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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프랑크 - 피아노 5중주 F 단조, Op.14
05/17/20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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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ar Auguste Franck  -  Piano Quintet in F minor, Op.14
세자르 프랑크  -   피아노 5중주 F 단조, Op.14




Sviatoslav Richter,  Piano
Mikhail Kopelman,  1st  Violin
Andrei Abramenkov,  2nd Violin 
Dmitiri Shebalin,  Viola
Valentin Berlinsky,  Violoncello

Ensemble : Borodin Quartet


화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운 프랑크는 
12세의 나이로 리에주 음악원을 졸업하고 연주여행을 다녔을 정도로 조숙한 천재였다. 
15세 되던 해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푸가, 대위법, 작곡, 오르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오르간 연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이던 그는 여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를 전전하다가 
1858년에 성 클로틸드 교회의 합창장이 된 그는 이어 그 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이 즈음 그의 오르간 연주를 들은 리스트는 프랑크를 두고
 "바흐 이후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며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프랑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명망과 존경을 받았다. 
1872년엔 파리 음악원의오르간 교수가 되어 루이 비에른, 가브리엘 피에르네, 에르네스트 쇼송, 
앙리 뒤파르, 뱅상 댕디 등을 가르쳤으며, 프랑스 국민음악협회의 일원으로 프랑스 작곡가들을 지도했다. 
그의 작품들은 베토벤과 바그너풍의 풍부한 화음들로 가득차 있다. 
그 중에서도 <교향곡 D단조>, 피아노곡 <전주곡, 코랄과 푸가>, 
교향시 <저주받은 사냥꾼>,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등이 대표적이다.

피아노 5중주곡 바 단조는 현악4중주곡보다 약 10년전인 1879년에 완성된 작품인데, 
그의 교향곡 라 단조의 경우처럼 전곡을 통일 시키는 '순환주제'를 사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하나의 주제가 전곡을 꿰뚫고 있는 순환주제는 프랑크 고유의 형식인데, 
이것은 바그너의 '지도동기', 베를리오즈의 '고정악상'과 같은 기능을 한다. 
이것은 음악의 논리성(論理性)을 중요하게 취급 하겠다는 작곡가의 의지인 셈인데, 
그렇다고해서 순전히 논리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매우 깊은 명상의 소산(所産)이라고 느껴질만큼 고즈녁한 명상이 그득하다.





전악장 이어듣기


제 1 악장 Molto moderato quasi lento, F단조, 4/4박자
바이올린의 정열적인 서주로 개시하여 현악부의 하강음형을 거치면 
이에 응답하는 피아노의 연주로 이어진다. 
이 44마디의 서주부의 순환 주제는 전곡을 지배. 주부는 Allegro. 
순환 주제에서 파생된 1주제. 2주제는 두번째 순환주제. 대위법적으로 활발히 전개. 
재현부에서는 fortississimo의 유니즌으로 순환 주제부가 회상되고 점차 조용히 악장을 종결한다.

I.  Molto moderato quasi lento - Allegro (16 : 29)


제 2 악장 Lento, con molto sentimento, A단조, 12/8박자
제 1 바이올린으로 나타나는 선율이 악장의 주제로 순환 주제의 후반부 일부를 소재로 한 것.
 20마디부터 제 1 바이올린의 주제 선율과 피아노의 16분 6잇단음표의 분산화음의 연주와 함께, 
인상적인 부주제가 제시. 또한 이것은 3악장과 연관있는 세번째 순환 주제. 
41마디부터 첫번째 순환 주제가 나타났다가 본래의 주제로 돌아오고,
 최후에 다시 순환 주제의 변형이 나타난다.

II.  Lento, con molto sentimento (11 : 32)


제 3 악장 Allegro non troppo, ma con fuoco, F장조, 3/4박자
조성이 확정되지 않고 자유로이 전조하며 진행하다 최후에 F장조로 안착한다. 
서주부에서 주제의 소제가 준비되다 비로소 73마디에 주제가 피아노로 마에스토소로 연주. 
120마디부터는 2악장에서 출현한 세번째 순환 주제가 회상되었다가 
점차 원형을 회복하여 악장의 2주제로 사용된다. 
199마디부터의 전개부를 거처 330마디의부터의 재현부, 절정을 이루고 
격정적인 코다로 전곡을 종결한다.

III.  Allegro non troppo, ma con fuoco (10 : 29)



Cesar Franck - Piano Quintet in F minor

세자르 프랑크(Cesar Franck)는 19세기 프랑스 기악 음악의 발전에 기여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며 오르간 연주자 및 음악 교육자였다. 그의 정식 이름은
"세자르-오쉬스트-장 기욤 위베르 프랑크"(Cesar-Auguste-Jean-Guillaume-Hubert Franck)로 
1822년 당시 네덜란드 땅이었던 오늘날 벨기에 리에쥬(Liege)에서 태어났다. 
은행 직원인 그의 아버지가 세자르 프랑크가 음악에 재능 있음을 알고 
아들을 음악 신동으로 키우기로 결심했고 13세의 나이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프랑스 파리로 갔다.
하지만 당시 파리 음악원 교칙에는 외국인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파리에 도착한 지 2년 만인 1837년 
프랑스 국적을 가질 수 있었다. 
파리 음악원 입학한 첫 해 그는 피아노과에서 실기 수석을 차지했으며 
그 후로도 비숫한 수준의 실력을 유지했다.
다만 대위법에서는 피아노 실력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고 
피아노와 작곡 및 오르간도 공부 했는데 이때 오르간 즉흥 연주에 많은 노력을 기울렸다. 
음악원을 다니는 동안은 줄곧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그가 
1842년 음악원을 자퇴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그의 아버지 요구에 따라 학교를 다니면서
개인 레슨과 연주를 병행해야 했던 어린 아들의 상황을 주위에서 비판이 제기되면서 
다혈질인 그의 아버지는 벨기에로 돌아가기로 결정하면서 
이때 아들도 함께 데려갔다. 
막상 벨기에로 돌아갔지만 프랑크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며 
결국 그는 프랑스 파리로 돌아가 음악원에 복학해 미진한 공부를 계속했다. 
이 무렵 리스트(Liszt)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3중주(Trios)곡을 완성했다. 
1846년에는 엘라르에서 리스트(Liszt), 마이어베어(Meyerbeer), 스폰티니(Spontini)를 비롯한
당대의 거물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라토리오(oratorio) 루트(Ruth)를 초연했고 
그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그가 거둔 최후의 성공이었다. 
1848년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던 그는 보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노트르담 드 로레트(Notre-Dame-de-Lorette) 교회의 보조 오르가니스트로 1847년 취직했다. 
1853년, 프랑크는 오르간 제작자 아리스티드 카발리에 콜(Aristide Cavaille-Coll)이
제작한 유명한 오르간있던 생 장 생 프랑수아 뒤 마레(Saint-Jean-Saint-Francois-au-Marais)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는 미사가 진행되는 중간에 즉흥 연주를 해야 했는데, 
그의 영감에 찬 즉흥 연주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이 기간에 프랑크의 오르간 즉흥 연주 실력은 엄청나게 발전했으나
작곡가로서는 거의 공백기나 마찬가지여서 가곡 몇 곡과 오페라 코미크 한 편만 작곡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시기가 자성의 시기이자 내적인 성숙의 시기였던 셈이다.
1858년, 프랑크는 파리의 성 클로딜트(Sainte-Clotilde)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했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3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켰다. 
이때부터 작곡가로서 그의 창조력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장엄 미사곡(Messe solennelle)〉과 세 개의 모테트, 오르간을 위한 〈안단티노(Andantino)〉, 
세 개의 아리아 찬가 등 오르가니스트로서 그동안의 음악적 성과를 집대성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1871년, 프랑스 예술의 부흥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프랑스 국민협회가 발족되었다. 
젊은 작곡가들이 주축이 되어 창설한 이 모임에서 프랑크는 가장 연장자였다. 
그의 주변에 뱅상 댕디(Vincent d'Indy), 앙리 뒤파르크(Henri Duparc), 에르네스트 쇼송(Ernest Chausson) 등
이른바 프랑크파(Pere Franck)라고 하는 젊은 작곡가들이 모여 들었다. 
1872년, 파리 음악원 오르간 교수로 임명된 그는 젊은 작곡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창작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다. 
그가 1879년에 발표한 피아노 5중주(Piano Quintet in F minor)는 
프랑스 실내악의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1880년대에는 보다 스케일이 큰 작품에 도전해 교향시 귀신(Les Djinns), 프시케(Psyche Suite),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적 변주곡(Variations Symphoniques)을 발표했다.
또한 어떤 특정한 주제가 전 악장에 걸쳐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순환 형식(cyclic form)에 의한 
1886년에 완성한 교향곡 D단조(Symphonie en re mineur)와 
1886년 프랑크의 나이 64살에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Violin Sonata in A Major)〉등과 
프랑크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1872년에 하프, 첼로, 콘트라바스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및 교향시 속죄(Redemption),
오르간을 위한 환상곡 C장조(Fantasy in C, Op.16),
현악 4중주 D장조(String Quartet In D Major) 등을 작곡한 세자르 프랑크는 
1890년 7월 차를 타고 가다 마차가 끄는 수레와 충돌하는 사고의 후유증에 의한 늑막염으로 
그해 11월 8일에 6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세자르 프랑크의 실내악(Chamber) 작품 목록에는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Violin Sonata in A Major, M.8)를 비롯해 
대중적이진 않지만 그의 첫 작품 목록을 장식하는 4개의 피아노 삼중주 및 
현악 사중주 D장조(String Quartet In D Major, M.9)와 
피아노 5중주 F단조(Piano Quintet in F minor, M.7)등 
대략 10여개의 실내악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매우 늦은 나이인 60세 중반이 넘어서야 인정을 받았다.
프랑크가 1878년에서 1879년 사이에 작곡한 실내악 작품인 피아노 오중주 F단조(Piano Quintet in F minor)는
훗날 작곡하게 되는 D단조 교향곡(Symphony in D minor, FWV 48)에서도 쓰이는 
하나 또는 두 개의 주제를 변형이나 있는 그대로 전곡에 사용하는 순환형식(cyclic form)에 의한
유기적인 연결과 통일감을 주는 프랑스 고유의 작곡형식에 의한 고전적 구조와 순환형식이라는 
독특한 작곡 기법으로 구성한 3악장제의 곡이다. 
1880년 1월 17일 국민음악협회 연주회(Societe Nationale de Musique)에서
생상스(Saint-Saens, 1835-1921)의 피아노 연주와 마르시크 4중주단(quatuor Marsick)에 의해 초연되어
생상스에게 헌정되었으나 생상스는 이 작품의 음악 어법에 동의하지 않아 
헌정을 거절했던 프랑크의 걸작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며 
프랑스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샤를 투르네미르(Charles Tournemire, 1870-1939)가
"피아노 오중주의 왕"이라고 평가했던 현악 사중주 편성에 피아노를 더 한 
그의 유일한 피아노 오중주는 프랑스 실내악의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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