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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의 강가에서 생이별을 하다
08/10/20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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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에 비해 택도없이 짧음을 시인함에 있어

아쉬워 한다거나 서글퍼 하는거 없이

투정(?)을 부리는 어머님에게 아버님은 담담하게 말 했다.

'내가 가고싶어 간 것도 아니고 어쩌겠는가?

이렇게 가끔 올테니 맘 편하게 가지고 지내시게.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곧 북망산 에 함께 갈 터이니

너무 채근하지 마시게. 그럼 나 감세'

아버님은 서둘러 어머니의 병실을 나섰다.

어머님의 볼멘소리를 뒤로하고

지팡이를 짚고 돌아서 가시는 아버님의 등이.. 어깨가..

더 왜소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 아버님과 어머님 >


* 두 번의 대수술로 걷질 못하시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6년을,

아버님은 목욕과 식사는 물론 대소변 까지 받아내는 일을 한번도 귀찮아 하지 않으셨다.

먹을것을 당신 입에 먼저 넣는법 이 없었다.

항상 어머님이 우선 이었다.

그러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님의 치매가 시작 되었고

아버님은 더욱 노쇠해 지심에 자식들은 더 이상 두고 볼수 없었기에

아버님을 위해서라도 어머님을 그린필드 양로병원에 모시게 되었다.


* 아버님은,

어머니를 그렇게 보내고 오신날 밤,

꺼억꺼억 숨 죽여 우셨다.

먹는것도 마시는 것도 싫어라 하시며 상실감에 며칠을 지내시다가

병원으로 들어가셨고

일주일 후에,

거짓말 처럼 어머님과 같은 병원에서 한 방을 쓰시게 되었다.

비록 두 분이 휠체어를 타시며 생활을 해야 했지만

함께 하셨던 그 3개월이 아버님 에게는 꿈결같은 나날 이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3개월후,

아버님은 휠체어 에 의존하지 않아도 걸을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어쩔수없이 병원이 아닌 양로호텔로 옮기게 되었다.


* 그때부터,

두 분의 생이별이 시작 되었다.

겨우 10분 남짓한 거리지만 기동력이 없는 아버님 에게는

한 없이 먼 거리임에 틀림 없었다.

주말에 자녀들이 아버님을 모시고 어머님 에게 가는게

두 분의 유일한 소통의 장 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인 난 매주 수요일에 아버님을 모시고 어머님께로 갔다.    


*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한 마을에서 태어나

한 마을에서 자라고 그 마을에서 부부의 연 을 맺으며

1남4녀의 자녀를 두고 66년을 해로 하시고

내 몸 인듯..

내 맘 인듯..

하나이신 두 분에게는 이 생이별은 혹독한 것 이었다.

< 남편이,'영정사진을 닦으며 ' 라는 제목으로 두분의 이야기를 포스팅 했었다.

지금은 남편의 블러그가 없지만.>     



* 덥다.

아버님을 모셔다 드리고 오는길이 많이도 착찹했다.  

두 분이 함께 할수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이대로

세상과 작별할 때 까지도 두 분은 함께하지 못하는걸까?

어느분 이 먼저 가실지 모르겠지만

떠나는날,

오랜세월 함께 한 배우자의 마지막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잡은 손을 놔 주는 그런 시간은 두 분에게 주어질수 없는걸까?   


*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시는 날 까지 두 분 건강하게 사시다가

내 남편이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장지로 향 하는날

남겨진 한 분의 상실감은 말 로 표현할수 없을게다. 


* 나이가 든다는건,

늙어감 으로 많은걸 잃어가는 과정.  

그러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온 세월이 가슴에 켜켜이 샇여가는 과정.

< 사족을 달자면,

레테망자가 한번은 건너야 하는 망각의 강 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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