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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헌터마운틴 겨울 조난 1
01/20/202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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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15분. 밖은 매섭게 춥다. 미국 북동부 햄프셔 쪽에서 불어오는 눈바람은 오랫만에 두텁게 껴 입은 오리털 방한복 사이로 한기를 들이 민다. 이 시간에 조용히 밖으로 나오며, 2층 안방에서 자고 있는 아내 쪽을 바라봤다. 움직여야 되, 나가야 되.. 아내는 운동을 무척 싫어하고 밖에 나가는 것을 진저리 친다. 나는 아내의 그런 모습에 지금 응수하는 것이다. 나도 이런 날씨에 이 시간에 밖에 나가는 것이 미친짓 같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아내의 안일함과 게으름에 복수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지난 주에 새로 구입 한 혼다 파일럿 EX-L. 내가 꿈꾸던 차를 타고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단지 지금 이시간에 헌터산 중턱까지 다녀 오는데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 무끈한 불안함으로 남아있다. 눈은 삼일전까지만 오고 그 이후엔 없었으니, 지역당국에서 다 치우지 않았겠는가 생각하면서도, 사실 그 산에 가본 적은 없었다.  우리가족이 뉴저지주에서 올 봄에 이 곳으로  이사와서 맞는 처음의 겨울이라, 봄과 여름의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차지만 청량한 산세는 좋았으나, 가을과 겨울은 처음 맞는 것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헌터산은 크고 웅장한 스키장으로 유명하고 스키족을 위한 호텔이 있으니, 최소한 그 입구 주변은 다 치워 놓았겠지 하면서 차에 올랐다.  기분좋은 새 차의 냄새를 맡으며, 시동 버튼을 눌렀다. 힘차게 스타트한다. 집 차고를 돌아나와 산쪽 도로 쪽으로 향해가다 고속도로 진입하여 15 여 마일을 달리는 동안, 차들이 별로 없다.  헌터산 쪽 엑시트로 빠져 나와 로컬길을 조용히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가 하얀데 눈이 쌓인것이지만 도로 색깔이 하얀지 구별이 안갈 정도록 차가 조용히 잘 나갔다. 하늘에 보름달이 떠서 환하고 조용했지만, 높은 길가의 침엽수들 꼭대기가 서걱서걱 흔들리며 가끔 쌓였던 눈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바람은 약하지않게 부는 중인듯하다. 차 방음과 눈길 주행이 기대만큼 성능이 좋다는 생각에 좀 더 엑셀레이터를 밟아보자 잠시 차가 뜨르륵 하고 미끄러짐 방지기능 작동 후 전진한다. 모짜르트 40번을 틀고 선루프를 통해 달빛과 눈빛을 받아들였다. 천재음악가의 장엄한 감동과, 이 시간 무모한 주행을 그만두고 돌아가야 하지 않냐는 이성이 충돌하며 정체불명의 감동이 명치 끝에서 무럭무럭 피어올랐지만, 이대로 저 모퉁이까지 만 돌아서 스키장 입구까지는 가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계속 전진했다. 


모짜르트는 이 감동의 음악을 만들며 시공을 초월하여 이 시각 바다건너 북미대륙의 높은 산맥 계속 속에서 한밤중에 아무 목적지도 없이 홀로 달리는 신기능의 자동차의 무정한 음향재생장치로 자신의 이 곡이 선곡되어 쾅쾅거리며 연주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이성적으로는 이 시각에 이 곳에 이유도 없이 왔던 것을 이제 차를 돌려서 반성하며 돌아가야 할 것다.  그러나 독일 천재음악가의 가슴을 울리는 명곡은 내 애마의 첫 시승의 감동과 결합하여, 나를 마치 첫 야생마를 길들이는 초행의 들판처럼 가슴을 마구 뛰게 했다. 


스키장 초입에 이르는  모퉁이를 돌아올라가자, 파일럿은 스스로 기어의 단수를 바꾸어 올리며 엔진의 출력과 4축의 타이어에 더 에너지를 배분했다. 오히려 더욱 세게 땅을 다잡으며 힘차게 올라갔다. 멀리 스키장의 슬로프 사이드에 간간이 안내광이 보이는 듯 하지만, 스키어들이 없다. 스키장이 야간개장을 할 만도 한데, 하지 않은것 같다. 다만, 멀리 보이는 곤돌라 기둥마다 가로등만 몇 군데 켜 놓은 듯 하고, 더 멀리 보이는 계곡 속 낮은 건물들에 아주 드문 점처럼 보이는 불빛은 투숙객이리라. 어느새 우측 저멀리 약간 밑으로 보이는 스키리조트를 아래로 내려다 보며, 조금만 더 올라가 보자 했다. 이미 스키리조트 주 출입구는 지났다. 그 후로도 완만한 도로가 지속되어 계속 달렸다. 이곳까지 리조트에서 눈을 치워놓았구나. 모퉁이 길을 지나면서 눈적설 주의 표지판과, 도로이탈 경고판이 계속 나타났다. 그리고 차가 슬슬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아 여기서 정지하면 안되겠구나. 눈길주행으로 놓았지만, 단단히 땅을 움켜쥐는 모드로 견조히 주행해서, 결코 정지하면 안되고 이제 돌아나가자. 이 위로는 아마 산맥 속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니..


저 앞 쪽에 넓은 간이 휴게소 팻말과 차를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리라. 좀 더 속도를 내서 언덕 위로 질주 한 후, 차를 돌려 나오려는 순간, 우측 검은 숲 속에서 커다란 사슴이 튀어나오다 차에 부딪쳤다. 우측 백미러와 유리창이 깨지고, 나도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에 나가떨어져 눈 밭에 널부러졌다가 벌떡 일어나 놀란 옆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숲 속으로 달려가는 암사슴과 그 뒤로 서 너마리의 한 가족의 사슴이 휙 휙하고 차 앞을 가로질러 갔다.  놀란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았는데, 차가 헛돈다. 곡선구간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니, 차가 직진하며 길 옆의 눈 둑방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사륜구동의 힘센 차도 바퀴가 눈 구덩의 허공에서 헛돌기만 했다. 심장이 요동을 치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있었다. 아, 느낌이 않좋다. 겸손했어야지. 모짜르트의 장엄한 오디오를 눌러 껐다.   일단 차에서 내려보려 했는데 운전석이 밖에 눈에 파묻혀 안열렸다.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를 눌러켰다. 침착해야 해.. 하며. 놀라운 눈이 왼쪽에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어서 흠칫 바라보니, 다 건너간 사슴 중에 큰 뿔을 가진 숫놈이 나를 노여운 듯 한참 바라보다가, 앞 발을 몇 번 구르더니, 이내 돌려 숲 속으로 사라져간다. 휴대폰을 보니, 전파가 거의 안잡히고, 배터리가 5%다. 케이블을 연결하고 충전을 기다리며, 아내에게 계속 전화했는데, 신호가 안간다. 시계를 보니 2시 5분.  밝으려면 멀었다.  연료는 중간. 시동을 끄면 얼어죽는다. 다섯시간 이상은 벼텨야 한다. 차에 있는 식량은.. 일주일 전 갤런짜리 물을 2통 사 놓은 것이 있고, 라면 5개봉지들이 1개와, 아직 안내렸는지 대파가 한 묶음 있다.  밖의 온도는 19도이고, 바람은 아직도 거세다.  아내 마리는 아침 5시경이 넘어야 잠을 깨서 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5시 30분에는 경찰에 신고할 것이며, 마리와 경찰은 내가 도무지 어디로 차를 향했을까를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혹시 빠르다면 6시 넘어서는 이 곳으로 구조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헌터 리조트 입구에서 이곳까지 약 30분을 올라 왔으니, 내가 걸어서 내려가려면 두시간 가까이 가야하는데, 내 바지와 신발을 내려다 보았다. 바지는 두터운 츄리닝, 방한은 되나 방수가 안되고, 신발은 가죽스니커즈. 다행히 차 인수 첫날, 내가 겨울용 비상세트로 갖고다니는 박스를 트렁크에 넣어놓았는데, 거기 방수 가죽트레킹화가 있다. 뒷좌석으로 넘어가서 트렁크를 열고 신발을 꺼냈다. 처음 신는 것이라 끈을 헐렁이고 신었다. 비상용 양말도 한켤레 주머니에 넣고, 목 워머도 했다. 이마에 헤드렌턴도 찼다. 아,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용 물주전자가 있구나. 담배소켓에 끼우면 12볼트로 큰 커피잔 크기의 주전자를 끓이는 포트인데 사용은 안 해 보았다. 고급제품이 아니라 쇼트를 주의해야 해서 지금 새 차에 전원을 연결하진 않고, 내가 새벽녘에 이 보금자리를 떠나야 한다면, 그 직전에 물을 끓여서 먹고 출발하리. 차 내부가 큰 데 운전석에서 나오는 열기를 아끼기 위해 뒷좌석에 있던 하드보드를 접어 세워서 중간을 막았다. 휴대폰 충전은 느리게 진행되서 이제 12프로고, 전파는 잡히지 않는다. 걸어서 전파 잡히는 곳까지 가 볼까 했지만, 문도 쉬이 열리지 않고, 바지와 양말이 젖을것 같다. 연료와 전지를 아끼기 위해 차 안의 실내등을 껐다. 밖의 전조등은 밖에서 발견하라고 끄지 않았지만, 차 앞이 눈 속에 파묻여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오한이 오며 배가 고프다. 어제 무엇을 먹었지.  생각이 안난다. 저녁 만 먹고 움직이지 않는다며, 아내에게 시위를 하느라 일부러 저녁 식탁에서 국물만 몇 숫가락 떠먹다 일어났던 것이 후회된다. 그러면 그 전에 무엇을 먹었지. 아, 점심에 계란후라이 2개와 쌈밥을 먹고, 두어 시간 후 간식으로 커피와 토스트 한 쪽을 먹었었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었나 오한에 눈을 불현듯 뜨니, 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시간은 새벽 3시 10분. 발쪽이 시렵다. 눈은 더 세게 내린다. 눈발이 유리창에 수북이 쌓이고, 와이퍼높이까지 눈이 쌓인다. 공포가 엄습. 이 상태라면 한 두시간 후에 눈에 완전히 덮여 밖에 구조헬기에서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나가서 헤드라이트 앞의 눈을 치워 불빛이 보이게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문 쪽을 확보해야 비상시 나갈수 있지. 옷을 여미고.. 아, 골프백을 실어 놓았지. 백 옆 주머니를 열고 우비바지를 꺼내 입었다. 어느정도 바지는 방수도 된다. 왼쪽 문이 안열리니, 창문을 살며시 내렸다. 눈이 단단히 쌓여 다행히 안쪽으로 무너져 내리지는 않지만, 조금씩 밀어내야 한다. 뒷 좌석에서 두터운 하드보드를 칼로 잘라내어 창문 밖의 쌓인 눈을 밖으로 간신히 조금씩 밀어냈다. 조금씩 창문을 더 내리고 계속 눈을 밀어냈다. 그래도 문은 도저히 열리지 않아, 창문 밖의 눈을 다 밀어내고, 그 사이로 몸을 들이밀고 양 손으로 창문 틀을 잡고 몸을 밀어내며 밖으로 겨우 밀고 나왔다. 길게 잘라낸 하드보드를 배 위에 깔고 차 앞 쪽으로 기어가서, 헤드라이트쪽 앞의 눈을 계속 파냈다. 세찬 눈이 내리고 윗쪽은 바람소리가 윙윙 들리는데, 목과 겨드랑이에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안된다. 이런 바람에 땀을 많이 흘리면, 금방 얼면서 동상이나 동사한다. 잠시 쉬면서 땀이 나는 것을 억제했다. 그러자 한기가 찾아오며 몸에 열이 다 빠져나가는 듯 해다. 먹은게 없으니 열량이 부족하겠다. 다시 뒤로 돌아 아까 나온 창문으로  들어가서 눈을 털어내고, 옷을 헐겁게 해서 땀의 분비를 억제했다. 할 수 없이 전기포트로 물을 끓였다. 다행히 살짝 고무타는 냄새는 나지만 합선이나 퓨즈가 나가지는 않았다. 물이 끓어서 뚜껑에 마셨다. 물을 끓여 커피종이컵에 옮겨놓고, 다시 물이 끓자 라면 한개를 길게 쪼개서 포트에 넣고  끓였다. 아, 라면이 된다. 비상박스에 있던 플라스틱 젓가락과 포크로 라면 한 개를 먹으니, 살 것 같다. 이제 시간은 세시 반. 이제 두어시간만 버티면 되는데, 연료가 노란 불이 켜지기 직전. 눈은 다시 헤드라이트를 넘기고, 창문밖으로 나가려면 다시 작업을 해야하지만, 라면을 먹으니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전화를 911에 해보고, 집으로도 해보고, 메시지를 남겼지만, 전파가 통 잡히지 않는다.  날이 밝기는 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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