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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 Symphony No. 2 in C minor. "Resurrection"
01/29/2020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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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  Symphony No. 2 in C minor.  "Resurrection"
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제 2번 C단조.  "부활"





죽음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부활을 꿈꾸고 있는 음악이다. 
말러가 완성한 교향곡은 모두 10곡인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말러는 스물여덟 살이던 1888년에 첫번째 교향곡 ‘거인’을 완성하고 곧바로 
이 두번째 교향곡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성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1830~1894),
 말러와도 친분이 두터웠던 이 지휘자가 세상을 떠난 1894년에 
그의 추도식에서 영감을 받아 마지막 악장을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최초의 스케치에서 완성까지 6년의 세월이 걸린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기말의 작곡가 말러는 전작인 교향곡 1번 ‘거인’(Titan)의 연장선상에서 이 곡을 썼다고 전해진다. 
말하자면 교향곡 1번의 음악적 화자였던 ‘거인’이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곡이다. 
물론 말러는 훗날(1896년) 1번 교향곡에서 ‘거인’이라는 표제를 아예 없애 버렸지만, 
2번 ‘부활’의 첫번째 악장을 작곡하던 무렵에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구상은 여전히 ‘거인의 죽음’이었다.
말러는 베토벤의 아홉번째 교향곡 ‘합창’,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의 합창을 자신의 음악적 이상으로 여겼다. 
말러가 흠모했던 작곡가 바그너도 마찬가지 였다. 
바그너는 음악과 문학이 혼연일체된 종합예술을 추구했고, 
말러도 자신의 교향곡에서 그런 이상을 실현해보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초기 교향곡들을 일종의 ‘교향시’로 간주했다. 
물론 말러는 훗날 자신의 음악이 표제 없이 연주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적어도 두번째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의 말러는 문학적 언어를 합창으로 표현해내는 
일종의 ‘칸타타 심포니’를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의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츠(1789~1855)의 시에서 착상을 얻어 
단악장의 교향시를 작곡했고, 그 곡에 ‘장례식’(Todtenfeier)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것이 바로 교향곡 2번의 1악장이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되었까? 
말러는 교향시 ‘장례식’을 작곡한 이듬해에 잇따른 슬픔을 겪는다. 
같은 해 2월에는 아버지가, 10월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떴났다. 
이어서 여동생 레오폴디네가 뇌종양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장면은 훗날(1904년) 말러가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완성하고 3년 뒤에 
실제로 장녀 마리아를 잃었던 상황과 오버랩 된다. 
“인생과 예술은 별개가 아니다”라고 믿었던 말러에게 애통한 운명이 잇따르면서,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곁에서 노상 서성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1907년에 썼던 아홉번째 교향곡을 ‘9번’으로 칭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명명했던 것도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심장병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는 베토벤과 브루크너가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일종의 터부로 받아들였고, 
그 운명의 화살을 어떻게든 피하려 했다. 
하지만 애써 피하려는 자에게 운명은 더 끈덕지게 달라붙는 것일까. 
말러는 ‘대지의 노래’ 이후 작곡한 교향곡에 결국 ‘9번’이라는 번호를 붙였고 
불길한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9번은 말러가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 이다.

교향곡 2번 ‘부활’의 작곡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겪어야 했을 뿐더러 지휘자로서의 공적 활동도 바빴던 탓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창작의 영감이 찾아온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894년 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러가 그 ‘영감의 번갯불’을 맞았던 장소 역시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식장(장례식장)이었다. 
당시 독일 음악계의 가장 영향력 있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가 그해 2월 12일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사망했고, 
3월 29일에는 독일 함부르크의 미하엘리스 교회에서 추도식(장례식)이 치러졌다. 
물론 말러도 그날의 행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침내 “번갯불 같은 영감”과 조우한다. 
식을 진행하던 중에 울려퍼진 클로프슈토크의 ‘부활’이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는 기록을 말러는 이렇게 남겨놓고 있다.
“오르간 연주대에서 합창단이 클로프슈토크의 ‘부활’을 노래했다. 그것은 번갯불처럼 나를 때렸다. 
내 영혼의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분명하고 뚜렷해졌다. 모든 예술가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교향곡 2번 ‘부활’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5악장은 그렇게 태어났다. 
말러는 클로프슈토크의 가사를 일부 수정해 자신의 음악 속으로 끌어들였고, 
마침내 ‘부활’(독일어로는 ‘Auferstehung’, 영어로는 ‘Resurrection’)이라는 이름의 칸타타적 교향곡을 완성했다. 
특히 이 곡의 마지막 가사는 말러 스스로 쓴 것이다. 
“나는 날아가리/ 
살기 위해 죽으리 / 
일어서라 그래 다시 일어서 / 그
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1악장은 알레그로 마에스토소(allegro maestoso 빠르고 장엄하게). 
음을 떠는 트레몰로 주법의 도입부가 강렬하다. 
이어서 저음의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첫번째 주제가 등장한다. 
연주가 점점 강렬하게 고조되다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부드러운 느낌의 두번째 주제가 등장 한다. 
말러 스스로 “첫번째 교향곡의 영웅을 무덤에 묻고 그의 생애를 맑은 거울에 비춰본 것”
이라는 술회를 남기고 있는 악장이다. 
말하자면 ‘거인(영웅)의 장례’인 셈이다.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1악장이 끝나고, 
안단테 모데라토(andante moderato)의 템포로 흘러가는 2악장은 목가적이다. 
이 두 개의 악장은 매우 대조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말러는 두번째 악장에 대해 “거인의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회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중반부에서 잠시 어두운 색채를 드러내다가, 
현의 피치카토가 등장하는 악장의 후반부에서 다시 온화한 분위기로 돌아온다.

3악장은 템포에 대한 별도의 지시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움직임으로’라는 지시가 독일어로 적혀 있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팀파니의 타격으로 시작해서 스케르초 악장다운 어릿광대풍의 연주가 펼쳐진다. 
인생의 희비극, 기괴함, 그리고 익살맞음이 뒤섞인 악장이다. 
말러의 특유의 통속적 선율이 빈번히 등장하기도 하다. 
혼란스럽게 뒤틀린 우리의 삶, 
때로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삶에 대한 묘사로 이해하면 되겠다.

하지만 말러는 이어지는 4악장에서 한 줄기 빛을 불러온다. 
‘태초의 빛’(Urlicht)이라고 명명한 악장이다. 
알토 독창이 “O Roschen rot!(오 붉은 장미여!)”라고 노래하면서 시작한다. 
“Der Mensch liegt in gro?ter Not! 인간은 큰 위기에 처해 있구나!
Der Mensch liegt in gro?ter Pein! 인간은 큰 고통에 빠져 있구나!
Je lieber mocht‘ ich im Himmel sein. 나는 차라리 하늘(천국)에 머물리라”
라는 가사가 이어진다.

5악장은 마침내 이 칸타타적 심포니의 절정이다. 
종말, 혹은 최후의 심판이 대지를 뒤덮는 광경을 관현악이 묘사한다. 
말러 스스로 “절망의 울부짖음”이라고 칭했던 불협화음으로 막을 연다. 
“계시의 트럼펫”이 울려퍼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은 심판의 날을 알리면서 부활을 암시한다. 
플루트와 피콜로는 나이팅게일처럼 지저귀면서 “지상에서의 삶을 돌아보는 마지막 메아리”를 묘사한다. 
그리고 드디어 성자와 천사들의 노래가 등장 한다. 
“일어나라, 그래 일어나
 (중략)
너는 아무것도 잃지 않으리라
네가 바란 것이 네 것이 되리, 
그래 네 것이 되리
네가 사랑했던 것이 네 것이 되리
(중략)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Gustav Mahler
Symphony No 2 in C minor 'Resurrection'



1 Allegro maestoso
2 Andante moderato
3 In ruhig fließender Bewegung
4 Urlicht
5 Im Tempo des Scherzos

Miah Persson, soprano
Anna Larsson, mezzo-soprano
National Youth Choir of Great Britain
Simon Bolivar Symphony Orchestra
Gustavo Dudamel, conductor

Live recording. London, Proms 2011


브루노 발터는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2번의 세계 초연이 이루어진 1895년 12월 13일에 
말러의 작곡가 경력이 실제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열여섯 살 연상인 선배 말러에 대한 발터의 찬탄은 베를린의 청중이 일부는 환호를 보내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숭배로 바뀌었다. 
발터가 ‘나의 미래를 말러의 음악에 바치기로’
(1957년에 출판된, 말러에 대한 회상록에서 인용함) 결심한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에서였다. 
말러는 할에서 처음 지휘 일을 시작한 뒤 라이바흐, 올뮈츠, 카셀, 프라하, 
부다페스트(여기서 말러는 이미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일했다)를 거쳐 
1891년에 함부르크 주립 극장의 총감독 베른하르트 폴리니의 결정으로 극장의 음악감독에 선임되었다. 
브루노 발터는 1894년에 합창 지휘자로 극장에 합류했다. 
이들의 경력은 1901년에 (당시 빈 궁정 오페라의 감독이었던) 말러가 
자신의 새 일터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해 달라고 초청했을 때 다시 한 번 교차하게 된다. 
예술적 미학상의 의문에 대한 의견 일치로 한층 강화된 이들의 예술적 교류는 
공동으로 추진한 다수의 대형 프로젝트와 (발터의 헌신적인 우정에 기인한) 
말러 작품의 꾸준한 지휘로 이어졌고, 후자는 말러가 사망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함부르크 시절로 이야기를 되돌리면, 발터는 음악에 대한 말러의 절대적인 헌신에 매료되었다. 
다른 유명한 성악가와 연주자, 지휘자,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발터 역시 말러의 예술적 의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는 훗날 이렇게 썼다. 
“말러가 피아노로 진행한 리허설은 성악가에 대한 그의 절박하고도 상상력 풍부한 호소와 
음악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내게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주었으며, 
그의 폭군 같은 성격과 자기 확신의 마지막 불꽃마저도 사라져버린 연주자들에게서 
최상의 연주를 끌어내기 위해 협박과 격려를 번갈아가며 행하는 모습이 돋보였던 
오케스트라 리허설 장면은 아직도 내 안에 생생히 남아 있다.” 

발터와 동시대의 유명 인사들도 이러한 인상을 공유했다. 
당시 함부르크 ‘예약 연주회’(Abonnemenkonzerte)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는 말러에게 
‘함부르크 오페라의 피그말리온에게’라고 적힌 화환을 보내면서 
말러의 요술 막대 아래서는 죽은 사물이 생명을 얻는다는 의견을 넌지시 밝힌 바 있으며, 
표트르 차이코프스키는 ‘예프게니 오네긴’의 초연을 위해 함부르크에 왔을 때 
간결하고도 적절하게 ‘보통 사람이 아니라 천재’라는 판단을 내렸다.

말러가 함부르크에서 보낸 6년은 쉼 없는 노동으로 인해 기력을 소진한 세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불만족이 그를 좀먹고 있었으며, 
폴리니의 무자비한 통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과중한 업무량을 부과했으며
(그는 함부르크에서 보낸 세월 동안 740회 이상의 공연을 지휘했다) 
이 가운데는 예술적으로 의혹의 여지가 있는 프로젝트도 적지 않았다. 
작곡에 쏟을 시간도 거의 없었지만 말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며, 
교향곡 1번(1889년에 부다페스트에서 초연)이 대체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말러의 창조적인 충동은 배출구를 필요로 했으며, 
그가 사랑했던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보낸 여름휴가 기간이 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몇 주의 기간조차도 가족과 친구에 대한 의무로 방해받곤 했다. 
말러가 1893년에 동생(이자 가정부였던) 유스티네에게 자신과 유스티네는 물론이고 
그들의 동생인 엠마와 오토, 자신의 친구인 나탈리 바우어-레흐너
(말러가 거절하지만 않았으면 그의 아내가 되었을 여인)까지 지낼 수 있을 만큼 
크면서도 조용하고 가격이 적당한 휴가용 별장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나탈리가 일기 식으로 쓴 기록은 말러의 내면과 그의 창작 과정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들이 1893년에 옮겨간 집은 아테르제 호숫가의 슈타인바흐 근처에 있었다.
‘횔렌게비르게’(Höllengebirge, ‘지옥 산맥’이란 뜻) 앞에 펼쳐진, 
숲이 우거진 언덕은 목격자들이 언급했듯이 그가 악상을 ‘사냥’하면서 
특유의 활기찬 태도로 산책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이곳에서 말러는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도 생산적이었던 여름을 보냈다. 
슈타인바흐에서 보낸 세월은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가사에 기초한 초기 가곡 몇 곡뿐만 아니라 
교향곡 2번의 상당 부분과 교향곡 3번의 대부분이 작곡된 시기이기도 했다.

교향곡 2번의 기원은 18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여름에 말러는 자신이 보필 완성한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세 사람의 핀토’를 리허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언제나 문학과 철학에 흥미를 지녔던 이 작곡가는 아담 마키에비치(1798~1855)라는 이름의 
폴란드 시인이 쓴 책을 친구인 지크프리트 리피너의 번역으로 읽고 있었다. 
‘장례제전’(Todtenfeier)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죽은 자의 사후 운명을 편하게 하기 위해 
그의 시신으로 연회를 벌였던 이교 시대 리투아니아 전통에 대한 시적 회귀이다. 
유창한 글 솜씨를 지녔으며 높은 교양을 지닌 작가였던 리피너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추종자였으며, 
불멸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놓고 말러와 끊임없이 토론하곤 했다. 
원래부터 이런 부류의 주제에 관심이 있었던 말러는 미키에비치의 시를 읽고 나서 
작곡에 대한 갑작스런 충동을 느꼈으며, 이것은 ‘장례제전’이라는 이름의 교향시로 결실을 맺게 된다. 
말러는 이 곡의 악보를 음악 출판업자인 쇼트에게 제출했다가 
출판을 거절당한 뒤 한동안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다. 
1891년에 함부르크에서 그는 이 작품을 한스 폰 뷜로에게 제출하면서 
그의 예약 연주회에서 연주해 달라고 청했다. 
말러가 나중에 친구인 프리드리히 뢰어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뷜로는 음악을 한 번 연주해본 뒤 충격을 받았고, 
‘트리스탄’조차도 내 작품에 비하면 하이든의 교향곡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결국 이 곡은 공연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직후 말러는 ‘장례제전’을 새로 구상한 교향곡에 통합하기로 마음먹었다. 
1890년대 초에 그는 자신이 높이 평가했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가사에 기초한 가곡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가곡과 교향곡의 창작 시기가 겹치는 것은 언제나 말러 작곡 스타일의 특징이었으며, 
두 범주의 음악적 요소(주제와 악기법을 포함해서)는 자주 교차하곤 했다. 
슈타인바흐에서 보낸 첫 번째 여름 동안 작곡된 가곡으로는 ‘라인의 전설’과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 그리고 (피아노 반주의) ‘태초의 빛’이 있었다. 
이 가운데 뒤의 두 곡은 새로운 교향곡 작품에 통합되었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새 교향곡의 2악장인 ‘안단테’는 1893년 7월 중 불과 일주일 만에 작곡되었다. 
나탈리 바우어-레흐너의 기록에 따르면 말러는 ‘거기에 기쁨을 부여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말러가 자기 교향곡의 기본적인 개념을 깨달은 것은 이 시기였음이 확실하다. 
비평가 막스 마르샬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단언한 바에 따르면, 말러는 
‘이 교향곡의 주인공을 무덤으로 데려가기 위해’ ‘장례제전’을 활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여기에 평화로운 간주곡인 ‘안단테’와 세상의 하찮음을 상징하는 스케르초, 
인간 영혼의 불멸을 찬양하는 피날레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말러는 피날레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1년 반을 더 고심한 끝에 
다른 악장을 ‘내부 연결용’으로 추가하는 것이 극적 구성의 측면에서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복잡한 교향곡을 계획하는 데 있어 이러한 변덕스러운 과정은 
말러에게는 이례적인 것도 특기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는 교향곡 3번을 작곡할 때 1악장을 맨 나중에 썼고 4번에서는 피날레를 처음에 썼다. 
6번의 경우에는 중간 악장 순서가 마지막까지 확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말러의 음악 작품은 초연과 그 이후의 편집 작업을 거친 뒤까지도 ‘완성’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교향곡 2번의 길고 산발적인 발전 과정을 감안하면, 이 곡의 음악적 완결성은 한층 더 놀라운 일이다. 
말러가 곡을 완성한 직후인 1895년 1월 31일에 아르놀트 베를리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신에 찬 태도로 다음과 같이 쓴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에게는 이 곡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지 자명해 보였음이 틀림없다. 
“나는 이 작품이 인간성의 ‘정돈된 토대’(fundus instructus)를 풍요롭게 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 곡은 전체에 걸쳐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그 효과에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말러는 ‘장례제전’을 ‘부활 교향곡’의 1악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기악 편성을 손질하고 악구 배열을 변경했다. 
그는 음향의 폭을 넓히고 주제 발전을 한층 긴밀하게 했으며 조성 관계에 변화를 주었다. 
도입부 없이 오르간을 연상케 하는 1바이올린의 트레몰로와 첼로와 더블베이스로 연주되는 
제시부 1주제는 음악 주제 구축에 관한 말러의 관점을 개괄적으로 보여준다. 
말러의 주제는 해체되거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망될 수 있고 
또한 이렇게 해서 한 그림의 서로 다른 세부들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완성된 혹은 완결된 세트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서, 
그 성격은 그것의 음악적으로 고정된 형태와는 별개로 결정된다(파울 베커). 
“갓 태어난, 말하자면 새싹과 같은 그것들(주제들)은 이미 그 자체이며, 
그 자체의 무수한 변주나 특징상의 변화와는 독립되어 있다. 
그것들의 본질은 그 자리에서 결정된다. 
시간이 지나 원래 모습을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바뀐 형태로 재현될 경우에도, 
낯익은 느낌은 순식간에 떠오른다. 
오직 시간만이 그 모습을 바꾼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모습을 바꾼다. 
여기서 바뀌는 것은 주제 자체나 형성된 음형이 아니며,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겉보기에 주제를 작곡하는 과정에서 미끄러져 나온 듯한 악상의 성격이다. 
이들은 독특한 다이내믹 전개만큼이나 영혼도 지니고 있다.” (베커)

1악장에서 이와 같은 성격상의 변천은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한다. 
이 주제는 네 번 되풀이되며, 매번 선율이 부가되며 
다양한 리듬적 변용을 겪기 때문에 항상 다른 빛으로 조명된다. 
이중 구조로 된 제시부 뒤에 시적인 2주제가 E장조(나중에는 C장조)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해서 말러는 소나타 양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성형에 준하는 두 가지 다른 형태를 추가로 사용함으로써 형식상의 규칙을 단번에 깨버린다. 
첫 번째는 그 성격을 극적인 것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바꾸고 
행진곡 주제의 메아리 같은 재현으로 끝을 맺는다. 
두 번째는 폭넓은 타악기 음향과 더불어 시작하며, 
마치 지옥의 춤을 보여주려는 듯 난폭하게 분출한다. 
세 번째 동기는 여섯 대의 호른에 의해 마치 경고의 표시처럼 읊조리듯 제시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진노의 날’ 주제와의 유사성은 
이미 피날레에서 벌어질 계시록적인 사건들을 알리고 있다. 
주요 주제의 마지막 재현은 코다로 이어지며, 
화성 진행의 장/단조 여부를 더 이상 판별하기 어려운 코다는 그 마지막 불꽃에도 불구하고 
악장 전체가 무(無)의 상태로 끝나는 것처럼 불명료하고 애매한 인상을 남긴다. 
행위의 비극적인 위대함과 열렬한 그리움, 고통스런 비탄, 승리의 순간들은 
모두 이 기념비적인 개시 악장의 감정적 만화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음향의 폭발 이후에 등장하는, 2악장의 평화로운 시골 춤은 간주곡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고요한 선율적 흐름은, 
앞서 장송행진곡의 극적인 흉포함을 향해 상승하는 혼란스러운 트리오에 의해 두 차례 가로막힌다. 
하지만 말러는 언제나 희망에 찬 부드러움을 지닌 최초의 악상으로 복귀한다. 
1악장에 대한 주제적 단절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던 말러는 
지휘자 율리우스 부트에게, 1악장 뒤에는 “충분히 휴지를 두어야 하며, 
그래야 2악장이 1악장에 대한 반대로서가 아니라 
단지 그 뒤에 등장하는 일종의 모순으로서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1악장과 3악장, 4악장, 5악장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오직 2악장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사건의 엄격한 발전을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말러는 3악장을 팀파니 타격으로 시작하면서 지옥의 풍경을 열어 보인다. 
말러는 당시 완성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가곡 중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에 기초한 이 악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격 변화를 이루어낸다. 
표면적으로 이 가곡은 희극적인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으며, 
여기서 말러는 예술적인 악기법으로 많은 단면을 추출해냈다. 
그는 ‘술에 취한’ 클라리넷과 비틀거리는 현악기군의 음향을 사용함으로써 
성인의 말씀을 듣는 물고기들의 모습과, 이것들이 나타날 때만큼이나 둔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교향곡의 일부로 편입됨으로써) 훨씬 더 광대해진 
교향악적 표현 속에서 회초리 묶음(즉 루테 - 옮긴이) 같은 이례적인 악기도 등장한다. 
날카로운 트럼펫과 돌발적인 피치카토, 갑작스런 템포 변경은 아이러니를 난폭하게 구축한다. 
익살스런 노래는 삶의 모든 어리석음에 대한 고발로 둔갑하며, 
이 고발은 끝에 이르러 극단적인 혐오를 동반한 포르티시모의 폭발로 이어진다. 
이 대목 이후 악상은 거의 회복되지 못한 채 다소 타협적인 결말로 나아가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리듬은 톱니바퀴가 영원토록 헛되이 돌아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다음에 곧바로 그러면서도 앞의 악장과 이어지지는 않는 형태로 시작하는 4악장 ‘태초의 빛’은 
말러가 원래 써두었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가곡 중 하나로, 알토와 피아노를 위한 편성이다. 
5분을 넘어가는 일이 거의 없는 이 단순한 노래는 폭발적인 피날레에 대해 거의 완벽한 대척점을 이룬다. 
피날레의 악상은 오랫동안 말러를 피해 다녔고, 
논리적인 최종 해법을 찾아 고심하던 말러는 결국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우연한 기회에 그것을 찾아냈다. 
그는 베토벤이 그랬듯이 인간의 목소리를 무대 중심으로 끌어내고 싶어 했으나, 
지금까지의 교향악적 발전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교향곡 2번의 마지막 악장을 위해 나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문학 작품을 뒤져봤으며 
구속(救贖)과 관련된 대목을 찾기 위해 성경도 살펴보았다. 
…그 무렵 뷜로가 죽었고 나는 여기 함부르크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합창단이 클롭슈토크의 성가 ‘부활’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번개처럼 나를 강타했고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창조적인 영혼이 갈구하는 것은 이러한 계시이다 
- 그것이야말로 ‘신성한 수태’인 것이다.” 
거칠게 폭발하는 마지막 악장 첫머리는 
스케르초에서 어떻게 여기로 이행할 것인가 하는 난제를 제기하며, 
말러는 일종의 간주곡인 ‘태초의 빛’을 삽입함으로써 
고전적인 교향곡 고유의 틀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주제 면에서 볼 때, 단순한 신앙심을 이야기하는 소박한 노래는 
피날레의 절박한 공포에 대해 이상적인 대조를 이룬다. 
말러는 이러한 단순한 축복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5악장은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는 길을 묘사한 파편화된 묘사로 모습을 드러낸다. 
1악장과 3악장의 일부 악구가 여기서도 등장하며, 
행진곡 리듬으로 연주되는 ‘진노의 날’ 코랄이 그 한 예이다. 
훗날 삭제된 ‘광야에서 외치는 자’(Der Rufer in der Wüste)나 
‘큰 외침’(Der grosse Appell) 같은 주석은 말러가 요한 계시록의 구절을 차용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음향 실험가였던 말러는 별도의 악단을 외따로 배치했으며, 
이러한 유형의 음향적 실험은 그가 작곡가로서 데뷔한 작품인 ‘탄식의 노래’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이 악장은 여러 악기들이 전투를 벌이는 거대한 전장을 가로질러
 (겉보기에는 최종적으로 보이는 마무리를 거친 뒤) 자연이 다시금 깨어나는 대목
(플루트가 모방하는 새 울음소리로 표현된다)에 이어 무반주 합창이 노래하는 클롭슈토크의 ‘찬가’에 도달하며, 
말러는 이 찬가에 자신이 쓴 시구를 덧붙였다. 
이것은 말러 자신의 말인 ‘그대 행한 바가 그대를 신에게 인도하리라!’로 도달하게 되는 
최후의 장엄한 고양에 이르는 길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작곡가는 1901년에 약혼녀인 알마 신틀러를 위해 쓴, 이 교향곡에 대한 간단한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썼다. 
“보라, 심판은 없다. 죄인도 의인도 없고, 위대한 자도 소인도 없으며 
벌도 없고 상도 없다! 전능한 사랑의 감정이 축복받은 지식과 존재로써 우리를 꿰뚫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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