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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 - 첼로 협주곡 E단조 Op. 85
02/20/20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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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Elgar  -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엘가  -  첼로 협주곡 E단조 Op. 85




Sheku Kanneh-Mason, cello
London Symphony Orchestra
Sir Simon Rattle, cond
Rec, 2019
Recording Venue:  Abbey Road, London


에드워드 엘가는 프레더릭 딜리어스(Frederick Delius, 1862-1934),
랠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와 더불어 
영국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는 1857년 영국의 브로드히스에서 태어났으며 
음악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피아노 레슨을 하며 악보와 악기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엘가는 8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15살 때까지 일반 학교에 다녔다. 
음악은 독학으로 공부했다. 
음악에 관한 책이라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읽었으며, 
《그로브 음악사전》에 있는 허버트 패리의 음악 관련 논문도 읽었다.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으로 유학 가기 위해 독일어도 배웠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엘가는 커다란 실망과 좌절을 느꼈다.
1872년, 학교를 졸업한 엘가는 지방 변호사 사무실에 직원으로 취직했다. 
이 시절 그는 음악과 문학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엄청난 독서로 해소했다. 
그러다가 결국 사무실을 그만두었다. 
그 후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아버지 가게 일을 도우며 생계를 이어 갔다. 
사실 엘가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소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소리의 울림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접었다. 
22살 때인 1879년, 
그는 '월체스터 앤드 카운티 루나틱 어사일럼 부속악단'의 지휘자로 취임했다. 
이때 연주곡을 직접 작곡하거나 편곡했는데,
이 경험이 작곡가로서 그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악기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치할지 실제로 실험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1880년, 그는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마들렌 성당에서  생상스의 오르간 연주를 들었다. 
1882년에는 독일 라이프치히로 가서 자신의 우상인 슈만, 브람스, 루빈스타인, 
바그너의 음악을 실컷 들었다. 
이 무렵 그는 작품을 출판할 출판사를 찾기 위해 런던을 자주 찾았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1884년 4월,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절망감을 드러냈다. 
<"날이 갈수록 음악가로 성공하려는 희망이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나는 빈털터리. 1센트도 없다."> 
그의 나이 29살이던 1886년, 엘가는 캐롤린 앨리스 로버츠라는 여성을 제자로 맞아들였다.
귀족 출신인 그녀는 엘가보다 9살 연상이었음에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엘리스의 아버지가 딸의 상속권을 박탈할 정도로 반대했지만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1889년 결혼에 성공했다. 
엘리스는 아내이자 매니저였고, 엘가 작품의 애호가이자 비평가였다. 
그녀는 "천재를 보필하고 그가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여자로서 충분히 일생을 바칠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엘가는 아내로부터 상류 사회의 관습을 배우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기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알게 되었다. 
결혼 후 런던으로 이사한 엘가는 오로지 작곡에만 전념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엘가는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Op.12)〉를 비롯한 몇 곡이 악보로 출판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성공은 멀어 보였다.
여러 가지 기회들이 감질나게 찾아왔지만, 
번번이 마지막 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런던에 살고 있었지만 작곡의뢰는 주로 고향인 우스터에서 들어왔다. 
런던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된 엘가는 
1891년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드디어 기회가 왔다.
42살 때인 1899년에 발표한 
'수수께끼 변주곡' (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Op.36 'Enigma')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곡으로 엘가는 헨리 퍼셀이후 영국이 배출한 가장 훌륭한 작곡가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 후에 발표한 합창곡 '제론티우스의 꿈'(The Dream of Gerontius Op.38)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두 작품은 1901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연주되었는데, 
한 비평가는 그를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에 비견되는 작곡가라고 극찬했으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듣고 
"우리 시대 최고의 진보적인 작곡가 엘가에게 건배를 올립시다."라고 외쳤다. 
1901년,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위풍당당 행진곡'
(Pomp and circumstances March Op.39)이 연주되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청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이렇게 엘가는 영국 최고의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다. 
1904년에는 코벤트 가든에서 사흘 동안 엘가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이는 그 어떤 영국 작곡가도 누려 보지 못한 호사였다. 
이듬해 그는 버밍엄 대학 음대에 교수로 초빙되었다. 
하지만 강의에서 영국 음악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나중에 그는 이에 대해 사과하고, 그 자리를 친구에게 물려주었다. 
1912년, 엘가의 가족은 런던 근교의 햄스테드로 이사했다. 
노만 쇼가 디자인한 네더홀 가든스에 있는 대저택이었다. 
1920년 4월, 평생의 반려자인 앨리스가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죽음과 함께 창작을 향한 엘가의 열정도 사그라졌다. 
그 후 그는 햄스테드의 집을 처분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작곡보다는 화학 실험, 축구, 경마, 자전거,
자동차, 여행 같은 취미 생활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1934년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 Adagio - Moderato  8'13


2. Lento - Allegro molto  4'20


3. Adagio  4'53


4. Allegro  11'42


엘가는 시기적으로는 근대에 살았지만, 
작품 경향은 고전 형식에 영국의 민족적인 요소를 가미시킨 낭만주의 작곡가로 꼽힌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독창성이나 혁신적인 면은 부족하지만,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 실력을 바탕으로 장엄하고 
고귀한 영감이 깃든 귀족적인 음악을 썼다.
1899년에 작곡한 〈수수께끼 변주곡〉은 주제와 14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관현악곡이다. 
각각의 변주곡에는 사람의 이니셜인 듯한 알파벳이 붙어 있다. 
이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것은 제9변주 〈님로드〉이다. 
님로드는 성서에 나오는 사냥꾼의 이름인데, 
그의 친구인 '예거'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예거'가 독일어로 사냥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13변주에는 '로망스'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름 그대로 아주 낭만적인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 
엘가가 항해를 하면서 작곡한 것인데, 
멘델스존의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의 단편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마지막 제14변주는 엘가 자신의 자화상일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곡은 행진곡풍으로 시작하며, 
이것이 클라이맥스에 이른 뒤 제1변주에 목관악기가 대위법적으로 가담하며
오르간을 배경으로 상쾌하게 끝난다. 
각 변주곡의 분위기와 표정이 다양한 작품이다. 
엘가는 1901년부터 1930년까지 모두 5곡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작곡했다. 
'위풍당당'이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델로의 3막 3장에 나오는
오델로의 대사에서 따 온 것이다. 
5곡 중에서 제1번이 제일 유명하다. 
곡의 제목과 같이 용감한 느낌을 주는 서주에 이어 
현악기로 연주되는 활발한 제1주제가 나온다.
목관이 이에 가담하다가 다시 역동적인 제2주제가 나오고
그다음에 이 두 개의 주제가 다시 반복된다. 
서주가 이어지면서 제2부의 트리오가 시작되는데, 
이 부분이 바로 가사가 붙여져 널리 애창되고 있는 '희망과 영광의 나라'이다. 
3부에서는 1, 2부의 선율들이 재현되며 힘찬 피날레로 곡을 끝낸다.
또한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 2악장은 중단 없이 연주하는 1919년에 작곡한 
첼로 협주곡(Cello Concerto in E minor Op.85)은 오늘날 첼로 협주곡의 명곡으로 꼽히며
그 외에 작품으로는 바이올린 독주곡 사랑의 인사, 교향곡 제2번, 
교향적 연습곡 '팔스타프', 칸타타 영국의 정신, 현악합주곡 서주와 알레그로, 
바이올린 협주곡, 가곡집 바다의 그림 등이 있다.

엘가의 음악인생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며
60세가 넘은 1918년에 작곡을 시작해 1919년에 세상에 선보인 
첼로 협주곡 E단조(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절제하면서 
독주 악기인 첼로의 역할을 뚜렷하게 부각하고 있는 곡이다.
그것은 갈수록 웅장하고 거창해지는 후기 낭만주의의
관현악법에 대한 반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간결하면서도 애절한 첼로의 노래에 좀더 집중하고 있는 협주곡은 전쟁(제1차대전) 후에 느낀 
불안감, 절망, 비탄, 그리고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인간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내면의 모습을 그려낸 
20세기에 작곡된 첼로 작품 중 가장 비극적인 곡으로 알려져 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1919년 10월 27일 런던 퀸즈 홀(Queen's Hall)에서 
런던 교향악단(London Symphony Orchestra)의 1919-1920년 시즌 개막곡으로 
자신의 지휘와 첼리스트 펠릭스 잘몬트(Felix Salmond) 연주로 초연됐으나 
오케스트라의 연습부족등 여러 이유로 초연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그의 마지막 대작이다.
오랜 친구였던 콜빈과 그의 아내 프란시스(Sir Sidney and Lady Frances Colvin)에게 헌정되었다.
일반적인 3악장 구조로 되어 있는 협주곡 형식에서 벗어나
교향곡과 같은 4악장 구조를 채택하고 각각 두 악장씩 짝을 이루도록 배치해 
1, 2악장과 3, 4악장을 서로 묶어 쉼 없이 연주되는 협주곡은 
전곡을 통해 빈번히 등장하는 첫 악장 첼로의 격렬하면서도 슬픈 노래인 서주와
스케르초 풍으로 들리는 경쾌한 2악장과 가요풍의 3악장에 이어 
행진곡풍으로 시작되는 4악장으로 이루어진
오늘날 첼로 연주자들에겐 기호도가 높은 레퍼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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