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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피아노 소나타 제2번 B-flat 단조 Op. 35
08/01/202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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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eric Chopin  -  Piano Sonata No. 2 in B-flat minor, Op. 35
쇼팽  -  피아노 소나타 제2번 B-flat 단조 Op. 35




Grigory Sokolov, piano



전악장 이어듣기



1. Grave, doppio movimento 
신음하는 듯한 어둡고 무거운 화음으로 4마디의 서주에 이어 
과격한 저음부의 펼친화음의 반주 위에 조급한 제 1주제가 제시 된다. 
곡은 불안한 가운데 점차 거칠어 지고 과겨해지나 애절한 그리고 조용한 d플랫장조의 제 2주제가 나타나 
어느정도 정상적인 분위기를 되 찾는다. 
재현부의 첫 머리에 제 2주제가 먼저 나온 것도 관례적인 소나타 형식과는 다르다. 곡
은 종결부에서 제 1주제의 단편적인 동기가 회상되고 끝난다.




2. Scherzo
곡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로 시작되어 점차 정감이 고조되면서 
격렬한 공포의 분위기 마저 느끼게 한다. 
마치 검은 먹구름이 감돌고 뇌성이 울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듯 반음계적인 연속악구가 이어진다. 
퓨 렌토의 중간부인 트리오는 마치 천사의 음성처럼 청순하고 아름다운 주제로 된 감미로운 부분이다. 
다시 스케르쪼의 주부가 반복된 다음 중간부의 주제가 종결부의 선율로 되 풀이 되어 여운을 남긴다.




3. Marcia Funebre
유명한 장송행진곡 이다. 
이 곡은 소나타가 창상된 이전 1837년에 이미 완성된 것으로 
잃어버린 폴랜드의 조국을 애도하는 뜻에서 쓰여진 것으로 생각 된다. 
따라서 "전 국민의 고통과 탄식이 그의 마음에 반영된 인간만이 쓸 수있는 음악이다" 라고 알려지고 있듯이 
조종과 같은 저음위에 장송행렬의 무거운 발걸음을 묘사하듯 정중한 행진곡 주제가 나타난다. 
중간부의 트리오는 무겁고 침울한 화음과는 달리 비통한 심정을 위안하듯 조용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주부의 행진곡이 되 돌아와 우리들을 슬프게 하지만 마치 장송행렬이 멀리 사라지듯이 조용히 끝난다.




4. Finale. Presto
대단히 짧은 악장이다. 
이 곡은 시종 동음으로 연주되는 셋잇단음표가 반복되는 특이한 악상을 가지고 있다. 
황량항 폐허의 고독감과 처참한 느낌을 주는 동기로 시작된다. 
이 악상은 지칠줄 모르고 계속되어 끝까지 동일한 악상으로 일관한다. 
슈만은 이 악장을 가리켜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조롱에 가깝다. 그러나 이 비 선율적인 즐거움도 없는 악장에서 
반항을 할려는 혼을 힘센 손으로 누르고 있는 어떤 특수한 무서운 혼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인정 않할 수 없다 우리들은 마치 매혹되듯이 
불평도 못하고 그렇다고 칭찬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입장에서 복종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고 
크라크는 "가을 바람이 새로운 묘 위에 나뭇잎을 뿌리고 있다"라고 시적 표현을 하고 있다.





쇼팽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여성이 한 명 있다. 
바로 작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다. 쇼팽보다 6년 연상이다. 
그녀의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뤼실 뒤팽(Amantine Aurore Lucile Dupin)이다.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열여섯 살에 지방 귀족이었던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지만 
시골 영주의 안주인으로 살 수 있는 여성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뒤드방 남작과 헤어진 채 두 아이를 데리고 파리로 갔다. 
그게 1831년의 일이었고 이듬해에 <앵디아나>(Indiana)라는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한다. 
조르주 상드라는 이름은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사용한 필명이었는데 
이후에도 계속 같은 이름으로 활동한다. 
그런데 ‘조르주’는 남자 이름이다. 영어로 하면 ‘조지’가 된다. 
당시에는 이렇게 여성 작가들이 남자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사실 ‘소설 쓰기’는 그 무렵의 지적인 부르주아 여성들이 도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문직’이었다고 해야겠다. ‘차별’이라고 해야 할 성역할이 엄연히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여성의 참정권 제한은 물론이거니와 대학에서도 여성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학 교육을 받아야 가능했던 철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여성의 이름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여성이 활약할 수 있었던 분야로 ‘소설 쓰기’ 외에 또 다른 것을 떠올려보자면 
아마도 음악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남성들이 주도했다. 
쇼팽과 상드의 시대, 그러니까 낭만주의 시대의 기억나는 여성 음악가로는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슈만, 
또 멘델스존의 누나였던 파니 멘델스존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당시에 작가 조르주 상드는 과연 어느 정도의 인기를 누렸을까? 
한마디로 말해 엄청났다.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발자크나 빅토르 위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영국에는 찰스 디킨스가 있었다. 
상드는 불어로 소설을 썼지만 영국에서도 번역돼 인기를 누렸던 작가였고, 
그녀가 받았던 원고료는 앞에서 언급한 세사람 보다 오히려 한 수 위였다. 
게다가 상드에게는 이른바 ‘무명 시절’이 없었다. 
처녀작이었던 <앵디아나>가 요즘말로 ‘대박’이 나면서 단숨에 유명 작가로 부상했던 것이다. 

그녀가 파리로 들어섰던 1831년에 폴란드의 청년 쇼팽도 역시 파리에 갔다. 
물론 우연이었겠지만 훗날 두 사람의 열애를 떠올린다면 필연처럼 생각 되기도 한다. 
1830년 11월에 폴란드를 떠난 쇼팽은 오스트리아 빈에 체류하다가 프랑스 파리로 간다. 
그 여정 중에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을 때, 조국 폴란드의 독립운동 봉기가
 러시아 군대에 진압됐다는 소식을 듣고 연습곡 12번 ‘혁명’을 작곡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는 좀 불투명 하다. 
실제로 음악가 쇼팽이 ‘폴란드 민족주의자’로 채색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라고 해야겠다. 
그는 조국 폴란드를 분명히 사랑했고 자신의 음악에, 
특히 ‘마주르카’에 폴란드 민속음악의 체취를 강하게 담아내기는 했지만 
민족주의 운동가로서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할 겄이다. 
우리가 흔히 쇼팽을 일컬어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수식어가 쇼팽을 설명하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서양음악사의 인물 수식어는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경우들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음악의 어머니 헨델’일 겄이다. 
같은 시대의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칭해 놓고 그와 대구를 이루는 표현으로 등장한 듯한데,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수식어이다. 
하지만 쇼팽의 경우에는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물론 이런 표현 앞에서 쇼팽보다 한 살 아래인 리스트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겄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두 사람은 당대의 피아노 음악을 수놓았던 천재들이었다. 
그러나 쇼팽에 비해 리스트의 피아니즘은 좀 더 소설적이고 영화적이라고 생각 되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또한 떠올릴 것은 당대에 피아노라는 악기가 차지했던 위상이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비약적인 발전과 개량을 이룬 악기, 
그와 더불어 대량 생산과 대량 보급이 가능해진 악기로 피아노를 빼 놓을 수 없을 겄이다. 
말하자면 19세기 초중반에 가장 인기 있던 악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부르주아지들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악기가 바로 피아노였다. 
집안의 거실에 프랑스 산 플레옐이나 영국산 브로드우드, 
혹은 독일산 베흐슈타인 피아노를 들여 놓는 것이 교양과 품위의 상징이던 시대였다. 
오늘날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스타인웨이는 이보다 조금 후발 주자였다. 

음악의 발전은 악기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니 쇼팽과 리스트는 ‘피아노 르네상스’의 선택을 받은 음악가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31년 9월, 기진맥진한 심신으로 파리에 간 쇼팽은 약 6개월간 꽤나 고생을 했다고 한다. 
주머니에 돈도 떨어진데다 파리에서는 아직 무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듬해 2월에 파리의 살 플레옐에서 가졌던 데뷔 연주회가 큰 성공을 거둔다. 
조르주 상드가 처녀작 <앵디아나>로 일약 유명 작가 대열에 올라섰던 바로 그해에, 
쇼팽은 피아노 회사 플레옐이 만든 콘서트홀에서 성공적인 데뷔 연주회를 치렀던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836년 리스트의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의 살롱에서였다. 
남장을 하고 시가를 피우는 유명 여성 작가, 
아마도 사회주의자였을 조르주 상드에게 쇼팽은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 또한 확실한 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의 강렬한 개성에 끌렸을 거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했을 겄이다. 
그렇지 않다면 약 1년 뒤부터 전개된 둘의 열애를 설명하기 어렵다. 
첫 만남에서 진짜로 거부감을 느꼈다면 아마 둘은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겄이다.

어쨌던 두 사람은 1838년 가을, 스페인 마요르카 섬으로 가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상드의 두 아이들인 모리스와 솔랑즈도 함께였다. 
하지만 마요르카에서의 생활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두 사람과 아이들은 발데모사 수도원에서 살았는데 주거 여건이 별로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상드와 쇼팽의 관계를 의심한 동네 사람들의 비난과 구박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우기가 닥치는 바람에 몸이 약한 쇼팽은 건강을 크게 상한다. 
아마도 폐병으로 추정되는데 쇼팽은 이때 각혈을 많이 했다고 한다. 
상드는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지만 아무 차도가 없자 할 수 없이 마요르카 섬을 떠난다. 
마르세유에서 잠시 요양을 한 후,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 중부의 노앙(Nohant)으로 쇼팽과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이때부터 1846년까지 쇼팽과 상드는 노앙과 파리를 오가며 지냈다.

상드는 쇼팽의 음악 인생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특히 노앙 시절은 쇼팽의 삶에서 매우 행복한 시기였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쇼팽, 
기질적으로 예민한데다 신체적 질병까지 있었던 그는 
상드의 모성애적 사랑에 큰 위로를 받았을 겄이다. 
물론 당대와 훗날까지도 일부 남성들은 상드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험담을 퍼부었다. 
남성 편력이 많은데다 과시욕이 넘치는 여자, 소설이 많이 팔리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는 못한 B급 작가라는 등의 비난이 많았다. 
보들레르와 니체는 아주 대놓고 상드를 욕했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쇼팽과의 관계에서 상드가 보여줬던 태도는 헌신적이었다. 
귀족적 취향에 까탈스럽고 병약한, 
때로는 상드의 남자관계를 의심하기까지 했던 쇼팽의 곁에 상드는 9년간이나 머물렀다. 
지나치게 모성애적인 연애관계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던 상드는 쇼팽에게 행복과 영감을 줬던, 어머니 같은 연인이었고 예술의 뮤즈였다. 

쇼팽의 창작적 전성기는 바로 그 시기, 상드와 사랑에 빠져 있던 마요르카에서 노앙까지의 시절이었다. 
마요르카에 머물던 시기에 쇼팽은 24곡의 전주곡을 완성했고, 노앙 시절에도 많은 곡을 썼지만 
그중에서도 소나타 2번 b플랫단조와 소나타 3번 b단조를 빼놓을 수 없다. 
전자는 노앙에 당도한 직후였던 1939년 여름에, 
후자는 노앙 시절의 막바지였던 1844년 여름에 작곡했다. 
이 두 곡 중에서 소나타 3번을 음악적으로 더 원숙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장송(葬送)’이라고 불리는 소나타 2번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이 사실이다. 
형식적 완성미는 3번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감성적으로 호소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절망적인 색채감, 무겁고 어두운 리듬이 두드러진 소나타이다. 
특히 3악장 ‘장송 행진곡’이 유명한데 쇼팽은 이 악장을 1837년에 이미 작곡했다가 
2년 뒤에 소나타 2번에 포함 시킨다.


추천음반

1.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84, DG. 오랜 세월 꾸준히 손꼽혀 온 명연이다. 
물론 쇼팽의 음악 중에서도 소나타 2번은 남성적 열정을 대변하는 곡 중의 하나인 까닭에, 
이지적이고 때로는 차갑게까지 들리는 폴리니의 연주가 적합하지 않다는 이견도 있다. 
그렇더라도 쇼팽은 폴리니의 한 시절을 대표했던 레퍼토리다. 
차분하게 음악을 풀어 나가는 솜씨가 역시 폴리니답다. 치밀한 음향의 조율이 돋보인다. 
어둡고 무거운 악구와 부드럽고 섬세한 악구를 견실하게 조탁해 가는 연주력이 탁월하다. 
자칫하면 오버하거나 그 반대로 맥이 빠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 쇼팽의 소나타 2번일 터. 
하지만 폴리니의 연주는 두고두고 들을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다. 
2008년의 새로운 녹음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좋다.

2.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2008, Naive. 개성이 넘치는 강렬한 연주다. 
소콜로프는 1950년 레닌그라드 태생. 러시안 피아니즘의 계승자답게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하고 영롱한 연주를 들려준다. 
리듬과 템포의 운영은 기존의 쇼팽 연주들에 비해 좀 더 자유스럽다. 
유니크한 음악을 창조하려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엿보게 한다. 
어딘지 관조적인 폴리니의 스타일에 비하자면 훨씬 더 음악이 피부로 육박해 오는 느낌을 준다. 
1악장 서주부터 듣는 이의 귀를 붙들어 맨다. 
특히 소나타 2번이 가진 강약의 대비, 애틋한 서정과 남성적인 폭발력의 대비를 
선명하게 구사하고 있는 호연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장의 CD에 24개의 전주곡과 소나타 2번을 함께 담았다. 





8월 31일 조인스 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 한다고 합니다.
제가 듣는 음악을 그저 편하게 좋아 하시는 여러분과 나누고자 시작 했지만
제 뜻대로 정말 그랬는지.....알수 없읍니다.
그간 오랜시간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블로그 태그 제한으로 인하여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인스 블로그의 한 귀퉁이에 
허접한 살림이라도 꾸릴수 있도록 해주신 미주 중앙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2013년 2월 13일 오픈을 시작으로 지금 이 글까지 1028개의 글이 올려졌고
206,526명의 회원께서 찾아 주셨읍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블로그 백업.....
글쎄요, 의미가 있을지.....
고민좀 해 봐야겠읍니다.


날씨가 무척 덥군요.
건강 조심하시고 내내 안녕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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