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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 法頂 스님
08/08/201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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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 法頂 스님



   절기로 오늘이 하지(夏至)다. 여름철 안거도 어느새 절반이 되었구나. 그동안 아주 바쁘게 살았다는 생각이 어제 오늘 든다. 모처럼 산거(山居)의 한적한 시간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별밭에 눈길을 보내고,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도 보았다.


   그토록 머리 무겁게 생각해 오던 방 뜯어 고치는 일을 감행했다. 이 궁벽한 산중에서 방을 뜯어고치는 일은 여간 힘들고 머리 무거운 일이 아니다. 미친바람이 불어오면 굴뚝으로 나가는 연기보다 아궁이로 내뿜는 연기가 더 많을 정도로 불이 들이지 않았다. 아랫목은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프라이팬처럼 뜨거워도 윗목은 냉랭하고 습해서 집을 비워두면 곰팡이가 슬었다.


   이번에는 아예 아궁이와 굴뚝의 위치를 바꾸고 방 구들을 다시 놓았다. 다행히 불이 잘 들이고 방이 고르게 덥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성실한 일꾼과 나는 온돌방의 모래를 제대로 터득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배움은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소 겪는 체험을 거쳐 이루어진다. 그리고 몇 차례의 실패를 겪으면서 구조적인 원리와 확신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일은 비단 방 고치는 일만이 아니라 인간사 전반에 걸쳐 해당될 것이다. 실패가 없으면 안으로 눈이 열리기 어렵다. 실패와 좌절을 거치면서 새 길을 찾게 된다. 그렇게 때ㅑ문에 전 생애의 과정에서 볼 때 한때의 실패와 좌절은 새로운 도약과 전진을 가져오기 위해 딛고 일어서야 할 디딤돌이다.


   며칠 전에 도배를 마쳤는데, 아직 빈 방인 채 그대로 있다. 방석이나 경상, 다구(茶具)등 아무것도 들여 놓지 않았다. 나는 이 빈 방의 상태가 좋다. 거치적거릴 게 없는 텅 빈 공간이 넉넉해서 좋다. 얼마쯤의 불편과 아쉬움이 오히려 즐길 만하다. 물론 언제까지고 빈 방으로 살 수 없겠지만, 할 수 있는 한 그 기간을 자꾸만 연장하고 싶다.


   내 이야기는 이만하고 이제는 그쪽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집 짓는 일은 어느 정도 지척이 되었는지, 이엉은 덮었는지 궁금하다. 장마철이 오기 전에 지붕을 덮어 놓아야 나머지 일은 그 안에서 진행할 수 있다. 나 같으면 벌써 일을 마쳤을 텐데 아직도 끝내지 않았다니 그 저력이 대단하구나. 상량을 한 지도 벌써 달포가 지났는데 두 칸 방 집을 짓는 그 진행이 너무 더디다.


   물론 날씨와 그럴 만한 현장의 사정이 있을 줄 안다.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해야 그 일의 결과도 좋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것은, 자원봉사 명분으로 불러다 쓰는 공양주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의 은혜와 신세를 그렇게 오랫동안 져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시은(施恩)을 많이 입게 되면 그 타성에 젖어 정진이 소홀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방 두 칸 지으면서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재력과 시간과 시은을 들이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상량문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나는 그 두 칸 흙집이 진정한 수행자의 거처가 되기를 바란다. 야유몽자 불입 구무설자 당주(夜有夢者不入 口無舌者當住 - 밤에 꿈이 있는 자 들어가지 못하고, 입에 혀가 없는 자만이 머무를 수 있다).


   밤에 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망상과 번뇌가 많다. 수행자는 가진 것이 적듯이 생각도 질박하고 단순해야 한다. 따라서 밤에 꿈이 없어야 한다. 또 수행자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생각이 밖으로 흩어져 안으로 여물 기회가 없다. 침묵의 미덕이 몸에 배야 한다.


   나는 그 두 칸 흙집 자체가 질박하고 단순한 수행자의 모습이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들은 편리한 문명의 연장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넘치는 물량을 받아쓰느라고 순간순간 수행자의 덕이 소멸되어 간다는 사실을 똑바로 보라.


   이 기회에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나. 그 수행자의 집에는 아예 전기를 끌어들일 생각을 하지 마라. 전기가 들어가면 곁들어 따라 들어가는 가전제품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전화도 필요 없어야 한다. 편리함만을 따르면 사람이 약아빠진다. 불편함을 이겨나가는 것이 곧 도 닦는 일임을 알아라.


   둘, 수도를 끌어들이지 말아라. 수도가 들어가면 먹고 마시는 일이 따라가고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마실 물은 바로 지척에 있는 암자의 샘에서 물병으로 길어다 쓰면 될 것이다. 그 집에는 차 외에는 마실 것도 두지 말아라. 찻잔은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 많으면 그 집에 어울리지 않고 소란스러워 차의 정신인 청적에 어긋난다.


   셋, 그 수행자의 거처를 ‘서전(西殿)’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위치가 암자의 서쪽에 있다는 뜻도 되지만, 부처님과 조사들의 청정한 생활규범인 서래가풍(西來家風)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수행자의 집에는 여성들의 출입을 금해야 한다.


   넷, 그 수행자의 집에 거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새벽 세 시에 일어나고 밤 열 시 이전에는 눕지 말아라. 새벽 예불은 수도생활 주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이므로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잔소리가 길어졌구나.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잔소리하는 사람도 점점 사라져가는 세태다. 여러 가지로 불비한 여건 아래서 집 짓느라고 고생한 그 공덕은, 그 집을 의지해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두고두고 회향될 것이다. 집 짓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일찍이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이상에 당부한 사항을 지키는 수행자라면 우리는 한 부처님의 제자로 같을 길을 가는 길벗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스승과 제자 사이라 할지라도 뜻은 십만 팔천 리가 될 것이다.


   끝으로 옛사람의 말을 안으로 새기면서 이 사연을 마친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처음 세속의 집을 등지고 출가할 때 그 첫 마음을 잊지 말라!


글출처 : 오두막 편지(法頂 스님, 이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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