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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체크 -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
05/29/20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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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a?ek  -  String Quartet No.1 'Kreutzer Sonata'
야나체크  -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




Meccore String Quartet

Wojciech Koprowski / violin
Aleksandra Bryła / violin
Michał Bryła / viola
Tomasz Daroch / cello

The Arthur Rubinstein Philharmonic, Łod?, Poland
28.05.2019


1악장: 아다지오. 콘 모토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과 비올라로부터 제시되는 우수에 찬 짧은 가락과 함께 
곧이어 첼로에 의해 나타나는 춤곡 풍의 기이한 선율이 교대로 발전된다. 
이 곡을 헌정 받았고 초연했던 체코 사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수크가 개정한 대본을 
오리지널 대본으로 복원시킨 스메타나 사중주단의 비올리스트 밀란 시캄파에 의하면, 
이 1악장은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 등장하는 불쌍하고 지친 여인의 초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2악장: 콘 모토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여인을 유혹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등장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바이올린의 그림자가 깃든 노래로 시작된다. 
하지만 1악장의 약음기를 단 주제는 이곳에도 고개를 쳐들며 비극성을 암시해준다. 
이에 답하는 어두운 비올라와 첼로의 중얼거림은 
소설의 답답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곡은 이런 어두움을 씻어버리려는 듯 잠시 빠르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서 느릿하게 마감 짓는다.

3악장: 콘 모토. 비바체 - 안단테
스케르초 악장에 해당하는 3악장은 느릿하게 흐르는 슬픈 선율의 흐름을 방해하는 
포르티시모(ff, 매우 세게)의 자극적인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외침이 인상적이다. 
이 악장에서 중반부에 나오는 첼로와 비올라의 반주에 함께 등장하는 
바이올린의 높고 아름다운 외침은 곡 전체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4악장: 콘 모토. 아다지오
파국으로 치닫는 4악장은 느릿하고 긴 서주 후에 질주하는 비올라와 
이를 따르는 세 악기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곡은 1악장 첫 주제의 리듬과 변주를 점점 키워 가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몰입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편안한 안식을 주는 듯 조용히 사라져 간다. 
곡의 이런 표현주의적 성격 때문에 실제로 본고장 프라하에서는 
배우들에 의해서 이런 주인공들의 심리가 직접 연기된 후 곧이어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로 곡을 감상하는 식의 공연이 행해지기도 한다.



체코의 위대한 두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을 이은 야나체크는 
쉰 살이 될 때까지 작곡가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동안 놀라운 작품을 쏟아낸 대기만성 인물이다. 
여기에는 결정적 전기가 있었다. 
야나체크는 27살 때 자신을 음악가의 길로 인도한 스승의 딸과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그의 아내 즈덴카는 은근히 야나체크를 무시했으며, 정서적으로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 상류사회 출신과 가난한 체코인이라는 신분의 차이가 두 사람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일찍 죽으면서 부부 사이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나체크는 휴양지 루하코비체에서 우연히 카밀라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당시 야나체크는 예순셋 카밀라는 스물다섯, 38살의 나이 차에 둘 다 배우자가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야나체크는 비밀스러운 사랑을 계속했다.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오로지 카밀라에게만 집착했는데, 애정 공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1년 동안 무려 700통이 넘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야나체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만큼 그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노년에 찾아온 사랑이 야나체크에게 음악적 영감의 샘이 되었던 것이다. 

야나체크는 이 시기부터 엄청난 속도로 작곡을 했다. 
당시의 자필 악보를 보면 그가 얼마나 급하게 음악적 영감을 옮겼는지 알 수 있는데, 
오선지가 아닌 백지에 작곡한 것들이었다. 야나체크는 다혈질이었고 불같은 성격이었다. 
작곡하는 성향도 즉흥적이고 본능적이었다. 
야나체크는 두 곡의 현악 4중주를 남겼는데, 
1번은 ‘크로이처 소나타’(원 부제는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읽고’), 2번은 ‘비밀편지’이다.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는 자신의 부정행위를 강하게 옹호하는 곡이고, 
현악 4중주 2번 ‘비밀편지’는 그가 카밀라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이다. 


1923년에 작곡한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를 읽고 쓴 작품이다. 
이 무렵 야나체크는 애인 카밀라 시테슬로바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에 등장하는 고통 받고, 아파하며, 
쓰러져 가는 가련한 한 여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라고 썼다. 
그러니까 현악 4중주 1번은 음악으로 쓴 독서 감상문인 셈이다. 

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가 어떤 작품인지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불륜에 관한 소설이다. 
피아니스트인 부인이 반주를 해주던 바이올리니스트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알자 남편은 부인을 권총으로 쏴 죽인다.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반주해주던 곡이 
베토벤의 유명한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였고, 
이것이 그대로 소설의 제목이 되었다.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부인을 살해한 남편을 옹호하고 있다. 
이 남편에 대한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게끔 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 불륜은 없어져야 하며 심지어는 부부 사이에도 
육체적 관계가 아닌 정신적인 사랑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나체크는 현악 4중주 1번을 톨스토이의 소설에 감명을 받아서 쓴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는 이 소설에 강한 반발심을 느껴 항의하는 뜻으로 작곡한 것이다. 
그는 소설 속의 바이올리니스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러한 사랑의 진실과 정열을 몰라주는 톨스토이에게 이 곡을 통해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야나체크는 남편에 의해 짓밟히고 살해당한 아내의 고통을 대변하기 위해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여기서 네 대의 현악기는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부가 
서로 소통의 한계를 절감하고 절망에 빠진 모습을 그리고 있다.
 3악장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애잔한 선율, 
그리고 갑작스럽게 그것을 방해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격렬한 저항, 
이어지는 4악장에서 긴 서주 후에 질주하는 비올라, 이를 따라 파국으로 치닫는 세 악기, 
변주가 진행되면서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클라이맥스로 치닫다가 
마지막에 드디어 편안한 안식에 도달한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매우 격정적이다. 
시작부터 간격이 넓은 트릴과 변덕스러운 템포 변화는 심상치 않다. 
특히 콰르텟 작곡법이나 편곡법에서 금기시되어 있는 빠른 아르페지오를 시도한다. 
피아노 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기법은 사실 4중주에서는 거의 연주가 불가능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라벨이나 스크랴빈의 피아노 음악을 현악기로 편곡하려다 실패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기법의 차이 때문이다. 

그런데 야나체크는 해냈다. 
성공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무리하게 집어넣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어내긴 했는데, 바로 고통스러움이다. 
기교상의 어려움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절규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감정의 고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피치카토와 옥타브의 움직임을 동시에 사용하거나 
폰티첼로(현악기로 쉭쉭거리는 잡음 소리를 내는 것) 기교를 삽입해서 새로운 음향을 시도한다. 
그러나 마지막 악장의 끝부분은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다.


아나체크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같은 체코의 위대한 소설가 밀란 쿤데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바치는 오마주로 썼다고 한다)은 
같은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영화에는 전편에 걸쳐 야나체크의 음악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베토벤의 음악을 쓰려다 밀란 쿤데라의 고집으로 야나체크의 음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기본적인 음향적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라는 피아노곡집이다. 
1901년부터 1908년에 작곡한 이 작품은 음악으로 쓴 일종의 자서전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야나체크는 고향 후크발디의 풍경,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노래했다.

영화의 정서적 근간을 이루는 또 다른 중요한 곡이 바로 두 편의 현악 4중주이다.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성격이 짙은 이 두 편의 현악 4중주는 
프라하에서 시위를 벌이다 잡혀 온 사람들에게 경찰이 자백을 강요하는 장면, 
토마스와 테레사가 위험을 피해 도피하는 장면, 테레사가 떠나고 
토마스가 혼자 쓸쓸하게 호수를 바라보는 장면, 
토마스가 병원장의 요구를 거절하는 장면 등에 나온다. 
영화 <프라하의 봄>에 나오는 야나체크의 음악은 단순하고 가벼운 음악과 
자기 존재를 정직하게 드러낸 표현주의적인 음악으로 구별된다.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가 전자라면 두 곡의 현악 4중주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야나체크가 남긴 두 편의 현악 4중주를 
‘야나체크 음악의 절정’, ‘표현주의 음악의 정수’, ‘총체적 완벽성’이라는 말로 극찬했다. 
쿤데라의 말에 의하면, 야나체크는 본인이 표현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표현주의라는 말에 적합한 유일한 작곡가라는 것이다. 
덧붙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의 첫머리에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음반시장에 때 아닌 야나체크 열풍이 불기도 했다.


전해지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는 성질이 굉장히 불같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야나체크의 사진에서도 그런 성품이 고스란히 전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은 1920년대에 촬영된, 
은발의 곱슬머리에 콧수염마저 하얀, 거의 말년의 모습이다. 
얼핏 봐도 성질 급한 노인네가 분명하다. 
물론 야나체크는 카메라를 다소 의식한 듯, 적당히 살이 붙은 얼굴에 살짝 미소마저 머금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굉장히 자의식이 강하고 성격이 급한 예술가의 인상이 드러난다. 
청년 시절의 모습도 그랬다. 독일 라이프치히음악원에 유학했던 1879년의 사진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때는 노년기와 달리 얼굴에 살집이 전혀 없어서 뾰족한 턱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결혼하기 직전이었던 2년 뒤에 약혼녀 즈덴카 슐초바와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갸름하고 뾰족한 얼굴에 고집이 굉장히 세 보이는 곱슬머리의 청년이 
어딘가를 무표정하게 쏘아보고 있는 표정이다. 

성격이 과격하고 급했던 그는 말하는 속도도 아주 빨랐고, 
필체도 급하게 갈겨쓰는 스타일이었다. 
또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말을 돌직구로 쏟아내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스무 살에 프라하의 오르간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바로 그 독설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불화가 잇따랐다고 전해진다. 
당시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비평을 종종 쓰곤 했는데, 
과격한 독설이 문제가 돼 심지어 학교에서 잠시 쫓겨난 적도 있었다. 
물론 이후에도 그런 성격은 별로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삶을 들여다보노라면, 차갑고 냉정하고 이지적인 모습보다는 
불 같이 뜨거운 열정과 남을 의식하지 않는 고집 같은 것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음악에서도 그랬다. 
그는 체코의 선배 작곡가들인 스메타나, 드보르작 같은 이들보다도 
민족적인 요소에 더욱 매달리면서 서유럽적인 것과 거리를 두려 했다. 
라이프치히와 빈에서의 짧은 유학 시절에 그가 확인한 것은 
서유럽적인 것과의 불일치, 혹은 갈등이었다. 
곧바로 체코의 브르노로 돌아와서 거의 평생을 그곳에 머물렀다. 
아울러 작곡가로서의 그는 영감과 직관이 유난히 두드러졌던,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스타일에 가까웠다. 
대개의 음악가들은 청년기에는 감성적이다가도 점점 그런 측면을 의식적으로 절제하거나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마련인데, 
야나체크는 외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감성적인 음악을 구사했다. 

 야나체크는 1881년에 즈덴카 슐초바와 결혼했는데, 
열한 살 연하였던 즈덴카는 원래 야나체크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학생이었다. 
게다가 야나체크가 다녔던 브르노 사범학교의 교장 에밀리안 슐츠의 딸이기도 했다. 
슐츠는 말하자면 야나체크의 은사였다.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들어갔던 것, 또 독일의 라이프치히로 유학을 떠났던 것도 
다 뒤에서 그가 돌봐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야나체크는 열두 살에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어찌 보자면 슐츠 선생이 ‘대부’ 역할을 했던 셈이었다. 
결국 1881년에 피아노를 가르치며 정이 들었던 그의 딸과 결혼해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된다.

당시의 체코는 오스트리아에게 지배를 받던 시기였다. 
문화적으로는 게르만주의에 저항하는 체코인들의 자각이 한창 번져가던 때였다. 
슐츠 선생은 바로 독일-오스트리아 혈통의 사람이었고 
그의 딸인 즈덴카는 유난히 독일적 정체성이 강했던 모양이다. 
체코에서도 상류층의 언어로 통했던 독일어를 선호했고, 
일상생활에서도 독일적인 방식을 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야나체크는 모국의 음악적 전통, 
특히 모국어의 억양과 리듬에 담긴 음악성에 매우 천착했던 작곡가였다. 
물론 그런 문화적 갈등만이 다는 아니었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성격 차이로 인한 부딪힘이 결혼 초기부터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혼 이듬해에 딸 올가를 낳고 잠시 별거했다가 재결합, 
1886년에는 아들 블라디미르를 낳았지만 두 살 때 아이가 사망하면서 
부부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진다. 
사랑했던 딸 올가마저 1903년에 스물 한 살로 세상을 떠나자 부부는 거의 남처럼 살게 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야나체크는 새로운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자신보다 서른여덟 살이나 어린 카밀라 슈테슬로바(1892~1935)라는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온천휴양지에서 1917년에 ‘운명적으로’ 처음 만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 2년 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다. 
1915년에 야나체크가 고향인 후크바르디를 찾았을 때, 
유태인 골동품상의 아내였던 카밀라를 처음 봤던 것이다. 
아마 야나체크는 그 첫 만남에서 카밀라에게 반했을 겄이다. 
이성에게 매료되는 것은 본능의 영역에 속하는 행위이고,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가 뜨거운 남자였다 할지라도, 어느새 예순 살이 넘은, 
당시로서는 이미 노년에 접어든 나이였다. 
카밀라는 겨우 스물세 살, 게다가 이미 결혼한 여자였다. 

그런데 그 2년 뒤에 모라비아의 온천휴양지 루하코비체에서 카밀라와 재회하면서, 
야나체크는 걷잡을 수 없는 연애감정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사진으로 전해지는 카밀라의 외모는 즈덴카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즈덴카는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살집이 좀 있는 편인데 비해, 
카밀라는 약간 마르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이다. 
검은 머리카락에 어딘지 집시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실제로 야나체크는 그녀를 ‘집시 소녀’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이 휴양지에 각자의 공식적인 파트너와 함께 왔다는 것이다. 
야나체크는 즈덴카와, 카밀라도 자신의 남편과 함께 왔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재회 이후에 야나체크의 가슴 속에서 카밀라는 운명의 여인, 
혹은 창작의 뮤즈로 자리한다. 
이 연애는 야나체크의 후반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야나체크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사랑에 빠진 그에게 카밀라는 음악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이후 그는 ‘말년의 전성기’라고 부를 정도로 창작에 몰두한다. 
새로운 사랑에 빠져들면서 가장 먼저 썼던 곡은, 
그가 남긴 유일한 연가곡집 <어느 사라진 자의 일기>였다. 
집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을 읊고 있는 노래들이다. 
1921년에 완성한 비극적 오페라 <카티아 카바노바>도 
카밀라에게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야나체크는 말년의 뮤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후반기의 걸작들을 속속 써낸다. 
그리고 1928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카밀라에게 자그마치 700통이 넘는 사랑의 편지를 보낸다.

 
생애 말년에 작곡한 두 곡의 현악4중주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야나체크에게 가장 비중이 높은 음악적 장르는 오페라였다. 
현악4중주는 딱 두 곡을 남겨 놓고 있는데, 
1번은 ‘크로이처’, 2번은 ‘비밀편지’ 이다. 
두 곡 모두 카밀라와 열애에 빠진 이후에 작곡됐다. 


야나체크는 또 하나의 현악4중주곡인 2번 ‘비밀편지’를 생애 마지막 해인 1928년에 작곡한다. 
말 그대로 카밀라와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담아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야나체크의 법적인 아내 즈덴카와 카밀라의 남편조차도 둘의 관계를 익히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야나체크의 가슴 속에서 카밀라와의 열애는 ‘비밀스러운 것’이었나 보다. 
야나체크는 현악4중주 2번을 작곡하면서
 “나는 뭔가 좋은 것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이 거기 담겨 있다”라고 카밀라에게 편지를 보냈다. 
같은 해에 그는 토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바탕을 둔 마지막 오페라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를 작곡하고, 
그해 8월에 세상을 떠났다. 
고향인 후크바르디의 작은 집에서 카밀라와 그녀의 아들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폐렴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다. 
아이가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 화근이었다고 한다. 
향년 74세였다. 카밀라는 그로부터 7년 뒤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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