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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원작에서
09/04/20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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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원작보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는 요즘 아이들, 그리고 끝내 『인어공주』 원작은 읽지 않는 학생들에게 ‘원작’의 소중함에 대한 강의를 적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물론 재미있고, 알록달록 어여쁘고, ‘어떻게든 해피엔딩’이라 달콤하지만, 원작 동화에는 끔찍한 장애물을 이겨내고 생의 근원적 상처와 용감하게 대면하는 존재의 처절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원작에는 있고, 애니메이션에는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느리게 읽고 힘겹게 글쓰기보다는 쉽게 유튜브 동영상으로 정보를 접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빠르게 글을 쓰는 요즘 학생들에게 ‘원작 읽기와 손글씨로 글쓰기’를 강의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읽기를 과제로 내도 읽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의 실시간 낭독’으로 수업방식을 바꾸어보았다. 학생들의 저항도 있지만, 효과는 분명 있다.

 

예컨대 『인어공주』 원작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인어공주의 할머니가 ‘인간세계’와 ‘인어세계’의 차이점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인어는 300 동안 평화롭게 바닷속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평화롭게 있고, 인간은 기껏해야 100년도 제대로 살지만 죽고 나면 ‘불멸의 영혼’을 얻을 있다고. 여섯 명의 언니들은 300 동안 편하게 있는 바닷속 세상을 택한다.

 

일곱 번째 인어공주만은 다르다. 막내는 단호하게 불멸의 영혼을 택한다. 인어공주의 꿈은 단지 왕자와의 결혼이 아니라 인어는 얻을 없고 인간만이 얻을 있는 불멸의 영혼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어공주는 문학평론가 게오르그 루카치가 말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아니오’라고 말할 있는 존재, 모두가 아무 문제 없이 세계에 적응하지만 ‘나는 결코 적응하지 않겠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문제적 인물인 것이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함으로써 편안한 생존의 길보다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향해 용감하게 나아간 것이 아닐까. 놀랍게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인어공주의 ‘다리’를 만들어주는 존재가 아버지다. 권위적인 가부장이 힘없는 딸의 소원을 들어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인어공주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힘겨운 과정이 대폭 생략된다. 왕자와 결혼하지 못해도, 인간이 되지 못해도, 마침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창조하는 감동이 삭제되어 있다.

 

 

 

이렇게 내가 울컥한 심정으로 인어공주 원작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강의했는데, 어떤 학생이 이런 감상을 보내왔다. “나는 절대 인어공주처럼 바보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왕자의 심장을 정확하게 찔러 생명을 되찾을 것이다.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해피엔딩이나 적자생존보다 소중한 인간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전달해줄 있을까. 인어공주는 왕자의 심장을 찌르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한 길을 택하지 않는다. 다른 여자와 첫날밤을 보낸 왕자의 얼굴을 보면서, 증오와 복수심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없는 자신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라도, 왕자를 차마 찌르지 못하는 인어는, 인간보다 인간답고, 이미 불멸의 영혼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얻어낸 것이 아닐까.

 

많은 학생들은 종이책 읽기를 멀리하지만, 나는 느리게 읽고 힘겹게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은 삶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전달해주고 싶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마녀 제니바의 말처럼, 마법으로 얻은 것은 마법처럼 쉽게 사라지니까. 글읽기와 글쓰기는 손으로 실을 잣고 손으로 바느질을 하는 힘겨운 노동처럼 ‘기계나 마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세계, 노동의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세계’의 소중함을 증언하는 인간의 포기할 없는 열망이니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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