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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
03/25/20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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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가 쓴 글에 댓글이 달렸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악플'이었습니다. 댓글을 쓴 분은 분명 뭔가를 아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적어도 나름대로 성경을 읽었고 해석하고 최소한 설교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댓글의 내용은 참 신랄했습니다. 읽을수록 댓글을 단 사람의 마음이 참 날카롭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월감에서 나온 댓글이었습니다. 분명 댓글을 단 사람은 제가 쓴 글이 유치하거나 조잡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잠시 동안이었지만 제 마음은 아팠습니다. 제 글이 마음에 들지 않고 유치하게 느껴졌다면 좀더 어른스런 방법으로 지적해주고 조언해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온라인상의 교제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기독교 특유의 특성으로 자리 잡은 오만이 실려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그런 종류의 폭력이 난무합니다. 자신이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다른 이들을 향한 판단과 정죄로 이어집니다. 분명 그 사람의 생각은 무언가 옳은 것을 위해 자신이 일조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개혁을 위해 혹은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칼로 찌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폭력이라는 것을 당사자는 여간해서는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경건의 폭력'이라고 표현한 어떤 분의 글을 읽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새벽기도에 오래도록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집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새벽기도에 빠진 목사와 장로들의 빠진 횟수와 날자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꼬박꼬박하는 신자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십일조을 빼먹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동료 신자들의 목록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다녀온 권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시선에는 '너는 왜 금식기도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질타가 섞여 있습니다. 크고 건강한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무섭습니다. 그분의 말투에는 작고 별 볼일 없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이 넘쳐납니다. 무언가를 깨달은 '안티'가 무섭습니다. 그분의 몸짓에는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을 향한 손가락질이 배어있습니다.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가 무섭습니다. 그분 앞에 서면 모든 사람들이 종류별로 차곡차곡 분류되어 버리고 맙니다. 성도수가 제법 되는 교회 목사들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권위와 무게가 엄청난 압박으로 성도들을 찌그러트립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는 오래 된 전통입니다. 너무도 경건이 몸에 배어 스스로 자신들을 구별된 존재라고 여겼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도 모자라 울타리 율법까지 만들어 놓고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음식에 집어넣는 양념까지 십분의 일을 구분하여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신앙의 일상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과시'의 일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율법과 경건이 종교의 광기로 치달았습니다. 그래서 수틀리면 사람들을 돌로 쳐 죽이고자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 성 프란체스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40일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 놓은 39일째 되는 날 젊은 제자 하나가 맛있는 스프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 금식을 하던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젊은 제자를 노려보았습니다.

그 눈길 속에는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애처로움이 아니라 분노에 찬 정죄의 따가운 시선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제자들은 유혹에 넘어간 젊은 제자를 엄하게 꾸짖어주기를 바라며 스승, 프란체스코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는 말없이 수저를 집어 들더니 젊은 제자가 먹었던 스프를 천천히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경악의 눈길로 스승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은 모두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를 참으며 사랑하며 아끼자는 것입니다. 저 젊은이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스프를 떠먹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를 정죄하고 배척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굶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실컷 먹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경건의 폭력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39일 동안 무사히 금식을 마친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에게서 그들의 엄격한 경건과 돈독한 신앙이 오히려 형제를 짓밟고 자신들의 영성마저 망가트리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율법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다른 이들을 욕하고 질타하면서 그보다 더 큰 사랑의 계명을 어기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서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도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仁) 과 신(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선종(禪宗)에서는 깨달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것을 잘못할 수 있음과 동일한 것으로 봅니다. 참으로 귀중한 생각입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니 '잘못할 수 있음'이야말로 인간의 인간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욕망과 고통으로 가득 찬 어리석은 범부(凡夫)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긍휼하게 여기고 잘못했을 때에는 그 잘못을 꾸짖고 정죄하기보다는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내하면서 기다려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경건은 겸손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경건과 믿음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타와 거부가 될 것이며 무엇보다 폭력이 되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 끔찍한 범죄가 될 것입니다.

누구의 이야기랄 것도 없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자아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도록 부추기는 이 세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잘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게 되는 함정입니다.
 
프란체스코의 금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사순절을 맞아 프란체스코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들어가 금식하기로 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빵 두 덩이를 가지고 섬으로 건너갔습니다. 사순절 기간이 끝나 다시 배를 타고 갔을 때 프란체스코는 한 덩이 반을 들고 있었습니다.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잊지 않기 위해 금식 기간 동안 빵 반쪽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가 허기를 참지 못해 빵 반쪽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가 허문 것은 자신의 완벽함이었습니다. 언제라도 잘못 할 수 있는 인간임을 잊지 않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랑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인격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때로 종교에 실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떠실는지요? 프란체스코의 빵 반쪽을 기억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의 완벽함을 버리고, 다른 이의 영혼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경건의 폭력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교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곳이 될 것입니다.

댓글을 통해 제게 기꺼이 빵 반쪽이 되어주신 형제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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