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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 E단조 Op. 93
04/12/202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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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itry Dmitriyevich Shostakovich  -  Symphony No.10 In E Minor, Op.93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 E단조 Op. 93




Christoph von Dohnanyi, cond
The Cleveland Orchestra



전악장 이어듣기


1악장 Moderato 3/4박자
 연주에 22분에서 26분 정도가 소요되는 장대한 악장이다. 
통상적인 알레그로가 아닌 모데라토 템포로 출발하여 
시종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일관하며, 
서정적 기운과 소박한 인간미, 집요한 압박과 강렬한 폭발 등을 아우른다. 
아울러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장에서 자신의 가곡집 [푸시킨의 시에 의한 4개의 모놀로그]의 
두 번째 곡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 노래의 제목은 ‘당신을 위한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이다.

1. Moderato  22'26


2악장 Allegro 2/4박자
스케르초의 성격을 띤 알레그로 악장으로, 
급박하게 휘몰아치는 진행과 격렬하게 두드려대고 울부짖는 듯한 울림이 지배한다. 
짜릿한 스릴과 쾌감,현기증과 공포감 등을 함께 유발하는 음악으로 풍자적인 기운도 감지된다. 
한편 이 악장의 주요주제는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서주에서 가져온 것이다.

2. Allegro  4'12


3악장 Allegretto 3/4박자
말러의 [교향곡 7번]에 등장하는 ‘밤의 음악(Nachtmusik)’을 연상케 하는 
춤곡풍 악장으로 다채로운 흐름을 지니고 있다. 
앞선 언급했던 ‘D-S-C-H 동기’는 ‘D-E♭-C-B’
(독일식으로 D-Es-C-H)로 구성된 음형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또 엘미라(Elmira)를 나타내는 동기는 ‘E-La-Mi-Re-A’
(독일식과 프랑스식의 혼합)로 구성된 음형으로 호른에서 나타난다. 
이 두 동기는 교대로 나타나면서 그 간격이 점점 가까워진다.

3. Allegretto  11'46


4악장 Andante - Allegro 6/8 - 2/4박자
안단테의 서주로 출발해서 알레그로의 주부로 이행하는 피날레 악장이다. 
서주에서는 어둡고 우울한 선율이 흐르지만, 
주부로 넘어가면 밝고 상쾌한 선율이 활기차게 흐르기 시작한다. 
중간에 그루지야의 춤곡인 고파크(gopak)이 위세를 떨치며 그 흐름을 방해하는 듯하지만
(그루지야는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 정점에서 ‘D-S-C-H 동기’가 크게 울려 퍼지면 
한동안 드리워졌던 그림자는 걷히고 다시금 밝은 분위기가 흐른다. 
이후에는 ‘D-S-C-H 동기를 비롯하여 활기찬 선율과 
리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친다.

4. Andante - Allegro  13'24


1953년 12월 17일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대강당에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지휘하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관현악단의 연주로 
쇼스타코비치의 열 번째 교향곡이 공개되었다. 
그로써 쇼스타코비치는 베토벤이 멈춰 섰고 말러가 주저했던 
‘제10번’이라는 벽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이 [교향곡 제10번 e단조]는 ‘혁명’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교향곡 제5번 d단조]와 더불어 
그의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목록에서 ‘제10번’의 등장은 
전작인 ‘제9번’ 이후 무려 8년 만의 일이었다. 
이전의 작품들이 나온 시기를 살펴보면, ‘제5번’ 이후에는 
거의 2년에 한 곡 꼴로 새 교향곡을 내놓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제10번’만 유독 그렇게 오랜 시간을 소요했던 것일까?

 1945년에 발표한 [교향곡 제9번 E♭장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는 다시금 ‘공공의 적’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을 기념할 만한 찬란하고 장엄한 대작 대신, 
디베르티멘토에 가까운 단출하고 경쾌한 교향곡을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단 ‘9번 교향곡’의 전통적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았고, 
세인들의 기대를 저버린 처사였으며, 
무엇보다 소련 당국자들의 눈 밖에 날 만한 행동이었다.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1948년의 악명 높은 ‘즈다노프 비판’을 통해서 
다시금 ‘형식주의자’로 낙인찍혀 자아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당연히 그의 ‘진실된’ 창작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그는 한동안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를 위시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작품들 뒤로 숨어야 했다.

시간이 흘러 1953년 3월, 철권을 휘두르던 독재자 스탈린이 죽었다. 
정권은 말렌코프에게 넘어갔고 소련 사회에도 ‘해빙’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쇼스타코비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교향곡 제10번 e단조]를 작곡하여 발표했던 것이다. 
다만 이 작곡 시기는 작곡가 자신의 말에 따른 것이고, 
일설에 의하면 작품이 이미 1951년에 완성되어 있었고 일부 스케치는 
1946년부터 진행되어 왔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교향곡 9번’ 발표 이후 그가 겪었던 일들과 
그의 깊은 속내가 반영된 ‘진실의 거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교향곡은 다시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전반부의 비극성에 비해 후반부의 희극성이 미약해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확실히 스탈린 사후 ‘해빙 무드’를 맞이한 ‘사회주의 국가’ 소련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고 볼 소지가 다분했다. 
그런가 하면 인생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한 관념적 비극성을 
깊이 있게 묘사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짧은 작곡 기간’에 기인한 아쉬움을 피력하면서 
어느 정도 작품의 결함을 인정하는 선에서 말을 아꼈다. 
정작 작품의 의미에 대한 그의 언급은 단순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감정이나 정열을 그리고 싶었다.”

  일단 이 교향곡에 관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실은 
후반 두 악장에 작곡가의 음악적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른바 ‘D-S-C-H 동기’를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첼로 협주곡 제1번], [현악 4중주곡 제8번] 등 
여러 작품에서 사용한 바 있다. 
이것은 보통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이미지를 작품에 투영한 장치로 풀이된다.

  한편 보다 은밀한 장치들은 그의 사후에야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1979년에 소련의 망명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는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증언』(볼코프가 쇼스타코비치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저술한 회고록)에서 
제2악장을 ‘스탈린의 음악적 초상화’로 지목했다. 
독재자가 좋아했던 노래의 단편으로 시작되는 이 악장에서 그의 이미지를 
마치 ‘악마의 풍자처럼 가혹하고 냉혹한’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1993년에는 제3악장에 
한 여인의 음악적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여인은 엘미라 나시로바라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음악가로 
한때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였으며, 쇼스타코비치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아직도 모호한 이 작품에 대한 해석에 유의미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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