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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밤: 윤동주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01/29/201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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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녘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살찌도록 분부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따뜻한 날씨를 베풀어주소서
열매들이 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이 들도록 하여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집을 짓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외롭게 머물며
잠이 깨어,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질 때면, 불안스럽게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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