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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폴로네이즈 全曲
03/02/20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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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Polonaise 
쇼팽  -  폴로네이즈 全曲



Composer : Frederic Chopin Performer : Vladimir Ashkenazy, Piano Audio CD : June 24, 1997 Label : London/Decca

I. Polonaise No.1 in C-sharp minor, Op. 26/1 (07 : 38) 작품26번의 두 곡은 1836년에 출판 되었는데, 만들어진 것은 2년전 쯤으로, 당시 쇼팽은 실연과 조국 패배의 소식에 몹시 음울한 형편 이었으며, 그 외에 연주회도 예상했던 것보다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데, 그 심경이 이 곡에도 나타나 있다. 차츰 폴로네이즈라는 형태를 바꾸어 쇼팽 특유의 것으로 하고 있음은 이미 이 곡에도 나타나 있고, 표현에 있어서도 교묘한 수법이 더해져, "화려한 대폴로네이즈 (Grande Polonaise Brillante in E-flat major, Op.22)" 에서 보면 상당한 진보를 나타내고 있는 서정적인 감상미가 깊은 곡이다.

II. Polonaise No.2 in E-flat minor, Op.26/2 (07 : 28) 이른바 "시베리아 폴로네이즈" 로 쇠사슬에 묶여 시베리아로 유형을 당하는 폴란드인들을 그린 것이라는데서 "시베리아 폴로네이즈" 라는 이름이 붙었고, 또 그 내용이 반항과 원망의 기분으로 가득찼다는 데서 "혁명 폴로네이즈" 라는 이름도 있다.

III. Polonaise No.3 in A major, Op. 40/1 "Military" (05 : 06) 이 곡은 1838년에 작곡, 40년에 출판되었다. 쇼팽이 폴란드에 대한 애국의 열정에 의한 격정으로 맑게 울리는 나팔소리와 큰북소리가 화려한 군대의 행진을 상상케 한다. 파리에서 먼 고국을 생각하는 쇼팽이 가슴에 그린 폴란드 군대의 위용이다.

IV. Polonaise No.4 in C minor, Op. 40/2 (06 : 48) 매우 우울한 정서로 가득하기 때문에 루빈스타인이 폴란드의 몰락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 폴로네이즈이다. 이 곡은 군대 폴로네이즈보다 정서가 풍부하다. A-flat장조의 제2부는 조바꿈이 많아, 연속되는 그 부자연스러운 변화는 어딘지 모르게 듣는 이를 몹시 애타게 한다. 그러나 그만큼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1838년에 착수되어 이듬해 마조르카 섬에서 완성되었다.

V. Polonaise No.5 in F-sharp minor, Op. 44 (10 : 24) 폴로네이즈 중 최대 걸작이라 칭송받고, 리스트도 격찬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난곡인 탓인지 연주 기회가 적다. 1841년 출판되었다.

VI. Polonaise No.6 in A-flat major, Op. 53 "Heroic" (06 : 19) 쇼팽이 마요르카(Mallorca) 섬에서 돌아온 1840년의 작품으로 아우구스트 레오(August Leopolder, 1905 - 2006)의 의뢰로 작곡 했으며, 곡은 의뢰자에게 바쳤다. 폴란드의 화려한 시대를 상기시키며, 웅대한 규모와 표현이 완벽하다. 쇼팽이 쓴 6번째 폴로네즈인 이 곡은 "쇼팽의 폴로네즈를 들으면 운명이 가져다주는 온갖 부정한 것에 용감하고 대담하게 대항하는 확고한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 같다" 던 리스트의 칭찬이 꼭 들어맞는 곡이다. 일설에 의하면 쇼팽이 막 완성한 이 곡을 치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눈 앞에 투구를 쓰고 전투복을 입은 고대 폴란드 전사들의 행렬이 전진해오는 환각에 빠져 공포에 질린 나머지 방에서 뛰어나갔다고 한다.

VII. Polonaise-Fantaisie No.7 in A-flat major, Op. 61 (14 : 01) "환상 폴로네즈" 만년인 1846년의 최대 걸작으로 병마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쇼팽의 환상의 세계, 깊은 명상, 비통한 마음, 창백한 인광과 같은 정서가 이 곡을 감돌며 흐르고 있다. 폴로네즈는 16세기 후반 폴란드의 궁정 의식과 귀족들의 행렬을 위한 곡이다. 후에 주로 궁정과 귀족 계급의 무도용으로 발전한 3/4박자를 확대한 것으로서 액센트와 리듬에 특징이 있다. 한편 시대의 변천에따라 정치적 입장에서 폴란드의 국민성을 거쳐 발달한 가장 순수한 국민 음악의 전형을 이루었다 하겠다. 쇼팽은 그의 조국의 민속 무곡인 마주르카와 함께 폴로네즈를 사용해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자유 분방한 악상을 피력하였다. 더구나 그의 열렬한 애국심으로 신선하고 힘찬 생기를 불어 넣었다. 이 곡은 1845년 - 19466년에 작곡됐는데, 폴로네즈의 형식에서 떠난 것이어서 환상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비통한 고뇌가 담겨 있는 환상풍인 서주와 자유로운 론도로 되어 있다. 1846년 가을은 그가 조르즈 상드(George Sand, 1804 - 1876)와의 9년에 걸친 생활을 청산하고 실의에 찬 해였으며, 몸이 아주 쇠약한 시기였다. 그러므로 이 곡은 그의 생활의 반영으로 정신적 불행이 잠재해 있어서 "병적인 내용" 이란 평을 듣는다. 4개의 주요한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형식과 양식은 대단히 자유롭다. 이를 도식적으로 보면 서주에 뒤이어 A1-A2-B-A3-C1-D1-C2-서주 -C3-A4-D2-코다로 되어 있다. 한편 이 작품의 정서적인 내용은 현재의 우수와 앞으로 다가 올 개선에의 국민적인 투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VIII. Polonaise No.8 in D minor, Op. 71/1 (05 : 25) 작품 71은 세 곡의 폴로네즈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쇼팽이 10대였을 때의 작품이다. 쇼팽의 사후 쥘 폰타나(Jules Fontana, 1810 - 1869)에 의해 출판 되었다. 이 곡들은 쇼팽의 작곡가로서의 성장을 엿볼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세 곡 모두 춤곡(舞曲) 본래의 성격이 엿보이지만 그 속에 놀라운 독창성이 발휘되어 있는 점도 놓칠 수 없다. 제1번은 세 곡 중 가장 발랄한 곡이다. 미하우 스카르베크 백작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하며, 1827년 쇼팽은 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Tytus Wojciechowski, 1808 - 1879) 에게 이 곡의 필사보를 보냈다. 피아노의 고음역을 활용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IX. Polonaise No.9 in B-flat major, Op.71/2 (07 : 12) 이 곡은 1828년에 쓴 유작으로 구성은 세도막 형식이다. 서주에 뒤이어 박자마다 화음이 묵직한 기분으로 취급되었는데, 겹부점이 리듬의 특성이다. 서주부의 움직임에 "영웅" 의 테마의 직접적인 예감을 느낄 수 있다. 계속하여 주부의 테마가 나타나는데, 이는 우아하고 품위가 있다. 주부의 중간부는 C단조이고 테마의 재현에서 트리오로 들어간다. 그리고 여기서는 G단조이다. 여기서 테마의 변주인 피규레이션(figuration)도 많이 사용되어 고조를 이룬 후에 주부로 다시 돌아가 끝난다.

X. Polonaise No.10 in F minor, Op. 71/3 (07 : 06) 쇼팽의 누나 루드비카(Ludwika Chopin, 1807 - 1855)에 따르면 1828년, 폰타나(Jules Fontana, 1810 - 1869)에 따르면 1829년의 작품이다. 쇼팽이 소년 시절인 1829년 11월 14일 바르샤바에서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에게 쓴 편지를 보면 "엘리자가 F단조 폴로네즈에 대단한 흥미를 가져, 그 악보를 선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미안하지만 그것을 되돌려줬으면 해. 그녀가 매일 폴로네즈를 연주해 나에게 들려주는데, 그걸 보면 그녀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거야. 특히 A-flat장조의 트리오가 그녀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자필 악보는 선사된 것 같지 않으며, 훗날 1836년에 쇼팽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이 곡의 악보를 새로 적어 라지비유 공작(Antoine Radziwill, 1775 - 1833)의 딸 엘리자에게 선물한다. 두 개의 악보에는 다른 점이 많은데, 폰타나가 출판한 악보는 후자(後者)에 의한 것이다. 헨레의 원전판에는 두 악보가 모두 게재되어 있다.

XI. Polonaise No.11 in G minor, Op. Posth. (04 : 02) 쇼팽의 가장 초기의 작품으로, 그서는 첫 출판 작품인 이 곡은 7세 때인 1817년에 작곡되었다. 악보를 아직 그릴 수 없었던 때라 스승인 지브니(Adalbert Zywni, 1756 - 1842)가 받아썼다고 생각된다. 이미 피아노 연주로 천부적 재능을 보여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악보가 출판사 제브로프스키에서 출판되었을 때 주위의 관심을 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듬해인 1818년 1월엔 바르샤바의 "파미엔토닉 바르샤프스키" 誌에 다음과 같은 소개문이 실렸다. "이 8세의 폴란드 춤곡 작곡가는 피아노를 칠 때 어떤 어려운 곡도 무서울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연주해 버린다. 그는 지금까지 몇 개의 춤곡과 변주곡도 작곡했다. 만일 그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유명해져 있었을 것이다." 7세의 소년이 처녀작으로 이런 절찬을 받은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 이었다. 이 작품은 쇼팽의 아버지 미하우의 문하생인 프레데리크 스카르벡 (Frederic Skarbek)백작의 딸 빅토리아 스카르벡(Wiktoria Skarbek) 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그 후 악보는 소실되었으며, 한 세기 후인 1924년 크라쿠프(Krakow)에서 야히메츠키(Zdzisław Jachimecki, 1882 - 1953)에 의해 그것을 베껴 쓴 악보가 발견되었다.

XII. Polonaise No.12 in B-flat major, Op. Posth. (06 : 52) 첫 번째 폴로네즈 작품과 같은 해인 1817년, 즉 쇼팽이 7세였을 때의 작품이다. 쇼팽의 아버지 미하우가 필사한 복사본만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때 미하우는 직접 "8세인 F. 쇼팽 작곡 피아노용 폴로네즈" 라고 적어 넣었다. 생동감 있고 순진한 곡조의 작품으로, 어딘지 모르게 모차르트를 연상 시키기도 한다. 트리오에서는 오르골(orgel : 음악 상자)소리와 비슷한 부분도 보인다.

XIII. Polonaise No.13 in A-flat major, Op. Posth. (02 : 40) 1821년 4월 23일 쇼팽이 자신의 피아노 선생 지브니를 위해 작곡해 바쳤다는 것이 악보의 속표지에 적혀 있다. 곡은 우아함 그 자체인데, 리듬과 악센트의 섬세한 변화, 악상의 산뜻한 대비, 피아니스틱한 효과, 장식적인 선율 등에서 훗날 쇼팽의 독자적인 폴로네즈 스타일을 일찌감치 보여주고 있다.

XIV. Polonaise No.14 in G-sharp minor, Op. Posth. (03 : 06) 쇼팽이 12세 때인 1822년에 작곡되었다. 뒤퐁 부인에게 헌정되었는데, 프랑스 혈통의 뒤퐁 가(家)는 쇼팽의 집안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XV. Polonaise No.15 in B-flat minor, Op. Posth. (04 : 18) 1826년 작곡되었으며, 쇼팽이 여동생 에밀리아(Emilia Chopin, 1813 - 1827)와 함께 요양을 위해 라이네르츠(Reinertz) 온천으로 출발할 무렵 학교 친구 빌헬름 콜베르크(Wilhelm Kolberg, 1809 - 1877)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모리스 브라운(Maurice John Edwin Brown, 1906 - 1975)에 의하면, 쇼팽과 콜베르크는 여행 출발 전에 바르샤바 국립극장으로 로시니의 오페라 "도둑 까치(La gazza ladra)" 를 보러 갔다고 한다. 이 곡의 초고 맨 앞에는 "폴로네즈 F. 쇼팽" 이라는 서명이 있고, 트리오 부분에는 "안녕" 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런데 다른 필적으로(콜베르크나 그의 형의 것으로 추정됨) 규이 콜베르크(라이네르츠로 출발할 때) 안녕, 1826년" 이라는 표제가 덧붙여졌으며, 또한 트리오에서는 "로시니의 오페라 도둑 까치의 아리아에 의한 트리오" 라고도 적혀 있다. 트리오에서 사용된 아리아는 콜베르크가 좋아하던 제1막의 짧은 카바티나(cavatina) "자, 이 가슴 속으로(Vieni fra queste braccia')"였다. 이 오페라는 1817년 5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쇼팽은 오페라를 좋아해 그의 장식적 피아니즘도 오페라의 가창에서 힌트를 얻곤 했다는데, 이 곡도 그러한 오페라와의 관계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트리오에서 로시니의 아리아를 폴로네즈 리듬으로 처리한 부분 등은 쇼팽의 독창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XVI. Polonaise No.16 in G-flat major, Op. Posth. (06 : 22) 1829년 작곡되었으며, 브라운에 의하면, 쇼팽이 첫 번째 빈 방문을 앞둔 7개월 전의 작품이라고 한다. 콘스탄치아 그와트코프스카(Konstanze Gladkowska, 1810 - 1889)에 대한 연모의 마음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폴로네즈는 악상의 정교한 변화와 다양성, 확대된 구성, 다양한 리듬 처리, 조바꿈의 묘미, 화려한 피아니즘, 풍부한 정서 표현 등에 있어서 초기의 유작 폴로네즈 중에서도 가장 숙달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 쇼팽 폴로네이즈 폴로네이즈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민속 춤곡 중 하나로, 쇼팽의 폴로네이즈(Chopin's Polonaise)는 무곡에 새로운 감각과 감정을 담고, 내부에 깃든 열렬한 애국심을 더해 그의 폴로네이즈를 완성했다. 최소한 열 다섯 곡에 달하는 폴로네이즈는 쇼팽이 평생토록 꾸준히 작곡했던 장르며, 최초의 폴로네이즈는 그가 여덟 살 무렵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샤바 근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폴란드 농민들의 무곡에 깊이 동화했던 쇼팽은, 궁정 무도회에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은 느긋하고 장엄한 무곡으로부터 진실로 위대한 숨결과 힘을 담아낼 수 있는 서사적이고 리드미컬한 시의 형식으로 폴로네이즈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폴란드의’라는 뜻을 지닌 폴로네이즈는 4분의 3박자의 폴란드 민속 춤곡을 말한다. 일정하게 등장하는 리드미컬한 박자 위에서 단순한 선율을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며 폴란드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기념일이나 결혼식에 종종 사용하고 있다. 본래 농민들 사이에서 의식을 위한 목적으로 쓰이던 폴로네이즈는 점차 상류계층이 즐기는 춤곡으로 성격이 변하면서 민족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야 기악곡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여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에서부터 베버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들이 폴로네이즈의 리듬을 차용하거나 활발하게 사용하면서 음악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흔히 사람들은 쇼팽을 여성적이고 섬세한 감성이 묻어나는 곡을 쓴 작곡가라고 하지만 남성적이고 강인한 분위기의 작품들도 많이 남겼다. 이러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장르가 바로 폴로네이즈(Polonaise)이며 그중에서도 〈영웅 폴로네이즈〉가 가장 완성도 높은 곡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쇼팽에게 있어서 폴로네이즈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고국인 폴란드의 안타까운 운명에 대한 슬픔과 애국심을 폴란드 전통 음악인 폴로네이즈를 통해 가장 확연히 드러낼 수 있었다. 폴로네이즈의 기본 리듬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악센트나 힘찬 박자감까지 어우러지면서 이 장르를 한 층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결과적으로 폴로네이즈는 쇼팽에 이르러 고국에 대한 애절한 민족정신이 결합되며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승화되었다. 쇼팽의 폴로네이즈는 대부분 단순한 3부 형식이며 연주용으로 작곡된 두 곡까지 총 18곡이 있는데 강한 터치감과 화려한 화성적인 진행, 박진감 넘치는 표현력이 매우 인상적이다.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앙리 3세가 폴란드의 왕위에 앉았을 때, 궁정에서 폴란드의 귀족이 신왕 앞을 줄지어 행진했는데, 그 때 폴로네이즈가 하나의 형태로 나타나 의식용으로 사용되었고 거기에 노래가 붙었다. 그 이후부터 궁정에서는 폴로네이즈가 종종 흘러 나왔고, 민속적 풍취를 더해 서민의 곡으로 되어갔다. 거기에는 애국심이나 민족 정신이 담겨졌고, 차츰 대표적인 폴란드의 무곡이 되었다. 쇼팽은 이 무곡에 새로운 감각과 감정을 담고, 내부에 깃든 열렬한 애국심을 더해 그의 폴로네이즈를 완성했다. 쇼팽은 빌로드 양복이 어울리는 섬세 우미한 미남 청년이었지만, 애국심은 남보다 두 배나 강한 일면을 지녔으며, 겉은 부드럽고 순한 듯하나 내면은 강인했다. 따라서 7세 때인 작곡한 g단조와 B♭장조 두 곡을 합쳐 모두 15곡의 폴로네이즈를 작곡했다.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폴로네이즈 E♭장조 작품22번. 특히 걸작으로 꼽는 이 「대폴로네이즈」같은 작품에서는 쇼팽의 강한 열정과 뜨거운 애국적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 곡은 쇼팽의 젊은 시절인 1831년 빈에서 완성했고, 1835년 4월 26일 파리 음악원의 연주회에서 쇼팽이 피아노를 맡아 초연되었다. 오늘날에는 폴로네이즈만이 피아노로 연주되고, 전곡이 연주되는 일은 거의 없다. 프랑스의 향기가 높은 녹턴 풍의 우미한 곡이다. ☆ Polonaise 폴로네이즈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민속 춤곡의 하나인데 그 기원은 확실치 않다. 기록으로는 1573년에 프랑스의 앙리 3세가 폴란드 왕 헨리크로 즉위했을 때 대관식에서 폴로네이즈를 추었다는 문서가 남아있다. 그러나 그 원래의 형태는 훨씬 오래 전부터 농민들 사이에서 의식이나 노동 때 쓰인 몇 종류의 춤곡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되며, 그것이 차츰 성격을 조금씩 바꾸면서 상류 계층으로 침투했다고 여겨진다. 17세기에 들어와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되면서 3박자의 중간 속도로 행렬을 이루고 걸어가듯이 춤추는 음악으로 발달했으며, 특히 궁정에서는 당당한 리듬이 특징적인 기악용 폴로네이즈로 발전했다. 이렇게 정형화된 폴로네이즈는 국외로도 퍼졌는데, 특히 바로크시대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서구 여러 나라의 많은 작곡가들이 폴로네이즈를 작곡했다는 것은 쿠프랭, 텔레만, 바흐, 베버 등의 예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폴란드의 작곡가들은 기악 폴로네이즈 작품을 즐겨 작곡했다. 강대국에 의한 영토 분할이라는 조국의 위기에 직면한 그들에게 있어 폴로네이즈란 서구 작곡가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진 악곡이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작품 중 쇼팽의 첫번째 작품이라고까지 알려져 있는 폴로네이즈(KKIIa-1)도 사실은, 이 장르가 그에게 가까이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아직 춤곡의 특징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지만, 9곡이 남아있는 바르샤바 시절 초기의 폴로네이즈(모두 유작으로 나왔음) 의 시도를 통해서 쇼팽은 춤곡적 폴로네이즈에서 점점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에 의한 폴로네이즈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보면 그가 곡의 규모를 점점 확대하고, 주제와 악상을 다양화하고, 특히 리듬면에서 기본적인 폴로네이즈의 리듬형을 응용하면서 더욱 자유롭고 다양한 리듬의 변화를 받아들여 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향에 앞서 쇼팽이 추구했던 것은 민족 정신을 진정하게 표현하는 예술 음악으로서의 폴로네이즈였다. 요컨대 쇼팽은 춤곡 본래의 근원인 민족 정신 그 자체에 눈을 돌려 그것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스스로 출판한 첫번째 폴로네이즈는 이미 폴로네이즈로서는 10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작품 26의 두 곡으로 파리 시대에 들어간 후의 작품인데, 이 작품들은 춤곡의 성격을 완전히 초월한 당당한 작풍속에 쇼팽의 민족적 주장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마지막 작품인 환상 폴로네이즈에 이르기까지 한 작품 한 작품마다 한층 규모가 크고 새로운 폴로네이즈가 추구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폴로네이즈는 마주르카와 함께 자신의 민족 정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장르였는데, 마주르카가 쇼팽의 일상적인 내면 세계를 표현한 듯한 악곡인데 비해 폴로네이즈는 민족적 주장을 정면에서 표현한 구성적 악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르샤바 시절 초기의 폴로네이즈에서 후기의 환상 폴로네이즈에 이르는 작풍의 놀라운 발전과 음악적 심화는, 그러한 민족 정신의 강한 표현으로서의 폴로네이즈를 쇼팽이 추구한 데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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