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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톡 -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Sz.116
03/27/2020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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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éla Bartók  -  Concerto for Orchestra, Sz.116, BB 123
바르톡  -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Sz.116




전악장 이어듣기

London Symphony Orchestra
Antal Dorati, Cond
Rec : 1962


1. 서장 Introduzione : Andante non troppo - Allegro vivace
소나타 형식에 기초한 첫 악장은 어둡고 무거운 서주로 출발한다. 
저음부의 4도 진행, 플루트의 파를란도 루바토 선율 등 처음부터 
바르톡 특유의 스타일이 선명히 떠오른다. 
얼마 후 트럼펫이 억제된 코랄 선율을 꺼내 놓으면 음악의 흐름이 차츰 고조되면서 
알레그로의 주부로 진입하고, 마침내 제1주제가 돌연 솟구치듯 등장한다. 
서정적인 제2주제는 오보에로 제시되고, 이후 음악은 대체로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를 띠지만 
제1주제와 제2주제 사이에 트롬본으로 나타났던 힘찬 경과부 주제가 다시 나타나 
푸가토로 발전하면 치열한 빛을 발한다.

I. Introduzione - Andante non troppo-Allegro vivace


2. 쌍의 놀이 Giuoco delle copple - Allegretto scherzando
작은북의 리듬 연주로 출발하는 이 스케르초 악장에서는 관악기들이 
각 파트마다 두 개씩 쌍을 이루어 연주를 이어가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된다. 
쌍을 이룬 관악기들은 파트마다 다른 음정간격을 유지하며 화음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을 받쳐주는 싱커페이션 리듬이 흥미진진한 기분을 더하며 ‘쌍의 놀이’를 연출한다. 
금관에 의한 부드러운 코랄 풍의 중간부를 지나서 제1부로 복귀하면, 
서로 다른 ‘쌍의 놀이’의 다채로운 조합 및 첨가가 이루어지고, 
마지막에는 전체가 하나의 화음을 연주하면서 마무리된다.

II. Giuoco delle coppie - Allegretto scherzando


3. 비가 Elegia - Andante non troppo
첫 악장 서주에 나왔던 4도 동기로 출발하는 이 악장은 바르톡 특유의 
어둡고 정밀하면서 극적인 야상곡 풍 음악인데, 
바르톡 자신은 ‘우울한 장송곡’이라고 불렀다. 
구조는 A-B-C-B-A로 정리할 수 있는데, 
A 부분에서 오보에 주제를 장식하는 다채로운 소리들이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내고, 
B 부분은 첫 악장 서주의 트럼펫 선율을 주제로 취하고 있으며, 
C 부분에서는 파를란도 루바토의 민요선율이 등장한다.

III. Elegia - Andante non troppo


4. 중단된 간주곡 Intermezzo interotto - Allegretto
또 하나의 스케르초 악장으로, 경묘하고도 서정적인 민요풍의 주부와 
클라리넷의 경쾌한 선율을 중심으로 익살스런 제스처가 두드러지는 
중간부가 교대되는 복합3부 형식이다.
여기서 중간부의 클라리넷 선율은 (바르톡이 방송에서 들었던 것으로 알려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7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침공의 주제’와 유사한데, 
쇼스타코비치의 선율은 점진적으로 고조되어 절정에 이르지만 
바르톡의 선율은 풍자와 조소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사실 이 선율은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에 나오는 것인데, 
이 오페레타는 히틀러가 좋아했던 작품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주부의 따뜻한 칸타빌레 선율은 유행가에서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대목의 가사는 ‘그대는 사랑스럽다, 그대는 아름답다, 헝가리여!’라고 한다. 
즉 이 악장에는 바르톡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곳을 떠나온 원인 제공자에 대한 야유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겠다.

IV. Intermezzo interrotto - Allegretto


5. 종곡 Finale : Pesante - Presto
바르톡은 이 긍정적인 피날레 악장에서 자신의 음악적 원천인 
헝가리, 루마니아, 발칸 반도의 민요에 대한 애정을 무한한 음악적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4대의 호른이 꺼내놓는 힘찬 팡파르로 출발하며, 
무궁동 풍의 현란한 패시지가 이어지며 열광적으로 고조되는 흐름, 
첫머리의 팡파르 음형에 기초한 카논, 
폭넓은 하행음형으로 출발하는 트럼펫 선율이 이끌어내는 극적 장면 등이 
변화무쌍한 흐름 속에서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진행된다.

바르톡은 이 악장을 위해서 두 개의 엔딩을 준비했는데, 
하나는 다소 갑작스러운 인상을 남기고, 
다른 하나는 보다 전통적인 스타일의, 점진적인 고조에 기대고 있다.

V. Finale - Presto


벨라 바르톡,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Béla Bartók, Concerto for Orchestra, Sz.116, BB 123

통상 ‘협주곡’이라고 하면, 단 하나의 독주악기를 오케스트라가 받쳐주는 
‘독주 협주곡’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 콘서트 무대에서 주로 만나게 되는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플루트 협주곡’ 등이 모두 ‘독주 협주곡’에 속한다. 
물론 개중에는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이나 브람스의 ‘2중 협주곡’처럼 
복수의 독주악기가 등장하는 협주곡도 있고, 
고전파 시대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협주 교향곡)’나 
바로크 시대의 ‘콘체르토 그로소(합주 협주곡)’를 거론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어떤가?

20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작곡가 벨라 바르톡의 작품인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앞서 거론한 모든 협주곡 양식을 초월한, 혹은 융합한 지점에 우뚝 서있다. 
별도의 독주악기 없이 오케스트라에 속한 악기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기능을 뽐내며 
한 데 어우러지며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 곡은 바르톡이 동구권 민속음악에 기초한 
특유의 기법을 가장 원숙한 필치로 구사하여 빚어낸 역작이자, 
다분히 현대적인 시대정신이 반영된 기념비적 걸작이다.

이 곡을 쓰기 직전인 1943년 봄, 바르톡은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 누워있었다. 
나치에 협력하는 호르티 정권에 대한 혐오감으로 조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3년, 
예술적 영감의 원천인 헝가리의 산과 들, 
동구권 민속음악으로부터 멀어진 그는 깊은 고독에 빠졌고, 
이민 후 단 하나의 작품도 쓰지 못 하고 있었다. 
그의 기존 작품들은 미국 음악계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도 여의치 않았다. 
당연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벽증적인 성격의 그는 군에 입대한 아들이 부친 돈마저 한 푼도 쓰지 않고 돌려보냈다. 
급기야 1년 전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건강은 
결국 백혈병 진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그를 몰아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러시아 출신으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고 있었던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병상의 바르톡을 찾아왔다. 
쿠세비츠키는 바르톡에게 자신의 아내 나탈리를 추모하기 위한 
오케스트라 작품을 위촉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르톡은 심사숙고한 뒤 그 제안을 거절했는데, 
자신은 중병에 걸렸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미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쿠세비츠키는 
자신에게 재단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수표를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설득했다. 
사실 그 배후에는 요제프 시게티, 프리츠 라이너 등 바르톡을 도우려는 
헝가리 출신 음악가들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지만, 
그러한 사연은 자존심 강한 바르톡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다행히 바르톡은 쿠세비츠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직후 병세도 다소 호전되었다.

그 해 여름, 바르톡은 부인과 함께 뉴욕주 사라낵(Saranac) 호숫가의 요양원에서 지냈다. 
대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한적한 자연의 품에 안기자 
그의 생명력과 창작력이 다시금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8월 15일부터 10월 8일 사이 밤낮으로 작곡에 매달렸고, 
마침내 20세기에 만들어진 관현악곡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작을 완성해냈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그 이듬해 말 보스턴에서 초연되었고, 
바르톡은 그다음의 뉴욕 공연에서 자신의 신작을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사실상 이 곡은 바르톡의 유일한 ‘교향곡’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구성적인 면에서 보면, 제1악장은 도입부를 가진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고, 
제2악장과 제4악장은 익살맞은 스케르초, 제3악장은 무거운 야상곡풍의 느린 악장이며, 
마지막 제5악장은 장대하고 화려하며 활력 넘치는 피날레이다. 
실제로 말년의 바르톡은 지인들에게 정식 교향곡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그는 이 곡의 많은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에 속한 여러 악기들을 
마치 협주곡의 독주악기처럼 처리했고, 
각각의 악기들 또는 각 파트 사이의 기교적인 주고받음과 유기적인 어우러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이런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일부러 제목에 ‘협주곡’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교향곡적인 오케스트라 작품의 제목은 오케스트라의 개별 악기들을 
콘체르탄테 내지 독주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성향에 의해 설명된다. 
예를 들자면 ‘명인기적’ 처리 수법은 제1악장 발전부의 푸가토(fugato) 단락들(금관악기)에서, 
마지막 악장 기본 주제의 무궁동(無窮動)적 구절(현악기)에서, 
그리고 특히 악기들이 각기 쌍을 지어 병진행으로 
화려한 구절들을 내놓는 제2악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곡을 이루는 다섯 개 악장은 이른바 ‘아치 구조(arch form)’를 취하고 있다. 
즉 가운데 놓인 제3악장을 중심으로, 두 개의 스케르초 악장(제2, 4악장)이 위치하고, 
서로 연관된 제1악장과 제5악장이 맨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바르톡은 이런 식의 구조를 좋아했는데, 현악4중주 제4번(1928)과 제5번(1934)이 대표적이다.


바르톡은 1944년 12월 1일 보스턴에서 거행된 이 곡의 초연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표제적 설명을 제공했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 익살스런 두 악장을 제외하면 - 
제1악장의 엄숙한 기분과 제3악장의 음울한 죽음의 노래로부터 마지막 악장의
삶에 대한 애착으로 점차 옮겨간다.” 
그리고 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통해서 희망과 활력을 되찾은 바르톡은 
병마의 엄습을 1년 반 동안 버텨내며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비올라 협주곡](미완성) 등으로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것이다.
결국 이 곡은 작곡가의 고달팠던 말년의 노정과 상념이 투영된 작품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 곡을 대하면서 우리는 마치 협주곡의 독주악기처럼 다루어진 
오케스트라 속 악기들의 활약상을 주시하며 그 묘미를 만끽하되, 
한편으론 그 이면에 깃들인 의미도 차분히 음미해볼 필요가 있겠다.


♣  추천음반  ♣

[CD] 이반 피셔(지휘)/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Philips)
[CD] 프리츠 라이너(지휘)/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RCA)
[CD] 게오르그 솔티(지휘)/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Decca)
[CD] 미하엘 길렌(지휘)/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 (Haenssler)
[DVD] 피에르 불레즈(지휘)/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uroArts) * 영상물


♣  바르톡 음악의 특징  ♣

벨라 바르톡(1881-1945)의 작품들은 
난삽하고 복잡한 현대음악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꼽힌다. 
바르톡 음악의 특색이라면 무엇보다 헝가리 마자르족의 민속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주위의 음악인들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관례였던 빈 유학대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의 진학을 선택했으며, 
여기에서 1년 후배인 졸탄 코다이(1882-1967)를 만날 수 있었다. 
바르톡은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해인 1904년 누이와 함께 헝가리의 시골 마을에 머물다가 
우연히 그 지방의 민요를 듣게 되었으며,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작곡자는 
이듬해부터 형가리 시골의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여행에 나서게 된다. 

이 여행은 음악적 동지이자 민요연구자였던 코다이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당시로서는 대단히 무거웠던 구식의 녹음기까지 들고 다녀야 하는 고생스러운 과정이었으나 
바르톡은 어떤 사명의식까지 느끼며 헝가리의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면서 민요의 수십에 열을 올렸다. 
초기에 이들은 민속음악의 채집이 자신들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 하지만 
몇 년간 계속되는 여행 도중에 두 사람은 민요를 발굴, 보존하고 
이것을 순수하게 연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1906년 두 사람은 공동명의로 "헝가리 민요 20곡"을 출판했으며, 
바르톡이 부다페스트 음악원의 교수로 임명된 1907년 이후에도 
루마니아, 체코, 슬로박, 그리고 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민요에 대한 채집은 계속되었다. 
헝가리나 동부유럽의 민속음악의 영향은 바르톡의 음악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특히 그의 초기 작품에 여러 지역의 민속적인 음악의 특징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시기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조국인 헝가리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벨라 바르톡은 
나치를 피해 1940년 미국에 망명했는데 다른 유럽 출신 음악가와 달리 
음악계에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등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더구나 백혈병과 향수병으로 심신은 더욱 나약해지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생활의 악순환이었다.
(결국은 1945년 미국에서 가난 속에 사망한다.)
이러한 그를 너무나 안타깝게 여긴 동포였던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와 
바이올리니스 ‘요제프 시게티’ 는 당시 대지휘자였던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에게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쿠세비츠키는 바르톡에게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의뢰하게 되어 
1943년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Concerto for Orchestra가 완성되게 되었으며 
1944년 12월 쿠세비츠키의 지휘와 보스턴 교향악단의 연주로 성곡적인 초연을 하게 된다.
이 곡이 심포닉한 협주곡으로 명명되어진 이유에 대해서 작곡자인 바르톡은 
“보스턴 교향악단 단원들의 뛰어난 기량을 충분히 고려해서 
갖가지 악기를 독주적 또는 협주적으로 사용했다”고 당시 설명하고 있으며, 
쿠세비츠키는 “의심의 여지 없이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관현악곡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최초의 신비적인 도입부부터 종곡의 고조되는 부분까지 숨막히는 듯한 느낌의 이 곡은 
바르톡의 음악을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잘 들어보아야 할 작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고난속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단호함을 통해 결국은 삶에 대한 
긍정을 표현해낸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현대음악의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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