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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여행기 (1)
10/13/201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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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게 있었다.


어렸을적 꿈이 무전여행이었다.그것도 세계일주를 하는게 꿈이었다.


김찬삼씨의 세계무전여행책을 얼마나 많이 보고 또 보고 했는지 나중엔 페이지를 외울정도로 숙독을 했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 경험했듯이 외국에 나간다는게 얼마나 어려웠고 밖에 다녀왔다면 다시한번 볼정도로


힘들게 빗장을 꼭꼭 닫아 버렸던 시대였다.


요즈음은 아침에 외국에 갔다 저녁엔 집에 돌아와서 자는 세상으로 바꿨으니 그 시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상할지도 모른다.


10년전에 중국 청도를 간적이 있는데 골프장엔 전부 한국사람이 플레이를 하고 중국사람은 일하는 사람밖엔 안보였다.


그늘집은 없었고 식당에 갔더니 메뉴도 한국음식이 대부분이었다. 


청도만이 아니고 유럽엘 가도 그렇고 남미를 가도 그랬다.


미국에 와서도 느꼈던게 삼십년전 록키산맥 언저리를 운전하는데


아주 작은 동네에 한국사람이 살았다.정말 신기했다. 그런데 이젠 세계 어딜가도 한국사람이 없는곳은 없다.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는 얼마나 오지였나,학교에서 단체로 몬도가네라는 영화를 보러가면 아프리카는 식인종이 드글데는곳으로만 알았는데


그곳에서 사진현상하는분이 현금이 너무 많아 무장경호까지 두고 한다는 말을 듣고도 세삼스럽지가 않았다.


왜냐면 한국사람이니까 


그게 10여년전이었으니 지금은 더할까도 싶다.


그렇게 변한 세월에 다시 40여년전에 썼던 일기를 들고 기억을 더듬으면


나는 그래도 생각했던걸 썼다는 기분이 들겠지만 다른사람이 본다면 얼마나 한심 내지는 답답할건가도 생각해봤다.


또 다른면은 그때 그시절을 한번 돌아 본다는것도 재미있을것 같다.


남에게 보여 주자고 쓰는건 아니니까 생각 나는데로 써볼까한다.


기행문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여행담을 오래전 일기노트에 습작처럼 써놨었다. 


그렇지만 벌써 40년이 다 된거라 기억이 다시 날련지 모르겠다.


그래도 꼭 써봐야지하는 생각에 여러번 시도는 했었는데 아직까지도 게으름이 먼저다.


 


그러니까 참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방학을 기달리고 조금씩 모았던 돈은 20,000원 남짓이고...


이 돈을 만들려고 버스 안타고 음악다방도 안가고 학교 매점도 안가고 거의 한학기를 모은 돈이다.


요즘같으면 알바 서너시간이면 받을수 있는 이만원이지만


그때는 알바도 없고 짜장면 한그릇에 40원,50원 할때니까 작은돈은 아니었다.


다행히 집이 홍대앞 연남동이라 학교는 걸어서 다녔고 홍대에서 청기와주유소를 지날때까지 음악다방이 많았다.


친구들은 분식집으로 다방으로 몰려 들어가는데 나는 참았다.


부모님한테 손벌리면 간단하게 얻을수 있는 돈이었지만 내 스스로 모아서 가고 싶었다.


내기억에 버스가 50원인가 60원할때였다,학생은 허접한 종이로 만든 학생표를 사면 더 싸다.


종로에 나갈려면 지하철 일호선 공사를 한다고 차는 서대문고가에서 부터 꼼짝안하고


종로삼가까지 갈려면 한시간 한시간반이 소요 됐었다.그때 차가 없었다.


한쪽 모퉁이에 서서 손가락으로 세도 한참을 셀수 있을만큼 드물었는데 한시간이 넘는다면 그때로서는 뉴스거리가 충분했다.  


그런길을 걷기도 하면서 모은게 이만원이었다.


이걸가지고 갈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밤마다 지도를 놓고 이리저리 줄을 그어 봤다.


그때도 기차하고 고속버스가 왠만한곳은 다 갔다 그렇기에 대충 잡아도 차비는 넉넉할것 같았는데


잠은 어디서 자고 밥은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이리저리 줄을 긋고 지우고 하다 잠이 들곤 했다.


드디어 기말시험이 끝나고 시장에서 소고기를 조금사다 장조림을 만들었다.


밑반찬으로 가져 갈려고...남자가 그런생각을 다하고 나중에도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왔다.


물론 다 먹지도 못하고 몇일 지고다니다 버렸다.하얗게 백태가 끼니까 도저히 먹을수가 없었다.


아무리 간장에 조린거라도 그 더운 7월에 지고 다닌다닌게 우스운일이었다.


그리곤 라면 몇개챙기고 옷은 한두벌...양말하고 내복한두개.기억이 안난다.


라면 끓이게 냄비같은건 가져간것 같다.무주구천동에서 라면을 끓여먹었으니까.


허리에는 군용벨트에 군용 수통을 차고 카메라는 이모집에서 빌려오고 베낭은 글쎄....


준비가 다 돼서 떠나는데 골목까지 따라나온 할머니가 어디가노? 조심해라하면서 다둑거려 주신것도 아스라이 기억이 난다.


내 여동생도 따라 나왔던것 같다.


그때가 1975년 7월14일 오후 늦게였다.


야간열차를 타야 돈이 절약됐기에.


 


돌아보니 이젯것 살아있다는것도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고맙다고 해야하나 정말 긴 세월을 징징거리면서 살아왔다.


세계일주는 못했지만 사는곳은 그때와는 다르게 지구 반대쪽에 있으니 얼추 반당은 한것같다.


꿈꾸던 미국생활이 생각했던것 같지 않았고 가끔 나가본 외국도 별반 특이한건 없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 주로 학생들이 배낭여행을 다닌다는걸 가끔 접한다.


너무 부럽다.어떤 제재도 안받고 자유스럽게 다닐수있다는게 우리세대에선 상상초차도 안됐다.


앞으로 쓰는 글에도 자주 언급하겠지만 그땐 통행금지라는게 있었다.


참 얼마나 답답한 세월을 살았는지 지금의 젊은사람들은 상상도 못할거다.


일년에 한번 크리스마스이브엔 어떻하든 집에 안들어 갈려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많다.


고삼때인것 같다.명동에있는 심지다방이란곳에서 친구들하고 밤늦게까지 통금해제를 즐기고 있었는데 12시가 넘어 버스가 끊어졌다.


명동에서 종로로 나와 신촌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데 버스는 끊기고 택시탈돈은 없고 걸어서 서대문 아현동 이대 신촌로타리를 지나


청기와주유소뒤 성산동에있는 집까지 오니 새벽 세시였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던것 같다 평소에는 상상도 못할일을 한거니까.


그런 통금이 없는날을 제외하면 잠이 안와도 12시면 누워자는 시늉이라도 해야했다.들을것도 볼것도 12시면 땡이니까.


지금 쓰는건 그냥 서두, 시작해보려는 서두이다.


또 지나고 보면 이젠 영영 기억에서 사라져 버릴것 같다.


다행이 그때는 일기를 쓰던 착한 아이여서 아직것 그 일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걸 그냥 베끼기엔 너무 거시기하다.


살이 붙어질지는 몰라도 그냥 한번 꺼내보겠다.


시작을 하면 곧장 가볼 작정이다.


쓰다가 다른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돌아와 살을 붙이고....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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