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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탄압하던 김일성, 뒤에선 "목사님, 기도해 주십시오… 아멘"
01/30/20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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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탄압하던 김일성, 뒤에선 "목사님, 기도해 주십시오… 아멘"


[백선엽과 김형석, 文武 100년의 대화] [3·끝] 아이젠하워, 정일권, 한미상호방위조약
白 "김일성, 만주군관학교 출신 포섭하려 정일권 등에 접근"
金 "함석헌 선생이 하던 학교 맡아 운영하던 중 北압박에 월남"


白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만나 한미방위조약 필요성 설득"
金 "미국보다 중국에 기우는 文정부, 어리석었다는 평가받을 것"


숭실대학(지금의 숭실대학교) 7대 학장을 지낸 고(故) 김성락 목사는 생전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자신의 방북 스토리를 들려주곤 했다. 김 목사는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과 평양 숭실중 동문이었고, 함께 교회를 다닌 주일학교 친구였다. 이런 인연으로 김 목사는 1980년대 초반 두 차례 김일성의 초청을 받았다.


"한번은 김일성이 함경도에 있는 별장으로 김 목사님을 모셨데요. 점심 시간이 되자 김일성이 '목사님,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더니, 기도가 끝나자 '아멘' 하더래요. 목사님은 헤어질 때 성경책 한 권을 선물로 주고 왔다고 하데요."


 지난해 11월 중순 본지 신년 특별기획 '文武 100년의 대화'를 위해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만난 백선엽(왼쪽) 장군과 김형석 교수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본지 신년 특별기획 '文武 100년의 대화'를 위해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만난 백선엽(왼쪽) 장군과 김형석 교수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해방 직후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 땅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고, 기독교 등 종교를 혹독하게 탄압했던 김일성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고, 자신 또한 기독교 신자였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이름 반석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 김 교수는 "자기는 하느님을 믿으면서 종교를 가진 주민들은 잔인하게 억압하는 김일성의 모습은 북한 체제가 얼마나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모순 덩어리인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본지 특별기획 '文武, 100년의 대화'의 두 주인공 백선엽 장군과 김형석 교수는 1920년생 동갑내기로 해방 이후 김일성 정권이 북한을 장악하면서 남한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은 "북한에 계속 남았더라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장군은 1945년 12월 말, 김 교수는 1947년 여름에 월남했다.


―20대 젊은 나이였다. 남한으로 오겠다는 생각을 왜 하게 됐나.

김―그곳에선 살 수가 없었다. 일제 때 함석헌 선생이 하던 학교를 해방 후 내가 이어받았다. 북한 공산당 정권이 본색을 드러내면서 학교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다. 학교 재정을 책임졌던 아버지 친구는 어디론가 끌려갔다. 공산당 간부였던 제자 중 한 명이 밤중에 찾아와 "선생님 학교가 사상이 제일 안 좋다고 찍혔다"며 빨리 피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고향을 등지게 됐다.

백―초기에 김일성은 만주군관학교 출신들을 포섭하려 했다. 정일권·김백일 등에게 접근해 "함께 나라를 건설하자"고 했다. 만주군관학교 4년 선배인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상의했다. 그때 "김일성은 처음에 우릴 이용한 뒤, 결국은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1945년 12월 중순 김일성이 북한의 권력을 장악했고, 우린 서둘러 북한을 빠져나와야 했다.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가.

김―이번 세기에 벌어질 가장 큰 사건을 꼽으라면 공산주의의 멸종일 것이다.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혁명이 성공한 이후 그들은 전 세계를 점령할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역사에선 그 반대로 공산주의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중국 공산당도 북한 정권도 그 운명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백―향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국가들은 살아남겠지만, 공산주의는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또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가 있는 국가는 살아남고, 사리사욕에 눈먼 지도자를 선택한 국가는 도태될 것이다.


백 장군은 한·미 동맹의 상징적 인물이다. 6·25 전쟁 때 미군과 함께 북한군·중공군과 맞서 싸웠고 전쟁 후에는 미군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국군 전력증강·현대화 작업을 벌였다. 미군은 지금도 백 장군을 "우리 모두의 영웅"이라고 부른다. 1953년 5월 미국 방문 당시 6·25 전쟁 때 전우 알레이 버크 제독의 조언을 받아 일정에 없던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킨 뒤,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나도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고, 한·미는 1954년 역사적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백―미국은 6·25 전쟁 때 함께 피를 흘린 너무나 소중한 동맹이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포에버(forever), 포에버, 포에버" 갖고 가야 한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만이 우리의 소중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함께 지킬 수 있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김―뉴질랜드에선 유능한 사람은 호주로 간다. 호주에선 유능한 사람이 캐나다나 영국으로 가고, 캐나다에선 또 미국으로 간다. 사회민주주의적 요소가 많은 사회는 편하게 살 수는 있지만 국가 발전이란 면에선 자유민주주의를 따라갈 수 없다. 경쟁이 심한 시기에는 선의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데, 이때는 자유민주주의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린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독일 등 글로벌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백―지금의 상황이 6·25 전쟁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정말 걱정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여전히 공산·사회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북한은 여전히 남한을 적화하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우린 개방적인 해양의 문명권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1952년 12월 4일 경기도 광릉 수도사단에서 아이젠하워(앞줄 왼쪽에서 둘째) 당시 미 대통령 당선자가 망원경으로 기갑부대 기동, 포 사격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앞줄 왼쪽은 이승만 대통령이고, 백선엽 장군은 오른쪽 끝에 서 있다.


 ―문제는 일본과의 관계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지배를 받은 나라 중 우리나라가 일본과 가장 관계가 나쁘다.


김―식민지 역사가 길어서 그렇다. 더욱 큰 문제는 국가 지도자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를 악용하려는 데 있다. 한·일 문제를 풀려면 우선 사람들의 교류가 많아야 하고, 그다음에 문화 교류와 경제 교류가 튼튼하고 활발해져야 한다. 정치는 그다음이다. 맨 마지막이 돼야 한다.


백―1958년 참모총장 재직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일본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배석을 위해 도쿄를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께 물었다. 언제쯤 일본과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할 것 같으냐고.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데 40년이 걸렸다. 우리가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니 적어도 40년은 걸려야 할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일본과 관계가 험악하다.


―최근 국제 정세를 보면 중국이 우리 민족 앞날에 엄청난 먹구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백―중국은 아주 오랫동안 한반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패권국가였다. 그 역사와 문화적 바탕에는 중화주의(中華主義)가 뿌리 깊다. 여기에 공산당 일당 독재가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 개혁과 개방으로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경계가 필요한 나라이다.


김―앞으로 50~60년 동안은 우리를 비롯해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중국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할 것이다. 특히 우린 남북문제, 경제문제, 미국과의 외교 문제 등에서 중국의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이 공산당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받아들이게 될 때 비로소 달라질 수 있다. 그때까지 중국과 경제 협력은 하되, 정치·외교적으로는 거리를 둬야 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미국보다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수십 년 지나서 보면 그렇게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숙제인 통일이 이번 세기 중에 이뤄질 수 있을까.


김―가장 먼저 알아야 할 점은 북한 정권을 그대로 두고는 통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거나 현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 문제는 지금 정권을 그대로 둔 채 북한 체제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려면 강력한 고립 정책을 펴야 한다. 후진국 독재 국가는 군 때문에 유지된다. 군인이 배곯는 상황이 되면 독재 정권은 끝장이 난다.


백―통일까지 가는 길엔 수많은 난관과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해가 나든, 아무리 상황이 유리하거나 불리해도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될 게 있다면 그건 무력, 즉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약화시키는 그 어떤 유혹과 자만, 꼬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유한 나라와 강한 국방력, 즉 부국강병(富國强兵)은 나라를 지키는 토대이자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뉴 밀레니엄 시대 젊은이들에게…]

金 "국가·민족 넘어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라"
白 "사람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려 노력해야"


―올해 태어나는 2020년생과 꼭 100살 차이가 난다. 21세기를 이끌어갈 주역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김―100년 전 3·1운동을 계기로 가족 수준에 머물던 공동체 의식이 민족과 국가 수준으로 올라갔다. 우린 국가와 민족이 가족보다 먼저이고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퍼지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세대이다. 이제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우리 젊은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 세계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폐쇄적인 민족 지상주의와 국가 전체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우선 고전을 많이 읽고,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정신적 성숙함 없이 국가는 자랄 수 없다. 다음으로는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가져보라는 것이다. 대학까지는 국내에서 나오더라도 대학원은 외국에서 다니라고 권하고 싶다.


백―내가 군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 작전, 전략과 전술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주요한 전투에서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휴머니즘, 즉 사람에 대해 좀 더 진솔하고 깊게 이해하려고 했

 

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양사범에 다니는 5년 동안 독서를 많이 했다. 책도 많이 읽었고, 신문도 엄청 읽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일까에 대해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어느 순간 세계를 보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자각의 순간을 우리 후손들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30/2020013004265.html

       조선일보    진행·정리=장일현 기자 입력 2020.01.31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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