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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悲愴)"
11/04/20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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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van Beethoven  -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Op. 13  'Pathetique'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悲愴)"




Artur Schnabel,  Piano

March  15,  1991
EMI Classics


베토벤은 작곡가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피아니스트였다. 
그의 피아노 실력은 모차르트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덕분에 베토벤의 초기 음악은 주로 피아노 분야에 집중돼 있다. 
아울러 베토벤이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빼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에 기인한다. 
실제로 베토벤, 아니 어린 루트비히는 여덟 살이던 1778년에 
독일 쾰른 선제후(막시밀리안 프란츠)의 궁정에서 선보인 피아노 연주로 단박에 주목을 받았다. 
그것은 베토벤이 처음 가졌던 연주회로 기록돼 있다. 
여덟 살 꼬마의 능란한 테크닉과 즉흥연주가 
보는 이들의 넋을 거의 빼놓다시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알려져 있다시피 어린 베토벤의 뛰어난 연주 실력 이면에는 평탄치 않았던 가족사가 깔려 있다. 
바로 아버지 요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쾰른 궁정의 테너 가수였다.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연주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베토벤의 할아버지인 루트비히(베토벤과 이름이 같다)도 궁정의 악장이었다. 
어찌 보면 할아버지 루트비히가 아버지 요한보다 더 잘 나가던 음악가였다. 
그런데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직업이 두 가지였다. 
궁정 악장으로 일하면서 양조장을 함께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화근이었다. 
양조장집 아들이었던 요한은 어릴 때부터 ‘술맛’에 깊숙이 빠져든다. 그래서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어린 베토벤은 술 냄새 풍기는 아버지한테 매를 맞으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당연히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었을 겄이다. 
일곱 형제들 가운데 셋만 살아남았는데, 그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폭력은 거의 일상적인 공포였을 겄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시달리던 어머니 마리아는 
서른여덟 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베토벤이 열일곱 살 때이다. 
훗날의 베토벤이 보여줬던 괴팍함의 밑바닥에는 그런 상흔이 자리해 있다.
어쨌든 여덟 살 때부터 신동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얻은 베토벤은 
쾰른 선제후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로 채용되었다. 1784년, 그러니까 베토벤이 열네 살 때였다. 
이때부터 베토벤은 술 취해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3년 뒤에는 선제후의 허락을 받고 빈으로 떠나 모차르트에게 피아노를 사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제 관계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어머니의 사망 때문에 곧바로 쾰른으로 귀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베토벤은 어머니마저 떠난 집안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할 수 없이 그는 선제후에게 봉급 인상을 간절하게 청원하지만 거절 당한다. 
당시의 베토벤은 그 거절에 실망하고 분노했던 것 같다. 
1789년의 궁정 연주회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베토벤이 “악기 상태가 안 좋다”며 연주를 거절해버린 것이다. 
프랑스에서 발발한 혁명의 기운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가고 있던 때였다. 
아마도 그것은 가부장적 권력(아버지, 선제후)에 억눌려 살아온 베토벤이 처음으로 시도한 반항이었을 겄이다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한 것은 1792년. 이때부터 1802년까지를 흔히 ‘초기 빈 시절’이라고 부른다. 
스물두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다. 
본과 쾰른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처럼, 베토벤은 빈에 도착해서도 역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린다. 
특히 1795년 3월에 가졌던 빈에서의 첫 번째 공개연주회는 대성공 이었다. 
그날 베토벤이 연주한 곡은 모차르트의 협주곡 한 곡과 
자신이 이틀 전에 완성한 최초의 협주곡(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장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중을 완전히 흥분시켰던 것은 베토벤이 즉석에서 선보인 즉흥연주 였다.
그렇게 베토벤은 빈에서 유명해진다. 모든 일이 잘 풀렸다. 
베토벤의 생애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귀족들, 
예컨대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루돌프 대공 같은 이들이 너도나도 후원자로 나섰다. 
베토벤은 귀족들의 살롱에 초대받아 연주했고, 
그에게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귀족 집안의 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중에는 이른바 ‘불멸의 여인’ 후보로 추정되는 브룬슈비크 집안의 두 딸인 
테레제와 요제피네, 그리고 귀차르디 백작의 딸인 줄리에타도 있었다.
이 시절의 베토벤은 유난히 피아노 소나타를 많이 썼다. 
1795년부터 1799년 사이에 작품번호(Op)를 가진 피아노 소나타를 12곡이나 써낸다. 
물론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도 그중 하나이다. 
1798년 혹은 1799년에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비창(Pathetique)’이라는 표제는 여러 이설(異說)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에서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인 것은 
8번 ‘비창’과 26번 ‘고별’밖에 없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 예컨대 악보 출판업자나 후대의 시인 등이 붙인 ‘속칭’이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베토벤이 직접 표제를 붙였다는 것은, 
이 음악을 통해 베토벤이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일 겄이다. 
다시 말해 음악에 어떤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어떤 음악사가들은 ‘비극적 정조’를 공표함으로써 
악보 구매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려 했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피아노 소나타’라는 장르의 특성, 
피아노 한 대로 작곡가 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비창’이라는 표제는 당시의 베토벤이 가졌던 어떤 감정 상태와 관련이 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피아노 소나타 ‘비창’은 
베토벤이 외관상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절에 쓴 ‘슬픈 노래’인 겄이다. 
20대의 마지막 무렵에 느꼈을 법한 청년의 애상감이 곡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


1악장 : Grave-Allegro di molto e con brio
그레베, 알레그로 디 몰토의 제1악장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본질적인 풍부함을 더한 곡으로 유명하다.
곡의 첫머리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장중하고 비장한 정서를 담은
느린 템포가 등 장하는데, 이는 이 곡의 제목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반음계 적으로 점점 상승 하면서 이 악장은 마침내 웅대한
자태를 나타내고 빠른 속도의 재현 부에 의해 분위기가 고조된다.



2악장 : Adagio cantabile
2악장은 아다지오 칸타빌레, 2/4박자의 구성으로 감격스러운
남성미와 깊고도 아름다운 여성미를 같이 지니고 있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 이상 깊고 엄숙하며 아름다 운 곡은 없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극히 아름다운 주제로 시작되는 이 부분은 짧지만 만족할 만한
탄탄한 구성으로 듣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3악장 : Rondo Allegro
마지막 제3악장은 론도 알레그로, 2/2박자의 부분으로 교묘한
대위법적인 기법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완벽한 발전을 갖춘 론도이다.
아름다움의 경이와 과감한 작곡가의 의지도 이 속에 담겨 있다고 한다.
잘 정돈되고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흐르는 유연함은 찾기 힘든
이 피아노 소나타  "비창" 은 극적인 긴장감과 웅대한 구성으로 힘이
느껴지는 베토벤다운 명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곡  "비창" 의 악보는 당시 빈의 피아노를 배우던 음악도
들이 앞 다투어 입수하려 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준 곡으로,
이 소동으로 인해 베토벤의 명성이 전 유럽에 널리 퍼지기도 했다.



☆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이 소나타는 베토벤 자신이 "비창적 대 소나타(Grande Sonate pathetique)" 라고 명명한 작품이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곡이 끝날 때 까지 한 순간도 귀를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8번 소나타의 작곡양식 자체가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다.
8번 소나타는 그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호모포닉(단선율을 위주로하는 화성진행) 한 곡이다.
선율은 명쾌하고 왼손의 반주도 극히 단순하다. 두터운 화음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곡의 구성이 너무나 극적이고, 맹렬한 분위기와 감미로운 노래, 
연주하는데 필요로 하는 기교를 훨씬 상회하는 압도적인 연주효과로 인해 
극히 산뜻한 효과를 얻어 내었고 나아가 대중적인 인기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8번 소나타가 파격적이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작곡양식의 변화가 아니고 
1악장의 제시부 앞에 커다란 서주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느린 속도를 지시하는 Grave 라는 악상기호와 곡을 개시하는 C단조의 으뜸화음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이 곡의 제목인  "비창(혹은 비애)" 라는 말은 이 서주의 분위기에 의한 것이다.
서주는 점차 고조되어 오른손의 레치타티보, 빠르게 하강하는 선율로 변화하면서 
Allegro di molto e con brio의 소나타형식 제시부로 돌입하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서주의 재료가 소나타형식의 발전부와 코다에 다시 등장한다는 점이다.
왼손의 맹렬한 트레몰로를 타고 등장하는 1주제는 그 예가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며, 
이 주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은 더욱 극적이다.
제2주제는 제1주제의 분위기와 대조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으며, 
정석대로라면 C단조의 관계장조인 E-flat 장조로 작곡되어야 하지만 
E-flat 단조를 취해 어두운 느낌을 지속 시키고 있어 소나타 작곡양식의 전형적인 형태를 조금 벗어나 있다.
하지만 제2주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E-flat장조가 나타나게 된다.
곡의 마무리부분에 다시 서주의 주제가 등장하고 제1주제만을 이용해 악장을 끝맺는다.
2악장은 전형적인 가요 형식의 악장으로 나른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A-B-A의 전형적인 세도막형식, 주제의 멜로디는 대중음악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친근한 것이다.
3악장 역시 전형적인 론도이다.
A-B-A-C-A-B-A-coda 라는 명확하고 교과서적인 론도이며 
첫 악장과 같은 조성이지만 어둡고 비극적인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선율은 어떤 것이나 쉽고, 화성적으로 교묘한 지연(delay)이 이루어져있기는 하지만,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도 음악을 감상 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피아니스트로는 아르투르 슈나벨(최초의 전곡 녹음), 
빌헬름 박하우스, 빌헬름 켐프, 클라우디오 아라우, 프리드리히 굴다, 다니엘 바렌보임 등이 있다. 
브렌델도 전곡을 세 번이나 녹음했다. 
전곡을 다 녹음하진 않았지만 에밀 길렐스의 연주도 놓치기 아깝다. 
이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는 1972년부터 1986년까지 
DG 레이블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할 계획이었다. 
한데 아쉽게도 69세였던 1985년 10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가 남긴 전집에는 1번, 9번, 22번, 24번, 32번이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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