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jeoo
sejeoo(sejeoo)
New Jersey 블로거

Blog Open 01.17.2011

전체     897363
오늘방문     28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84 명
  달력
 
오래전 여행기 (2)
10/13/2013 12:57
조회  1367   |  추천   2   |  스크랩   0
IP 67.xx.xx.116

 

 

달리는 기차속 7월의 야간열차는 말 그데로 열기를 뿜는 찜통이었다.


한사람 한사람 뿜어내는 열기는 이리치고 저리치면서 혼잡한 사람들 가운데  숨쉬기조차 힘들다.


차는 계속 연착을 하고 부러 그러는지 섰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끌더니만  달리기 시작했다.


한시간 두시간 달리니 열차안도 어지간이 열기가 식고 목적지에 가까워져 가는것 같았다.


어느역인가 기차가 멈추자 젊은사람들이 시원한 공기를 마시려는지 한꺼번에 다 내린다.


또 한번의 내리고 타는 혼잡함이 지나자 이번엔 유행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술을 마시면서 3류유행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차가 대전을 지나서 경부선을 타자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올라서보는 경부선이라서 그럴까....


 


초등학교 6학년때 같은 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추풍령을 기차를 타고 지나는데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꽃이 손에 잡혔다는...


그 친구는 중학시험에 떨어지고 재수를 시키니까 가라는 학원은 안가고 등록금을 들고 집을 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곤 했다.


일종의 가출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춘기에는 그런마음 먹기가 쉬웠던것 같다.


그런 그 친구가 어느날 우리집을 찾어왔다.


같이 제주도를 가잔다.가서 한라산도 올라가고 제주도 구경도 하자는거다.


나도 머리가 커지면서 내 마음속엔 항상 집을 떠나고 싶은 망상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데


이런기회를 놓칠순 없지 하곤 집에서 돈을 슬쩍해서 같이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들이 철이 없고 즉흥적이라는걸 내 자신이 경험한것같다.


한번만 더 생각해 봤으면 절대 안 따라 나섯을것을 그리 쉽게 엄마 가방에서 돈을 슬쩍 해가지고


몇푼도 안되는것을 가지고 따라 나섰으니.. 


둘이서 광주역에서 기차를 탔는지 버스를 탓는지 기억이 안난다.


아마 기차를 탔을거다. 목포로 내려가서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등산 장비라고 몇가지를 샀다.


아마 그것 가지고 한라산에 올라 하룻밤을 잤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난다.


조그만 가방에다 노끈을 좀 샀던것 같다.


영화에서 보니  산을 올라가는데 노끈을 많이 썼던것 같으니까 샀던것 같다.


밤이 됐는데 내가 태어난 곳이고 어렸을때 살았던 곳이라도 갈데가 없었다.


역에서도 잘수가 없고 그땐 통행금지가 아주 심할때라 밤에 애들 둘이 다니기도 위험했다.


어떻게 해서 여인숙에 들어갔는데 잠도 제데로 못잤던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출을 하고 잠도 여인숙에서 친구하고 둘이 누워 자니 잠이 올리가 없었을거다.


새벽부터 눈을 뜨고 있는데 앞 날이 캄캄하고 집 걱정도 되고 제주도는 이미 마음속에서 없어져버렸다.


그때가 여름이라 방 뒤창문을 열어 놓고 잤는데 뒤로 가정집이 있었다.


창밖으로 보니 집에서 남자가 나오더니 마당을 가로질러 와 우리방 창문쪽에 데고 오줌을 누는거다.


자기집 마당에서 벽으로 누는건데  우리가 바로 앞 창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가 14세였는데 신기하게도 그것이 시컴하고 대가리도 엄청 크고 오줌발도 굵고...탈탈 터는데 아주 컷었다.


몇십년이 지났는데 그때 목포에서의 하루 기억이 그 남자 그것밖에 기억에 없다.


어느순간을 못 잊는다고 하는데 하필 그게 지금까지 생각속에 있으니..


아침에 여인숙을 나와서 친구에게 못가겠다고 우기고 다시 광주로 돌아갔다.


어떻게 다시 돌아 갔는지 기억은 없지만 일부러 집 주위에서 머뭇거리다 잡혀 들어갔다.


우리집에서 일하던 이 리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태어나 이름이 특이했다.


우리 어머니가 돈을 많이 가지고 여기저기 빌려주고 계도 크게해서 비서처럼 일을 했던 사람이다.


나하곤 친해서 일부러 그 사람이 다니는 길목에서 딴청을 부리고 있다가 허릿춤을 잡혔다.


거기에 친구까지 붙들리게해서 집으로 끌려들어갔는데  잔머리를 잘 쓴것 같았다.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자기가 잡은것 처럼 큰소리를 치면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친구는 부모에게 연락해서 어머니가 오셨다.참 인테리로 생기셨다.


안경도 양쪽 끝이 뾰쪽한걸 쓰고 계셨는데 어린 내가 봐도 인테리같았다.


그 친구 아버님이 교육감인가 교육청에서 일한다는걸 들은적이 있다.


친구가 집에서 금반지같은걸 가지고 가출을 했는데 그걸 팔때는 금은방에 전화를 해서


여기가 교육청인데 우리 사환에게 금반지를 보낼테니까 보고 팔아달라고 했단다.


그럼 꼬마가 가도 의심없이 사주곤 했다니 그 친구도 상당히 잔머리꾼이었던것 같다.


친구 어머님은 우리 어머니에게 되게 딱였다 .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당신아들이 순진한 우리아들 꼬여서 그런짓을 시켰냐고.


사실은 내가 좋아서 따라간건데.


한참을 혼이나고 두 모자가 백배 사죄하고 돌아갔는데 그 뒤로는 연락도 안하고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일년쯤 지나 충장로에서 자기 어머니하고 같이 가는 친구를 봤다.


모자를 썼는데 자기가 원하는 학교(동중)를 들어간것 같았다.


나를 보고도 별로 반가워 하지도 않고 흘낏 보고 아는척도 안하고 그냥 가는데 그 기분도 묘하게 안 좋았다.


나쁜짓을 가르치고 자기는 이제 안그런다고 못된 짓하게 만든 친구를 못본척 한걸 보니까


어린 마음에도 별로 좋은 친구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배운 솜씨로 한번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죄의식도 없이 했다.


여러번 집을 나가고 돌아오고 하다가 공부는 멀어지고 또 또래 친구들하고도 멀어지고


그러다 살아가는 싸이클이 남다르게 변해 버렸다.


그때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사람이 되야 하는데 학교에선 문제아로 밖에선 건달 비슷한 똘만이로


결국 학교도 그만두고 혼자서 2년을 보냈다.


아버지가 광주에 있다가는 무슨짓을 할지 모르겠다고 나만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아버지하고 둘이서 거의 2년을 살다가 식구가 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합쳤는데


그 2년이 나를 많이 바꿨다.음악을 좋아하게 돼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고 또 공부는 해야 하는걸로 생각을 바꿔줬다.


깡패가 되버린 친구들을 나중에 보니까 아버지가 그때 나를 서울로 안 데리고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친구를 원망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친구가 그때 오지 않았다면


아마 평범한 착한 아이로 커서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됐을거라 가끔 생각해본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착한 아이였다.


공부를 특별나게 잘하진 못했지만 학교에서 반장도 계속하고 선생님들에게 이쁨받던 아이였다.


태어날때 가지고 태어나는게 있다는 말이 맞는지 그렇게 자리를 못 잡고 흔들렸어도 어느 때가 되니까


보통사람처럼 학교도 다시 가고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


그 친구 이름도 아직 기억 하고 있다. 성씨가 공씨였다.이름은 안쓰지만 만약에 그 친구가 이글을 본다면 알아보겠지.


다음에 보면 어떤 상황이드라도 못 본척 한다는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꼭 말해 주고 싶다.


 


경부선을 탔다해도 12시가 넘은 밤중에 보이는건 아무겄도 없고 가끔 서는 역엔 가로등에 


악착같이 달라붙는 나방하고 날파리만 보일뿐이였다.


내가 가고자 하는곳은 영동이었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무주 구천동을 들어갈거다.그곳이 이번 여행의 제일 첫 목적지였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오래전 여행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