에 있던 내지갑을 보여 주면서 이거냐고 묻는다.

맞다,맞다고 하면서 어디서 주웠냐니까 저쪽에 앉아있는 신사들이 주워서 여기에 맡겼단다.

너무 고마워하니까 가서 인사 하라고 한다 .네사람들을 다 기억 못하지만 그중 한분은 암스트롱대학 교수라고 했다

내가 오늘 처음 미국으로 공부하러 왔다고 하니까 명함을 주면서 자기학교에 관심이 있으면 연락을 하란다.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자 못하는데 일본여자가 나에게 뭐가 들어있냐고 묻는다.

그때서야 내가 돈이 많이 들어있다고 했던것 같다.

30년전에 그렇게 많은 현금을 지갑에 담어 다닌것은 상상도 못했을거고 또 지감을 주웠는데 체면에 열어보기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열어 봤다면 그냥 줬을까 하는생각도 해봤지만 미국의 첫날은 여러가지로 좋은점만 봤었다.

일본여자가 네사람 저녁식사값을 내주라고 한다

얼마냐니까 $50이란다.두말도 안하고 내주고 팁도 줬던것 같다.

방으로 돌아오니 배고픈것은 다 잊어버리고 혼이 다 달아나 앉아있다가 미국의 첫 새벽이 맞았다. 

새벽에 아침을 가져왔는데 커피한주전자하고 계란 햄 토스트 그리고 센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라는 신문을 가져다 줬는데

신문이 아니고 무슨 벽지를 한보따리 가져다준것처럼 엄청 페이지도 많고 뭉텅이로 몇개가 묶여있는데 한국에서 두장짜리 신문을 보다가

이걸 보니까 보기도 전에 한숨부터 나왔다 이걸 어찌 다 보나하고.아침을 먹으면서 커피 한주전자를 다 마셨다.

신문도 정독은 안했지만 대충 그림만 보고 넘겼는데도 아침 10시정도가 된것 같았다.

그날도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야지 하면서도 왜 안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밖으로 나와 혹시 길을 잃을까봐 큰 길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걷다보니 

마켙스트릿이 나왔는데 그 길엔  극장이 많았다. 포스터를 보니까 남녀가 관계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내용들이라 들어가보고 싶었다. 극장 포스터를보고 또 다음 극장이 궁금해 걷다보니까

길이 끝나 들어가는건 포기했다. 돌아 갈길을 찾아 갔는데 몇일후에 보니 그 근처에 아저씨가사는 아파트가 있었다.

왜 전화를 안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저씨입장을 생각해서 그랬던것 같다.

한국에서 부탁받은 물건을 전해주려고 전화를 했더니 저녁 7시쯤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호텔에서 기다리는데

여자 두분이 왔다. 고맙다면서 어젯밤 이야기를 듣더니 큰일날뻔 했다며 자기집으로 가잔다.

왜 돈을 그렇게 많이 주고 자냐는데 이미 3일치를 줬다니까 하루치는 돌려받을수 있다고 내가방을 들고 나서니 

엉겹결에 따라 나섰다. 로비에서 어제는 돈을 받으라고 사정하고 오늘은 돌려달라고 사정하고 .

차를타고 간곳이 베이브릿지를 건너 한시간이상을 간것 같았다.Walnut Creek 인지 Concord인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안난다.

그곳에서 두밤을 보내고 내가 내슈빌로 가야 하니까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고해 가는길에 아저씨집에 잠깐가면 안되겠냐고 부탁을하고

아저씨께 전화를 했더니 아저씨는 삼일을 전화만 바라보고 계셨다고 왜 전화를 안했냐고 나무라신다.

나도 아저씨가 공항에 안 나오셔 무슨 사정이 있는가하고 전화를 안드렸다 했더니 공항에 갈려고 했는데

무슨비행기로 오는지를 몰라 못갔다는거다.몇시에 도착한다고만 편지에 썼으니 그 큰 공항에서 어떻게 나를 찾을수가 있었을까 싶어

전화못드린게 죄송했다.

아저씨를 만나지 10여분만에 빨리가자고 해서 헤어지고 말았다.

나중에 내가 아저씨에게 전화를 먼저 안한것도 너무 성급한 판단으로 스스로 고생길을 길게 한것 같았다.

미국에 와서 비슷한사람,또 아는사람에게 이것저것 물어야 하는데 이미 미국온지 삼십년이 다되고 생활 안정되고 

미국사람처럼 사는 분들에게 무슨 정보,이민정보를 들을수 있었겠는가.

몇달뒤에 다시 센프란시스코에서 와서 아저씨를 다시 만나보고 또 나에게 고맙게 해준 분도 다시 만나보고 했더니 확연히 알수 있었다.

이삼일 그 댁에 머물면서 몇사람을 만났는데도 전혀 나같은 사람이 앞으로 미국에서 어떻게 살어야하는지는 도움이 안되고

다만 미국에 오래살면 이렇게 살수도 있구나하는것만 봤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우니까 집집마다 트리 장식하고 한 집은 갔더니 그 아주머니 남편은 미국사람이었다.

남편하고 벽난로 앞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느낌은 영화에서 봤던 미국집같은 분위기였다.

다시 공항으로 가보니 정말 비행기회사가 많았다.내슈빌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는데 불과 4일이었지만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기억 나는건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전부 담배를 피웠다.마침 옆에 백인 아주머니가 앉았는데 담배를 꺼내 물길래

내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줬다.그랬더니 고맘다고 인사를 하는데 영화에서 본데로 해본거다.

지금은 비행기에서 담배를 꺼내 물면 난리가 나겠지만 그때는 비행기안이 뽀연 연기로 가득찰정도로 담배를 피웠다.

내슈빌에 도착하니 시차때문에 밤 8시쯤 됐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본 내슈빌의 야경은 정말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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