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e
savine(saine)
Hawaii 블로거

Blog Open 07.08.2008

전체     143267
오늘방문     96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4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엄마 그애들은 이만큼 커요
06/25/2019 19:44
조회  206   |  추천   3   |  스크랩   0
IP 47.xx.xx.240

1974년 취업 비자로 사모아로 남편이 일 년 먼저 가고, 우리 가족은 서울의 집을 팔고 대기 하고 있다가 사모아로 이민을 갔다. 아이들은 사모아로 간 아빠가 금방 초청 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공부를 안했다. 중학교 다니는 큰 아들도 우리는 이민 갈건데 공부 잘해도 소용 없다는 것이다

둘째 놈은 초등 학교를 졸업을 못하고 이민을 오고 큰 딸은 4학년이고, 막내는 다섯 살이었다. 일년만에 사모아로 이민오니 아이들이 공부하기를 힘들어 했다. 할 수없이 당시 수녀님에게 한달에 250불 주고 3개월을 가르쳤다. 남자 한 달 치 월급이다. 그러고 나니 아이들이 적응을 하는 것 같았다.

나도 도움이 되라고 큰 글씨 동화책을 구해다가 읽어 주며 가르치니 처음엔 따라 하더니 아이들이 엄마 발음이 틀려 하며 말을 안 들어서 그만두었다.

남편은 중학교 2학년 다니던 큰 아들을 초등학교 5학년에 집어넣으니 아들은 덩치가 커다랗고 반애들은 꼬맹이 사이에 있었다, 한국서 중학 2학년이니 수학은 잘하여 선생님 큰 아들이 앞에 나가 가르치게 했다. 사모아 아이들은 산수를 참 못하는 것 같았다, 하와이서도 마찬가지다.

3개월 후에 큰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에 편입하라고 학교서 옮겨주어 월반을 하게 되었다,

막내를 5살이라 유치원에 집어넣으려고 하니 아무도 없는데 낯설어 할 것 같아 언니 학교에 일학년으로 집어넣었다. 막내는 양 갈래로 머리를 조롱조롱 땋아 예쁜 모습으로 언니와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사모아 아이들이 버스에서 예쁘게 땋아내린 막내의 머리를 잡아 당기면 막내 딸이 우는 것을 사모아 아이들이 즐기고 있는 것이다. 막내가 매일 울고 들어왔다. 얼마나 속이 상한지 어디다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죽지 않으니 참으라 달래기만 했다. 언니가 보는데서 그렇게 심하게 할까 참아라.” 했다. 제 언니는 천성이 착해서 동생이 당해도 소리 한번 못 지르고 눈만 껌벅껌벅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큰 딸만 야단쳤다. “네가 동생을 잘 보지. 얻어맞고 있는 것을 그냥 보고 있니?” 야단쳤다,

엄마 그 애들은 이만큼 커요손을 크게 벌리며 말한다, 큰 딸은 착하기만 한 아이. 한 번도 남을 때려 본적 없는 아이다. 그 애까지 맞을 것 같아 남편에게 학교에 데려다 주라고 했다. 남편은 일하는 현장에서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앉았다. 서너 달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었더니 낯이 익어 울고 들어오는 횟수가 줄었다. 막내가 가장 어린데 2등을 했다고 상을 받았다.

44년 전 이민 초기 이야기다, 당시 사모아 집은 지붕만 있고 네 기둥만 있는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 손녀 15식구 넘는 사람들이 세멘 바닥에서 자는 집들이 많았다

어떻게 아이를 만들어서 한 타스를 낳는지 궁금했다, 사모아는 미국령이라서 병원 공짜 학교 공짜 아이들 육아 비 나오니 많이 낳으면 돈이 많이 나와, 보통 한 가정에 아이들을 8명에서 열명이었다, 그리고 우르, 따로, 바나나가 주식이었다, 속바지는 안 입고 라발라바라는 천을 남자나 여자나 두르고 다니는데 그옷이 그들은 정장이다. 그래도 주일 날은 하얀 라발라바를 입고 신발을 쓰레빠를 신고 교회를 간다. 90% 교인이다, 첫 선교사는 잡아 먹어서 사모이를 가면 첫 번째로 보여 주는게 잡혀 먹은 선교사의 무덤이다, 도로는 넓히지 않아서 지나 가려면 차가 서로 서 있다가게끔 길이 좁다. 문화재 파손을 방지 하기 위하여 그런다고 말했다,

사모아는 모계 중심인 사회다. 한국의 60년 전 시대 같았다. 잔치는 온동네가 다 참여하고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다, 대 가족제도 속에 남의 집 냉장고는 열어서 꺼내 먹어도 흠이 아닌 사회다. 다혈질 이지만 인정 많고 예수 잘 믿는 민족이다. 다니엘 이라는 노인이 우리가 어려울 때 잘 해 주었는데 떠나오고 인사 한번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들어서 그만두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엄마 그애들은 이만큼 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