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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송호근 칼럼] 그믐날 노시인과
01/01/201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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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br>서울대 교수·사회학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 세모의 거리는 어두운 기억을 떨치려는 듯 인파로 넘실거렸다. 궁핍했던 시절보다 사람들의 표정은 더 무거웠고 일상의 갈피마다 묻어나는 조바심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설원을 달려온 기차처럼 흰 연기 푹푹 뿜으며 길게 눕고 싶은 세모의 오후, 노시인은 레스토랑 구석에 홀로 앉아있다. 모 시사주간지에서 마련한 대담 자리, 주제는 아랑곳 않고 역사는 자연이라고 뜬금없이 그가 말했다. 역사를 춘추(春秋)로 불렀던 동양의 관습과 팔순의 시(詩)연륜이 융합하자 우주의 사투리가 그냥 흘러나와 낮 술잔을 적셨다. 모골이 송연해진 사회학자는 1년 내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었던 이념투쟁, 국정원 선거개입, 철도파업 같은 지구의 어느 구석에서의 싸움이 한갓 에피소드처럼 소실하는 것에 환호했다.

 사회학자가 보는 세상은 긴장과 대립의 연속이고 불화를 싹틔우는 씨앗들에 분석적 시선을 꽂기 마련이다. 술잔을 단숨에 비운 그가 냅킨 위에 취할 흥(興)자를 길쭉하게 쓰면서 말했다. 흥(興)자 가운데 일(一)자가 아래위를 지평선처럼 갈랐다. ‘대지는 꿈틀대니까 밟아줘야 하거든, 그걸 밟으면 대지 위에 인간은 어깨가 굼실거리지, 그게 흥이고, 대지의 무도(舞蹈)야.’ 노시인의 말은 그냥 시였다. 춘하추동으로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한국 사회의 아귀다툼은 언젠가 ‘무도회의 취흥’이 될 거라고 흘려 말했다. 희망사고가 아닐까 하는 사회학자의 의구심은 문명의 야만을 탈주하는 그의 시어에 흥겹게 유실됐다.

 안드로메다와 교신한 듯한 그의 ‘무제시편’에는 이런 시가 있다. “正史는 단조로운 질서이다/ 野史는 불온한 일탈이다/정사와 야사는 서로 만나기를 저어한다/…/유럽 여행 지겹다/…/어서 떠나/남태평양의 오래된 해류 위에 맞지 않는 예언으로 떠 있으리라.”(무제시편 86) ‘맞지 않는 예언’으로 춤출 수 있는 세상은 정사(正史) 속에서는 불가능한 것임을 청년 시절 통영 미륵산 토굴에서 일찍이 깨쳤거늘 ‘삼국유사’ 같은 설화의 세계에 호적(戶籍)을 두고 환속한 그에게 끊임없이 시를 쓰게 하는 영혼의 시그널은 어디에서 발원한 것일까. 사회학자는 맞지 않는 예언으로 춤출 수 있는 특권이 없다. 나는 그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사(正史) 쪽으로, ‘국민행복정치’와 ‘철도파업’ 쪽으로 그를 끌어냈는데, 그는 금세 어린 학생처럼 지루해했다.

 한국은 왜 이렇게 소란할까요? 소란 끝에 이윽고 고독이 찾아올까요? 사람들을 첨예한 이해관계로 몰아내는 자본주의에서 고독은 실존의식이 깃드는 아지트다. 고독을 겪은 사람만이 아니면 사람관계의 소중함을 알아차릴 수 없다. 고독!에서 노시인의 눈빛은 다시 반짝였다. 노시인이 말했다. 한국은 고독할 새가 없던 사회였다. 식민시대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고독 속으로 침잠했어야 했는데 원한과 적개심이라는 원초적 감정을 부추긴 냉전 이데올로기가 고독과 화해의 가능성을 틀어막았다. 화해란 오랜 대결 끝에 갈망하는 춤사위라면 우리는 아직 소란스러운 투쟁지대를 건너고 있는 중이다. 그럼, 서로 다른 ‘국민편익’을 앞세운 저 투박한 격투기, 철도 민영화와 공영화 중 무엇이 정의인지 모른 채 분출하는 격투는 내년에도 다른 형태로 재현되겠지요? ‘압축성장에서 겪지 못한 결핍 때문에 그렇지’라고 그가 말했다. 압축성장은 가능했지만 이렇게 거친 사유로는 이해분쟁의 해소가 어렵다, 민주화가 시작된 이래 더 거친 이념논쟁이 개막된 이유도 결핍증 아닐까, 노시인은 문학에 빗대 말을 이었다. ‘산문(散文)이 시(詩)로 진화하는 길목이 무너졌어.’

 그래서인가, 평생을 짓누른 전쟁의 적개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는 전쟁세대의 모습과, 그것의 연장선에 놓인 ‘안보정치’가 대지의 취흥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반도의 문명이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아사달과 아사녀를 춤추게 하는 시적 예언으로도 우리의 결핍증을 메울 수 없는 이때!’라고 내가 말하는 순간 노시인의 어깨가 들썩였다. 이데올로기를 시(詩)세계로 끌어들이려는 듯 노시인은 시어를 쏟아냈다. ‘팔순 세월이 이념에 짓눌려/ 野史로 가자, 유럽의 우람한 正史를 물리치듯/…/좌우 이데올로기는 저 변두리에서 풀이나 뜯으라.’

 ‘대지의 무도를 망치는 좌우 이데올로기는 변방에서 풀이나 뜯으라’. 팔순의 노시인이 남긴 이 말은 산문으로 무장한 사회학자에게 준 화두였고, 피곤에 지친 시민들에게 던진 신년 메시지였다. 대담을 마친 우리는 레스토랑을 나왔다. 밖에는 눈발이 제법 굵어졌다. 재회를 언약하는 노시인의 손은 따뜻했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노시인의 좁은 어깨에 눈이 몇 점 떨어졌다. 시인(詩人) 고은, 그와 보낸 세모의 몇 시간은 행복했다. 내가 팔순이 될 때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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