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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레오 - 첼로 협주곡 D단조 L. 60
09/28/201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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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Leo  -  Concerto for Cello, Strings and Basso continuo in D minor, L 60
레오나르도 레오  -  첼로 협주곡 D단조 L. 60




Christina Mahler, Cello
Tafelmusik Baroque Orchestra
Jeanne Lamon, cond
Rec, 2004



I. Andante grazioso    3'40


II. Con spirito   3'16


III. Amoroso   4'04


IV. Allegro   4'14



Leonardo Leo - Cello Concerto in D minor, L.60

레오나르도 레오는 보다 정확하게는 리오나르도 오론조 살바토레 드 레오
(Lionardo Oronzo Salvatore de Leo)로 생전에 불리어졌던
이탈리아 나폴리(Neapolitan) 출신의 후기 바로크 작곡가였다.
또한 그는 후대의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 
니콜로 피친니(Niccolo Piccinni, 1728 - 1800), 니콜로 욤멜리(Niccolo Jommelli, 1714 - 1774) 등과 같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나폴리 악파(Neapolitan School)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그는 1694년 나폴리 왕국(Kingdom of Naples)의 브린디시(Brindisi) 인근 
산 비토 델리 스키아비(San Vito degli Schiavoni)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른 유명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작곡과 오르간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1703년 그를 나폴리로 보내어 피에타 데이 투르키니 음악원
(Conservatorio della Pieta dei Turchini)에서 음악을 공부하도록 했다. 
그는 여기에서 프란체스코 프로벤찰리(Francesco Provenzale, 1624-1704)를 만나 
음악 공부를 시작하였고, 1709년 무렵부터는 니콜로 파고(Nicola Fago, 1677-1745)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주세페 오카비오 피토니(Giuseppe Ottavio Pitoni, 1657-1743)의 제자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의 음악 구성에 있어 영향을 받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까지 이들에게 음악을 사사하였다는 입증 자료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1712년 자신의 첫 작품인 종교극를 구성하여 동료들과 더불어 초연하였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712년(18세)에는 칸타타를
나폴리 공국의 궁전에서 선보여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
그는 곧 바로 궁정 교회의 차석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되었으며
그의 20세 때인 1714년 첫 오페라 작품인를 나폴리 궁정의 
산 바르톨로메오 극장(teatro di S. Bartolmeo)에서 초연되어 놀라운 관심을 끌었다. 
1725년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뒤를이어 
궁전 예배당의 수석 연주자가 되었다. 
나폴리에서의 공연을 위해 1722년 프란체스코 가스파리니(Francesco Gasparini, 1661-1727)의 
오페라에 희극적인 장면을 추가한 작품을 구성한 데 이어 
1723년 나폴리적인 희극 오페라 와 1740년 를 구성하여 초연하였다. 
한편으로 그처럼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궁정 예배당의 음악 감독 겸 수석 오르간 연주자 직위에 지명된다는 것은 
종교의 권세가 막강하던 당시 상황으로는 대단한 명성을 얻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무렵에 프란체스코 두란테(Francesco Durante, 1684 - 1755) 또한 
나폴리 예수 그리스도 음악원(Conservatorio Di Gesu Cristo)의 수석 연주자가 되었다. 
비록 프란체스코 두란테(Francesco Durante)가 그보다 10년 연상이었지만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음악적인 활동에서 경쟁 관계가 되었다.
두 사람은 작곡 양식에서 뚜렸한 차이를 보였는데, 
그가 17세기 바로크 양식에 기본을 두었다면 프란체스코 두란테는 
기본적으로는 그와 양식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으나 보다 선율을 강조하면서 기악 반주를 간소화했다.
이는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가 주창한 
오페라 개혁주의와 흡사한 음악적인 어법이었다. 
당시 음악가들은 이른바 레오주의(Leoists)와 두란테주의(Durantists)로 양분되어 
서로를 견제하며 경쟁하게 되었다. 
그의 제자로는 니콜로 피친니(Niccolo Piccinni)가 있었고 
'프란체스코 두란테'의 제자로는 조반니 페르골레시(Giovanni Pergolesi)가 있었다.
두 작곡가들의 지지자들 사이의 반목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프란체스코 두란테 진영의 우세로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이후 바로크 양식보다는 
개혁적인 고전주의 음악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는 음악사적으로 장-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와 
계몽주의자들 상호간에 있었던 부퐁(Bouffon) 논쟁
(1752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음악사에 있어서 유명한 논쟁을 말함)에 이어 
다시 불붙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와 '니콜로 피친니'의 논쟁이라는 갈등은 
모두가 영웅 신화 중심의 오페라 소재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에서 소재를 찾고 
극과 음악이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쪽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데서 빚는 불가피한 충돌이었다. 
두 작곡가 사이의 논쟁에서는 음악적으로 앞선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가 
니콜로 피친니의 작품을 압도했지만, 
결국 이 논쟁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에 이르러 
계몽주의자들의 새로운 경향이 승리를 하는 방향으로 결말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나폴리 오페라 양식을 형성했으며 희가극으로 유명했다. 
그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으로는 나폴리 지방의 방언을 바탕으로 음악을 구성한 
희가극 (1723)를 비롯하여 오페라 세리아 (1735)와
(1737) 및 (1737), 그리고 희가극(1739) 등이 있다. 
이 중에 그의 가장 유명한 희극 오페라는 1739년에 초연되어 프랑스의 작가 샤를 드 브로스
(Charles de Brosses, 1709-1777)에 의해 극찬된 바 있는 (La Finta Frascatana)이다. 
종교 작품에는 특히 동시대인들에게 큰 반향을 얻었던 (1732)를 포함하여 
6-7개의 오라토리오, 5-6개의 미사곡, 2중 합창
(double choir; 2개 이상의 합창이 교대로 또는 함께 노래하면서 전체를 만들어가는 방식 
또는 그러한 음악)을 위한  등이 있다. 
또한 첼로와 현악기를 위한 협주곡 6곡과 오르간 푸가, 하프시코드 토카타 등과 같은 기악곡 작곡했으며 
니콜로 피친니와 니콜로 욤멜리(Niccolo Jommelli)의 스승이었던 그는
감정과다(Empfindsamkeit)의 시대를 주도한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의 선두 주자였고 
1744년(La Finta Frascatana)의 재공연을 위해 
새로운 아리아의 구성 작업 중에 뇌졸중으로 생애를 마감하였다.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는 후기 바로크 작곡가 레오나르도 레오는
오페라와 종교 음악, 오라토리오등의 성악과 기악 반주를 수반하는 성악곡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 또한 작곡가로서 여러 유형의 기악 작품을 구성해 남기고 있다. 
1730년경 구성한 하프시코드 또는 오르간을 위한 14개의 토카타(14 Toccate)와
첼로와 현과 통주 저음을 위한 첼로 협주곡 작품들 및 4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1728년부터 1733년 사이에 구성한 7개의 리코더 소나타와 
1737년에 작곡한 조금은 생소한 합주 교향곡으로 이해되는 첼로와 현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타타 C단조(Sinfonia Concertata for Cello and Strings in C minor) 및 
2악장제의 트리오 소나타인 현과 통주 저음을 위한 소나타(Sonata for Strings and Continuo in D major)등의
기악작품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당대 독주악기 보다는 통주 저음용 악기로 인식되던 첼로를 위한
6개의 첼로 협주곡을 구성하여 남기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1737년 9월에 구성한 
A장조 첼로 협주곡(Cello Concerto in A major)를 비롯해 1738년 8월에 작곡한 A장조(A major), 
1737년 9월에 작곡한 D장조(D major), 1738년 4월에 작곡한 D단조(D minor)와
1737년경 작곡한 F단조(F minor) 및 같은 첼로 협주곡 작품으로 분류 되지만 
다른 장르적 명칭을 갖고 있는 1737년경 작곡한 신포니아 콘체르타타 C단조
(Sinfonia Concertata for Cello and Strings in C minor)등이다.
이들 작품 중 3번 첼로 협주곡으로 알려진 첼로 협주곡 D단조(Cello Concerto in D minor, L.60)는 
1738년 4월에 작곡한 기록이 남아있는 첼로 솔로와 현과 통주 저음을 동반하는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큰틀에서 느리지만 우아하게
(Andantino grazioso)의 1악장에 이어 활기 있게 (Con spirito)의 2악장과 
부드러운 또는 애정을 담아서의 아모로소(Amoroso) 3악장과 피날레
4악장의 알레그로로 이루어진 레오나르도 레오의 첼로 협주곡들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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