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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가난 / 법정스님
01/31/2018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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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가난 / 법정스님




새삼스런 생각이지만 불을 맨 먼저 찾아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수인씨(燧人氏)가 됐건 프로메테우스가 됐건, 불을 발견한 것은 오늘의 인류사회를 낳게 한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얼어붙은 겨울에 만약 불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무를 먹고 온기를 발산하는 난롯가에 앉아 장작 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얼어붙은 개울에서 도끼로 얼음장을 깨고 물을 길어와 난로 위에 올려놓는다. 솔바람 소리를 내면서 차관에서는 이윽고 물이 끊는다. 어느 세상에서 꽃이 피어나는 소리인가.


   바람을 마시고 사는 처마 끝의 풍경이 자기도 집 안으로 좀 들어갈 수 없느냐고 이따금 오들오들 떨면서 땡그랑거린다. 업이 달라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깝다. 하지만 땡그랑거리는 그 소리가 오두막의 주인에게는 적잖은 위로와 파적(破寂)이 된다. 바람이 없는 집 안에서는 풍경은 한시도 살아 있을 수가 없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듯이 수행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혹은 바다에서 그물로 고기를 건져내듯이, 고통 바다에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법의 그물로 구제하라는 뜻에서라고도 한다.


   바람이 없으면 그 존재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풍경,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풍경은 우리들에게 명상의 소재를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무딘 귀는 단지 땡그랑거리는 풍경 소리로밖에 들을 줄을 모른다.

   난롯가에 앉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보면서 눈에 묻힌 오두막의 살림살이에 고마움을 느낀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수행자들에게는 그 어떤 종파를 가릴 것 없이 영원한 사표가 될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그의 '거룩한 가난'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물질의 풍요 속에서 도리어 정신적인 궁핍과 자책을 느끼게 한다.


   그의 <발자취(페루지아 전기)>를 몇 해 만에 다시 펼쳐 든 감회는 새롭다. 그는 760여 년 전에 44세의 한창 나이로 육신을 거두었지만, 그의 투철했던 구도 정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만인의 형제' 임에 틀림이 없다.


   1992년 11월로마에 들렀을 때, 그 무렵 공무로 잠시 바티칸에 머물고 계셨던 장익張益신부님의 따뜻한 배려로, 나는 그곳 국무성에 근무하는 사제들의 숙소에 묵으면서 가톨릭 성지를 순례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평소에 존경하고 흠모해 오던 프란체스코 성인의 땅 아시시를 방문했던 그날의 감격과 기억은 지금도 생생해서 내 가슴에서 출렁거린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수도하고 임종한 곳 포르지웅콜라의 성모성당, 아주 비좁고 초라하기까지 한 이곳에서 성인과 그의 형제들이 거룩한 가난과 사랑의 싹을 틔워 그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청정한 수도의 모범을 이룬 것이다. 이곳은 작은 형제들의 고향이며 거울이다. 1209년까지 초기 형제들의 기도와 침묵으로 이루어진 수도원이었는데, 내부는 몇 가지 장식을 추가했을 뿐 단순하고 소박한 그때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뒷날 이 작은 성당을 품에 끌어안듯 '천사들의 성모 기념 대성당'을 그 위에 세웠다.

   성인과 그 형제들이 살았던 3평정도 되는 조그만 방과 작은 창이 성인의 인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성당 가까이에 '눈물의 방' 과 지하에 '용서의 방'이 퍽 인상적이었다. 성인이 돌아가신 지 4년 만에 움브리아 언덕 위에 큰 성당을 세워 그곳에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 이 움브리아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아시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세와 현대가 알맞게 조화된 그런 도시다. 이 거리에서 프란체스코 서인이 형성되었는가 싶으니 한결 정답게 여겨졌다.


   바로 지척에 글라라 성녀가 살았던 성 다미아노 성당이 있는데, 그 안에 글라라 성녀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어 7세기가 지나간 후 한반도의 한 나그네의 발결음을 그 앞에서 멈추게 했다.

   성인을 따라 형제들의 수가 늘어나자 보다 큰 집이 필요하게 되었다. 성인이 볼일로 외지에 나간 사이에 지어 놓은 새집을 보고 그는 놀라면서 총장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 수도원은 우리 형제회의 모델이자 거울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오는 모든 형제들이 각자의 수도원으로 돌아갈 때는 가장 아름다운 가난의 모범을 배우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 수도원의 형제들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안정과 위로보다는 불편과 번잡스러움을 증거하기 바랍니다."


   성인은 형제들의 집과 오두막이 참으로 수도자의 신분에 잘 어울리게 보다 작고 보다 검소하면 할 수록 만족하게 여겼고, 그런 집에 머물기를 좋아했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는 유언에다가, 가난과 겸손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형제들의 모든 집과 오두막은 반드시 흙과 나무로만 지어야 한다는 내용을 넣도록 고집했다.


   수도원을 짓도록 땅을 희사할 사람이 있으면, 그 지역이 수도원으로 적합한지 혹은 과분하지 않는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키기로 서약한 거룩한 가난의 면모를 잃어버리지 않겠는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을 줄 수 있겠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절과 교회와 성당을 그저 크고 화려하게만 세우려고 하는 오늘의 우리들은 허세를 거두고 이런 가르침을 앞에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반성이 결여된 종교는 온전한 종교일 수 없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형제들이 수도원을 그들의 소유로 삼지 말고, 항상 그 속에서 순례자나 나그네처럼 살기를 원했었다.

   그는 병약한 몸이면서도 자신에게 아주 엄격했다. 죽을 때까지 갖가지 병을 앓으면서도 곡식과 채소로 된 음식만을 그것도 조금밖에 들지 않았다. 곁에서 간호하던 형제들이 환자의 건강을 염려해서 음식에 약간의 고기를 넣어 요리를 했다.


   어느 날 당신이 설교하던 광장에 군중을 모이게 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내가 세속을 떠나 형제회에 입회하였으며 형제들을 인도하는 나를 보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과 여려분 앞에 고백합니다만,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고기와 그 국물을 먹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자비심과 연민의 정에 북받친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전기 작가는 기록하고 있다. 그분은 하느님에게 알려진 일을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몹시 추운 겨울철에 생긴 일인데, 당신의 비장과 냉증을 치료하기 위해 한 형제가 여우털을 조금 구해 와서 비장과 위장 언저리의 웃옷 안쪽에 그것을 꿰매 드리면 어떨까 여쭌 일이 있었다. 그분은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겉옷 한 벌 외에는 다른 옷을 걸치지 않았다. 이것은 돌아가실 때까지 한결같았다. 그때 성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형제가 내 옷 안에다 털을 붙일 생각이라면 밖에다도 붙여 주시오, 사람들은 내가 부드러운 털옷을 입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안과 밖이 다른 위선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옛날의 수행자들은 이와 같이 진실과 청빈과 단순을 수도의 생명으로 삼았었다. 곧은 마음(直心)이 도량(道場 - 수도원)이란 말도 있듯이, 수행자가 정직과 진실에서 이탈하면 그는 진정한 수행자일 수가 없다.


   '거룩한 가난'이 진실한 수행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수행자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 서책을 통해서나마 프란체스코 성인을 만나 그의 가르침에 귀기울이며 공감할 수 있는 인연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쉬운데 사랑은 감회를 시킨다. 지식은 행동을 동반할 때에만 가치가 있다. 덕행의 실천보다 더 좋은 설교가 어디 있겠는가. 성인의 거룩한 가난이 오늘의 수행자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1994. 2
글출처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법정스님, 샘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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