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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 교향곡 제 4번 E단조 Op. 98
06/18/201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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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es Brahms  -  Symphony No.4 in E minor Op. 98
브람스 - 교향곡 제 4번 E단조 Op. 98




Berliner Sinfonie Orchester
Kurt Sanderling, Cond


제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의 도입부는 
고통의 흔적을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인생을 관조하듯 초연하게 펼쳐진다. 
3도 하행, 6도 상행의 연쇄로 이루어진 이 주제를 음이름으로 풀어보면, 
B-G-E-C-A-F-D#-B로서 3도씩 계속 하행하는 형태가 된다. 
마치 나락 없는 심연으로 추락하는 듯하다. 
추락하는 주제 선율은 쉼표들 사이로 띄엄띄엄 제시되고 있어 더 무뚝뚝하고 기묘하게 들려온다. 
제2주제의 선율은 좀 더 표정이 풍부하고 서정적이지만 
첼로와 호른의 어두운 음색으로 채색되고 있어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긴다.

1. Allegro non troppo (15:10)


2악장 안단테 모데라토(걷는 듯 보통 빠르기로)는 매우 독특하다. 
브람스는 호른으로 연주하는 도입부의 선율을 중세의 교회 선법 중 하나인 프리지아 선법으로 작곡했는데, 
여기서 베토벤보다 더 먼 과거로부터 교향곡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얻고자 했던 브람스의 의도가 드러난다. 
호른의 선율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음악적인 주제라기보다는 거룩한 종교적 선언처럼 들리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호른의 선언적인 주제는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배경으로 흐르는 클라리넷으로 이어지면서 엄숙하고도 차분한 색채를 더해가고, 
이윽고 현악기의 서정적인 노래로 이어지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2. Andante moderato (13:10)


3악장 알레그로 지오코소(빠르고 즐겁게)는 ‘바커스의 축제’라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힘에 넘치는 음악이다. 
하지만 형식만큼은 전통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브람스는 대체로 그의 교향곡에 간주곡적인 성격의 3악장을 써넣었으나 
이 교향곡에서는 오히려 전통적인 스케르초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힘차게 제시되는 제1주제와 춤곡과 같은 제 2주제, 피콜로와 트라이앵글의 화려한 색채는 
1, 2악장의 차분함과는 매우 대조를 이루고 있으나, 
1악장 제1주제의 중심이 되었던 3도 음정이 
여전히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앞의 악장들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3. Allegro giocoso (06:38)


4악장 알레그로 에네르지코 에 파쇼나토(빠르고 힘차게 그리고 열정적으로)에서 또다시 과거로 회귀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바흐 이후에 퇴색해 버린 샤콘느를 이 악장의 기본 형식으로 도입했다. 
짧은 주제가 낮은 성부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동안 위 성부에서 
계속 변주가 이루어지는 샤콘느는 바로크 시대에 성행했던 변주 기법들 중 하나다.

4.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11:25)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뮈르츠슐라크(Mrzzuschlag)라는 전원도시가 있다. 
산세가 아주 빼어난 아름다운 곳이다. 브람스는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놀랄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당신과 함께 마법과 같은 달밤의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사실 이 표현은 거의 애정 고백에 가깝다. 
물론 ‘스승의 아내’라는 부담이 당연히 있었을 겄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브람스라는 사람 자체가 결혼을 두려워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성싶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힘겨운 결혼생활을 목격해야 했었다.
50대에 들어선 브람스는 여전히 독신이었지만 음악가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경제적 안정도 상당히 얻은 상태였다. 
그는 1894년 여름에 복잡한 빈을 떠나서 뮈르츠슐라크에 갔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곡을 썼다. 교향곡 4번 E단조 Op.98이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다. 
브람스는 두 해의 여름을 뮈르츠슐라크에서 보내면서, 
빈에 있는 지인들에게 어떤 곡을 작곡하고 있는지를 일체 함구한 채 교향곡 4번을 써 내려갔다. 
그것이 또한 브람스의 성품이다. 신중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웬만해선 말을 아꼈다. 
어찌 보자면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해야겠다. 자신의 곡에 대해 스스로 자신 없어 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가 교향곡 4번의 작곡 사실을 처음 털어놓은 것은 
1885년 8월에 엘리자베스 폰 헤르초겐베르크(1847-1892)에게 보낸 편지에서였다. 
19세기 후반에 주로 활약했던 피아니스트 이다. 
한때 브람스의 피아노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으나 브람스가 거절했다는 여인이다. 
일설에는 브람스가 그녀의 빼어난 외모에 마음을 뺏길까봐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던 그녀는 브람스와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여자친구 였다. 
브람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좋은 조언자의 역할을 하곤 했었다. 
브람스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향곡 4번에 대해 언급하면서 조언을 청하고 있는데, 
그 주저하는 어투에는 브람스 특유의 성품이 짙게 배어 있다.
 “내가 어떤 곡의 단편을 보내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한마디 해주겠습니까? 
(중략) 내가 보기에 썩 좋은 곡은 아닙니다. 몇 군데 수정할 곳도 있습니다. (중략) 
만약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괘념치 마십시오.”

하지만 이 곡의 반향은 컸다. 
브람스는 1885년 10월 25일에 마이닝겐 궁정 관현악단을 자신이 직접 지휘해 초연을 하였다, 
이 초연을 리허설할 때는 한스 폰 뷜로(1832-1902)가 브람스를 대신해 지휘봉을 들었다. 
물론 브람스가 참관한 리허설 이었지다. 
그런데 뷜로는 리허설을 마친 첫날(22일), 공연 기획자로 이름이 높았던 헤르만 볼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금 연습을 마치고 왔습니다. 4번 교향곡은 굉장합니다. 무척 새롭고 개성이 뚜렷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문 열정이 넘쳐흐릅니다.”

초연은 성공적이었다. 
브람스의 팬이었던 마이닝겐 백작의 요청에 의해 1주일 뒤에 같은 장소에서 또 연주됐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일련의 연주회가 곧바로 펼쳐졌다. 
다음 해 4월까지 거의 20개 가까운 도시에서 교향곡 4번이 연주됐다. 
그렇게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교향곡 4번 e단조는 50대에 접어든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했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이다.
특히 이 곡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1896년 5월 20일에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브람스가 마음속으로 언제나 그리워했던 그녀가 
뇌졸증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만다. 
클라라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브람스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아버지가 앓았던 간암이 아들인 브람스에게도 찾아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는 이듬해 3월 7일에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연주회,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렸던 음악회에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고 하는데, 
그날 연주됐던 곡이 바로 교향곡 4번 e단조였다. 
그 연주회는 아직 살아 있는 브람스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공식 행사였다. 
그날 브람스의 모습은 뼈만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 3일, 브람스는 친구나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가정부가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일 악장을 하나만 꼽자면 
3번 교향곡의 3악장이 아닐까 싶다. 
가장 먼저 첼로가, 이어서 바이올린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관과 호른이 연주하는 주제 선율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는 서정적인 악장이다.
교향곡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아마도 4번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브람스가 50대 초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러니까 1884년에서 이듬해까지에 걸쳐 작곡한 곡이다. 
브람스는 52세에 이 곡을 완성하고 나서 12년 뒤인 1897년에 세상을 떠났다. 
교향곡으로는 4번이 마지막 곡이다.
이후의 브람스는 교향곡은 물론이거니와 관현악이 들어간 곡도 거의 쓰지 않았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독주악기로 등장시킨 ‘2중 협주곡 A단조’가 관현악을 포함한 곡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 
브람스는 그렇게 생애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관현악보다는 실내악에 한층 마음을 기울였다. 
특히 말년의 그는 클라리넷을 주인공으로 삼은 5중주, 3중주, 소나타 등에 집중했다.

19세기의 다른 교향곡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브람스 역시 베토벤이라는 거인을 피해갈 수 없었다. 
광대한 우주의 소리를 담아낸 베토벤의 교향곡이야말로 독일 교향곡의 모범답안으로 여겨지던 
당대의 분위기에선 신작 교향곡이 나오면 곧바로 베토벤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브람스가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20여 년의 세월을 투자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브람스의 첫 번째 교향곡은 유난히 베토벤의 교향곡을 닮았다. 
이 곡에서 팀파니는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의 ‘운명’의 동기를 닮은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그 때문에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나 지휘자이며 음악평론가인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을 가리켜 ‘베토벤의 제10번’이라 불렀다. 
이후 브람스는 교향곡 두 곡을 더 작곡했는데, 
그 중 [교향곡 제2번]은 ‘브람스의 전원’, [제3번]은 ‘브람스의 영웅’에 비유되면서 
여전히 베토벤의 교향곡과 유사하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교향곡 제4번]은 진정한 브람스만의 음악이며 아무도 이 교향곡을 베토벤의 작품에 빗대지 않았다. 
이 교향곡을 채색하고 있는 클라리넷과 비올라의 중음역, 첼로와 호른의 저음역이 강조된 무채색의 사운드, 
그 사이사이에 간간히 묻어나는 진한 고독감은 브람스 음악 특유의 깊이를 담고 있다.

1885년, 이미 세 곡의 훌륭한 교향곡을 통해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능력을 입증해낸 브람스는 
이제 인생의 말년에 접어들어 자신만의 음악적 깊이를 교향곡에 담아내고자 
그의 마지막 교향곡의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침내 [교향곡 제4번]이 완성되자 브람스의 옹호자였던 당대의 음악평론가 한슬리크는 이 작품을 가리켜 
“어두움의 근원”이라 불렀다. 
브람스의 단조 교향곡들 가운데 유일하게 피날레에서 장조의 환희로 변하지 않고 
단조의 우울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로써 브람스는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베토벤 풍의 구도를 버리고 
어둠으로부터 비극으로 침잠해 가는 자신만의 교향곡 모델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제2번의 ‘샤콘느’에 큰 감명을 받아왔던 브람스는 
바흐의 칸타타 제150번 [주여 저는 당신을 바라나이다]의 주제를 바탕으로 
샤콘느 형식의 작품을 만들고자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1885년 [교향곡 제4번]을 작곡하면서 이 주제를 약간 다듬어 마지막 악장의 모티브로 삼았던 것이다. 
샤콘느 주제는 4악장 도입부에서 트롬본으로 힘차게 연주되며 변주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된다. 
하나하나의 변주가 연주될 때마다 이 짧은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브람스의 놀라운 변주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비장미 넘치는 샤콘느 주제가 반복되는 동안 음악적인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마침내 비극적인 단조의 결말을 향해 숨 가쁘게 치닫는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은 1885년 10월 25일에 마이닝겐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초연 후 11년이 지난 1896년, 브람스는 교향곡 제4번의 악보를 펼치고
 1악장의 첫 4음인 B-G-E-C 위에 “오! 죽음이여, 오 죽음이여!”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7년에 브람스는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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