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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오스카†로메로♥대주교님
03/24/201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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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월24일에...

총격피살되셨던

故오스카†로메로♥대주교님의

 

 

선종♥32주기가 바로 오늘이시기에...

 

 

 

2012년

3월24[토]일은

엘살바도르의 순교자,

로메로 대주교의

서거 32주기다.

 

 

로메로는

1968년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 열린

중남미주교회의에서

선포한 모든 것을 표상하고 있다.

그는 절대 다수가 가난한 엘살바도르 민중을 대변할 뿐,

어느 정당이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지도 않았다.

그는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였다.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을 때마다 로메로 대주교는 이렇게 예언했다.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이면,

나는 다시 엘살바도르 민중 속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 엘살바도르(El Salvador)는 '구원자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엘살바도르 교회는 지난 1996년에 로메로 대주교에 대한

시복(諡福)을 교황청에 요청한 바 있는데,

2007년 8월 3일자 <연합통신>에 따르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시복하는 문제를 놓고

교황청 내부에서 의견이 양분되고 있다고 한다.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된 이유가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성향 가운데 어떠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당시 교황청 내의 이러한 논란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7년 5월 브라질을 방문한 자리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복자(福者)에 오를 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불거진 것이다.


교황청 관리들은 교황의 발언 가운데 "로메로 대주교는 신앙의 증인"이라는

 문구를 뺀 나머지는 공식문서에서 삭제 조치해

로메로 대주교가 성인(聖人)의 전단계인 복자 품위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엘살바도르 정부는 로메로를 저격한 것으로 판명되어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인

사라비아를 지난 1993년에 사면 출옥 시켰으며, 로메로의 죽음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내전이 한창이던

1980년 3월 24일 말기 암환자들을 위해

           프로비덴시아 병원 내 경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다

극우 군부세력에 의해 암살됐는데

그는 당시 군부세력의 인권 유린 실태를 비판하고

공포정치에 떠는 대다수의 빈곤한 엘살바도르 국민을

대변하는 입장을 취해 정권의 미움을 샀다.

 

당시에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해방신학에 반대하던 교황청 역시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로메로 대주교의 활동에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교황청 관리들은 로메로 대주교가

시복될 경우에 체 게바라와 살바도르 아옌데처럼

 '정치적 영웅'으로 부각되어 정부와 교회 사이 논란이

발발할까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순교는 은총입니다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수사하라고 지명된 라미에즈 아마야 판사의 말에 따르면,

ORDEN이라는 준군사적 암살단의 창설자인 호세 알베르토 메드라노 장군과

전직 첩보장교인 로베르토 다우뷔손 소령이 살해를 계획했다고 한다.

살해당하기 바로 전날인 3월 23일 사순 첫 주일 미사에서

로메로는 군인들에게 형제자매를 죽이지 말라고 애원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우리와 같은 민중입니다.

그대들은 그대들 형제인 농민을 죽이고 있습니다. ...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찬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한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들의 아픔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요구하고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

 

로메로 대주교의 시신

그가 살해당하던 날, 미사 전에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로메로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는 듯이,

 "순교는 은총입니다. 그 가치는 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랍니다.

하느님께서 내 생명의 희생을 받아주신다면,

내 피가 해방의 씨앗이 되고

곧 현실로 다가올 희망의 표징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그날 복음말씀이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라는

구절이었는데, 그는 강론에서 "역사가 요구하는 생명을 건

모험을 회피하자 말자"고 말했다.

몇 분 뒤에 성찬례를 위해 빵과 포도주를 들어 올리는 순간

한 방의 총탄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어떤 폭력도 반대하였지만, 그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정부군에게 총질하지 말라고 한 호소가

사망증명서가 되었기 때문이다.

페루의 해방신학자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로메로가 나타나기 전에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이들이 정치적 이유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메로가 죽은 이유는 정치적 이유나

교회를 수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로메로, 보수주의자에서 엘살바도르의 예언자로 거듭나

 

로메로는 본래 보수적인 인사로 알려져왔다.

1917년 8월 15일, 엘살바도르의 산미겔 지역에서 태어난 로메로는

1942년 로마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돌아와 산미겔 교구 주교비서,

엘살바도르 주교회의 사무국장, 산살바도르의 보좌주교,

교구에서 발행하는 <오리엔타시온> 편집장, 신학대학 학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우술루탄 산티아고 데 마리아 교구의 교구장을 거쳐 1977년에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평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혁적 사목방침을 염려하는 전통주의자였으며,

1968년에 열린 메데인 주교회의의 '민중의 교회로 가자'는 슬로건에 반대하고,

해방신학을 '증오에 가득찬 그리스도론'이라고 공박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로메로 대주교의 착좌식을 바라보면서 엘살바도르 민중은

이를 치명적 사건으로 받아들였으며, 군부와 부유한 지주들은 이제 평화가 도래했다고 반겼다.

그러나 착좌식이 있은 지 3주 만에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생각은 달랐지만 그와 오랜 우정을 나누던 예수회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아길라레스 성당에 미사를 봉헌하러 가다가 암살단에 의해 피살된 것이다.

그란데 신부는 공공연히 부유한 지주들을 비난했다.

엘살바도르에서 지주들은 소작농을 바위투성이 산골짜기로 내몰고 비옥한 토지를 차지했으며,

14가문의 사람들이 전체 경작지의 60%를 소유했다.

 대지주들은 국가방위군, 국립경찰, 재무성 경찰, 엘살바도르 정규군,

부패한 법조계 인사들, 대통령과 비겁한 국회의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당신도 우리 편에 서 주실 건가요?

 

그날 밤 10시에 그란데 신부의 추모미사를 집전하면서

그의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미사에 참석한 수백 명의 아길라레스 농부들이 침묵 속에서 로메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던진 무언의 질문은 "그란데 신부처럼 당신도 우리 편에 서 주실 건가요?"였다.

이날 밤 친구가 목숨을 바친 농부들의 얼굴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본 로메로는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메데인 주교회의에서 선포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처음 만났다.

 

산살바도르에서 장례미사가 열리는 날엔 교구에서 단 한 대의 미사만 봉헌되었고,

로메로는 모든 교구민을 초대하여 탄압 위기에 놓인 모든 사제들을 도와주겠다고 공표했다.

"이 사제 가운데 한 명이라도 건드리는 것은 곧, 나를 건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가톨릭 학교는 3일 동안 휴교했고, 로메로는 정부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으며,

어떤 공식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밤 사이에 '예언자'가 된 것이다.

그는 전국에 방송되는 라디오를 통해 매 주일마다

고문당하는 이들, 살해된 이들, 투옥된 이들, 위협당하는 이들과 서민들을 위해 강론했다.

이 강론은 '피의 바다에 떠있는 희망의 고도(孤島)'였다.

두 달 뒤에 나바로 신부가 암살되고,

아길라레스 성당이 군용막사가 되고,

1980년부터 1981년 중반까지 게릴라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2만5천여 명이 피살됐다.

군부와 지주들에 반대하는 교원노조와 인권운동 단체들은 물론이고

여성과 어린이도 군인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래도 미국 레이건 정부는 엘살바도르 정부군에

3천5백만 달러 어치의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로메로는 전통을 사랑하고 말수가 적은 사목자였고, 고요 속에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비판적이고 금욕적인 그 사람이

혼란과 갈등에 휩싸인 엘살바도르의 민중들 속에 녹아들어가 죽기까지 헌신했던 것이다.

만 3년 동안의 일이었다.

예언자는 오래 살지 못한다. 로메로에게 민중은 은총의 원천이었고,

복음을 더 분명히 다시 읽게 해주었고, 교회의 미래를 보게 해주었다.

그는 민중의 고난과 역사적 요청 안에서 거룩함을 발견한 예언자였고, 하느님의 사제였다.

그 과정에서 로메로는 교황대사를 비롯한 다른 고위성직자들에게 교회일치를 깨뜨린다고 비난을 받았지만,

교회의 참된 일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사랑하던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하느님만이 답을 갖고 계시다고 말했다.

 

 





▶영원한†안식을♥세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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