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vadis
순시공(quovadis)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1.27.2010

전체     25814
오늘방문     1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3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아멘" [Amen]은?
12/17/2014 06:28
조회  1935   |  추천   2   |  스크랩   0
IP 108.xx.xx.245

   "아멘"은 아무나 아무 때나 해도 되는 것일까?

 

   요즈음에야 비로소, 카스퍼 Walter Kasper 추기경이 쓰고 심상태 몬시뇰이 번역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 [원제: 신앙입문 Einfuehrung in den Glauben, 1979]을 읽는 중에, 우리가 흔히 아무나 아무 때나 말하는 "아멘"의 지고지순성에 관한 부분을 읽고 묵상을 해본다.

 

   '신앙의 증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부분이다. 특히'그리스도론의 물음'에 해당되는 부분을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예수의 행동과 그의 복음, 그리고 그의 역사 (役事)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예수는 누구였는가? 그는 자기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가? 그 해답은 간단치 않다. 그것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론적 지존칭호 [至尊稱號, Hoheitstitel: 하느님의 아들, 인자 (人子), 메시아, 예언자, 하느님의 종 등]들이 지상에 살아 계시던 당시의 예수에게까지 소급되지 않고, 후기 초대교회의 복음선포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수는 자기가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주권을 선포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요컨대 우리는 기껏해야 예수의 간접적 내지 함축적 그리스도론에 대해 물을 수 있을 따름이다.

 

   우선 예수의 행동으로부터 다시 출발할 수 있다. 그의 행동의 비범성과 거기서 표현되는 자유와 주권 [Souveraenitaet]은 하나의 그리스도론을 내포한다. 예수는 예언자들처럼 하느님의 주권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가져오기도 한다. 기적 행위 속에서 하느님의 주권이 '지금 여기에' 도래한다: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당신들에게 와 있음이 분명합니다" (루카 11,20). 일반적으로 예수가 직접 한 말로 인정된 이 금언 (金言, Logion) 속에서 그의 인격 [Person]과 그의 '사건' [Sache] 사이의 관련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는 그의 인격을 그의 사건 속에 합치시킨다. 예수의 역사 [役事], 여기서 구마행위는 하느님 주권의 도래와 함께 직접 그 전체를 이루고 있다. 예수의 역사와 그의 등장 속에 하느님의 주권이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그의 복음선포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산상성훈의 반명제 (反命題) 속에, 이들 중 제1, 제2, 제4명제는 예수의 말이 확실하다고 간주되는데, 이러한 사실이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옛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일러졌으나, 나는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마태 5,21.27.33 참조). 예수는 여기서 유다이즘의 최고 권위, 모세의 권위에 감히 이의를 표명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자신을 구약에서의 하느님 말씀 위에 세운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의 종국적 말씀의 사자임을 내세운다. 때문에 그는 자기의 진술을 위해 아무런 확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보통으로 남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쓰이는 아멘 [Amen]을 예수는 자기자신의 말을 위해 사용한다. "아멘, 아멘, 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에게 전형적인 이 아멘이란 용어의 사용은 하나의 전 (全) 그리스도론을 함축하고 있다. 예수는 예언자들처럼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고 자기의 말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하느님의 말씀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자신의 말을 스스로 보증하고 구약의 권위보다 더 높은 자신의 권위로써 말한다. 그는 예언자들을 능가한다. 우리는 그가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고 있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여기까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아멘을 연발해도 되겠는가?

우리 주변에는 아멘을 너무 많이 남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말을 하고 자기가 아멘을 하고, 자기가 말을 하면서 자기가 아멘을 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에게 아멘을 주문한다. 많은 집회에서 이 아멘소리가 소란스럽기까지 한다.

 

   '성서신학사전' (Vocabulaire de Theologie Biblique, 광주가톨릭대학교 번역)에는 이 아멘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있는지 그 전문을 살펴보자.

 

<   흔히 사람들은 "아멘"이라는 말마디를 단순히 하나의 소원을 드러내는 "그렇게 되어지이다"로 번역한다. 그러나 "아멘"이라는 말마디의 일차적인 의미는 "확실히!" "참말로!" "그롷고 말고!" 그리고 단순히 "그렇다!"를 뜻한다. 이 말마디는 "확실하다," "견고하다," "든든하다" 등을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파생한 부사이다. 그리하여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방금 말한 것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선언, 즉 어떤 명제를 받아들인다는 선언이며, 또한 기도에 자기자신을 일치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1. 참여와 환호 - "아멘"이 다만 그렇게 되었으면..." (예레 28,6)이라는 뜻을 갖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말에 자기자신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때 이 "아멘"이라는 말마디를 사용한다. 즉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할 때 (1열왕 1,36), 일정한 임무를 수락할 때 (에제 11,15), 맹세와 그에 따르는 결과를 책임질 때 (민수 5,22) 이 말마디를 사용한다. 그리고 이 말마디를 성대하게 사용하는 것은 계약 갱신 예식 중에 집단적으로 "아멘"하고 응답할 때이다 (신명 27,15-26; 느헤 5,13).

   이 "아멘"이라는 말마디가 전례 집행 중에 사용될 때 또 하나의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즉 하느님과 직접 대면하여, 그분의 말씀에 신뢰하고 그 분의 권능과 인자에 자신을 맡겨드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적인 의탁은, 한편으로 인간이 그분에게 자신을 예속시키는 자로 그분의 축복이며 (느헤 8,6), 또한 인간이 청하는 바 그것이 들어 허락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기도이다 (토빗 8,8; 유딧 15,10). 따라서 이 "아멘"은 전례 속에서 환호성이 되며,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찬송 끝에 덧붙여진다 (1역대 16,36). "아멘"은 이런 의미로 신약성서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로마 1,25; 갈라 1,5; 2베드 3,18; 히브 13,21). "아멘"은 회중의 이름으로 기도를 바치는 사람과 그 회중을 일치시키는 환호성이다. 따라서 "아멘"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회중 전체가 이미 말해진 내용을 모두 알아들어야 한다 (1고린 14,16). 한편으로 의탁이면서 다른 한편 환호인 이 "아멘"은 천상 예배에서 부르는 찬미가의 마지막 말마디가 된다 (묵시 5,14; 19,4). 이 때 "아멘"이라는 말마디는 "알렐루야"라는 말마디와도 하나가 된다.

 

   2. 하느님의 아멘과 그리스도인의 아멘 -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약속하시지만, 그 분은 그 약속에 충실하시다. 그분은 바로 진리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바로 "아멘"이신 하느님 (이사 65,16)이라는 칭호의 참된 뜻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멘"은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시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약속을 지키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렇다"고 하셨다가 "그렇지 않다"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그렇다"고만 하신다 (2고린1,19-20). 여기서 바오로는 히브리어 "아멘"을 "그렇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나이" [nai]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어떤 것을 선언하실 때 그 말씀의 서두에 "아멘"이라는 말마디를 한 번 (마태 5,18; 18,3 이하) 또는 두 번 반복하시면서 (요한 1,51; 5,19 등) 말씀하신다. 이것은 유다인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이러한 어법은 틀림없이 전례문의 형식이었겠지만, 예수께서는 "이는 야훼의 말씀이다"라는 예언 선포의 말투를 이렇게 바꾸어 사용하신 것 같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시며, 또한 당신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은 "아멘"으로 시작하여, 비록 그것이 드러나 있지 않다 할지라도, "아멘"으로 마친다. 이사실은 하나의 내력 (來歷)을 갖는다. 즉 그것은 성부와 성자의 대화이다. 예수께서 하느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그 분은 참된 것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그분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 가장 탁월한 하느님의 아멘 그리고 하느님의 충실하고 참된 증거자이시기 때문이다 (묵시 3,16).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 충실하려면, 그는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하느님께 응답해야 한다. 왜냐하면 가장 효과적인 "아멘"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아멘"하고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2고린 1,20). 교회는 하늘에 있는 선택된 사람들과 일치하여, 바로 이러한 "아멘"을 노래한다 (묵시 7,12). 그러나 주 예수의 은총 없이는 아무도 이러한 "아멘"을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성서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소원은, 그리고 "아멘"으로 종결짓는 마지막 소원은 예수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와 함께 있는 것이다 (묵시 22,21).

Charles Thomas, P.S.S. (Nantes)>

 

   '성서신학사전'의 내용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다시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신앙'으로 돌아 가보자. 제5장 신앙의 행위 2. 성서적 신앙관 항목의 중간쯤에 '아멘'에 연관된 부분이 또 나온다.

 

<   신약은 단순히 구약의 연장과 계속이 아니라, 진실로 새로운 계약이다. 그 때문에 실제로 신앙이해에 단절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해의 두 양식을 대립시켜 놓아서는 안된다. 구약의 신뢰신앙도 역사 안에서 체험된 하느님의 신의에 대한 응답이다.... 그러므로 "아멘, 아멘, 나 너희에게 말하노라"라는 예수의 언어 사용은 예수가 온전히 유일무이한 확신을 갖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과 하느님 자신을 자기 말의 보증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또 자기 말의 진리성과 실재성은 하느님 자신의 진리성과 실재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멘'은 요컨대 전 그리스도론을 요약하여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인들에게서 신앙의 '아멘'을 깨워주는 신앙의 '아멘'이며 충실한 증인이다 (묵시 3,14 참조).>

 

   나는 이 '아멘'에 관하여 두어 가지의 에피소드가 있다.

1960년대에 중학교 <미국 감리교 선교사가 세운 중학교>에 들어 가서 영어를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세대인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한학기가 지날 즈음에 전교 영어 단어 대회가 학년별로 열렸다. 일종의 학기말 단어 경시대회인 셈이다. 한학기 동안 배운 영어 단어가 되면 몇 개나 되겠는가? 나는 총기가 제법 좋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시험문제에 나온 단어의 뜻을 시험시간이 반도 안지났는데 거의 다 썼다. 그런데 딱 한 문제...! "amen"의 뜻을 쓰라는 것이다. 이 단어는 교과서나 어느 참고서에서도 그때까지 배워 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어린 나는 무지무지 당황했다. 이 궁리 저 궁리해 봐도 알 수 없었다. 'a'는 단수인데 'men'은 복수다. 이 두 단어가 합해졌으니 이게 무엇을 뜻할까? '여러 사람이 하나로?' 아마 그렇게 추리에 추리를 남은 반 시간 내내 한 끝에 그렇게 썼던 것 같다. 물론 99점으로 전학년 1등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즐거운 추억이다.

 

   또 하나는 부제학교 다닐 때다. 성 요한 신학교 [St. John Seminary]의 강론학 교수님의 지도하에 강론 실습 시간이었다. 각자 주어진 복음에 따라 강론을 준비하여 발표하고, 교수 신부님의 지도를 받느 것이다. 나는 강론 마지막에 우리 성당의 다른 교구에서 오신 신부님의 강론을 흉내내어, 강론 맨 마지막에 '아멘!'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지도 신부는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지적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떻게 자기의 강론에 '아멘!'이라고 마무리 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당시는 왜 그럴까 잘 몰랐었는데, 약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위의 글들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스스로 깨닫고 부끄럽게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도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不亦說乎]

 

 사실 나는 여러 성직자들의 강론들을 많이 듣는 편이다. 그런데 자기 강론 끝에 '아멘'이라고 말하며 끝맺음하시는 것은 다른 곳에서 오신 몇몇 신부님들에게서만 듣는다.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그렇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아멘'에 관한 묵상이 이렇게 길어졌다.

그저 열심히 기도하고 자기 기도 끝에나 열심히 "아멘!"을 외칠 일이다.


들으면 활력이 솟아나는 "Amen" 한번 들어 보십시오: "지금 그리고 여기"를 클릭 하세요.      

http://www.youtube.com/watch_popup?v=cNoKFcQZL5c:

"讀書 및 讀書 要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아멘" [Amen]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