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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제6번 A단조 '비극적'
06/19/2020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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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  Symphony No. 6 in A Minor 'Tragic'
말러 교향곡 제6번 A단조 '비극적'




Philharmonia Orchestra
Esa-Pekka Salonen, cond
Rec, 2011


제1악장 알레그로 에네르기코, 마 논 트로포
첫 악장은 파울 베커가 '교향적 소나타 구조의 고과서'라고 불렀을 정도로 
모범적인 소나타 형식을 지니고 있다. 
악장은 제시부와 발전부, 재혀부로 깨끗하게 구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이 큰 곡에서 제시부는 완전히 반복된다.
제1주제는 돌진하는 듯한 난폭한 액센트의 행진곡이며, 
'알마의 주제'라고 불리는 F 장조의 제2주제는 '열정적으로'라고 지시되어 있고 
제1주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에 놓여 있다. 
제1주제와 제2주제 사이에는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코랄이 놓여 있는데, 
이 코랄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다 발전부에서는 숨돌림 틈도 없는 전투가 전개되며 
느닷없이 카우벨의 메아리가 울리는 평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발전부에 추진력을 주는 것은 역시 앞서 말한 '장단조 화음 리듬'이다. 
재현부는 거의 제시부의 순서를 따르고 있으며, 
짧지 않은 코다에서도 제시부의 순서는 간략하게나마 다시 반복된다.

I. Allegro energico, ma non troppo  24'00


제2악장 스케르쪼
2악장에서는 스케르쪼 주제와 트리오 주제가 계속 반복된다. 
스케로쪼-트리오-스케르쪼 1-트리오 1--스케르쪼 2-코다의 순서로 전개된다고 볼 수 잇는데, 
각 주제는 돌아올 때마다 많은 변형을 겪는다. 
스케르쪼 주제와 트리오 주제는 그 분위기에서 완전히 다르다. 
스케르쪼는 '죽음의 춤'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묘하고 무시무시하며, 토리오는 가볍고 장난스럽다. 
세 박자와 두 박자 사이에서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트리오를 통해 말러는 
그의 두 딸의 장난을 묘사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마는 바로 이 점에서, 
이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장난이 점차 폭력의 세계에 지배받는 곡의 결말에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자, 여기서 많은 학자들이 말러의 트리오가 R. 쉬트라우스의 <가정 교향곡> 중 
스케르쪼 주제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쉬트라우스는 <가정 교향곡>이 스케르조 역시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고 하고, 
이 곡의 악보가 출판될 때까지 말러가 스케르쪼를 작곡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보아도 말러가 쉬트라우스의 주제를 인용하고 잇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II. Scherzo. Wuchtig  13'10


제3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이 악장도 4번 교향곡의 느린 악장과 마찬가지로 두 주제가 번갈아 등장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파트 A - 파트 B - 파트 A1 - 파트 B1 - 파트 A2의 구조인데, 
4번 교향곡과 전혀 다른 점은 두 주제가 대조되는 것이 아니라, 
B의 주제가 A 주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파트 B를 A의 작은 발전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멜로디는 잔잔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소방울을 배경으로 가진 클라이맥스는 웅변적이다. 
인기 있는 말러의 느린 악장 중의 하나이다.

III. Andante Moderato  14'06


제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모데라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말러 적인(매우 추상적인 형용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음악을 들라고 한다면 
선택하는 것이 교향곡 6번의 마지막 악장이다. 
이유는 처절하게 투쟁하고 철저하게 패배하는 이 곡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감상적인 곡도 없지만 곡의 형식은 1악장과 마찬가지로 흠 없는 소나타 형식이다. 
제시부는 소스테누토의 서주를 포함하고 있으며 멀리서 울리는 듯한 음악이 제1주제와 서주를 잇는다. 
A 단조의 제1주제는 공격적이고 리드미컬한 것이 특징이며 
D 장조의 제2주제도 조금 덜 강하기는 하지만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발전부는 두 주요 주제 외에도 코랄 주제와 두 번의 해머 타격 등을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기교를 가지고 교향곡의 한계까지 나아간다. 
역시 서주로서 시작되는 재현부에서는 그 후 멀리서 울리는 듯한 음악이 나오는 것은 동일하지만, 
제1주제와 제2주제의 위치는 바뀌어 등장하게 된다. 코다에서 음악이 고통스럽게 증폭된 후
(초판에서는 마지막 해머의 일격도 가해지고), 꺼지듯 이 어둠 속으로 잦아들며 
피치카토의 고독한 울림을 마지막으로 이 모둔 투쟁은 종결된다.

IV. Finale. Allegro moderato ? Allegro energico  29'15


말러의  교향곡 제5번에서 상상의 주인공은 비교적 곧은 길을, 
맨 처음 장송행진곡에서 기쁨에 찬 론도 피날레까지, 그야말로 곧바로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교향곡 제6번에서는 첫 악장의 우울한 결심과 공격성이 
마지막 알레그로 모데라토 악장에서 한 번 강조되는 데 그치며, 
그나마도  패배의 음표로 끝나 그 씁쓸함이란 비길 데 없다. 
이 패배주의의 씁쓸함은 말러의 이 무렵 생활에서
이 때만큼 이런 어두운 염세주의를 보이게 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것이다. 
안타깝게도 교향곡 제6번을 쓸 무렵에 관한 자료는 극히  적다.

말러의  절친한 친구 나탈리 바우어-레흐너와 달리, 
아내 알마 말러는 남편의 창작 생활을 특별히 눈여겨보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뒤 정황을  잘 짜 맞추면, 갓 결혼해 딸아이 하나를 둔 말러는 
1903년 6월 10일 마이에르니히에 도착해 곧바로 작곡에 착수했음을 알 수 있다. 
알마는  어느 날 남편이 오두막(작곡할 때 쓴 작은 집)에서 돌아와, 
알마를 음악 주제로 표현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회상한다.

"성공할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기다려봐요." 문제의 주제가 제6번에서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제스처'의 하나인 첫 악장 제2주제이다.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장조 가락이 힘차고 꿋꿋하다. 
총보 이 부분에 말러는 '힘차게'라고 지시해 넣었다. 
8월말 빈으로 돌아오는 길에 말러는 이미 가운데 두 악장의  약식 악보를 완성한 상태였으며, 
첫 악장 스케치도 끝냈음에 틀림없다.
이듬해(1904년)  초여름, 
알마는 둘째 딸 안나(흔히 '구키(Gucki)'라 불렀다)를 낳은 산욕에서 채 회복하지 못해 
마이에르니히에 늦게 도착했다. 6월 내내  하늘도 땅도 말러가 악보에 매달리는 것을 막으려는 듯했다. 
본의 아니게 혼자가 되어 아무 일도 못하는 오랜 날 동안 W rthersee의 날씨는  지독했다.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은 자주 폭풍우를 내렸다. 
자주 엄습하던, 자신의 예술의 생이 메말라 버렸다는 근심이, 
'마음의 조각들을 주워  모으려는' 그를 괴롭혔다. 
7월 초가 되면서 날씨는 나아졌으나 갑자기 무더위가 찾아왔다. 
잠깐도 더 참을 수 없게 된 말러는 연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써서 
자신을 달래는 한편 알마가 도착할 때까지 Dolomites 지방으로 반짝 여행을 다녀왔다. 
Sextener  Dolomites의 뾰족뾰족한 봉우리 틈에서 말러는 마침내 
내적 충동과 영감을 찾아 새 교향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8월말, 빈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면서 말러는 친구 귀도 아들러와 브루노 발터에게 
교향곡 제6번의 완성을 말할 수 있었다. 
짧은 편지였지만 확신에 찬 긍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1904년 여름은 말러가 카린티아 지방에서 보낸 여름 가운데 가장 평화로웠다. 
그렇다면 바로 이런 때 가장 비극적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알마에 따르면 말러는 뒤에 마지막 악장에서 망치로 세 번 두드리는 패시지가 
1907년 그에게 닥칠 세 번의 운명의  타격의 전조였다고 한다. 
큰딸의 죽음, 심장 상태가 아주 위험하다는 진단, 그리고 빈을 떠나게 된 일이다.
앞의  교향곡들과는 달리 제6번이 네 악장으로 된 점은 고전 규범으로의 회귀라고 볼 수 있다. 
제5번은 다섯 악장, 제3번은 여섯 악장이었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새 작품 마지막 악장의 과감하고 원대한 스케일은 
말러의 이전 모든 작품을 능가함을 얼른 알 수  있다.

1906년,  에센에서 있을 세계 초연을 앞둔 리허설 동안 
말러는 가운데 두 악장의 순서를 갖고 고심했다. 
맨 처음 순서는  알레그로-스케르쪼-안단테-피날레였다. 
그러나 에센에서 여러 친구들이 스케르쪼와 알레그로 처음 부분이 너무 비슷하다고 지적하자 
말러도 흔들린  듯하다. 몇달 지나 1907년 1월, 말러는 본디 순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악장 순서를 바꾸는 큰 문제부처 자질구레한 데까지 갖가지로 망설이고  
마음을 바꾸고 했음은 당대 많은 이들이 증언하는 바이다. 
늘 그랬듯 말러는 교향곡 제6번을 쓰면서도 자기는 
자기보다 위대한 어떤 힘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때만은 유독 이 힘이 알쏭달쏭하고 비극적이고 
무자비해 그를 걷잡을 수 없는 번민의 상태로 몰고  갔다

말러  교향곡의 주인공들이 달게 수용하고 
제6번 마지막 악장에서처럼 종종 굴복하는 이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말러 자신이 부딪쳐야 할 투쟁이다.  
마지막 리허설 직후 한 친구가 "하지만 그렇게 선량한 사람이
이렇게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내용을 작품에 표현할 수 있겠나?"하고 묻자 
말러는  "바로 내가 당한 잔인함, 내가 느낀 아픔일세."라고 충격적으로 대답하여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름에  값하는 모든 예술작품들은 두 개의 상반하는 요구, 통합과 다양을 만족시켜야 한다. 
교향곡 제6번에서 말러는 참신한 만큼이나 고압적인 해결을  취함으로서 두 요구에 다 응한다. 
각 악장 사이를 순환의 망으로 연결하기 위해 사실상 너무나 제약된 주제단위들에서 
무한한 수의 주제와 모티브를  창출하기 위해 그토록 애쓴 적이 전에 없었다. 
처음부터 말러는 작품의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성격을, 
단조 앞에 장조를 내세우는 전통을 뒤집은  화성적 라이트 모티브로 정의한다. 
이런 순서는 수없이 많이 되풀이 되고, 거의 언제나 또 다른 리듬 라이트 모티브를  수반한다.

고전적  균형의 전범이라 할 첫 악장 알레그로 에네르지코는 
단(單)악장 소나타 형식에 제시부도 전통을 따라 뒤풀이를 두었다. 
여기서 말러는 결정적으로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과거와 결별한다. 
잔인하고 거의 가치 없는 세계가 나타난다. 단정한, 때로 무뚝뚝하기까지 한 주제들은 
넓은 음정,  오스티나토 리듬, 팽팽하고 번민(煩悶)에 찬 분위기로 성격지워진다. 
교향곡의 주인공은 힘찬 행진곡 리듬에 맞춰 싸움터로 떠난다. 
군대 음악의  세계에서 가져온 악기, 작은북이 리듬에 장식을 준다.
주된  주제가 두 번 제시되고 나면 목관의 경과적 에피소드, 코랄에서 동상의 내용을 빼고 
대신 일종의 스산한 형식주의와 기괴한 화음을 넣은, 긴 음가의  연결 패시지이다. 
브루크너 교향곡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승리의 확신이 노래와 달리 
말러의 코랄은 '부정적이' 코랄이며, 그만큼 이 교향곡에서  가장 충격적인 혁신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보였듯 이 음악이 이끄는 곳은, 준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짜 침입자처럼 끼어 드는 알마의  주제는 혹 예외가 될지 모르겠다.

두  번째 주제요소는 이전 말러의 많은 주제를 낳았던, 상승하는(다라서 낙관적인) 모티브 그룹에 속한다. 
그러나 알마에 대해 가진(가지고 싶어한)  생각만 가득할 뿐, 실제는 썩 잘 담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말러가 제시하는 것은 젊은 알마의 매력도 아름다움도 아니고
 (강제되었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의도적인 낙관주의이다. 
발전의 양상을 띠는 한 도막은 특별히 짚고 넘어갈 만하다. 
바이올린 트레몰란도를 배경으로 목관과 호른이  전원풍의 고요함으로 
주거니 받거니 만들어내는 알마 주제의 단편과 변형들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소방울 소리가 들린다. 
인간사의 번잡에서 한 걸을  떠난, 은인자적의 상징이다 악장은 가장조로 끝나지만, 
가장조란 진짜 승리라기보다 폭발로 들리는 조성이다 
마치 '주인공'이 자기의 승리를 정말로  믿지 않으면서 이겼다고 자기를 다짐하기라도 하는 듯이.

'묵직하게'라고  지시한 스케르쪼의 해석에는 알마가 제시한 '단서'가 있으나 설득력은 적다. 
알마는 이 악장을 두 어린 아이가 마이에르니히의 정원 모래 위를  아장아장 걸으며 
산수놀이를 하는 정경'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운데 두 악장을 쓴 1903년이면 안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푸치도(마리아는  1902년에 태어났고 1907년 죽었다) 겨우 여덟, 아홉 달 된 때다 
차라리 스케르쪼 악장에서 들리는 것은 교향곡 제1번 '칼롯(Callot)  풍의 장송행진곡'에 서 
처음 나타난 종류의 신(新) 중세적 죽음이 춤이다.
'춤'이라고  했지만, 이 음산한 스케르쪼는 진짜 춤곡은 아니고 차라리 절름거리는 춤이라 해야 옳다. 
셋잇단 리듬이 매 마디마다 약박(弱拍)에 떨어지는  액센트로 끊임없이 견제 당하기 때문이다. 
음산하고 음흉한 전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는 피콜로와 
내림 마 클라리넷, 실로폰(카랑카랑한 인물)을 쓴  악기편성도 일조 한다. 
박자표가 변하고 불안정한 리듬에 엄격한 구(舊) 양식 대위법을 쓴 트리오도 더없이 불안하다. 
누더기에 흉한 모습의  꼭두각시가 거의 병적인 이상야릇한 춤을 추는 듯하다.

교향곡의  잔인하고 적대적인 세계에 대조를 가져오는 것은 안단테 모데라토 악장의 몫이다. 
정말이지 이 악장은 넉넉한 서정성으로 인하여, 
제4번 교향곡  안단테를 빼고는 말러의 단 하나 진짜 교향적 안단테라 할 만하다. 
적대자들로부터 종종 '천박하다'고 비난받는 도입주제를 분석한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그 비대칭과 이음, 무엇보다 본디 형태로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점을 강조한다. 
가락으로 말하자면 아직도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세계에 속하지만, 애곡(哀曲)의 분위기는 없다. 
도입주제에 이어 두 개의 대조적 에피소드, 첫째는 현 두 번째는 목관의 단조이지만 곧  결합 아니, 융합된다. 
정위(正位)와 도치를 되풀이하는 셋잇단음표와 지저귀는 소방울 소리가 
말러의 창조적 에너지 대부분의 원천이었던 자연의 복된  고요를 일깨운다.

텍스트(괴테의  '파우스트' 마지막 장)가 형식을 규정한 교향곡 제8번 제2부를 빼면 
제6번의 서사적 피날레가 말러 교향곡 악장 가운데 가장 길다. 
이 방대한  음악적 '소설'의 구성 요소들은 언제나처럼 
아도르노가 정의한 바 '시간의 비가역성'의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상태에 있다. 
첫  악구들에서부터 가장 어두운 밤이 우리를 에워싼다. 
세계의 종말을 암시하는 혼돈이다. 어둠을 뚫고 주제의 단편이 나타나지만 곧 스러져버리고 만다.  
바이올린의 가장 높은 음악에서 나오는 커다란 첫 '절규'는 첼로의 가장 낮은 음으로 추락하고, 
연쇄적으로 교향곡의 화성-리듬 이중 라이트  모티브, 
튜바의 상승하는 옥타브 모티브는 첫 악장 주제를 상기시키며, 
이어 스케르조에서 빌려온 분산화음 모티브를 지나 마지막으로 제2주제의  복선, 
이 마지막 악장에서 유일하게 낙관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 서주에서 가장 충격적인 요소는 의심 할 나위 없이 목관의 '무겁게'라 지시한 에피소드일 것이다. 
역시 코랄풍 패시지이지만 첫 악장  에피소드보다 훨씬 더 역설적이고 부정적이다.
알레그로  모데라토의 주(主) 주제(主題)는 이제가지 소개된 모든 요소로 이루어진다. 
서주가 처음 되풀이되는 데서 맨 처음 '절규'는 전도되고 다른 화성을  띠며, 이 형태로 발전부를 끌어들인다. 
발전부는 간결한 분석을 거부하다. 망치로 치는 듯한 두 울림이 이 서사적 투쟁의 주도막을 가른다. 
제법  뒤틀린 모습의 재현부에서는 두 주된 주제요소의 순서가 바뀌어, 
교향곡 전체의 주 라이트 모티브처럼 장조가 단조 앞에 나온다. 
맨 처음 '절규'의  마지막 변형이 마지막 몇 마디에서 장조와 단조를 다 쓴, 
과장된 리듬 라이트 모티브로 나타나 최후의 파국을 선포한다. 
파괴와 황량함의 느낌을  주는 코다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상승 옥타브 모티브를 느리게 한 형태가 관현악의 가장 낮은 악기군 사이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는 모습은 
일종의  음산한 비가와도 같다. 마지막으로 옥타브 모티브가 이번에는 낮은 현으로 되풀이되면서 악장은 끝난다. 
사납게 뛰어드는 포르티시모의 단조  화음(이번에는 장조를 앞세우지 않는다)을, 
서서히 죽어 가는 리듬 라이트 모티브가 받쳐준다. 
남은 것은 절망, 영혼의 어두운 밤뿐, 패배의  느낌은 언뜻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 리듬으로 요약된다.

아도르노가  '끝이 나쁘면 다 나쁘다'고 묘사한 이 마무리의 의미를 더 숙고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이런 절대적 절망의 순간을 지나게  마련이며, 
말러는 여기서나 교향곡 제8번의 승리의 울림에서나 마찬가지로 말러인 것 같다. 
창조적 예술가로서 그는 제6번의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지나 다음 작품들에서는 
또 다른 지평으로 이끌 진화의 불가결한 단계였으며 더 나중으로는 당연히도 
『대지의 노래』 마지막의, 영원을 향해  열린 '하늘 빛 지평', 빛나는 조망으로 이끌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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