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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Op. 47
07/28/201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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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Sibelius
Concerto In D Minor For Violin And Orchestra, Op. 47



Leonidas Kavakos, violin
Lahti Symphony Orchestra,
Osmo Vanska, cond

Original 1903/04 Version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는 음악을 통해 핀란드 민족 정서를 구현한 
핀란드 국민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곡가이다. 
그는 1865년, 핀란드의 소도시 헤미린나에서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14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후 
한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가라는 직업이 생계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헬싱키 음악원에서 청강생으로 작곡과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나중에 법과대학을 그만두고 음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889년, 헬싱키 음악원을 졸업한 시벨리우스는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무렵 핀란드 작곡가 카야누스가 핀란드의 민족서사시 '칼레발라'를 토대로 쓴
'아이노 교향곡'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으며, 
이것을 계기로 핀란드의 민족 정서를 반영한 음악을 작곡하겠다고 결심했다.
베를린에서 공부를 끝낸 후에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는데,
이때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베를린과 빈 유학은 시벨리우스에게 음악적으로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오랜 타향생활에서 오는 결핍감이 그를 
술과 담배에 빠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방종하고 무절제한 생활은 그의 건강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도 가져왔다.
그럼에도 창작열은 불꽃같이 타올랐다. 
빈 유학 기간에 핀란드의 민족서사시 '칼레발라'를 바탕으로
쿨레르보 교향곡(Kullerv Symphony)을 작곡했는데, 
이것이 핀란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92년, 시벨리우스는 아이노 예르네펠트와 결혼했으며, 
같은 해 헬싱키 음악원 교수로 취임했다. 
결혼과 취직으로 생활의 안정을 찾은 그는 왕성하게 창작열을 불태웠다. 
이 무렵 그는 칼레발라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곡을 발표함으로써 
핀란드 국민음악의 대표자로 군림하게 된다. 
'핀란드는 창조신이 만든 나라'라는 뜻의 칼레발라는 
시벨리우스가 음악의 물을 길어 올리는 영감의 샘 같은 것이었다. 
포욜라의 아가씨들(Pohjola's Daughter Op.49),〈쿨레르보 교향곡〉 등을 비롯한 
주옥같은 작품들이 바로 이 샘에서 탄생했다. 
바로 이 무렵 핀란드의 국내 정세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러시아가 핀란드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핀란드를 러시아화하려는 여러 가지 정책들을 실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검열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런 조치는 
핀란드 국민들로 하여금 더욱 강한 애국심으로 뭉치도록 했다.
1899년, 저항 운동의 일환으로 '역사적 정경'이라는 극이 공연되었는데, 
시벨리우스는 이 극을 위해 음악을 작곡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핀란디아(Finlandia Op.26)이다.
1901년, 시벨리우스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청각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핀란드로 돌아온 시벨리우스는 건강의 악화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헬싱키에서 북동쪽으로 3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예르벤퍼라는 곳에 산장풍의 집을 짓고, 1904년 9월 이곳으로 이사했다. 
예르벤퍼의 아름다운 호숫가 산장에 둥지를 튼 시벨리우스는 
죽는 날까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하지만 은둔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살면서 독일, 영국, 스웨덴, 발트 3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로 연주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영국을 여행하던 1908년 후두에 이상을 느꼈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로 돌아와 5월에 수술을 받았는데,
종양이 제거되지 않아 몇 달 후 재수술을 받았다.
악성종양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재발과 전이에 대한 염려,
그렇게 좋아하는 담배를 금지당한 데 대한 결핍감으로
그는 이 시기를 매우 우울하게 보냈다. 
1911년, 시벨리우스는 빈 아카데미로부터 
교수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1914년에는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갔는데, 여기서 기존의 작품들과 함께 
교향시 대양의 여신(The Oceanides Op.73)을 초연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에 고무되어 시벨리우스는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이 계획은 무산되었으며,
전쟁 때문에 그동안 거래했던 독일 출판사와도 연락이 두절되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다.
1919년, 핀란드는 공화국 헌법을 제정하고 독립국이 되었다.
이해에 시벨리우스는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노르딕 뮤직 페스티벌에서 자기 작품을 지휘해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61세 이후에는 거의 작품을 쓰지 않고,
이후 남은 4반세기의 긴 여생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1935년, 탄생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크게 열렸지만, 
음악적으로 기록할 만한 것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침묵하던 시벨리우스는
1957년 9월 20일에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악장 이어듣기


제1악장 Allegro moderato d단조 2/2박자.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 환상적인 악장이다. 말하자면 어두운 북구의 우울함을 느낄 수 있으며 옛날 핀란드의 풍물과 원시 시대의 생활을 느끼게 하는 맛이 난다. 독주 바이올린은 북 유럽적이며 애수에 찬 제1테마가 연주된다. 그리고 제2테마는 파곳의 연주로 나타난다. 코다에서는 d단조로 진전되다가 끝나게 된다. I. Allegro Moderato 19:37 제2악장 Adagio di molto Bb장조 4/4박자. 세 도막 형식. 부드럽고 우울한 기분이 나는 악장인데, 대단히 복잡한 수법을 쓰면서도 서정적인 노래로서 색채가 빛나는 기품 있는 선율이다. II. Adagio Di Molto 10:03 제3악장 Allegro ma non tanto D장조 3/4박자. 이 악장은 교향곡에서만 맛볼 수 있는 깊이와 폭을 가지고 있고, 론도 형식의 폴로네이즈 풍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독주 바이올린으로 나타나는 제1테마와 현악기의 유니즌으로 연주되는 제2테마가 나타나 재현부를 지나서 코다로 들어간 후 끝난다. II. Allegro (Ma Non Tanto) 10:00 시벨리우스가 작곡가로 활동한 시기는 20세기 전반이지만, 그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다른 나라 작곡가들처럼 새로운 경향의 곡을 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시대에 뒤떨어진 작곡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그의 음악어법은 베토벤을 비롯한 고전악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기에 북유럽 특유의 어두운 하모니와 핀란드의 향토적인 색채를 가미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시벨리우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핀란드 민족 대서사시 '칼레발라'이다. 그에게 칼레발라는 무한한 영감의 샘이었고, 초기작인 '쿨레르보(Kullervo)교향곡'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여기에서 탄생했다. 쿨레르보 교향곡 외에 시벨리우스는 1번부터 7번까지 모두 일곱 개의 교향곡을 썼으며 대표작 '핀란디아'를 비롯해서 레민케이넨과 소녀들, 투오넬라의 백조, 투오넬라의 레민케이넨, 레민케이넨의 귀향, 포욜라의 아가씨, 타피올라 등의 교향시 작품과 바이올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가 1903년에 발표한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 외에도 교향시 어느 전설, 타피올라, 모음곡 카렐리아,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관현악곡 슬픈 왈츠, 극음악 템페스트, 쿠올레마 등이 있다.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근대 바이올린 협주곡의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는 스타일상 후기 낭만주의로 분류되는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작품은 어쩌면 묻힐뻔한 곡이 었지만, 시벨리우스의 작품에 대한 각성으로 다시 태어난 작품으로 그가 38세이던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완성해 1904년 초연에 실패하자 1905년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창작에 자극을 받아 바이올린의 기교를 첨가하기 보다는 곡의 구조를 심화시키고 탄탄하게하여 더 교향적인 개정판을 1905년 완성한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독특한 환상적 선율과 풍성한 관현악의 울림이 낭만적인곡으로 그가 낭만시대의 맛이 깊었던 초기 무렵 작품이다. 1904년 2월 8일 헬싱키(Helsinki)에서 자신에 지휘하는 헬싱키 필하모닉과 빅토르 노바체크의 바이올린 연주로 초연됐던 곡은 1905년 교향적 개정이후 1905년 10월 19일 베를린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가 지휘하는 베를린 궁정 오케스트라와 체코의 바이올린 연주자 카렐 할리르의 연주로 개정판 초연을 했던 곡은 초연 연주자에게 헌정되던 당시 관행과는 다르게 12살의 헝가리 바이올린 연주자 프란츠 폰 벡세이(Franz Von Vecsey, 1893-1935)에게 헌정된 되었다. 3악장제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는 악장의 중간에 카덴차가 있는 음악적으로 가장 빼어나다는 1악장에 이어 북유럽 특유의 서정이 확연한 느린 악장인 2악장과 팀파니와 저음현의 리듬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제1 주제를 제시하는 자유로운 론도 형식에 3악장으로 이루어진 시벨리우스의 대표적인 음악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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