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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 - 수수께끼 변주곡 Op. 36
02/15/202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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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Elgar  -  Enigma Variations, Op 36 
엘가  -  수수께끼 변주곡 Op. 36



Jacek Kaspszyk, conductor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Warsaw Philharmonic Concert Hall
2017.11.11


00:35 주제: 안단테 - 02:18 
1변주: 같은 빠르기로 “C.A.E” - 04:12 
2변주: 알레그로 “H.D.S.-P” - 05:04 
3변주: 알레그레토 “R.B.T” - 06:30 
4변주: 알레그로 디 몰토 “W.M.B” - 07:14 
5변주: 모데라토 “R.P.A” - 09:55 
6변주: 안단티노 “Ysobel” - 11:24 
7변주: 프레스토 “Troyte” - 12:37 
8변주: 알레그레토 “W.N” - 14:46 
9변주: 아다지오 “Nimrod” - 19:36 
10변주: 간주곡. 알레그레토 “Dorabella” - 22:02 
11변주: 알레그로 디 몰토 “G.R.S” - 23:09 
12변주: 안단테 “B.G.N” - 26:47 
13변주: 로만차. 모데라토 “***” - 30:19 
14변주: 피날레. 알레그로 프레스토 “E.D.U”


에드워드 엘가는 영국 서남부 우스터 근처의 브로드히스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전형적인 시골이라 할 브로드히스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엘가의 삶과 음악 전체를 지배했다. 
엘가의 아버지는 피아노 조율사이며 악기점 주인이기도 했는데 
나중엔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를 지냈다. 
어린 시절의 엘가는 예술적인 감각과 관심이 있긴 해도 천재는 아니었다. 
엘가의 교육은 사실상 그의 나이 15살 때 끝났다. 음악은 거의 독학으로 익혔다. 
아버지 가게안의 악기는 모두 다루어봤고 특히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났다. 
우스터와 런던의 선생에게서 정식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1889년, 8년 연상의 캐롤라인 로버츠와 결혼하였으며, 
헌신적인 아내의 내조로 용기를 얻어 지방음악가로 활동하면서 작곡활동을 하였다. 

41세 때인 1899년 런던에서 ‘수수께끼 변주곡’이 초연되어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으며, 
1900년 오라토리오 ‘제론티우스의 꿈’이 독일에서 연주되어 
R.슈트라우스에게 인정받고 유럽에 이름이 알려지면서 
25년간의 무명 시기를 마감하였다. 
1908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은 1년 사이에 빈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100회 이상 연주되어 호평을 받았다. 
특히 ‘위풍당당 행진곡’의 5곡 중 제1번은 1902년,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1904년, 기사 칭호를 받았고, 만년에는 준남작에 추서되기도 하였으나, 
1920년 아내를 잃은 후 14년간 거의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엘가의 본래 영역은 합창을 이용한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이었으나 
교향곡, 협주곡 등 관현악작품에서 수완을 발휘했다. 
그의 음악은 슈만, 브람스로부터 화성의 영향, 바그너로부터 반음계주의의 영향 등, 
후기 낭만파의 영향을 받아, 영국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관현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 작품번호 36은 ‘수수께끼 변주곡’으로 더 널리 알려진, 
엘가의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이다. 
주제와 14변주로 된 이 작품은 엘가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편성 작품 가운데 하나로, 
변주 하나하나가 그의 가까운 친구들을 묘사하고 있다.

1898년 어느 날, 엘가는 피아노 앞에 앉아 공상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엘가의 아내는 엘가가 연주한 선율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에게 다시 한 번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엘가는 아내를 즐겁게 하기 위해 자기 친구들의 케릭터를 묘사한 음악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그 뒤에 그는 이 피아노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해서 1899년 6월 19일 
런던 성 제임스 홀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초연했다.

 '수수께끼 변주곡'이라는 곡목은 엘가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다. 
원래의 곡목은 '관현악을 위한 오리지날 주제의 변주곡' 이었는데, 
악보 첫 페이지에 '수수께끼(Enigma)'라고 썼고, 
그 자신이 작품에 숨은 수수께끼를 언급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수께끼 변주곡'으로 불리게 됐다. 

엘가가 제시한 수수께끼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각 변주에서 작곡자와 친한 지인(知人)들의 성격을 묘사했다. 
거기에는 엘가와 함께 실내악을 연주하곤 했던 피아니스트의 이름도 있고, 
지방의 지주나 엘가를 찬미했던 젊은 아가씨의 이름도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로 첫 번 째 변주곡은 아내 앨리스를 위해서, 
마지막 변주곡은 엘가 자신을 위해서였다. 
또 하나는 전곡에 걸쳐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주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숨은 주제)은 연주되지 않는다"라고 엘가는 말했다. 
첫 번째 수수께끼는 극성스런 연구자들에 의해 낱낱이 밝혀져 버렸다. 
엘가 자신이 각 변주에 'H.D.S.P' '님로드' 등의 제목을 붙였으므로 
어느 정도 예정된 결과였다. 
예를 들면, 'H.D.S.P'는 
휴 데이빗 스튜어트포웰 이라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를 묘사한 변주다. 
'님로드'는 친구 요하네스 예거를 나타낸 변주였다. 
'예거'는 독일어로 사냥꾼을 뜻한다. 
님로드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사냥의 명수다. 
'도라벨라' 변주는 젊은 여인인 도라 페니를 묘사했다. 
도라가 약간 말을 더듬은 것을 귀엽게 묘사한 싱코페이션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 두 번째 수수께끼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숨은 주제가 있으나 드러나지 않는다'는데 착안해 
최초의 주제와 대위법적 혹은 화성적으로 연관성을 가진, 
유명한 선율일 것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이에 따라 고금의 숱한 선율이 이 주제와 어울리는 지 검증을 거쳐야 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세계인이 가장 잘 아는 영국(스코틀랜드)민요 '올드 랭 자인' 이었다. 
실제로 '수수께끼 변주곡'의 주제와 '올드 랭 자인'을 함께 부르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린다. 
그러나 "엘가가 고작 이 정도 수수께끼를 숨겼다는 건가"라는 반론과 함께, 
노래를 끝까지 부를 경우 결국 어긋나는 부분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 설도 그다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작품을 초연했을 때 같이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프라하 교향곡이라고 제안한다. 
또는 ‘Rule Britannia(애국적인 영국의 국가, Thomas Arne 작곡)’ 가운데 
“never, never, never”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일찍이 쇼팽이 ‘모든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비음악적’이라 평했던 영국에도
물론 많은 음악가들이 있었지만, 
사실 후세는 고사하고 당대에도 도버 해협 너머에까지 널리 퍼진 명성을 얻은 영국 작곡가는 
퍼셀과 헨델(태생은 독일이지만, 어쨌든 본인 의지에 따라 귀화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이후로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에드워드 엘가가 나타나 오랜 침체를 깨고 전 유럽에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각인되기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엘가 역시 신동은 아니었다. 
독학으로 음악을 익힌 탓도 있지만, 
본격적인 작곡 활동은 30대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그 전에도 틈틈이 습작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활동으로 바빴고
(교회 오르간 주자, 바순 주자, 바이올리니스트, 비올라 및 피아노 선생, 
지역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지휘자 등을 겸해서 했다) 
서른두 살 때 자신의 제자(그러나 여덟 살 연상이었다)였던 
캐럴라인 앨리스 로버츠와 결혼하고서야 
생활과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이 여인은 평생토록 남편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면서 음악적인 면에서도 많은 충고를 했으며, 
진정으로 엘가에게 ‘뮤즈’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엘가는 새로운 착상이 떠오를 때마다 아내에게 피아노로 들려주고 조언을 구했으며, 
다른 누구보다도 그녀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수수께끼 변주곡> 역시 그녀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작품이었다.

1899년의 어느 날, 엘가는 피아노 앞에 앉아 몽상에 잠겨 있다가 
즉흥적으로 간략한 선율을 연주했다.
 엘가의 아내는 그 선율을 마음에 들어 했고, 
엘가는 아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 선율을 여러 가지로 변주하면서 
각곡에 자신과 아내가 아는 이들의 면모 또는 (대상자가 음악가일 경우에는) 
그들이 즐겨 구사한 음악 스타일을 묘사적으로 그려냈다. 
결국 작곡가는 이들 곡을 확장하고 관현악으로 편성해 일련의 변주곡으로 정리했으며 
‘창작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 이름 지은 뒤 ‘수수께끼’라는 부제를 달았다. 
작곡 경위는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초연 과정에 대해서도 그리 극적이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휴버트 패리(Hubert Parry, 1848-1918)는 (엘가와 마찬가지로) 
생전에 ‘경’(sir)의 칭호를 받은 작곡가로, 
당대에 영국 음악계의 중진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1899년 초의 어느 비 오는 날, 
그의 집에 출판사 노벨로(정확히는 Novello & Co.)의 
음악 담당 편집자인 오거스터스 제거(이 이름을 반드시 기억하시길!)가 찾아와 
“패리 경, 이걸 좀 봐주지 않겠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악보 뭉치를 내밀었다. 
패리는 묵묵히 악보를 훑어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제거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외치고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집 앞에서 마차를 불러 세운 그는 마부에게 지휘자 한스 리히터
(1843-1916. 독일 지휘자로 바그너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1877년부터는 영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의 집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영국 음악계에 새로운 걸작이 혜성처럼 등장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차가 빗길을 뚫고 사라진 지 얼마 후인 1899년 6월 19일, 
<수수께끼 변주곡>은 리히터의 지휘로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초연 당시 비평가 가운데는 ‘수수께끼’라는 제목에 담긴 
신비화 전략을 마뜩찮게 보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작품의 풍부한 악상과 견실한 짜임새, 멋진 관현악법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이후 엘가는 마지막 변주에 100마디의 악상과 오르간 파트를 덧붙여 개정했으며, 
이 개정판은 1899년 12월 13일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처음 연주되었다. 
오늘날 연주되는 것은 이 개정판이다. 
이 작품의 유럽 대륙 초연은 1901년 2월 7일,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이루어졌으며, 
이후 각지에서 열린 공연은 작품과 작곡가의 명성을 세계 각지에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예를 들어 190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공연에는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가 참석해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1910년에는 구스타프 말러가 이 곡을 미국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엘가는 이 곡을 ‘그 안에 묘사된 지인 모두’에게 헌정했다.

이 작품의 부제이기도 한 ‘수수께끼’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명백해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엘가가 각 변주마다 붙여놓은 이니셜 
혹은 별명이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수수께끼’에 대해서는 엘가 자신이 많은 힌트를 제시했고, 
여러 음악학자의 연구도 있어 지금은 모두 풀린 상태이다. 
그러나 전곡의 이면에 숨은 더 큰 ‘수수께끼’가 있다. 
여기에 대해 엘가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의 주제가 지닌 ‘어두운 이미지’는 미지의 것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일련의 작은 부분들 너머로 또 다른 더 큰 주제가 위치하지만, 그것은 연주되지 않는다.” 

이 두 번째 수수께끼가 무엇인지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엘가에 따르면 이 ‘더 큰 주제’는 잘 알려진 선율의 변주라고 하는데, 
그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의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보우하소서>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등이 후보로 추정되는 정도이다. 
일부 학자는 이 작품의 초연 무대에서 함께 연주된 
모차르트의 <프라하 교향곡>이 그 주인공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은 
<통치하라, 브리타니아여>(Rule Britannia) 가운데 
‘never, never, never’ 대목이라는 주장이다.

이 작품은 주제와 그에 따른 열네 가지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변주는 주제의 선율적ㆍ화성적ㆍ리듬적 요소에서 파생되어 나오며, 
마지막 변주는 그 자체로 거대한 피날레를 형성한다. 
각곡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주제: 안단테
대조적인 두 가지 악구로 이루어져 있다. 
첫머리에서 1바이올린이 애조를 띤 첫 번째 악구를 연주하고 
목관이 두 번째 악구를 연주한 뒤 첫 번째 악구가 
처음과 다소 다른 편성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후 두 악구는 이어지는 일련의 변주에서 더 확장되고 발전해간다. 

1변주: 같은 빠르기로 “C.A.E”
이니셜은 엘가의 아내인 캐럴라인 앨리스 엘가를 가리킨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변주에는 작곡가가 집에 들어설 때마다 
휘파람으로 불곤 했던 선율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엘가 자신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 변주는 주제 자체가 연장된 것으로, 
나는 이 덧붙은 대목을 낭만적이고도 섬세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C.A.E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변주가 낭만적이고 섬세한 영감 그 자체였던 
삶을 산 인물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주제가 고통스러운 동경과 열망을 담아 만개하는 이 변주는 전곡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큼 애절하고 아름답다.

2변주: 알레그로 “H.D.S.-P”
엘가의 말이다. “휴 데이비드 스튜어트 파월은 
유명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뛰어난 실내악 연주자였다. 
그는 B.G.N(첼리스트로 12변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및 
작곡가(바이올린 담당)와 더불어 오랫동안 실내악을 연주했다. 
연주 전에 건반을 온음계로 죽 훑는 그의 버릇은 이 변주의 16분 음표 악구에서 
익살스럽게 희화화된 형태로 묘사된다. 
일견 토카타를 연상시키지만 H.D.S.-P가 좋아할 수준을 넘어 반음계적이다.” 
신비로운 대위법적 짜임새를 지닌 연습곡 풍의 변주이다.

3변주: 알레그레토 “R.B.T”
밝고 경쾌한 스케르초 풍인 이 변주는 리처드 백스터 타운센드라는 
작가 겸 아마추어 배우가 극장에서 노인으로 분장했을 때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는 목소리의 높낮이를 저음에서 소프라노 음색의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이 변주에서 잘 그려져 있다.

4변주: 알레그로 디 몰토 “W.M.B”
시골의 대지주였던 윌리엄 미스 베이커는 엘가의 표현에 따르면 
‘스스로를 다소 정력적으로 표현했던 인물’이었다. 
전곡 가운데 가장 짧은 이 변주는 그가 손님들에게 하루의 계획을 이야기한 뒤 
방을 떠나려는 참에 벨이 울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5변주: 모데라토 “R.P.A”
시인 매튜 아놀드의 아들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리처드 펜로즈 아놀드를 가리킨다.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 변주는 쉼 없이 다음 변주로 이어진다.

6변주: 안단티노 “Ysobel”
엘가의 비올라 제자였던 이사벨 피튼을 묘사한 변주이다. 
첫머리를 여는, 각각 다른 현으로 세 개의 음을 연주하는 비올라 파트는 
피튼이 현을 가로질러 긋는 운궁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이 변주의 선율은 비올라 독주로 연주된다.

7변주: 프레스토 “Troyte”
건축가 아서 트로이트 그리피스는 피아노에 매우 열심이었지만 
연주에는 서툴렀다고 한다. 
이 변주는 그의 열정적이고도 미숙한 연주를 호의적으로 풍자하고 있으며, 
그와 엘가가 함께 산책을 나갔다가 폭풍우를 만났던 체험도 반영하고 있다. 
두 사람이 뛰어가 폭풍우를 피한 곳은 바로 다음 변주에 등장하는 노버리의 집이었다.

8변주: 알레그레토 “W.N”
엘가의 말에 따르면 위니프레드 노버리(우스터 필하모니 협회의 비서였다)는 
대단히 태평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이 변주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그녀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이 변주의 주제는 매우 고상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엘가가 무척 좋아했던 노버리의 집과도 관련이 있다. 
변주의 말미에는 바이올린 파트의 음 하나만이 남아 길게 지속되면서 
다음 변주로 곧장 이어진다.

9변주: 아다지오 “Nimrod”
전곡 가운데 마지막 변주와 더불어 가장 길고 가장 유명한 악장으로, 
전곡 가운데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단독으로도 종종 연주된다. 
‘님로드’란 구약에 나오는 인물(대개 ‘니므롯’으로 표기된다)로, 
서양에서는 사냥꾼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러나 이 변주의 주인공인 오거스터스 제거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엘가는 독일계인 그의 성 Jeager는 독일어로 사냥꾼을 뜻하는 Jager를 
영어식으로 풀어 쓴 것이라는 데 착안해 이런 장난을 부린 것이다. 
제거는 앞서 밝혔듯 출판사 노벨로의 음악 담당 편집자이자 엘가의 절친한 친구로, 
오랜 세월에 걸쳐 작곡가에게 유용한 충고를 많이 해주었다. 
그의 지적 가운데는 신랄한 것도 적지 않았지만 엘가는 항상 그의 충고를 깊이 경청했다. 

1904년에 엘가는 도라 페니(바로 다음 변주인 ‘도라벨라’의 주인공)에게 
이 변주는 인물 묘사라기보다는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작곡을 포기하려 할 때 제거가 찾아와 
숱한 역경 속에서도 위대한 음악을 창조해냈던 베토벤을 거론하면서 
음악을 계속 쓰라고 격려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제거는 “그리고 당신이 해야 하는 일도 바로 그거요.”라고 단언한 뒤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중 2악장의 주제를 노래로 불렀다. 
엘가는 도라에게 이 변주의 첫머리가 그 주제를 암시한다고 말했다. 
“처음에 들리지 않나요? 단지 힌트일 뿐, 인용은 아니지만.” 이상의 설명에 따르면, 
이 변주는 오랫동안 지속된 헌신적인 우정에 대한 작곡가의 작은 보답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에피소드를 모른 채 듣는다 해도, 
이 긴 변주 내내 물결치는 숭고한 악상을 듣고 감동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0변주: 간주곡. 알레그레토 “Dorabella”
도라 페니는 윌리엄 미스 베이커(4변주 참조) 누이의 의붓딸이자 
리처드 백스터 타운센드(3변주 참조)의 처제였고, 
훗날 스튜어트 파월(2변주 참조)과 결혼했다. 
그녀는 훗날 <에드워드 엘가: 어느 변주곡의 추억>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엘가는 그녀의 이름을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여주인공과 관련지어 
이 변주의 이름을 붙였다. 
그녀에게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는 목관에 의해 묘사되고 있다.

11변주: 알레그로 디 몰토 “G.R.S”
히어포드 대성당의 정력적인 오르간 주자였던 조지 로버트슨 싱클레어를 가리킨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변주는 싱클레어와 엘가가 와이(Wye) 강변을 산책할 때 
싱클레어가 기르던 개(‘댄’이라고 불렸다)가 강으로 뛰어들었을 때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댄은 두 사람이 지켜보면서 따라가는 가운데 즐거운 모습으로 강을 유유히 헤엄쳐 내려갔다. 
이때 싱클레어가 엘가에게 말했다. 
“이걸 음악으로 써보지 그러나.” 엘가는 그렇게 했고, 그 결과가 이 변주이다.

12변주: 안단테 “B.G.N”
배실 G. 네빈슨이라는 인물로, 아마추어 첼리스트이다. 
그의 이름은 이미 2변주에서 언급된 바 있다. 
그는 먼 훗날 엘가가 첼로 협주곡을 쓰는 데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를 기리는 이 온화한 분위기의 변주는 당연하게도 첼로 선율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13변주: 로만차. 모데라토 “***”
‘로만차’(‘로망스’라고도 한다)란 원래 서정적ㆍ감상적 가곡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훗날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기악곡도 포괄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 변주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하나는 왜 작곡가가 그 대상을 표기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해 엘가는 훗날 이 변주는 자신이 작곡할 당시 
항해 여행 중이었던 여성을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으나, 
그녀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누구였을까?

도라 파월(‘도라벨라’)이 처음 지목한 이래 다수가 지지했던 주장은 
엘가 부부의 지인이었던 메리 리건이라는 여성이 바로 그녀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1884년에 가족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다. 
그러나 정확히는, 엘가가 작곡을 끝내고 두 달 뒤에 출발했기 때문에 
이 주장에는 의문이 남는다. 
한편 한동안은 엘가의 첫사랑이었으나 1884년에 뉴질랜드로 이주한 
헬렌 제시 위버라는 여인이 바로 그 장본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 주장이 맞다면, 엘가가 그녀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은 것은 
아내의 심기를 공연히 건드리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 케네디(저명한 음악학자로 특히 말러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로 꼽힌다)가 
최근에 낸 엘가 전기에서는 상세한 근거
(엘가가 1899년 7월에 오스트레일리아로 편지를 보내 
‘이 변주곡(특히 13번)이 큰 성공이었습니다’라고 알린 것도 그 중 하나이다)를 들어 
메리 리건이 바로 그녀라고 확정했다. 
엘가가 항해 여행 중이었다고 말한 것은 기억의 착오이며, 
실제로 이니셜을 표기하지 않은 것은 숫자 ‘13’에 얽힌 미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엘가가 염두에 둔 것은 두 사람 모두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 변주에서는 멘델스존의 연주회용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를 인용해 항해 여행을 암시하고 있다. 
악보에 인용 표시와 함께 표기된 이 악구는 독주 클라리넷으로 연주된다. 
또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팀파니는 배의 엔진 소리를 연상케 한다.

14변주: 피날레. 알레그로 프레스토 “E.D.U”
이 마지막 변주는 바로 엘가 자신을 가리킨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종종 ‘에두’
(에드워드의 독일식 표기 Eduard에서 따왔다)라는 애칭으로 불렀는데, 
이것을 이니셜처럼 표기한 것이다. 
여기서는 엘가 자신이 훗날 ‘내 삶과 예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사람’이라고 언급한 
캐롤라인 엘가와 오거스터스 제거, 즉 ‘C.A.E’와 ‘님로드’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마지막 변주는 원래 지금 형태보다 100마디 더 짧았다. 
1차 곡이 완성된 지 한 달 뒤, 제거는 엘가에게 이 변주를 좀 더 길게 고치라고 권고했다. 
엘가는 친구의 충고에 따르면서 오르간 파트도 추가했다. 
전곡 가운데서도 내용 면에서 가장 풍부한 이 변주는 처음에는 나직하게 시작했다가 
화려하고 요란하게 부풀어 오르며, 
이어 원래 주제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전개되는 
신비로운 중간부를 거쳐 화려하고 찬란하게 끝맺는다.


이 흥미진진한 변주곡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을 고백한다. 
엘가는 각 지인마다 자신이 판단하기에 가장 뚜렷한 특징을 포착해 음악으로 만들었고, 
이제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그 지인들을 바라본다. 
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는 (적어도 날 음악으로 그려내겠다고 하는) 작곡가는 없지만, 
그것을 떠나서도 나 자신이 과연 타인에게는 어떻게 보일지는 
살아가면서 항상 조심스럽게 돌이켜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추천음반

1. ‘영국 작곡가의 곡은 영국 지휘자가 가장 잘한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에이드리언 볼트/런던 심포니의 1970년 녹음(EMI)이야말로 첫손 가는 선택이 될 것이다. 
처음 듣기엔 너무 무덤덤해 보일 수 있으나, 
깊이와 자연스런 흐름을 보여주는 고상한 연주이다. 

2. 한편 같은 악단을 지휘한 피에르 몽퇴의 1958년 녹음(Decca)은 
앞서 말한 명제를 반박하기에 충분한 명연으로, 
변화무쌍한 음영과 유려한 흐름, 따뜻한 음색 등 모든 면에서 
프랑스 지휘자가 영국 음악을 이처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연케 한다. 

3. 레너드 번스타인/BBC 심포니의 1982년 녹음(DG)은 
어떤 이에게는 너무 과장이 심하고 충동적인 연주로 들리겠지만 
보기 드물게 스케일이 크고 곡의 낭만적인 감수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연주이다. 

4. 최근 녹음 가운데서는 빈 필의 아름다운 음색과 
시대악기 연주 스타일을 멋지게 조화시켜 분방하고 생생한 연주를 들려주는 
엘리엇 가디너의 1998년 녹음(DG)이 특히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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