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윤 목사 ⓒ <뉴스 M>

나는 어제 큰 딸아이 학교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플룻을 연주하는 딸아이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집안에 있는 달력마다 크게 동그라미를 해 놓고, 아빠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예쁜 꽃다발도 잊지 않았다. 화목이는 의자에 앉자마자 객석을 둘러 보았다. 우리아이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관중이 얼마큼 많이 왔는가가 아니고 아빠, 엄마, 동생이 왔는가이다. 그리고 어디에 있는가이다. 눈이 마주치자 두 손을 높이 들고 크게 흔들어 주었다. 딸아이는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주 가족들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캠코더로 영상을 녹화해 주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컴퓨터에 옮겨 놓으면 딸아이는 녹화된 영상을 보면서 즐거워 할 것이다. 일찍 가게 문을 닫았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님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딸아이에게로 달려갔다. 장사하는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돈 보다 더 소중한 것이 딸아이이고, 손님보다 더 귀중한 것이 아빠의 역활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사람은 남편도 목사이고, 아빠도 목사이고, 할아버지도 목사이다. 3대째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기독교 가정의 자녀인 것이다. 아내의 기억에 의하면 주일 저녁에 아빠와 함께 온 가족이 외식을 해 본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처남에 의하면 한 번 짜장면을 먹었다고 한다. 누구의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장인 어른께서는 지사충성의 마음으로 가정 보다는 목회에 전념하신 것 같다. 대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듣다 보면 자녀들을 돌보지 못한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있다. 자녀들 입학식, 졸업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여러분에게 들은 바 있다. 주님을 위한 희생과 헌신에는 박수를 쳐 드리지만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환영하시는 바였을까?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회자 자녀들은 그러한 아버지, 어머니로 인해서 상처 받지 않았어야 한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는 주일 저녁 시간에는 그 어떤 초대에도 응하지 않는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죄송하지만 참석할 수 없다는 답변을 앵무새처럼 드린다. 같은 교회를 섬기는 전도사님의 신대원 졸업식에도, 신학교 때 큰 누님 왕짱 누나 하며 따랐던 선배 목사님의 담임목사 취임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만일에 오바바 대통령이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만나자고 했어도 사양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딸아이와 함께 시간을 같는 것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일체의 사례를 받지 않는 대신에 주중에는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한다. 자그마한 스시 가게를 운영한다. 새벽에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나가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집에 올 때가 많다. 운이 좋으면 30분 정도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우리집 아이들은 8시 30분이나 9시면 잠자리에 든다.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보고자 노력하지만 안정적으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주일 오후이기에 나는 이 시간 만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종으로 좋은 목사가 되는 일은 중요한 일이지만 목사이기 이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목사이기 이전에 먼저 좋은 자식이어야 하고, 좋은 목사이기 이전에 먼저 좋은 남편이어야 하고, 좋은 목사이기 이전에 먼저 좋은 형제, 남매이어야 하고, 좋은 목사이기 이전에 먼저 좋은 아빠이어야 한다. 좋은 아빠이지 못하고, 좋은 형제, 남매이지 못하고, 좋은 남편이지 못하고, 좋은 자식이지 못하면서 교회 일에 열심을 내고, 사역에만 집중한다면 이것은 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그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을 외면하게 만드는 복음의 걸림돌이 되는 일이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많이 해도 결코 좋은 목사일 수 없다. 이것은 평신도도 마찬가지이다.

스시맨으로 세상 속에서 살다보면 나중에 나의 직분을 알게 된 후에, 자신들이 상처 받은 이야기, 시험 받은 이야기, 왜 교회를 떠났는지에 대한 하소연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모두 사람답지 못한 그리스도인, 사람답지 못한 목회자에게 받은 상처 때문이다. 교회가 소중한가? 가정이 더 소중한가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가정이 더 소중하다고 대답을 한다. 본래 이 질문은 어리석은 것이다. 성경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우문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곧 가정이고, 가정이 곧 교회이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전한 가정이고 교회이다. 그러나 굳이 내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교회 사역은 내가 아니어도 가능한 것이지만 내 가정은 내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교회 사역 때문에 가정을 소훌히 하고 특별히 자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면 차라리 사역하지 않는 것이 낫다.

목사가 교회보다 가정이 더 소중하고, 직분과 사역보다 먼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도 될까? 어떤 분들에게 있어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감히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답지 못한 목회자들로 인해서, 사람답지 못한 그리스도인들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숨 쉬며, 교회를 떠나며, 하나님을 불신하는지 아는가? 이 시대는 진정으로 참 좋은 사람, 참 좋은 그리스도인, 참 좋은 목사가 필요한 때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 라고 하셨다. 빛에는 어둠이 있을 수 없다. 어둠이 함께 있는 빛은 있을 수 없다. 빛은 어둠을 밝힌다. 어둠은 빛이 비추면 사라진다. 참 빛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온전한 빛으로 살 수 있기를 소원한다. 균형과 조화 속에서 예수 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스시 만드는 목사 조경윤 / <생명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